오하타 아키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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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노동운동가
- 일본의 남성 정치인
- 간 내각 국무대신
- 일본 경제산업대신
- 일본 국토교통대신
- 일본사회당(1945년) 국회의원
- 사회민주당(일본) 국회의원
- 구 민주당(일본) 국회의원
- 민주당(일본) 국회의원
- 민진당(일본) 국회의원
- 국민민주당(2020년) 출신
- 제39대 일본 중의원 의원
- 제40대 일본 중의원 의원
- 제41대 일본 중의원 의원
- 제42대 일본 중의원 의원
- 제43대 일본 중의원 의원
- 제44대 일본 중의원 의원
- 제45대 일본 중의원 의원
- 제46대 일본 중의원 의원
- 제47대 일본 중의원 의원
- 일본의 도도부현의회의원
- 1947년 출생
- 히가시이바라키군 출신 인물
- 사회운동가 출신 정치인
- 2017년 은퇴
- 욱일대수장
1. 개요[편집]
일본의 前 정치인으로 경제산업대신, 국토교통대신 등을 역임했었다.
2. 생애 및 정치 활동[편집]
1947년 10월 5일, 이바라키현 시로사토마치에서 태어났다. 이바라키 고등학교, 무사시공업대학 (현재의 도쿄도시대학) 공학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대학원에서 공학부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히타치에 입사해 원자력 발전소 설계 및 건설 업무에 종사했다. 또한 사내 노동조합 임원을 맡기도 했다.
1986년 이바라키현의회 의원에 당선된 이후 1990년, 제3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일본사회당 소속으로 (구) 이바라키현 제2구에 출마해 당선된다. 이후 무라야마 내각에서 통상산업 정무차관을 지냈으며, 1996년에는 사회민주당에서 구 민주당으로 이적하고,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구 민주당의 공천을 받고 이바라키현 제5구에 출마했지만 당시 지역구 현역 의원인 자민당의 쓰카하라 슌페이한테 패하고 석패율 비례대표로 부활한다. 이후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때 이바라키 5구에 재출마해서 지역구 당선을 성공한 이후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때 까지 연속으로 지역구에 당선되었다.
민주당 정권 시절에는 간 나오토 내각에서 경제산업대신과 국토교통대신을 역임했다. 민주당 정권 이후에는 가이에다 반리 당시 대표 밑에서 민주당 간사장을 지냈다. 2014년 9월 민주당 간사장을 퇴임한 뒤 2015년 12월 민주당 부대표에 취임했다. 그러나 2016년 2월에 정계 은퇴를 선언했고 3월 자신의 후계자로 히타치 노조 임원이자 자신의 비서인 아사노 사토시를 지명했다.
2017년 4월에 민진당 이바라키현련 대표로 취임했다.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불출마했으며, 정계를 은퇴했다. 후계자 아사노는 패배했지만 비례대표로 부활했다. 2018년 봄에 욱일대훈장을 수상받았으며, 민진당 해산 후 국민민주당에 합류해 이바라키현련 최고 고문으로 취임했다. 신 국민민주당에서도 동직 임명 및# 당 상임고문으로도 취임했다.
3. 정치 성향[편집]
舊 일본사회당, 노조 출신인데도 일본국 헌법 개정에 찬성하며, 선택적 부부 별성 제도에 대해서는 어느 쪽도 말 못한다고 말했다.
히타치에서 원자력 발전소 설계 업무를 해서 그런지 원자력 발전소를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4. 소속 정당[편집]
5. 선거 이력[편집]
6. 기타[편집]
- 학창 시절 검도에 몰두했으며 취미는 조깅이다.
- 2000년 12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다.
- 국토교통대신 시절 도로 정비 때문에 아키타현지사 사타케 노리히사가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오하타가 "우리 오하타 가문은 사타케 가문[8] 이 히타치국을 지배할 때 가신이었다"고 말했다.
- 국회에서의 질의가 활발했으며, 2011년 국회에서 무려 96번이나 질의를 했었다.
- 배우자는 이바라키현에 있는 교육대학에서 보육학 전문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 중의원 의원 시절, 아사노 사토시를 본인의 공설비서로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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