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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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
2. 사회적(소수집단) 관점의 오타쿠
2.1. 오타쿠는 (문화적)소수자인가?
2.2. 오타쿠는 정체성인가?
2.3. 문화적 전문가로 접근하자?
2.4. 차별은 존재하는가?
2.4.1. 비전형적 차별
2.5. 수평폭력
2.6. 소결
3. 과연 오타쿠만의 문제인가?
3.1. 문화사대주의이다?
3.2. 저작권을 무시하고 불법 공유만 이용한다?
3.3. 공사 구분을 못 한다?
3.4. 내로남불과 이중성?
3.5. 대한민국 국부(國富) 유출을 하는 존재다? / 문화제국주의의 첨병이다?
3.6. 오타쿠는 변태다?
3.7. 구조적 문제의 배격
3.8. 일탈은 상대적
3.10. 이중잣대
4. 차별에서 벗어나려면?
4.1. 미시적인 해결책
4.1.2. 부정적 이미지 불식하기
4.1.3. 주체적인 문화 향유
4.2. 거시적인 해결책
4.2.1. 팬덤 차원
4.2.2. 국가, 사회 차원
5. 관련 문헌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오타쿠들을 향한 비판에 대한 반론들을 정리한 문서. 대체로 사회적 관점(오타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오타쿠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으로 서술되어 있다.

문서명은 '옹호'라 되어 있지만, 이는 오타쿠가 잘하는 일이라고 박수를 보내겠다는 뜻이 아니라 "왜 그렇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해를 선행한 후에 '손가락질'보다는 우리 모두의 문제로 끌어안자는 뜻이다.

이하 이 문서에서 '오타쿠'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팬층' 뿐만 아니라 '만화/애니메이션 팬덤 전반'을 가리키는 말로 정의한다.


2. 사회적(소수집단) 관점의 오타쿠[편집]


이 문단에서는 인권 등, 사회 구조적인 이론적 조망을 바탕으로 오타쿠에 대한 사회적 고찰을 하기로 한다.


2.1. 오타쿠는 (문화적)소수자인가?[편집]


소수자로 볼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나, 아직 이에 대한 연구는 부족한 상태이다. 한 사회의 특정 인구 집단이 소수자로 규정되는 데에는 여러 가지 기준이 적용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다음 네 가지 조건이 언급된다.[1] 한편으로, 일본의 경영학자 야마구치 히로시(山口浩)는 일부 오타쿠를 일종의 성소수자로 보는 글을 쓰기도 했는데(이 글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중심으로 설명)[2], 실제로 오타쿠와 성소수자는 소수자로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3] 여기서는 성소수자 등 다른 소수자와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한편, 조직화 여부와 범주별로 본 소수자의 예[4]에 따르면 오타쿠는 다음 중 유형 8에 해당할 수 있다.


조직화 여부


집단화
비집단화
소수자 특징
신체적 소수자
유형 1(장애인)
유형 2(HIV/AIDS 감염인, 한센인)
권력적 소수자
유형 3(탈북자)
유형 4(양심적병역거부자)
경제적 소수자
유형 5(비정규직/외국인노동자)
유형 6(노숙자)
문화적 소수자[5]
유형 7(성적소수자/일본군위안부)
유형 8(이주배우자, 미혼모)

  • 식별(구별)가능성(identifiability): 소수자 집단은 신체 또는 문화적으로 다른 집단과 구별되는 뚜렷한 차이가 있거나 그럴 것으로 여겨짐.
    • 애니프사, 일코, 숨덕이라는 신조어의 존재가 이들이 '식별 가능함'을 증명한다. 그러나 이들은 적극적인 자기 드러내기가 없으면 식별이 불가능하며, 커밍아웃을 한다 할지라도 자신이 포함된 집단 내에서만 식별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이들은 음성적이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다른 집단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즉 성소수자/오타쿠 스스로 커밍아웃/덕밍아웃을 하기 전까지는 식별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특성을 갖는다. 이는 외국인노동자, 국제결혼 여성, 노숙자들이 수동적인 식별가능성에 의해 다수와 구분된다는 것과 다른 맥락이다. 그러나 외부에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게 될 경우 식별가능성은 성소수자/오타쿠를 소수자집단의 범주에 묶어 놓게 된다. 그런데 소수자집단의 범주라 할지라도 그 범주의 범위는 전국 어디서나 공통적으로 식별 가능한 것이 아닌 자신의 활동 반경(예를 들어 그들이 모이는 장소 - 술집, 클럽, 가정 따위) 내에서만 식별 가능하다.
  • 권력의 열세(differential power): 여기서 말하는 권력의 열세란 경제력, 사회적 지위, 정치권력 등 다양한 측면에서 실질적인 차이가 있거나 혹은 여러 가지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에서 차이가 난다는 것을 뜻한다. 즉 정치·경제·사회적 권력에서 열세에 있거나, 자원 동원 능력이 뒤처지는 사람들이 소수자 집단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 똑같은 팬덤인 축구 팬과 연예인 팬의 예를 들어보자. 축구팬은 사회 속에서 당연한 존재이며, 때로는 긍정적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리고 연예인 팬은 '빠순이'라 불리며 멸시를 받기도 하나, '한류의 일등공신'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으며 해당 업계에서는 나름대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오타쿠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이들에 비해서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 그러나 기타 소수자 집단과 달리 정치적•경제적•사회적 권력이 확보되어 있으며, 적극적인 자기 드러내기가 없으면 이러한 열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성소수자/오타쿠는 노숙자나 장애인과 달리 경제적 생활능력이 있는 사람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사회적•경제적•권력적 측면에서 항상 열세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특히 식별가능성과 연관지어 볼 때 성소수자/오타쿠는 자신의 성적 지향/취미를 외부에 밝히지 않는다면 자신들이 갖고 있는 권력의 우위를 지속적으로 점할 수 있다는 특성을 갖는다. 그런데 이 역시 성소수자/오타쿠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게 될 때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우위를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 차별적/경멸적 대우의 존재(differential and pejorative treatment):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한 개인이 단지 그 집단의 성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차별의 대상이 되는 상황을 초래한다.
    • 원문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실질적 차별뿐만 아니라 경멸적인(pejorative) 대우도 포함되는데, 경멸적인 대우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실질적인 차별도 자행되고 있다. 가령 일본에서는 인종 프로파일링[6]에 준하는 '오타쿠 사냥'이 벌어지고 있는데, 경찰이 실적 등을 이유로 만화, 애니메이션 팬을 불심검문하거나 임의동행을 요구하는 것을 말한다. 이 때 또 다른 '오타쿠 사냥'을 막기 위해 호신용으로 분사기, 전자충격기 등을 가진 경우라면 총도법(한국의 총포화약법에 해당)으로 입건되는 것은 덤이다.
    • 또한 커밍아웃을 함과 동시에 차별대우가 존재하며, 이성애자로 대표되는 다수자와 기타 소수자집단으로부터 이중차별의 대상이 된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성소수자/오타쿠는 같은 소수자집단에서도 차별을 받게 되는 이중 차별의 대상이 된다. 예를 들어 레즈비언 여성 집단 또는 연합체들은 대부분 '가부장적 사회의 폐지와 성 정체성에 대한 차별의 금지'를 조직 목표로 설정하고 활동한다. 그러나 이들이 여성단체와 함께 가부장적 사회의 폐지를 논의하고자 할 때 일반 여성단체들은 레즈비언 단체들이 자신들과 함께 활동하는 것을 꺼린다. 오타쿠의 경우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축제인 프라이드 퍼레이드에서 너드/오타쿠 성향도 겸비한 성소수자들이 갖가지 오덕 본능을 드러내는 경우는 간간히 있지만 본격적으로 사회 운동에 나선 경우는 아직까지 없는데, 가장 유사한 가정을 한다면 아이돌 팬덤(전술하듯이 아이돌 팬덤에게도 부정적인 시선이 없지는 않다)과 함께 팬덤의 권익 향상을 논의하고자 할 때 아이돌 팬덤이 오타쿠 단체가 자신들과 함께 활동하는 것을 꺼리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 소수집단성원으로서의 집단의식(group awareness, '집합적 정체성'): 이러한 차별대우는 그들이 차별 대우를 받고 있고 그들 집단의 어떤 본질적인 자질보다 다수의 평가의 결과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이와 같은 집단의식은 단지 몇 사람의 공유된 생각에서 시작하게 되지만 차별적 관행의 반복을 통해 전체적인 연대의식으로 확장된다.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이 자기가 차별받는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점을 느껴야 비로소 그 사람은 소수자가 된다는 것이다.
    • 가령 2019년 포항 중학생 자살 사건의 김군이 '"학교에서 따돌림당하기 좋은 조건으로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 "내용도 안 보고 서브컬처를 무시했다", "내가 잘못은 했지만, 무시받았다"라고 느낀 것'과 같은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 오타쿠의 경우는 성소수자와는 달리 집단의식이 약하고 이슈 확산을 위한 노력이 없다는 차이점이 있으나 '해당 범주에 다양한 취향(엄밀히 말해 성소수자의 경우 '취향'이라 할 수는 없지만, 두 집단의 공통점을 이야기하기에 편의상 '취향'으로 통칭함)을 기초로 한 집단이 참여하기 때문에 집단간 갈등이 함께 존재한다(오타쿠의 경우에는 지지하는 장르, 작품 또는 캐릭터에 따라 파벌이 갈려 서로 싸우는 경우가 많으며, 성소수자의 경우 같은 '성소수자' 범주에도 '동성애자 - 게이, 레즈비언 -, 양성애자, 무성애자, 트랜스젠더' 등의 다양한 성적 지향이 존재하며 이들은 비록 성적 소수자라는 공통점이 존재하나 각기 다른 성 정체성을 갖고 있어 이들 간 연합형성이 쉽지 않으며, 어떠한 경우에는 레즈비언과 게이 집단 간 갈등, 동성애 집단과 트랜스젠더 집단 간 갈등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성소수자 인권 운동이 '동성애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에 해당하지 않는 성소수자들이 소외감을 갖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 이 부분이 '소수자로서의 오타쿠'의 가장 큰 약점이다. 이들은 노숙자, 에이즈 환자, 외국인 배우자, 미혼모 등과 마찬가지로 집단으로서 특수한 규칙이나 문화적 지침을 가진 경우보다는 사회적으로 열악한 입장으로 인해 개별적으로 분산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집단의식도 희박하며 연대하기도 어려운 상태이다.[7]


2.2. 오타쿠는 정체성인가?[편집]


우리 누구나 소수자적 특성을 하나씩 보유하고 있다.[8] 누가 소수자인가의 기준은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불안정하고 변화 가능한 것이다. 소수자 집단을 따질 땐 특정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존재할 뿐 상황이 바뀌기만 해도 소수자로서의 성격이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할 정도이다.[9] 우리가 특정 집단을 소수자로 분류하는 이유는 단지 그 집단이 집단 내의 공통적 특성으로 차별을 받아 기본권을 침해받기 때문이며 이를 개선하고자 저항성을 띄거나 정책적으로 우대 혹은 차별 폐지를 시행하여 평등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뿐만이 아니라[10] 그 대상을 차별받고 억압받는 객체의 지위에 머물게 하지 않고, 적극적인 주체의 지위로 복원하려는 의도이다.

소수자의 개념은 말 그대로 수적 열세도 포함하고 있지만 사회적 소수자를 정의할 땐 이런 순수한 뜻으로만 사용하진 않는다. Deleuze와 Guattari(1980: 133-134)는 소수자가 다수자와 단지 양적으로만 대립되는 것이 아니며 수와 상관없이 하위체계 또는 체계를 벗어난 것을 가리키는 복잡한 개념임을 강조하고 그 대표적 예로 여성을 들었다. Anthony Dworkin과 Rosalind Dworkin(1999)도 소수자의 엄밀한 정의를 위해 신체적ㆍ문화적 식별가능성, 경제ㆍ사회ㆍ정치적 권력의 열세, 사회적 차별 대우, 소수자 성원으로서의 집단의식 등을 그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장미경(2005:161)은 특히 소수자를 ‘표준적인 인간과는 거리가 먼 주변인’으로 규정하고 주변성과 타자성, 일탈이 극대화되면 범법자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며 단순히 숫자가 아닌 다수자의 지배에 대립하는 개념으로서, 수적으로는 다수자보다 더 많을 수도 있음을 지적하였다.[11]

이렇듯 소수자의 키워드는 대립 차별 복종이다. 만민의 평등을 외치는 민주주의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들 소수자 문제는 합리성과 이성의 위기 속에 더 드러나 보일 수 있었고 이들은 표면으로 ‘가시화’하기 시작했다. 몇몇 학자들은 다수결의 원칙에 기반한 민주주의 체제는 단지 형식적 기회의 평등만 보장할 뿐 실직적 다수 지배집단의 입장에서 소수자들의 권리와 고유 정체성을 부정하고 배제하는 방식이라고 주장한다.[12] 이러한 개념 속에서 오타쿠는 과연 어느 지점에 존재하는 집단일 것인가?

우린 위 단락에서 성소수자와 오타쿠를 비교한 내용에 다른 집단들을 무작위로 넣어도 어느 정도 비슷한 말을 써낼 수 있을 것이다. 낚시꾼, 흡연자, 비만, 작은 키, 노인, 학벌, 양심적 병역 거부자 등등 이들 집단 중 일부는 정말 사화적 소수자나 그에 준한 지위를 가지고 있지만 그 공감의 차이는 천차만별이다.[13] 그렇다면 오타쿠는 어떤가? 성소수자에 비견될 만큼 기본권의 침해가 심각한가? 역사적ㆍ사회적 맥락에서 따질 수 있는가?[14] 다수자들에 대립하는 존재들인가?[15][16] 이러한 점에선 의문이 남는 것이 사실인 듯하다.

그러나 피에르 부르디외가 지적했듯이 취향은 계급이건만, 우리는 계급 비판은 금기시해도 취향 비판은 비교적 자유롭게 하는 경향이 있다. 부르디외는 미적으로 편협하다는 것은 가공할 폭력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기호(嗜好)는 혐오와 분리시킬 수 없다고 단언한다. '다른 삶의 양식에 대한 혐오'는 계급 사이의 가장 두꺼운 장벽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17]

그리고 대중문화란 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자신의 취향은 어떤 것인지, 이것은 자신의 정체성에서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한다. 전국노래자랑을 좋아하는 집단과 뮤직뱅크를 좋아하는 집단의 정체성을 같다고 할 수 있을까?[18] 또한 팬덤은 하나의 동질적인 문화가 아니라 수많은 차이와 다양성을 담고 있는 일종의 하위문화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선호하는 스타에 따라, 혹은 특정한 대중 미디어의 장르에 따라, 심지어 콘텐츠 플랫폼이나 특정한 테크놀로지와 기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태로 구성된다. 이에 따라 팬덤은 개인의 자아 정체성, 그리고 집단 정체성의 구현과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된다. 팬덤 활동은 정체성을 구성하는 활동이자 정체성을 드러내는 활동이며, 이를 통해 팬덤 고유의 문화 자본을 형성한다.[19]

무엇보다, 헌법재판소는 헌법 11조에서 말하는 '사회적 신분'이란 사회에서 장기간 점하는 지위로서 일정한 사회적 평가를 수반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는 바[20], 위와 같은 점에 비추어 볼 때, 오타쿠는 '덕질을 하루 이틀 하고 말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장기간 점하는 지위'라 볼 수 있고[21], '온갖 부정적인 사회적 평가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사회적 평가'를 수반한다고 볼 수 있는 바, '사회적 신분'으로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3. 문화적 전문가로 접근하자?[편집]


지식인들이 오타쿠에 접근하는 방식은 문화적 시각에 치중해 있다. 이들이 일구어놓은 폐쇄적이면서도 계속 열리고 있는 거대한 문화시장이 이들을 대변한다. 폐쇄적인 이유는 박해 받아서 라기 보다는 자기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메인의 변두리인 서브컬처를 향유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다.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가 가진 폐쇄성과 매뉴얼에 맞추어 살아가며 그 속에서 안정성을 추구하는 국민적 성향과 유난히 혼자 놀 수 있는 놀이 문화가 발달했던 환경,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과도한 절제와 억제를 강요받는 분위기는 모두 일본에서 오타쿠라는 존재가 생겨날 수 있었던 필연적인 요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사회전체에 뿌리박혀있는 ‘아마에’[22]도 한몫 했다.

이런 그들이 일구어 놓은 시장에서의 입지는 이제 와서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오타쿠를 단지 차별받는 소수자로만 접근 한다면 오히려 이들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내릴 수 없고 폐쇄성에만 몰입하는 결과를 불러 올 여지가 있다. 과거 오타쿠의 탄생 배경이 어떻든 현 시대엔 여러 편견과는 다르게 오타쿠 중에서도 사교성이 뛰어난 사람이 많고, 친구도 많으며, 취미에 전념할 수 있을 정도의 자금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어둡고 폐쇄적이란 편견이 오타쿠에겐 정도가 심하다고 평가되지만 자신들만의 다양하면서도 내면적인 취미를 향유하고 있는 이들에게 취향 존중 나아가 취향의 외연 확장을 넘어 특별 복지가 필요한 사회적 소수자인지 생각의 여지가 있다. 어느 집단이든 편견은 있으며 사람들은 누구나 내면적인 자기 취향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차별이 있다면 목소리를 내야겠으나 오타쿠가 총체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취미 전문가로서의 이미지이지 차별 받는 소수자로 땅을 파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취미 전문가'로서의 입장은 부르디외의 표현을 빌리면 '계급탈락에 대해 개인이 가진 사회자본으로 대응하는 개인적인 만회전략'에 지나지 않는다. 쉽게 말해 '억울하면 출세하라'라는 주장의 연장선상에 있는 셈이다.

이러한 '취미 전문가'로서의 우월주의는 또다른 지배 이데올로기의 피해 담론이다. 오타쿠도 다른 팬덤과 마찬가지로 그 나름대로의 다양한 의미와 이미지가 있다. 오히려 우월주의로 설정될 때 오타쿠의 순수한 아마추어리즘은 사라진다. 따라서 우리는 팬덤에 대한 배타적 차별주의를 차단하고 팬덤 문화를 다양한 욕망의 기호로 설정, 재구성해야 한다. 즉 오타쿠는 자연스런 욕망에 따라 맘껏 덕질을 하고 빠순이도 그렇게 하면 된다.

그리고 인권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단지 수식어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적이고 인도적인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이어야 하며', 일반 시민은 수평적 차원에서 소통이 가능해야 한다. 다시 말해 '취미 전문가'로서 띄워 주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미묘하게 따돌리는 등 사회적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러한 수식어는 그저 사탕발림, 립서비스에 지나지 않는다. '산업역군'이라 띄워 주면서도 뒤에서는 '공돌이, 공순이'라 불리며 착취당하던 노동자들이 그러했고, '한류의 일등공신'이라 불리면서도 '빠순이'라 불리며 냉대받는 아이돌 팬덤이 그러하듯이.

또한, 재한 외국인을 다루는 프로에서 고학력의 성공한 외국인들을 주로 비추게 되면(ex. 비정상회담), '다문화 가정'으로 대표되는 '우리 주변의 외국인'은 오히려 양지로 나오지 못하게 되는 것과 같이 이러한 관점은 '용인받을 수 있는 오타쿠'의 최저선을 올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오타쿠는 뭔가를 이룩해야만, 증명해야만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타쿠는 그 자체로 오타쿠일 뿐이다.


2.4. 차별은 존재하는가?[편집]


스가노 타모츠나 노마 야스미치[23]

같은 이들의 주장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엉터리인지는 전에도 쓴 바 있지만, 또다시 터무니없는 헛소리를 시작했다.

@scarecrow_1911e C.R.A.C.는 반 인종주의 단체이므로 주로 인종차별이나 민족차별을 다룹니다. 생활에 뿌리내린 다양한 차별(성차별・소수자 차별, 직업차별, 부락차별 등)에도 관심을 가지지만 '오타쿠 차별'같은 건 없으므로 관심 밖입니다.[24]

@rem3545 너희들 중에서도 마찬가지일 거야. 아니면 너희들 사이에선 '오타쿠라는 이유만으로 취직을 못 하거나 집을 못 빌리거나 식당에서 오타쿠 전용석에 앉히거나 단종되거나 린치를 당해 나무에 매달리거나' 하는 거야? 그거 게임 속 얘기지?

나는 이 문장을 목격한 순간, "아, 이 사람은 자신이 빠질 거대한 함정을 파는 줄도 모르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일본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린치를 당해 나무에 매달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레스토랑에서 재일 한국인 전용석에 앉히거나 단종되거나 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즉 그들의 논법에 따라 '취직하지 못하거나 집을 빌리지 못하거나 (생략)' 같은 걸 기준으로 삼으면 성차별이나 재일 차별, 부락 차별 같은 것도 차별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피해자가 '저는 이런 차별을 당했습니다'라고 해도 소용 없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런 건 내 기준에선 차별이라고 인정할 수 없어'라고 단언하면 그만이니까.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싫어하는 오타쿠를 비난하는 게 우선과제이며, 이를 위해서는 자신들이 내건 반차별사상조차도 무시하기를 서슴지 않는 것이다.

에도 시대의 기독교도처럼 책형을 당하거나 화형을 당하더라도 오타쿠를 계속할 사람은 없으리라 믿습니다. 자민당에 투표해서 표현의 자유를 규제당하더라도 정부가 하는 일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뿐이니까요(웃음). 뭐 어떻습니까. 고작 취미일 뿐이니까요.

@romsenzzz @rem3545 멋대로 정의하지 않았습니다. '차별'은 선천적, 혹은 바꾸기 어려운 속성을 가진 소수자 집단 혹은 약자 집단이 사회적으로 배제되거나 일방적인 불이익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오타쿠랑은 관계없는 얘기예요.

그들은 오타쿠가 아니니까, 오타쿠는 '고작 취미일 뿐'이며, '바꾸기 어려운 속성'을 가지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오타쿠를 그만둬', '애니 따위 보지 마', '피규어 같은 건 버려'란 소리를 들으면 쉽게 따를 거라 믿고 있다. 권력자로부터 표현을 규제당해도 '어쩔 수 없지'라며 안이하게 따를 게 틀림없다고. 그것들이 얼마나 마음에 고통을 주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 오타쿠 차별은 사라지고 있다: 야마모토 히로시의 신 SF 비밀기지


‘차별’ 하면 사람들은 흑인이 버스도 탈 수 없었던 시절의 인종차별 같은 것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오타쿠가 무슨 차별을 받느냐’고 의아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오타쿠'들이 특정 커뮤니티에서 '사이트 주제와 상관없는 글'을 올린다고 비난 혹은 불이익을 받을 때, '게임, 연예, 스포츠'같은 주제의 글[25]을 올리는 사람에게도 같은 반응을 보이던가? 그들은 그저 자신의 관심사를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었을 뿐일 수도 있지 않은가?[26] 사실 프듀, 스카이캐슬, 하트시그널, 방탄소년단, 워너원, 월드컵, 올림픽 등과 마찬가지로 특정 관심사가 집중되는 시기에 특정 주제에 관한 글이 올라오는 것은 흔한 일이다. 즉 오타쿠들은 소수집단으로서 자신의 취향을 다른 이와 공유할 권리가 거부된 것이다. 이처럼 오타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소수자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이른바 '혐오 발언'의 효과를 내기 마련이다. 소수자는 자괴감과 무력감 탓에 반론할 말을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피해를 호소하는 일조차 포기하게 된다.

또한 상기한 동성애자와 같이 차별 인식이 부족한 것은 오타쿠의 '음성적 측면' 때문이라 해석하는 것이 정확하다. 즉 이러한 측면 때문에 차별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이지,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2.4.1. 비전형적 차별[편집]


파일:potentialminority.jpg

오타쿠에 대한 차별이 부각되지 않는 것은 동성애자와 마찬가지로 음성적 측면이 작용된 것도 있지만[27] 차별이 소규모 집단에서 국지적으로 나타나는 것[28]도 한몫 한다.

위 표는 더글러스의 집단-격자(Group-Grid) 모델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잠재적 마이너리티를 구성한 것으로, 가로축의 '집단'은 사회가 개인 혹은 집단에 가하는 압력의 정도를, 세로축의 '격자'는 마이너리티를 구분하는 경계가 사람들에게 공유되는 것을 나타내는 수치, 즉 전체 사회에서 통용되는 경계인지, 소규모 집단에서만 통용되는 국지적인 경계인지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1)에 해당하는 혼혈인, 장애인, 노인 등은 대다수의 사람에게 공공연한 기피 대상이지만 공식적으로 차별을 받지는 않는다. 반면 (2)에 해당하는 여성이나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마약) 중독자의 경우 취업이나 승진 제한, 소득격차와 같은 공식적인 제도를 통해 작동한다. 한편 (3)에 해당하는 비만인, 독신자, 취업 준비생 등의 경우 이들에 대한 차별은 비공식적이며 특정 대상과 같은 국지적인 상황에서 작동한다. 공식적으로 차별을 받지는 않지만 친구 관계등에서 무시나 굴욕을 당할 수가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4)에 해당하는 오타쿠, 게이머, 흡연자, 신용불량자 등에 대한 차별도 특정 대상과 관계를 맺는 상황에서 작용한다. 역시 이들의 고용이나 승진을 규제하는 제도는 없으나 특정 계약이나 서비스 이용이 제한되고, 명시적으로 관리나 통제의 대상[29]이 된다는 점에서 공식적인 차별을 받는다.[30]


2.5. 수평폭력[편집]


한편으로 오타쿠에 대한 혐오는 사회가 각박해지면서 생겨난 일종의 수평폭력이라 볼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적 가치관 중에서 삶의 통제감과 개인의 경쟁 내면화는 모두 유의미하게 나타났는데, 개인의 삶의 통제감이 높아질수록 다른 이들에 대한 취향에 대한 차별태도는 유의미하게 낮아졌다(b=-.207, p<.001).[31] 반면, 경쟁의 내면화[32] 수준이 높아질수록 취향에 대한 차별은 유의미하게 증가했다(b=.323,p<.001). 즉, 삶의 통제감의 증가는 다른 이들에 대한 취향 존중으로 나타나지만, 반대로 삶의 통제감이 감소할 때는 취향에 대한 관용이 감소하여 차별의 강화로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33]

즉 '평범하게 살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가령 옷차림이나 취미가 다르면 '오타쿠' 취급을 받게 된다. 즉 자신이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오타쿠'라는 하층을 만들어서 '우리는 평범해'라는 만족을 얻을 수 있다.[34] 따라서 자신들이 평범하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 오타쿠가 필요한 것이다. 또한 오타쿠를 차별하는 '보통 사람들'은 '업신여겨 마땅한'사람을 차별하고 있을 뿐이니까, 거기에 차별 의식을 느끼지 않는다.[35] 또한 덕후들의 경우 처세술과 사회성이 부족한 경우도 있고, 예쁜 여자들에 대한 탐욕 면에서는 보통 남자들보다 더한 편이 오히려 많으므로(단지 이를 2D로 억제하고 있을 뿐이다) 보통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덕후들을 본인들보다 더 도덕적인 존재로 인식할 가능성도 거의 제로 수준이다.

화풀이를 하려면 저항하지 않는 안전한 표적을 찾아야 하는데, 이때 힘없는 오타쿠는 화풀이해도 괜찮은 매우 안전한 표적이며 적당한 희생양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화풀이를 하는 사람은 자신의 적개심, 공격적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들은 원래 나쁜 사람들이다, 당해도 싸다'는 식으로 부정적인 편견을 퍼뜨리게 된다. (한규석 1995. 402)[36]

특히 인종이나 민족을 경계선으로 하여 '내부 식민지'가 존재하는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37] 한국은 그런 경우가 아니기 때문에 더 고약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내부 식민지'처럼 사회구조적 차원에서 근본적인 억압의 기제가 있으면 그 억압은 사회 곳곳에 내재되어 있는 위계에 따라 약한 곳을 파고든다. 마루야마 마사오가 말한 '억압적 위계의 이양'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현상은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나타나게 마련이다.[38] 즉 '스포츠 팬덤'과 '브랜드 팬덤'이 '아이돌 팬덤'을 '빠순이'라 비하하고, 그 '아이돌 팬덤'도 '만화/애니메이션 팬덤'을 '오타쿠'라 '비하'하며 똑같은 열정을 쏟으면서도 "나의 팬덤은 아름답지만 너의 팬덤은 추하다"는 식의 이중 기준에 의한 '억압적 위계의 이양'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2.6. 소결[편집]


결국 오타쿠에 대한 시선이 나쁜 이유는 오타쿠/문제점에서 말하는 오타쿠 자신들의 문제점보다는, 흑인[39]이나 장애인[40]과 같이 '특정 대상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권력의 열세로 인한 차별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차별의 원인은 (다른 모든 차별이 그러하듯이) 개인의 책임 뿐만 아니라 사회적 구조에서도 찾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소수자로 인정받기 힘든 것은 그들에게 '차별받는 소수자로서의 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는 어떤 사람에게 차별 요소 세 가지(식별가능성/권력의 열세/차별 및 경멸적 대우)가 모두 있더라도 소수자 집단의 성원이라는 자각이 없으면 그 사람은 그냥 개인일 뿐임을 의미한다. 즉 그 자신이 차별받는 소수자 집단에 속한다는 것을 느낄 때에야 비로소 그 사람은 소수자가 된다[41]는 것인데, 자신이 피해를 입어도 취미 외에는 관심이 없다 보니 자신이 어떠한 권리를 갖고 있는지도 모르고, 타인에 대한 관심이 없으니, 다른 오타쿠와의 '횡적 연대'도 부재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1960년대 이후 소수집단인 여성과 흑인의 권리 및 지위가 크게 신장되어 왔다. 이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이들이 스스로 벌여나간 적극적인 사회운동과 정치참여활동이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다. 즉 소수집단 모형은 단지 '차별 받는 소수자'로서가 아니라 오타쿠의 권리와 지위를 신장시키고 아울러 사회의 왜곡된 고정관념을 불식시키기 위해 주류 사회의 소수집단인 오타쿠가 자신의 능력과 잠재력을 개인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3. 과연 오타쿠만의 문제인가?[편집]


한편 오타쿠를 비판하는 이들의 논리 중에서도 일부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들이 아래와 같이 존재하긴 한다. 사실 오타쿠/문제점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은 온전히 오타쿠만의 문제점은 아니다.

예를 들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하 '그')에게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는 사람(이하 '그 사람')이 있다고 해 보자. 그런 상황이 계속되면 인간으로서 그에게 호감과 신뢰를 갖게 되는데, 어느 날 그 사람이 '그'에게 '동방 프로젝트(이하 '동방')'를 추천한다.

처음에는 슈팅으로서 추천받아 '동방'을 플레이하던 '그'는 게임에 점점 흥미를 가지게 된다. 그런데 '그 사람'의 플레이는 '그'로서는 범접할 수 없는 수준으로 느껴지고, 어느덧 '그'도 '그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실력이 늘지 않아 고민하자 '그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동방'은 게임이 전부가 아니야. 2차 창작도 유명하지." 결국 그는 원작은 물론 동인작품도 사들이느라 돈과 시간을 더 많이 들이게 되고, 어느덧 '동방'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동방' 자체에도 심취하고, 2차 창작 커뮤니티에도 가입하여 활동하게 된다. 더 이상 '동방'이 없는 삶은 생각할 수도 없다.

여기서는 '동방'을 예로 들었지만, 사실 '동방'은 무엇으로든 대체될 수 있다. 즉 '마음 속 결핍'을 채워 줄 활동이면 무엇이든 대체재가 될 수 있으며, 가령 같은 문제점을 가진 사람이 축구를 좋아하면 '훌리건'이 되고, 연예인을 좋아하면 '빠순이'가 되는 식이다.


3.1. 문화사대주의이다?[편집]


호나우지뉴가 브라질인이라서 좋아하는 축구팬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단지 축구를 잘하기 때문입니다.

-박주훈, 추성훈 팬클럽 회장. #


하지만 나에게 축구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마치 덴마크에 대해 질문하는 것과 같다. 덴마크는 매력적인 나라이다. 나는 안데르센의 인어에서 헬싱괴르, 셸란에 이르기까지 덴마크에 여러 번 가보았고, 또 앞으로도 가보고 싶다. 하지만 밤에 덴마크를 생각하면서 잠을 자는 것은 아니며, 이튿날 아침 돈을 지불하고 덴마크 신문을 번역해 달라고 하지도 않는다. 나는 단지 덴마크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그것으로 끝이다.[42]

-움베르토 에코, 「축구에 대한 도착(倒錯)」


오타쿠가 즐기는 많은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이 일본산이기 때문에 이들은 국내 오타쿠들은 국산을 외면하고 일본 것을 좋아하거나 애국심이 적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오타쿠들이 하는 말을 보면 더욱 확실해진다.

그러나 일빠와 오타쿠는 상당수 겹치지만 다르다. 물론 증오를 선동하는 입장의 경우 양쪽을 혼용하는 것이 더 자극적이고, 선동에 넘어가는 이들 역시 양자의 차이점을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이 둘을 구별하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선동은 이성적으로 사리를 분별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뭐가 문제인지, 왜 문제가 되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즐길 수 있는 다른 문화도 많은데 왜 굳이 일본 문화냐?" 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는데 일본 애니메이션같은 일본 문화는 말그대로 '일본 문화'라서 그렇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취향에 맞는 문화가 '일본 문화'였을 뿐이다. 다시 말해 첫 번째 인용문과 같이 축구팬들이 호나우지뉴가 브라질인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게 아닌 것처럼, 일본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이다. 일본 문화만의 특징이 좋아 일본 문화를 즐기고 있는 사람에게 그거 말고 다른 문화를 즐기라고 하는 것은 (해외)축구 팬에게 K리그 관전이나 제한맨 또는 야구 관전을 강요하는 것과 같다. 당연하지만 이러한 사람들도 국가대항전에서는 웬만하면 한국 국대를 응원한다. 또한 일본 문화를 좋아하더라도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지지하는 대상이 실망스러운 모습(혐한이거나 우익이거나)을 보이면 미련 없이 돌아서는 팬들도 많다. 예를 들어 캐릭터 디자이너의 혐한 논란으로 데프콘을 위시한 한국 팬들이 등을 돌린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오타쿠가 아니더라도 자국보다 타국에서 발전한 분야의 팬덤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축구의 경우 해축빠가 있으며, 자동차 마니아의 경우 '국산차 쓰레기', '현대차는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43] 자동차 회사면서 왜 슈퍼카 안 만드나요 징징' 같은 예가 있다.[44]

한편 더빙에 대해서 말하자면 오타쿠뿐만 아니라 외화 팬들도 더빙에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굳이 문화사대주의가 아니라도, '배우의 목소리가 그 캐릭터의 이미지를 결정한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다.[45]

그리고 이런 사대주의로 인한 친일/국까 성향은 후술하듯이 오타쿠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의 원인이 아니라 이로 인한 증상일 수도 있다. 단순히 '일뽕이라 욕먹는다!'는 주장은 구조적 문제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희망이 없어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보인 행태를 거꾸로 뒤집어 그렇기 때문에 희망이 없다고 말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마치 서유럽의 무슬림이 IS에 경도되어 '외로운 늑대'형 테러리스트가 되는 것과 비슷한데, 무슬림들이 서양 사회에서 배척되다 보니 주류 사회에서 겉돌다가 '게토화'되고, 게토화되니 서유럽 사회에 녹아들지 못하여 겉돌고... 그러다가 IS의 사상에 경도되고... 결국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46]

또한 문화사대주의의 근본적 원인은 한국의 외국 문화 수용 태도 때문이다. '번역을 하면 원작자의 의도가 훼손된다!'와 '모르면 공부하세요'로 요약되는 이러한 수용 태도로 인해 제대로 된 번역서는 일부를 제외하면 없는 실정이며[47] 이러한 태도는 더빙에도 이어져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자막판이다.[48]

이러한 부류는 자국의 해당 분야가 발달하면 줄어들게 된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가요(이 당시에는 K-POP이라는 말은 생기기도 전이었다)보다는 팝송 등의 해외 음악을 높게 쳤으나, K-POP이 발전하면서 해외 음악은 매니악한 분야가 되었다.[49] 영화의 경우도 마찬가지. 공산품의 경우는 더 극적인데 예전에는 애국심에 호소해야 겨우 팔리는 것이 국산이었지만(담배의 경우 양담배를 피우던 애연가들의 주된 변명은 '국산 담배가 피울만했다면 국산 담배를 피우지 뭐하러 양담배를 피우냐'였고, 실제로 당시 국산 담배는 구더기가 나오는 등 피울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지금은 일부러 외제를 사야 할 정도로 국산품의 품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3.2. 저작권을 무시하고 불법 공유만 이용한다?[편집]


한국은 시장규모가 일본에 비해서 작지만 잘 알려진 메이저 콘텐츠 시장에서는 개개인의 구매력이 일본 못지않게 크다 - 한경철(사보텐 스토어 대표)


역시 오타쿠라서 생기는 문제라기보다는 합법적인 컨텐츠가 충분하지 않고 문화 지체로 인한 현상이다. 보통은 합법적으로 컨텐츠를 접할 수 있는 플랫폼 및 저작권 인식의 발달로 줄어들게 된다.

예를 들어 해외 드라마가 있는데, 오타쿠와 비슷하게 '합법적인 경로로 구할 수 있던 작품이 적었던' 케이스이다. 과거에는 드문드문 방영되는 몇 편의 드라마를 제외하면 해외 드라마를 볼 방법이 불법 공유밖에 없었다.

한국 음악계 역시 비슷한 문제점을 갖고 있었는데, 위와는 달리 일종의 '문화 지체'에 근접하였다. 2000년대 초기 한국 음악계는 IMF의 영향과 더불어[50] 소리바다의 대두와 MP3의 등장으로 음악 산업의 패러다임이 음반에서 음원 단위로 넘어가는 과도기였으며[51], 소리바다의 등장은 '돈 주고 노래 사면 손해'라는 인식을 가져왔다. 이러한 연유로 왕비호는 "어이, 동방신기 팬클럽 카시오페아. 회원이 80만 명인데 정작 앨범은 10만 장만 팔렸다며?"[52]라고 말했을 정도. 이 발언에는 '팬이라면 적어도 앨범 1장 정도는 사 주어야 한다'라는 전제가 숨어 있는데, 즉 '팬클럽은 80만 명인데 앨범은 왜 10만 장만 팔렸느냐'는 발언에는 '그럼 나머지 70만 명은 다운받았다는 소린데?'라는 의미도 들어 있다.

이후 점차 문화 지체에서 벗어나 저작권을 무시하고 불법 공유만 이용한다는 이미지는 점차 개선되고 있다. 한국 Fate/Grand Order 2021년 근하신년 스타트 대시 캠페인 중단 사태에서 넷마블이 사건사고만 잘 관리해줘도 충성도 높게 백화점 VIP급으로 수입을 가져다주는 한그오 유저들을 거의 억압하는 수준으로 관리하는 대형사고를 터뜨리는 바람에 오타쿠의 합법적인 구매력이 부정적으로 쌓여온 사회적 이미지보다 의외로 크다는 것이 드러났다. 불법 공유만 이용했더라면 한그오는 넷마블이 대형사고를 터뜨리기도 전에 망했을 것이나, 실제로 오타쿠층에서 합법적으로 한그오의 서비스를 구매해왔기에 해당 사태가 한국 게임계의 판도를 흔드는 대형사건으로 번질 수 있었다.


3.3. 공사 구분을 못 한다?[편집]


역시 개인의 인격 문제, 즉 그저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들의 특징이지 오타쿠라서 생기는 문제점이 아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오타쿠에 대한 상당히 부정적인 인식이 주류이기 때문에 친한 친구 사이에서도 대놓고 오타쿠 티를 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 특히 공적인 자리에서는 다른 취미도 아니고 애니메이션 등에 대한 사담을 꺼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관련 업계가 아닌 이상 세대, 관심사가 다르면 애초에 애니메이션에 대한 언급조차 할일이 없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사회성이 떨어지는 경우에는, 애초에 정상적으로 취업하고 업무를 보지도 못한다. 오타쿠들이 자기만 아는 얘기를 하며 민폐를 끼치는 경우는 주로 사적인 상황이다.[53] 인터넷 상의 공적인 상황에서조차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고 애니 얘기를 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만약 이 '공사 분별'이라는 것이 공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취향을 '과시하지' 않는 것이라면 이는 일종의 존경성 정치라 볼 수 있다. 이는 '대중적인 취미'여도 용납받지 못할 정도로[54] 자신의 취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대중적인 취미'를 가진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것과 마찬가지인 경우에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이중잣대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력서의 취미란에 '축구(콘서트) 관람'이라고 적는 것은 괜찮으나 '애니메이션 감상'이라 쓰는 것은 안 된다고 하는 경우. 이는 게이가 자신의 파트너를 공식적인 행사(부부동반)에 데려오거나 그를 자신의 파트너라고 소개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게이가 자신의 파트너를 공식적인 행사에 데리고 왔다고 해서 공사구분을 못한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55] 요컨대 사적 영역에서는 얼마든지 은밀한 권리를 누릴 자유가 있지만 공적인 영역에서는 엄격하게 금지하는 것이다. 사적 영역을 넘어 공적 영역에 도달하는 순간 너의 자유는 끝난다는 생각은 결국 나의 사적 영역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는 전술한 '차별은 존재하는가?'의 예와도 연관되는데, 오타쿠도 성소수자와 마찬가지로 패싱이 가능한 경우가 많으며, 본인이 스스로 밝히기 전까지는 오타쿠라는 사실을 알기 어렵다. 개인의 성적지향과 마찬가지로 취미 역시 지극히 사적인 정보라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이것을 대중에게 공개할 이유가 별로 없다.

그런데 그런 점에서 보면 성별, 나이, 인종, 장애, 경제적 수준 등도 별반 다르지 않다. 모두 지극히 사적인 특성들이다. 사실은 공적인 장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차별이 사적인 개인의 특성에서 시작된다. 그러니 "왜 사적 특성을 공적 영역에서 드러내느냐?"라는 질문은 적반하장에 가깝다. 실제로는 특정한 사적 특성만을 받아들이고(예로 남성, 성인, 이성애자) 특정한 사적 특성은 그 이유로 거부하기 때문이다(예로 여성, 아동, 동성애자).[56]

생각해보면 "왜 굳이 공공장소냐?"라는 질문 속에는 사적 특성을 공공장소에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즉, 오타쿠가 아닌 사람이 오타쿠의 취미를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으로 분리해서 생각하는 이유는 '오타쿠'라는 기표가 아고라에 입장할 자격이 되지 못한다는 전제를 품고 있고, 그들이 오타쿠의 취미를 '비정상', '일탈', '왜곡'이라 여기며 '대중적인' 취미와 동등한 가치를 지닌 취미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3.4. 내로남불과 이중성?[편집]


오타쿠들이 사고를 쳐서 다른 집단이 오타쿠 전체를 깔 때 그 사람이 잘못한 거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도 오타쿠들의 '이중성'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물론 극렬한 팬심으로 사생활 침해 등의 범법 행위를 저지르는 일부 팬들은 근절돼야 한다. 하지만 이는 모든 오타쿠에 해당하지 않는 일부 '혼모노'들의 이야기다. 몇몇 팬들의 그릇된 팬심을 가지고 전체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

축구에는 '훌리건'이라는 말이 있다. 축구장에서 난동을 부리는 과격 축구팬을 일컫는다. 역시 축구팬 중 일부분의 그릇된 팬심을 보여주는 팬들이다. 이때 훌리건은 일반 축구팬들과 철저히 분리된다. 훌리건이 존재한다고 해서, '축구팬은 과격하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만화/애니메이션 팬덤은 어떨까? '오타쿠'라는 단어 자체부터 이러한 일부 팬들의 과격함과 평범한 팬들이 분리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오류가 가능한 전제는 개인이 모든 것을 '이미지'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는 동일한 대상을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임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동성애자들이 마약을 복용하는 경우 '동성애자 마약 파티' 등의 제목으로 '동성애자'라는 점을 부각시키는데, 사람들은 이런 기사를 통해 '동성애자들이 문란하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고 그래서 차별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이성애자 마약 파티'라는 보도는 없다. 왜냐하면 이들이 '이성애자들 중에서 일탈'을 한 경우지, 이성애자들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상식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문화적 기호에서도 소수취향이 아닌 경우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예: 훌리건-축구 팬, 사생팬-아이돌 팬. 이러한 케이스는 사건의 본질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높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해당 취향을 부각시키지 않는다. 예를 들어 강력범죄가 벌어졌을 때 소수취향(만화, 애니, 게임 등)을 범죄의 원인인 양 부각시키는 경우는 있어도(예: 범죄자 아무개네 집에서 음란한 만화/폭력 게임 발견돼...) 대중적인 취향(연예, 스포츠 등)인 경우 이를 굳이 부각시키는 경우는 없다.

즉 게임의 그것과 같은 오타쿠 범죄자의 임팩트가 오타쿠 전반에 대한 시선을 악화시키고, 그 악화된 다수의 시선으로 인해 이런 잘못된 선입견의 소유자가 추가로 더 생기기 더욱 쉬워진다는 것도 한 몫 한다.


3.5. 대한민국 국부(國富) 유출을 하는 존재다? / 문화제국주의의 첨병이다?[편집]


국내에는 이미 일본색에 빠져들어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광팬들이 많이 있는데 오타쿠 문화라는 것에 한 번 형성하면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고 일본 제품의 수입은 지속될 것이다. 일본으로부터 관련 상품을 수입하는 것은 영혼까지 내려놓는 국부(國富)유출이다 - TV 평론가 하재근(국내 인터넷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국부유출? 아가리 방귀뀌고 자빠졌네. 언제부터 그렇게 우국지사셨어요? (오타쿠 관련물품)직구하는 사람들 때문에 뭐 나라경제라도 휘청거린대? 여기가 무슨 도시국가여, 뭐여. - 성우 권창욱(공식 트위터에서)


주장 자체가 너무 단편적으로 소개되어 어떤 근거에서의 비판인지 알기 어렵지만, 역사적 관점에서든 경제적 관점에서든 이는 부적절한 비판이다. '일본'의 '오타쿠 문화' 상품을 구입하는 행위를 '영혼까지 내려놓는'이라고 수사하였는데 '영혼'이라는 말을 쓸 정도면 이는 과거 일본이 한국을 점령했던 역사를 근거로 현재의 일본과 무역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런 주장이 아니라면 굳이 '일본'일 필요가 없다. 같은 논리라면 '미국 영화'가 '한국 영화'를 잡아먹는다는 주장도 가능하기 때문이다.[57] 일본이 과거 민족 말살 정책을 실행한 적이 있지만, 이것이 '일본의 문화를 향유해서는 안 된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결과적으로 논리 자체가 애국심호소하는 오류에 빠져 있다.

'국부 유출'이라는 말도 부적절한데, '오타쿠 문화'에 있어서 대일 무역적자라고 주장하지만, 이 자체가 악의적인 범주 설정인 것이 한국에서 일본에 수출하는 '만화·애니메이션 상품'은 있어도 '오타쿠 문화 상품'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오타쿠 문화' 상품으로 범주를 설정하면 적자를 나타낼 수밖에 없다. '오타쿠 문화 상품'이란 만화·애니메이션·완구 등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세부 범주를 가리킬 뿐이다. 물론 애니메이션 전체를 기준으로 봐도 일본에 대해서는 적자이지만, 문화상품 전체를 보면 애니메이션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앞선다. 2017년 기준으로 한국이 일본으로 수출한 대중문화 산업은 1조 9천 억 원이고, 그 반대로 일본이 한국으로 수출한 금액은 2천 3백 억 원으로 한국이 일본보다 8배 이상의 이득을 보고 있다.[58] 단지 일본에서 '오타쿠 문화' 상품을 주력으로 생산하고, 다른 나라에서 거의 생산하지 않을 뿐. 같은 논리라면 오직 한국에서만 '빠순이 문화' 상품을 주력으로 생산한다고 할 수 있으며, 또한 게임의 세부 범주인 콘솔 게임, 영화의 세부 범주인 할리우드 영화,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동차[59]나 첨단 부품 등 공업 분야와[60] 같이 동일하게 수입이 무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다른 상품에 대해서도 똑같이 '국부 유출'의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돈 나가는 건 똑같은데 일본 '오타쿠 문화' 상품 수입 국부 유출일 수는 없으므로 사실상 수입 유통업 전체를 부정하는 말이나 다름없다. 외제차 유통사들은 전부 국부 유출의 앞잡이들이고, 스팀이나 오리진을 통해 해외의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은 전부 미국에 영혼을 내려놓은 국부 유출범이란 말인가? 그리고 어떤 이들국부를 지키고 계시기도 한다. 물론 자신의 소득이나 생활 수준을 생각하지 않고, 지나치게 무분별한 과소비를 하는 경우에는 비판받아야 마땅하지만, 이 문제를 비판하고자 했었으면 좀 더 생각을 해서 다른 방향으로 비판해야 했다.

게다가 이들 중에는 전 세계를 주름잡는 '한류'에는 그토록 찬사를 아끼지 않으면서도 '오타쿠 문화'의 유입과 '혐한'에 대해서는 비분강개하며 '도덕적 의분'을 느끼는 이들도 있는데, 이는 기독교계가 무슬림 선교를 위해 이슬람 국가에 선교사를 내보내면서 국내에 들어온 무슬림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배척하는 것만큼이나 모순이다. '혐한' 사상이 생기는 이유 중 하나는 '한류'가 아시아나 제3세계의 문화 다양성을 해친다는 이유도 있기 때문인데,[61] 왜 외국의 한류 팬들에 대해서는 '한류의 선봉장'이라며 칭찬을 하면서도 왜 한국의 '오타쿠'에 대해서는 '국부 유출의 주범', '문화제국주의의 첨병'이라 비난을 하는가? 오히려 한류에 비하면 '오타쿠 문화'의 영향력은 한강에 잉크 몇 방울 흘려 넣는거나 마찬가지이다. 타국의 문화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한류'가 외국에서 존중받기를 바란다면 이는 욕심이다.

사실 이는 '국가경제 좀먹는 양담배, 사지도 피지도 말자', '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지는 60억 원'과 같이 국산품이 팔리지 않으면 외제 탓을 하는 일련의 주장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국부 유출'을 운운하며 오타쿠들을 비난하려면 '오직 국산 애니만 봐라'고 자신 있게 말할 정도로 한국 애니메이션이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체재가 될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 즉 '오타쿠 문화'의 대체 필요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아래 참조), 그러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실제로 1992년 뉴키즈 사태로 나타난 청소년들의 외래 대중음악 선호가 서태지의 등장으로 막을 내린 것은 선택의 대안을 제공해주지 않았던 데 기인한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한국 애니메이션/논란과 오해 및 문제점 참조.


3.6. 오타쿠는 변태다?[편집]


오타쿠/문제점에서도 적었듯이, 오타쿠들이 '변태적'인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오타쿠가 다 그러한 것은 아니다. 이는 '모든 빠순이는 아이돌을 유사연애 대상으로 본다'와 같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다.[62]

실제로 '여러분들이 좋아할 짤 올려볼게요' 하고 올린 민망한 사진들을 올리면 십중팔구 삭제되거나 욕을 많이 먹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만큼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라고 해도 선정적이거나 변태적이거나 이상성욕적인 2차 창작을 좋아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애초부터 아무리 한 작품의 열렬한 팬층이 모인 커뮤니티라도 19금 동인지나 음란한 이미지를 즐기는 것을 매우 금기시하는 팬덤 커뮤니티가 존재할 정도이다. 이상 성욕은 말 그대로 이상 성욕이며, 당연히 싫어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인터넷에서 갖은 취급을 받는 자신의 최애캐가 보기 싫어서 2차 창작을 꺼리는 오타쿠도 있으니 상황마다 차이가 있다. 그리고 '변태적'인 것의 기준 역시 아래의 '일탈'과 같이 상대적일 수 있다.

하지만 몇몇 과격하고 규모가 큰 오타쿠 커뮤니티에서는 이러한 이상성욕과 변태적인 행위에 대해 반감을 나타내거나 거부감을 보이면 씹선비내지 프로불편러나, 페미라고 욕얻어 먹는게 다반사다. 위에서 설명 했듯이 모든 오타쿠가 그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몇몇 대형 오타쿠 커뮤니티에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다 보니 변태적인 것을 싫어하는 오타쿠들의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는게 현실이다.


3.7. 구조적 문제의 배격[편집]


빈곤 문제를 학문적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던 초기 서양 학자들은 빈곤 퇴치의 열정을 갖고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연구 결과가 축적되면 될수록 빈곤의 주요 책임이 부유층보다는 빈곤층에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문제는 그들의 연구 방법에 있었다.

학자들은 달동네를 방문해 주민들의 행태를 관찰하고 인터뷰를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빈곤의 원인을 찾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믿었다. 연구 결과, 빈곤층의 라이프스타일에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게 밝혀졌다. 이들의 삶엔 계획, 일관성, ‘욕망의 지연’, 자기계발은 없는 반면 음주, 흡연, 뒷담화, 싸움질은 많았다. 고로 이들이 빈곤에서 벗어나려면 그런 라이프스타일을 바꿔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강준만, 「구조맹의 피해자 탓하기


오타쿠/문제점에서 보이는 모습은 위 이야기의 '가난한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과 마찬가지로 차별의 원인이 아니라 증상일 수 있다. 즉 오타쿠에 대한 냉대로 인하여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보인 행태를 거꾸로 뒤집어 그렇기 때문에 차별을 당한다고 말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서유럽에서 '게토화'되어 겉돌던 무슬림이 ISIL의 사상에 경도되어 외로운 늑대형 테러리스트로 변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오타쿠들이 한국 사회와 어우러지는 게 아니라 자기네들끼리 흩어져 있는 이유는 마치 독일의 히틀러 정권이 유태인들을 ‘게토’라는 지역에 격리한 것처럼 우리 사회도 오타쿠들이 갇힌 개인들로 남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오타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한국 사회 내 오타쿠가 우리와 공존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줘야 한다. 다시 말해, '덕질'하기 어려운 사회가 오타쿠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고, 그것이 다시 오타쿠들 스스로 '게토화'를 초래하여 사회로부터 고립되게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3.8. 일탈은 상대적[편집]


'일탈'은 상대적 개념이다. 기성 사회는 상식에 반한다고 간주되는 어떤 현상을 일탈로 규정함으로써 그 현상의 사회적 의미를 축소하거나 은폐하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과거 청년문화의 경우, 멀쩡하게 길을 가다가 경찰한테 붙들려서 머리가 깎이는 봉변을 당하는가 하면, 여자들의 경우 짧은 치마를 입으면 잡혀갔다. 이처럼 청년문화의 대표격인 '장발'과 '미니스커트' 같이 지금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국가권력에 의해 금지당했던 것이다.[63]

덕질 자체를 '일탈'로 보는 사람들은 빠순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10대 시기를 거쳐 성인이 된 이후에도 '덕질'을 계속하는 것 자체를 일탈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64] 각 개인의 특성, 몰입의 정도,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덕질을 계속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죽을 때까지 할 수도 있는 것이며, 뒤늦게 나이 먹어 덕질에 눈을 뜰 수도 있는 것이지, 그게 어찌 10대 시절의 일과성 '통과의례'처럼 여겨져야 한단 말인가?[65]


3.9. 악마화[편집]


당시, 내가 쓴 동인지 <소드 마스터> 5호(1989년 12월 24일)에 실린 에세이에서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는 부분을 인용하고자 한다.

얼마 전에 NHK에서 비디오 콩쿠르인가 뭔가 하는 프로가 하고 있었다.

그 중에 한 편, 확실히 <고교삼국지>란 제목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어두운 젊은이를 규탄하는 내용이 있었다.

화면에 나온 건 지독히도 못생긴 젊은이로, 카메라는 그 얼굴을 옆에서 접사로 찍고 있었다. 실내에는 애니메이션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 있고, 비디오가 널브러져 있으며, 너무나 더러웠다. 덤으로 빛도 적고, 화면은 어두웠다.

그 남자는 애니메이션 마니아이자 컴퓨터 마니아라는 설정. '내가 좋아하는 데 열중하는데 너희들이 뭐라 할 처지냐"는 투의 말을 내뱉으며 인터뷰를 거절하고 컴퓨터 게임에 열중했다(대사에 부자연스러운 점이 많았기 때문에 연출일지도 모른다).

한편, 스포츠맨 타입의 젊은이가 화면에 나타나 이를 비판한다. "역시 젊은이라면 스포츠 같은 걸로 밝은 청춘을 즐겨야 한다"나 뭐라나. 이쪽은 매우 핸섬하고, 정면에서 상체 구도로 찍고 있다. 배경도 하얗고, 화면도 밝다. 말투도 시원시원하다.

이 비디오를 본 스튜디오에 있는 여자들의 반응은...

"기분 나빠!"

그야 기분 나쁘겠지. 일부러 기분 나쁜 녀석을 골라 기분 나쁜 각도, 기분 나쁜 조명, 기분 나쁜 연출로 찍고 있으니까.

이 비디오를 찍은 고등학생 감독의 말에 따르면, "소위 오타쿠란 녀석들은 기분 나빠서 싫다고 생각했으니까 이 점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찍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요컨대 이 감독의 머릿속에는 '게임이나 애니 따위에 열중하는 녀석들은 기분나빠'라는 선입관이 들어차 있으며, 그 이미지를 구체화한 것에 불과하다. 실제로 게임 팬이나 애니 팬의 실태를 파악하고자 하는 의도는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

분명 젊은 나이에 적절한 연출 기법을 가진 건 인정할 만하다. 하지만 이건 이미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참고로 이 작품은 미야자키 체포 이전에 제작되었다고 한다.

- 오타쿠 차별은 사라지고 있다: 야마모토 히로시의 신 SF 비밀기지


많은 사람들이 '오타쿠' 하면 오랫동안 씻지 않아 심한 냄새를 풍기는 모습, 극심한 비만, 하루종일 애니메이션만 보는 모습, 애니메이션 굿즈가 온 집안에 쌓인 모습,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고 친구가 없는 히키코모리, 매우 음침하고 무기력한 성격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오타쿠는 사실 매우 드물다. 오타쿠들은 일반인들에 비해 사회성이 다소 부족한 편이라 일반적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동료들의 흔한 주제거리나 잡담, 이성의 환심을 사기위한 대화, 조직화된 환경에서 대세 분위기를 만들지 못하지만 대부분 대학교, 대학원, 회사도 다니는등 일반인과 별 차이 없는 생활을 한다.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될 정도로 사회성이 극도로 부족하거나 가상현실에만 너무 빠지는 경우는 드물다.

민폐를 끼치는 오타쿠(혼모노), 일부 극단적인 오타쿠(다키마쿠라이타샤를 가진 사람, 오덕페이트 등), 저질 야애니 등 부정적인 요소들, 비주류 문화를 배척하는 경향, (한국의 경우) 반일 감정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후술하듯이 오타쿠들 스스로 (자학개그의 측면에서든 이미지 희석을 위해서든) 반쯤 의도적으로 그런 극단적인 스테레오타입의 확산을 방조한 측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주류 매체에서 이처럼 오타쿠를 악마화한 것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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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 이중잣대[편집]


파일:3f590877-s.jpg
왜 이건 되고 이건 안 돼?

"나의 팬덤은 아름답지만 너의 팬덤은 추하다?"

강 부녀, 「빠순이」


상기한 문제점들이 오타쿠에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면 '오타쿠라서' 이러한 문제점이 발생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바, 같은 문제점에 대해서도 "나의 팬덤은 아름답지만 너의 팬덤은 추하다"는 식의 이중잣대가 적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오타쿠만이 차별을 받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축구팬과 아이돌 팬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사뭇 다르다. 대상을 향한 마음에는 차이가 없음에도 말이다. 여기 아이돌 팬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바로 '빠순이' 혹은 '사생팬'이다. 다만 오타쿠에 대한 사회의 냉대가 '빠순이'에 대한 그것보다 더 강할 뿐이다.

'빠순이'들 중에서도 ‘적극적이고 맹목적인 태도를 취’하는, 즉 “방송국이나 연예인들의 집 앞에서 몇 달간 기거하”거나 “좋아하는 음악 그룹이 해체하면 자살특공대를 조직하”는 빠순이가 얼마나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순이'들의 이러한 일탈은 '젊은 날의 치기' 정도로 봐 주는 등 상대적으로 관대한 반면, 오타쿠는 단지 프로필 사진을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썼다는 이유로 '찐따' 취급받지 않던가? 그리고 혼모노라 불리는 일련의 기행들도 앞에서 열거한 일탈에 비하면 '애들 장난[66]' 수준이 아니던가? 물론 어떤 경우에는 너무 취향이 달라서 이해가 안 가는 경우도 많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비도덕적인 사람이거나 피해야 할 사람이라고 비난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는 존 스튜어트 밀의 해악의 원리, 그러니까 어떤 행위가 다른 사람이나 사회에 해악을 끼치지 않는 한, 그 행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원리를 암암리에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혹시 '현 사회에서 대중적으로 용인받지 못하기 때문'이라면, '장발'과 '미니스커트' 같이 지금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것들도 한때 국가권력에 의해 금지되었음을 상기해 보라.

이처럼 이중잣대는 호불호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것이며, 양쪽 다 비판받아야지 한쪽만 옹호하거나, 적어도 적극적으로 옹호하지는 않으나 한쪽에만 관대한 것이 바로 이중잣대라 할 것이다.


4. 차별에서 벗어나려면?[편집]



4.1. 미시적인 해결책[편집]


아래 제시되는 방법들은 어디까지나 '미시적인 해결책'으로, 이런 상황에 처해있는 개인 차원에서 쓸 수 있는 것들이다. 사회적인 차원의 해결책은 아니며, 아래의 방법은 현실적으로 어렵거나 개인에게 기분이 나쁜 해결책이 많다.


4.1.1. 출세하기[편집]


오타쿠/문제점에서 설명하는 오타쿠에 대한 비판은 본 문서에서 반박하듯이 잘못된 것도 분명히 있으나, 단기간 내에 그러한 인식을 바꾸기는 매우 어렵다. 허나 오타쿠 문서에도 기술되어있다시피 연예계를 비롯한 각종 분야에서 활동하는 유명인사들의 덕밍아웃은 부정적인 인식이 거의 없다. 이유는 그들이 이미 능력과 사회성을 검증받았고 그 이외에도 충분한 매력을 지닌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취미같이 사소한 것들은 평판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하기 때문이다.[67] 따라서 비슷하게 자신의 능력과 사회성을 인정받거나 출세를 하면, 자신이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사회적 부정적 인식으로 인한 악영향을 받지 않고도 오타쿠로서 편하게 살아갈 수 있다.


4.1.2. 부정적 이미지 불식하기[편집]


오타쿠에 대한 나쁜 인식은 오타쿠 스스로가 만들어 낸 것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편견은 어느 수준 이상의 자기관리와 사회성 유지 및 오덕계 외의 다른 보편적인 대중문화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를 갖추게 된다면[68] 전제부터 사라지기 때문에 얼마든지 취미로서 존중받을 수 있게 된다. 다소 어려울 수도 있으나, 조금이라도 운동, 피부관리 등 잘 씻거나 자기관리에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다면 순차적으로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4.1.3. 주체적인 문화 향유[편집]


제가 성인들을 대상으로 강의할 때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자녀가 아이돌 그룹에 빠져 있다는 고민입니다. (중략) 그럴 때 제가 해주는 대답은 이겁니다. 강제로 못하게 하지 말라, 그것은 올바른 교육이 아니다, 하는 거예요. 본인들이 좋아하는 거잖아요. 대신 "너는 왜 그걸 좋아하느냐?"고 묻는 겁니다. 아마도 아이들은 한번도 그런 질문을 스스로 해보지 않았을 겁니다. '좋은데 이유가 있나요?' 그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자신의 취향을, 좋아하는 이유를 객관화하여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문화적 주체가 될 수 있는 겁니다. "왜?"라는 질문, 그게 첫걸음입니다.

인.인.답.. 69-70p.


우리가 대중문화를 즐기고 그 안에서 삶을 풍요롭게 가꾸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려면 TV에 나오는 것들만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좋은 음악, 좋은 영화를 찾아다녀야 한다.[69] 만화나 애니메이션도 예외는 아니다. 무엇이 자신에게 맞는 건지, 자신의 이야기를 누가 대변하는지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다. 노력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의 취향에 잠식당해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자신도 모르는 상황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따른 올바른 결제 태도도 동반되어야 한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한국 Fate/Grand Order 2021년 근하신년 스타트 대시 캠페인 중단 사태를 계기로 오타쿠가 단순히 음습한 사회부적응자의 이미지가 아닌 게임산업에서 비중이 높은 엄연한 소비층이라는 것이 드러났으므로, 자조적으로 편견에 좌절하며 수동적인 소비자로 남기보다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고 자신이 활동하는 시장의 소비 판도를 잘 아는 문화적 주체라는 이미지를 오타쿠층에서 밀고 간다면 적어도 이전보다 사회적 인식이 나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4.2. 거시적인 해결책[편집]



4.2.1. 팬덤 차원[편집]


오타쿠라는 '집단'의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 중 하나는 이러한 차별적인 편견들에 대해 오타쿠들 스스로, 때로는 다른 팬덤(예: '빠순이'로 대표되는 아이돌 팬덤 등)과, 때로는 다른 소수자(예: 성소수자, 재한 외국인 등)들과[70] 연대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존경성 정치 문서에서도 나와있으나 그런 식으로 사회에 순응하기만 하면 영원히 오타쿠들에 대한 차별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차별이 심하기 때문에 그 차별에 더 적극적으로 항의하고 더 옳은 방향으로 개선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개개인에게는 당장은 더한 고통과 불이익이 찾아올 수도 있겠지만 언제까지 소수자들한테만 "사회 탓 하지말고 자기계발부터 해라", "불관용에 저항하지 말고 다수에 맞추라"고만 할 수는 없다. 근본적으로 사회가 바뀌어야 하며 그렇다면 소수자들이 자신이 당하는 차별이나 불관용에 끊임없이 항의해야 한다. '유색인종'이 그러했고, 장애인이 그러했고, 성소수자가 그러하듯이, 권리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4.2.2. 국가, 사회 차원[편집]


'만화/애니메이션 팬덤도 아이돌 팬덤과 마찬가지로 문화산업의 역군이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널리 인식되면 된다. 자발적으로 이뤄지기는 끔찍하게 어렵다. 개인의 인식과 사회적 올바름이 충돌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개인의 인식 쪽을 택하기 때문이다.

또한 문화계에서도 "'한류'를 팔아 일본에서 '오타쿠 문화' 상품을 수입하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므로 대체재를 만들 필요가 없다!"라는 말같지도 않은 언급은 지양하는 것이 좋다. 일단 문화란 자동차나 쌀처럼 분명하게 순익을 따지기 어려운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일본의 게임수출액과 애니의 해외수출액은 대단히 높다. 정확한 손익계산은 아니지만 미국 빅데이터 회사 parrot analytics는 일본의 애니콘텐츠가 스페인어콘텐츠, 한국어콘텐츠를 넘어 미국에서 가장 수요가 높은 외국어콘텐츠라고 설명한바 있다. 또 문화란 관광업에도 어느정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저런논리면 한국이 일본에게 관광수지가 크게 떨어지는 이유를 아니메와 한류의 차이로 뒤집어 씌워도 딱히 명확한 반박을 하기가 쉽지 않다. 이처럼 문화를 중상주의적으로 따지면 현실파악도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고 자칫 잘못하면 민족주의와 보호주의, 그리고 자국산업의 다양성 저하로까지 이어질수 있다.[71] 따라서 중상주의나 보호무역까지는 아니더라도 '유치산업보호론[72]'의 관점에서 이러한 문화를 육성할 필요가 있다.


5. 관련 문헌[편집]


김하수, 조태린 [한국 사회의 소수자에 대한 사회언어학적 접근]
설동훈 [한국사회의 외국인 이주노동자 –새로운 ‘소수자 집단’에 대한 사회학적 설명-]
이준일 [소수자의 기본권]
조홍미, 안병곤 [사회적 관점에서 본 오타쿠의 발생요인에 관한 연구]
박수미, 정기선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적 태도에 관한 연구]
섀런 킨셀라(김민정역) [1990년대 일본의 하위문화 연구: 오타쿠와 아마추어 망가 운동]
기타바야시 겐, 서성욱 [혁신의 실험자, 오타쿠를 이해하라]
박경서 외, [인문학이 인권에 답하다], '드라마 주인공은 왜 사투리를 쓰지 않을까?' (김창남)
강준만, 강지원 [빠순이는 무엇을 갈망하는가?]


6. 관련 문서[편집]


[1] Dworkin and Dworkin, 1999: 17~24[2] 이 글에 따르면 '성소수자인 일부 오타쿠들은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폐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사회와 협조하며 평온하게 생활하면서 조용히 만화나 애니메이션 등을 즐기고 있다. 그것은 범죄자의 활동을 그린 영화를 즐겨 보는 관객이 이를 모방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며,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약을 먹으며 평화로운 사회 생활을 보내는 것과 비슷하다(이 점에서는 전자 계집과 비슷한 논리라 볼 수 있는데, 전자 계집이 '여러 가지 사정과 담배에 관한 부정적인 시선으로 실제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전자담배가 모티브인 것처럼, 돈 없고 못 생겨서 장가 못 가는 뭇 중생들은 '전자 계집' 덕분에 그럭저럭 성적 욕망을 해결하며 일을 해 나가고 덕분에 성범죄도 억제된다)'라 하고 있으며, 실제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에 대해서는 '개중에 영화나 만화 등의 영향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나, 그것은 약물 남용으로 인한 부작용과 마찬가지일 것이다'라 하고 있다.[3] 전영평 외, '한국의 소수자'. 135-138.[4] 전영평, 앞의 책, p. 115.[5] 문화적 소수자는 문화적 차이로 인하여 차별적 대우와 인권 침해를 받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문화적 이질감이란 인종, 종교, 가치관, 도덕률 등의 차이로 인하여 소수자를 위험요소 및 혐오 요소로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적 소수자에는 전형적으로 혼혈인, 동성애자, 외국인 배우자, 성매매여성, 미혼모 등이 포함된다. 이들 소수자는 한 사회의 문화에서 도덕적인 금기로 통용되는 삶의 방식을 살기 때문에, 문화적 동질성을 가진 다수의 집단으로부터 차별적 대우와 인권 침해를 경험하게 된다. 문화적 소수자는 사회적으로 낙인찍히는 상황에 처하기 때문에 권력적 소수자나 경제적 소수자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경우가 많으며, 경제적・권력적 상황이 나아진다하더라도 그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이 개선되기 어렵다. 따라서 문화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 및 인권 개선은 보다 선진적인 문화 제도와 관행을 도입하고 홍보하는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개선될 여지가 있다. (전영평, 「소수자의 정체성, 유형, 그리고 소수자 정책 연구 관점」, 『정부학연구』 제13권 제2호, 고려대학교 정부학연구소, 2007, p. 114-15.)[6] 경찰관이 한 개인의 범죄 행위 관여 여부를 확인할 때 개인의 행위나 정보에 기초하기보다는 인종을 핵심적 요소로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7] 서로 교류를 해도 인터넷 공간에서만으로 한정되고 실제로 만나면서 정보를 교환하는 경우도 훨씬 덜한 편이다. 심지어는 인터넷 공간에서 덕후들끼리 서로 논쟁을 하며 싸우는 경우도 있다. 그나마 동성애자들의 경우 본인들끼리 규모가 있는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는 상황이라 사회적으로 주목받기는 더 쉬운 편이지만 덕후들의 경우 그렇지 못하다.[8] 단점, 약점이 하나라도 없는 사람은 사실 거의 보기 드물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걸 최소한 앞에서는 숨기려고 노력한다.[9] 이주 노동자가 자국으로 돌아갔을 때, 남성 비정규직 가장이 가부장적 분위기의 가정을 가졌을 때, 여성 우대 정책으로 남성이 피해를 볼 때 등등 사회 속 인간은 주변 상황이 바뀌면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도 변동이 생긴다. 한명의 인간이라 해도 여러 특성을 보유하기 때문이다. 또한 다수자의 지위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후천적인 이유로 소수자가 되기도 한다.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되는 예가 그렇다.[10] 이러한 관점은 소위 '시혜적 관점'이라고 하여 소수자들 사이에서도 부정적이다. 예를 들어 유엔의 세계인권선언에는 '장애'가 명시되지 않았는데, 당시에는 장애를 인권의 개념으로 접근한 것이 아니라 그저 '복지와 시혜'의 대상으로 접근하였기 때문이다. (장애를 '인권'의 관점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이다) 마찬가지로 동성애도 1980년까지는 그저 '정신병'이었을 뿐이며 WHO가 ICD에서 동성애를 삭제한 지는 2020년 기준으로 고작 30년에 불과하다. 비유하자면 기존의 소수자 정책이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벽' 너머로 먹을 것을 던져 주는 것이었다면, 현재의 소수자 운동은 아예 그 '벽'을 허물자는 운동에 가깝다.[11] 여성뿐만 아니라 소수 백인이 국가의 모든 인프라를 손에 쥐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흑인들도 다수면서 소수자인 아주 대표적인 예이다. 전근대 계급사회에선 소수자란 개념이 희미했으나 권리를 주장하는 시민사회 도래 이후 소수자는 계속 '발명'되고 있다.[12] 다수결의 원칙이 소수자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음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다수결의 원칙이란 '집단의 의사를 다수 의견에 의하여 결정하는 원칙'으로 정의된다. '대의 민주주의'를 소수자의 권리를 억압하는 동일성의 지배, 다수의 지배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이성적 담론과 합의를 강조하는 '토의 민주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학자들도 있다.[13] 사실 성소수자와 유사한 오타쿠의 특성은 보편적인 4가지 특성이 아니라 음성적이라는 것에 있다(낚시꾼, 흡연자, 비만, 작은 키, 노인, 학벌,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음성적 - 떳떳하게 드러내지 않고 은밀하게 감추는 것 - 이라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는 수동적으로 식별되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오타쿠를 받아들이지 않으니 이들은 점점 음성화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점점 주류 사회에서 고립되어 '게토화'되어 가는 것이다.[14] 이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 그러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한국에서 오타쿠 또는 오덕이란 근래 들어서야 대중 사이에서 인식이 개선되고 범주가 확장해가는 과정에 놓여 있는 부류이며, 그 자체가 전체 대중 사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계층은 아니다. (중략) 게다가 대상이 (역사적으로 앙금이 있는) 일본이다 보니 자연히 인식 선에 변수가 많이 발생했다. 이를테면 '일빠(일본 빠돌이/빠순이. 즉 일본 문물을 맹목적으로 추종한다는 뜻)' 논란이 그러하다.(서찬휘, 「키워드 오덕학」, 생각비행. 267-268p.)[15] 한 인간이 여러 특성을 가질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주노동자 출신으로서 비만에 장애 있고 키 작고 흡연자에 나이는 먹어가면서 저학력에 여호와의 증인 신도이면서 알 수 없는 성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오타쿠도 있을 수 있다. 이렇게 여러 소수자적 특성을 보유한 사람의 경우 자신이 차별 받는 요인 중 오타쿠적인 취향, 취미를 가졌다는 것의 비중이 적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하나의 소수자적 요소도 차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여성은 남성에 비해 권력의 열세를 가지나 상대 남성이 동성애자라면 '이성애자'인 여성은 '동성애자' 남성에 대해서 우세를 가질 수 있다. 전술하였듯이 소수자란 개념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16] 그러나 실질적으로 소수와 다수의 관계는 '대립'이라기보다는 '일방적 억압'에 가깝다. 예를 들어 주류 사회는 성소수자들을 억압하지만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성적 지향이 더 '우수'하다고 말하기 위해 다른 성적 지향을 가진 '성다수자'들을 비난하는 일은 드물다. 오히려 '외로운 늑대'로 변하는 서유럽 무슬림이나 '채식주의자가 아닌 사람(채식주의자가 아닌 사람이라고 고기만 먹는 것은 아니므로 '육식주의자'는 적확한 표현은 아니다)이 야채가게를 습격하지는 않지만 채식주의자는 정육점을 습격한다'와 같이 다수에 저항하는 쪽이 예외에 속한다.[17] Pierre Bourdieu, 「The Aristocracy of Culture」, 「Media, Culture and Society」, 2(1980), p.63.[18] 김창남, 『인문학이 인권에 답하다』, 「드라마 주인공은 왜 사투리를 쓰지 않을까?」 . 철수와 영희. 73-74p. 이하 이 책을 인.인.답.이라 표기함.[19] 홍종윤, <팬덤 문화>[20] 헌법재판소, 93헌바43[21] 참고로 원하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는 직업도 그 직업이 사회적 평가를 수반한다면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22] 일본은 작품의 규제가 비교적 관용적이라 상당한 수위의 표현과 내용을 아동물에서 볼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어릴 때부터 어른들의 감성에 내성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단련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좀 더 전문가적 시각에서 세심하고 공격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갈 수 있는 가능성도 커진다.[23] 일본의 인종차별 반대 운동가들.[24] 기울임체는 C.R.A.C의 트윗. 결국 이 계정은 트위터 운영원칙을 위반하여 정지를 먹었다.[25] 사이트 주제와 직접적으로 관계 없는 경우에 한함. 예컨대 게임 커뮤니티에서 '연예, 스포츠' 주제의 글을 올린다든지. 스포츠 커뮤니티에서 '연예, 게임' 관련 글을 올린다든지[26] 성소수자들이 퀴어문화축제를 여는 이유도 이와 유사하다. 즉 비가시화의 압력에 맞서 자신들을 가시화하고자 하는 몸부림인 것이다.[27] 2004년 여성개발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 국민들은 장애인이나 외국인노동자, 가난한 사람들에 비해 동성애자들은 상대적으로 차별을 받고 있지 않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여성개발원, 2004: 52-78). '한국의 소수자'에서는 이러한 결과가 나온 이유를 동성애자의 음성적 측면으로 해석하고 있다. 즉 이러한 측면 때문에 차별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이는 똑같이 음성적 소수자인 정신질환자(중증이 아닌 이상 겉으로 증상이 드러나지 않고, 차별을 피하기 위해 증상을 숨김) 등도 마찬가지이다.[28] 예를 들어 인터넷 커뮤니티의 경우 강력하게 '애니짤 금지'라는 규칙을 내세우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그런 거 상관없이 하하호호 웃고 즐기는 커뮤니티도 존재한다.[29] 예: 격리 게시판 설치, 일일 게시글 제한 차등 적용 등[30] 석승혜, 김남옥. 「불안한 사냥꾼의 사회」 30-31.[31] 여기서 말하는 '삶의 통제감'이란 자신의 삶에 대해 다양한 선택 및 통제의 가능성, 즉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 있다는 느낌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삶의 통제감이 떨어질수록 차별의식이 강하다는 것은 뜻대로 안 되는 것을 피차별계층 탓을 하며 화풀이를 한다는 것이며, 취향 이야기는 아니지만 매번 취업에 실패해 되는 일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외국인 노동자 때문에 우리 일자리가 사라진다!'라며 차별적 발언을 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32] 예: "일(공부)하기도 모자란 시간에 덕질을 해?". 이는 '덕질' 뿐만이 아니라 다른 '돈 안 되는' 분야에도 적용된다.[33] 석&장, '마이너리티'. 108페이지[34] 이런 사람들의 입장에서 오타쿠라는 존재는 본인들보다 못한 소수자라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덕후들의 입장에서도 '대체 저 사람들은 뭔데 저럴까?' 하고 기분 안좋아 한다.[35] #[36] 박경태, 「소수자와 한국사회」(이하 「소수자와 한국사회」, 후마니타스, 26[37] 오타쿠의 발상지인 일본조차도 아이누인, 오키나와인, 부라쿠민이라는 '내부 식민지'가 존재한다.[38] 강준만&강지원, 「빠순이는 무엇을 갈망하는가?」. 인물과사상사. 53-54쪽. 앞으로 이 책을 강 부녀, 「빠순이」라 표기함.[39] "흑인은 흑인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그는 노예가 된다."(카를 마르크스, 「임노동과 자본」 中) 즉, 흑인은 그저 피부가 검은 사람일 뿐이며, 흑인을 노예로 만드는 것은 그의 '동물적 본성' 같은 게 아니라, 총 든 백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형성된 특정한 관계, 그런 특정한 조건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그 조건, 그 관계가 달라지면 흑인은 얼마든지 자유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40] "손상이나 능력장애에서 야기된 것으로 연령, 성, 사회문화적 요인에 따른 정상적인 역할의 수행을 제약 또는 방해하는 개인에 대한 불이익을 의미한다. 이는 손상이나 능력장애가 사회화된 것을 의미하며, 이로 인하여 야기된 개인과 사회적 환경과의 관계에서 오는 장애를 의미함(WHO의 장애 개념 중 '사회적 불리(Handicap)')". 또한 UN 장애인 권리협약은 서문에서 '장애는 변화하는 개념일 뿐만 아니라 손상을 가진 개인과 그들의 완전하고 효과적인 사회참여를 방해하는 태도적, 환경적 장애물과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것'임을 강조하였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에는 장애를 '사회적 불리'로 여기지는 않았으나 근대 이후 자본주의 사회로 전환하면서 '장애인은 무능력하고 무가치한 존재'로 전락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41] 박경태,「인권과 소수자 이야기: '우리'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 책세상, 2007. p. 21.[42] 여기서 축구를 애니메이션으로, 덴마크를 일본으로 바꾸면 대다수의 '정상적인' 오타쿠들이 가진 태도가 된다.[43] 2020년 기준으로 10대 글로벌 자동차 그룹 중 4위에 들어간다.[44] 아직 자동차 산업과 일반적인 소비자들의 구매 수준에 대한 현실을 모르고 눈만 높아서 할리우드 배우나 금수저급의 뽀대나는 삶만 부러워하는 젊은이들이 자주 하는 생각이다. 특히 이런 차량들은 브랜드 가치가 100퍼센트로 먹어주는 라인업이기에, 현기차가 진출하더라도 수익을 기대하기 힘들어 진출하지 않는 것이지 기술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45] 이들의 논리는 대체로 이렇다. "더빙을 왜 하느냐, 배우 아무개 목소리 들으려고 외화 보는 건데 도대체 누가 더빙으로 외화를 보느냐"[46] 실제로 독일이나 프랑스에서 생기는 ‘비백인’ 관련 문제 대부분은 백인들이 만드는 것이고, 문제의 핵심은 백인에 의한 인종차별에서 출발한다. 사회적 갈등의 근본 원인은 그들을 차별하고 빈곤 상태에 묶어 놓고 빈민층 집단 거주 지역에 한정시켜 놓은 데에 있는 셈이다. (「소수자와 한국사회」, 82면)[47] 인문학(문학, 역사, 철학) 서적은 대부분이 일본어나 영어를 번역한 중역이었으며, 특히 대학 교재로 가면 이러한 중역본조차도 없이 원서로 강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48] 반대로 일본은 '어차피 외국 문화다. 이런 발달된 문화는 알기 쉽게 번역해서 모든 사람이 알도록 하자'는 인식으로 국가에서 주도하여 서양 서적을 번역하기도 했고 외화의 경우에도 한국보다 더빙이 활성화되어 있다.[49] 실제로 1980년대까지만 해도 나이트클럽에 가면 팝송 대 가요의 비율이 7 대 3 정도였다. 가요는 사운드와 질에서 팝송에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1990년대 초 서태지 등장 이후 이런 구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는 나이트클럽에서 나오는 음악의 가요 대 팝의 비율이 8 대 2로 역전되었다. (월간조선 2000년 3월호, <10대의 구매력 앞에 무릎 꿇은 대중문화 시장의 내막>)[50] IMF 관리체제는 음반시장 규모를 축소시킨 한편 상대적으로 불법 음반시장을 키웠다. 호주머니 사정이 나빠진 주요 음반 소비계층이 正品(정품) CD(콤팩트 디스크) 대신 불법 카세트테이프와 CD 불법 복사본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대중문화 시장의 내막)[51] 사실 이전에도 해당 가수의 골수 팬이 아닌 이상, '타이틀 곡만을 위해 앨범 하나를 사는 것은 손해'라는 인식은 조금이나마 있어 왔다(소위 '길보드'라 불리는 복제 음반의 대부분이 당대 가수의 타이틀곡 내지 인기곡만을 모은 것이었던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음원 중심으로의 변화는 이러한 인식에 날개를 달아 준 것이다.[52] 실제 주문-MIROTIC의 앨범판매량은 100만 장 이상이였다. 왕비호는 추후에 정정하고 사과함. 참고로 10만 장은 개콘 녹화 당시의 수치이며, 선주문 분량 30만 장은 제외되었다.[53] 물론 오타쿠/비판 문서에도 나오듯이 초면에 만난 사람에게 취미 얘기를 늘어 놓는 것은 민폐이다.[54] "...낚은 물고기를 안고 찍은 사진? 이 정도는 괜찮다. 박제한 사슴 머리? 이건 조금 지나치다." (켄 태너, 「아인슈타인이 외판원이었다면」. 김인숙 옮김. 북드림(2007). 96p.)[55] 이 분야의 가장 극적인 예가 DADT. 의도는 '동성애자의 사적인 영역을 보호해 주자'는 것이었으나, 이를 뒤집어 보면 동성애가 사적 영역에서는 허용되더라도 군대라는 공적 공간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행위이므로 감춰야 하며 금지한다는 것을 의미했다.[56]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창비, 140쪽[57] 실제로 한국 영화가 발전하기 전에는 대규모 자본을 앞세운 미국의 문화상품들이 다른 나라들의 문화적 다양성을 해친다며 문화제국주의라 비판하기도 하였다(인.인.답.. 67p.).[58] 출처. 2017년 통계인 만큼 지금은 차이가 더 벌어졌을 것이다. 단, '지적재산권' 수지로 보면 다시 적자이지만 이는 저작권 뿐만이 아니라 산업재산권(특허, 상표 등)까지 포함한 수치이기 때문이다(특히 전기, 전자 제품 특허로 인한 적자비중이 60% 이상을 차지).[59] 한일 무역 분쟁 전까지만 해도 도요타, 닛산 같은 일제차는 제품력이나 인지도가 국산차보다는 훨씬 높다는 국내 소비자들의 막연한 판단과 미제차나 독일 차와 같이 '비싼' 차보다는 '합리적인 가격'을 장점으로 하여 인기를 끌었다. 반면 국산차의 대표격인 현기차의 판매량은 일본에서는 없다시피 했는데, 일본 소비자들의 시각으로 봤을 때 현대차 브랜드는 일본에서 팔리는 수입차 브랜드 중 가장 인지도가 낮은 수입차 브랜드의 하나였던 점(대략 한국에서 보는 중국차 정도였다 보면 된다)이 크다.[60] 대일무역수지 적자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이다. 이에 비하면 '오타쿠 문화'의 비중은 말 그대로 새발의 피 수준.[61] "지금은 사정이 달라져서 외려 한류가 아시아나 제3세계의 문화 다양성을 해친다며 욕을 먹어요." (인.인.답.. 67p)[62] "...이 장면을 함께 보던 엄마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재민이가 됐으면 좋겠지?' 아마 엄마는 내가 god를 좋아하니 '멤버들을 실제로 만나고 가까이 가보길 바랄 것이다'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나는 손호영에게 안겨 있는 재민이를 보며 그저 '귀여운 아이구나, 손호영 많이 아파 보이네' 등의 생각을 한 게 전부였다. 한마디로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확실한 건 이때의 나는 이성에 대한 관심은커녕 god 멤버들을 '남자'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강 부녀, 「빠순이」, 24쪽)[63] 인.인.답.. 77쪽[64] 한 예로, 은혼에서는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서 이런 걸 읽으니까 이런 꼴 당한다."라면서 주인공을 디스했다. 그 잡지사의 연재작이면서 이런 디스가 나온다는 건 나이 먹고 만화를 보는 건 일본에서도 긍정적인 소리는 못 듣는다는 것이다.[65] 강 부녀, 「빠순이」, 인물과사상사, 13~14쪽[66] 실제로 사회면에 실릴만큼 대형 사고를 치는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간혹 일으키는 흉악범죄는 '팬덤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것이 아니므로 논외(단순히 특정 종교 신자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종교와 해당 범죄와의 연관성을 주장할 수는 없는 것과 같다).[67] 그러나 전술했듯이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오타쿠인 쪽이 평가가 상대적으로 나쁘다. 그리고 '덕밍아웃'을 하는 것과 '그 취미를 공적인 곳에 끌고 올 수 있느냐'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68] 예)화장 떡칠은 하지 않더라도 잘 씻고 다닌다거나, 유행을 다 알아차리지는 못해도 특정 TV 프로만 편식하지 말고, 뉴스 등의 다양한 장르를 골고루 본다던가, 주요 뉴스 소식과 주변인들의 화젯거리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든가, BTS 멤버 이름은 몰라도 BTS가 '방탄소년단'(BangTan Sonyeondan)인지는 알아야 된다든가, 야구 규칙 전체는 몰라도 최소한 1루에서 홈까지 한바퀴 돌아야 득점한다는 사실은 알아야 된다든가 등.[69] 인.인.답.. 86-87p.[70] 전자의 예로는 비록 이익을 위해 뭉친 것이기는 하지만(엑소 팬은 한화 선수들이 올스타가 되도록, 한화 팬은 엑소가 음원 1위를 차지하도록) 엑소 팬과 한화 팬이 뭉친 것을, 후자의 예로는 너드/오타쿠 성향도 겸비한 성소수자들이 갖가지 오덕 본능을 드러내거나 성소수자가 아닌데도 덕심 부리러 가는 오덕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박근혜 퇴진 운동을 시작으로, 각종 사회 운동에 캐릭터 깃발 등을 들고 나서는 팬덤들이 있지만, 아직까지 '팬덤 자체'의 권리를 위한 운동은 없다시피 하다.[71] 이러한 사고방식은 '자동차(스마트폰) 팔아 쌀을 사면 되니 농사를 지을 필요 없다!'와 마찬가지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오타쿠들 역시 '어차피 만화는 외국만화 수입하면 그만이니 만화 검열에 찬성한다'는 등의 주장을 한 적도 있었다는 것이다. 오타쿠/문제점 참조.[72] '어린아이와 마찬가지인 유치산업(Infant Industry)을 외국산업과 경쟁할 수 있을때까지 일시적으로 보호하여(temporary protection) 육성시키자'는 논리. 다만 이 역시 보호주의에 빠질 염려도 있기에 적절한 방향을 잘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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