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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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테
沖縄手(うちなーでぃー
Okinawa Te

파일:attachment/슈리성/1.jpg

1938년 슈리성에서 오키나와 테를 수련하는 수련자들[1]
스포츠 정보
종류
입식타격기
공격 방식
타격[2], 그래플링[3]
종주국
[[류큐 왕국|

류큐 왕국
display: none; display: 류큐 왕국"
행정구
]]
[4]
원류
중국 남권
올림픽 채택 여부
채택되지 않음(2022년 기준)

1. 개요
2. 설명
3. 종류
3.1. 슈리테(首里手), 토마리테(泊手), 나하테(那覇手)
3.2. 고주류(剛柔流)
3.3. 우에치류(上地流)
3.4. 쇼린류(小林流)[5]
3.5. 모토부류(本部流)




1. 개요[편집]


오키나와 테(沖縄手)는[6] 가라테의 원형으로, 중국 남권류큐 왕국(현재의 오키나와)에 들어와 토착화된 무술이다.


2. 설명[편집]


본래 수(手, 티)[7] 또는 당수(唐手, 토디)라고 불렸다. 큰 특징으로는 중국 혹은 동남아 등지의 무술의 영향을 받아서 스탠딩 유술기를 강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가라테가 일본 본토로 전파될 때 유도와의 차별성을 위해 삭제 및 제한된 유술기들이 온전히 남아있다. 이런 특징 때문에 현대에 정립된 가라테와 차이가 좀 있어서 가라테 유파로 보기도 하나 애매하기도 하다. 실제로 일본으로 전파되어 현재 수련되고 있는 유파들과의 차이점도 존재하기 때문.

가끔 인터넷 상에서 오키나와 테 수련에서 보이는 손 얽기나 유술기를 가지고 뭘 모르는 꼬꼬마들이 실용주의를 따지는 서양인들이 가라테를 받아들인 후 이것저것 붙이다보니 유입된 수련법이라고 말들을 하는데 이후에 받아들인 게 아니라 원래부터 있었던 게 일본 본토로 전해지면서 빠진 것이다. 처음 일본에 가라테가 들어왔을 때 약해 유도의 아래로 들어갔고(그 흔적으로 홍백띠가 아닌 검은띠가 최대다.) 도복, 띠, 기술을 받아 들였지만 이후 스포츠화를 위해 차별화하기 위해서 유술기를 제외한 것. 애초에 가라테의 원류가 넘어온 복건성, 광둥성 등지는 흔히 손 얽기하면 생각하는 영춘권이나, 가라테의 원형에 가깝다는 백학권, 홍가권 등의 발상지다. 오키나와에서 독자적인 발전을 거쳤다고 해도 사실상의 발상지가 같은데 수련법이 비슷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기술의 예가 친쿠치, 가마쿠, 무치미, 토리테(투이 티)다. 친쿠치는 강체술로 보통 타격 시 몸의 근육을 조이는 데에 쓰인다. 고주류, 우에치류의 삼전(三戰, 산친) 카타가 이것을 수련하는 데 좋다. 또한 이 친쿠치는 하드 스타일 케틀벨 스윙의 필수 요소이기도 하다. 가마쿠는 몸의 근육을 이용해 무게 중심을 바꾸는 기술로 기습적인 발차기를 하는 데 쓰인다. 무치미는 2가지인데 하나는 병(餠) 신이고 욕이 아니다 하나는 편(鞭) 신이다. 양쪽 모두 몸을 부드러운 상태로 만드는 것으로 떡 병(餠)자를 쓰는 무치미는 영춘권의 치사오처럼 상대의 공격을 막아서 흘리거나 손 얽기 상태에서 파고 드는데 쓰이고, 채찍 편(鞭)자를 쓰는 무치미는 탈력 상태에서 튀어나가듯 공격하는 데 쓰인다. 토리테는 그냥 합기유술과 골자술이다. 다른 점을 굳이 꼽으라면 그냥 손을 얽어 넘긴 다음에 급소에 주먹이 날아가는 정도.


대충 이런 모습들이다. 고주류 가라테 8단 타이라 마사지 선생의 시범 및 지도. 척 보면 알겠지만 영춘권의 치사오와 비슷하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중국 남권이 전해져서 오키나와 테가 된 것이니 비슷하거나 거의 같을 수밖에 없다.

또 하나 차이점이라면 일본의 가라테가 많은 부분 현대적인 장비를 도입하고 수련도구도 서구적인 것을 받아들였다면 오키나와 테는 예전부터 수련 도구로 쓰이던 치시, 석단공, 항아리, 석쇄 등을 가지고 수련한다는 점과 나무를 치거나 하는 식으로 단련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일본으로 전해진 가라테라도 송도관이 아닌 고주류 계통은 이런 방식을 고수하고 있으며 유튜브 등의 영상을 찾아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히가온나 모리오 10단의 고주류 파워 트레이닝 영상을 살펴보면 스쿼트부터 데드 리프트 푸쉬 업 등의 웨이트 3대 운동부터 시작해 목, 악력 등 무술가에게 꼭 필요한 세세한 부분의 단련까지 사람 2명이서 어떻게든 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바벨 등 현대적인 기구를 이용하는 것보다는 효율이 떨어질지 몰라도 사실 사츠마의 감시로 인해 이렇다 할 단련 기구들을 만들 수도 없고, 부상을 입었을 시 치료할 방법이나 영양관리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며, 스승과 제자로 이루어진 소수의 무리들로만 수련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오키나와 테의 본래 복장은 유도복과 띠제도를 받아들인 현재의 가라테 복과는 달랐다. 웃통을 벗고 바지만 입은 뭔가 후줄근한 복장이었는데, 요즘 수련 동영상을 보면 현대의 가라테 도복을 받아들인 듯 하다. 하지만 오히려 깨끗한 하얀색 도복보다 과거의 생활 무술 같은 모습이 순수한 무술가의 모습 같다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무술가라 몸이 좋기에 그냥 멋있어 보이는 건 아니고(?)


3. 종류[편집]



3.1. 슈리테(首里手), 토마리테(泊手), 나하테(那覇手)[편집]


오키나와어 발음으로 각각 수이디(すいでぃー), 투마이디(とぅまいでぃー), 나화디(なーふぁでぃー)라고 한다. 각각 류큐왕국의 수도였던 슈리(수이), 항구도시인 토마리(투마이)와 나하(나화)의 지역명에서 유래되었다.[8] 가라테가 되기 전에는 집단 수련을 할 수 없는 환경에 유파라는 개념 자체가 없고 한정된 사람에게만 전파되는 '비장의 무술'이라서 '이들의 기술은 이러이러했다'라고 할 만한 자료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애초에 이 분류도 유파로 정립되기 전이라서 이들은 '계통'이라고 분류하며[9] 같은 계통이더라도 배우는 내용에 차이가 많았을 가능성이 있다. 이들이 각각 가라테의 어느 유파로 발전했는지 간단하게 정리해보자면, 이토스 야스츠네[10]에 의해 슈리테 계통과 토마리테 계통 일부가 섞여서 이토스류 등의 통통 튀어다니는 가벼운 스타일의 가라테 유파로 발전해 나갔고, 나하테 계통의 일부가 고주류와 우에치류 등 무게감 있는 공방을 하는 가라테 유파로 발전해 나갔다고 한다.


3.2. 고주류(剛柔流)[편집]



개조는 미야기 초준(宮城長順, 1888-1953). 오키나와 3대 유파[11], 가라테 4대 유파[12] 중 하나로 본토에 진출해 있지만 오키나와 테의 명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유파이기도 하다. 본토로 진출한 고주류의 경우는 쇼토칸의 슨도메 룰을 받아들이고 또 자체적으로 방호구를 착용하고 대련을 하기도 하지만, 오키나와에서는 예전 오키나와 테의 방식 그대로 수련하고 있다. 쇼토칸과는 대조적으로 근접전 위주를 상정하는 유파로 접근전의 고주류 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고주류를 대표하는 동작은 조식호흡법이 있다. 이부키 호흡, 폭발호흡이라고도 하는 이 호흡법은 산친, 텐쇼 카타와 더불어 스스로의 호흡과 근육을 쥐어짜며 천천히 행하는 움직임으로 무술에 필요한 몸(體)를 만드는 호흡이기도 하며 쇼토칸과 외형적으로 크게 차이가 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극진 공수도 역시 이 영향을 받아 이부키 호흡이 많이 보인다. 미국에도 진출해있는데 초창기 UFC 준우승자 헤럴드 하워드가 고주류 가라데 수련자로 나온다.


3.3. 우에치류(上地流)[편집]



개조는 우에치 칸분(上地完英, 1877-1948). 오키나와 3대 유파 중 하나로, 반은 강하고 반은 부드럽다 해서 반강원(판가이눈)이라고도 불린다. 우에치 칸분이 복건성에서 13년이나 무술을 연마하고 살아서인지 다른 유파보다 중국무술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가라테가 아니라 우에치류라고 독자적으로 표현해도 될 정도. 해외에서는 우에치류라는 이름과 함께 판가이눈 쿵푸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카타 또한 삼전 카타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다른 유파와 다르며[13] 독자적으로 발전해 슈리테와 토마리테를 있는 쇼토칸이나 나하테를 잇는 고주류와 다르게 우에치류의 카타는 우에치류 혹은 우에치류의 분파에서 수련해야만 배울 수 있다. 손끝 찌르기와 각권, 용두권[14]을 이용한 공격이 많다. 아직 인터넷 문화가 활성화 되지 않았을 시절에서부터 지금도 일부에서는 삼전은 방어력이 높은 카타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큰 역할을 한 유파. 이런 그릇된 인식이 퍼진 이유는 우에치류 특유의 삼전 테스트 과정인데, 보면 안다...


무슨 철포삼 수련하듯이 팬다. 사실 다른 우에치류 영상과 비교하면 저것도 좀 세게 하는 감이 있다. 똑같이 삼전을 하는 고주류도 저런 테스트를 하긴 하지만, 그쪽은 자세나 근육 교정을 해주는 정도로 우에치류처럼 신체 구석구석을 패진 않는다.


이건 고주류 쪽. 별로 안 아파 보이진 않는다는 건 함정.


3.4. 쇼린류(小林流)[15][편집]



개조는 치바나 쵸신(知花朝信, 1885-1969).[16] 오키나와 3대 유파 중 하나다. 나하테를 이은 고주류와 우에치류와는 다르게 슈리테를 이은 유파다. 보법에 해당하는 텐신(転身)과 상대의 몸 안쪽으로 파고드는 이리쿠미(入り込み)를 기본으로 삼는다. 가라데가 유도와 무술교류하면서 유도복과 띠제도를 받아들였는데, 가라데가 유도의 하위 무술로 들어갔기에 용띠를 받지 못하고 검은띠까지밖에 못 받았는데, 특이하게 여기는 유도처럼 빨간띠가 제일 높은 띠이다. 나가자토 슈고로(仲里 周五郎) 10단이 빨간띠를 매고 있다. 특이하게 도복에 ???法 이라고 적혀있다.#


3.5. 모토부류(本部流)[편집]



모토부 어전수(本部御殿手)라고 부른다. 모토부 우둔(本部御殿) 가문[17]의 10대 당주인 모토부 쵸키(本部朝基, 1870-1944)[18]가 어렸을 적부터 부친에게 배워오던 독자적인 유파인 어전수에, 10살 때부터 마츠무라 소콘 등 전통 가라테 명인들로부터 다른 유파를 배워 그 기법을 섞어서 만든 유파가 모토부 어전수라 할 수 있다. 상기한 오키나와 테의 특징 중에서도 유난히 손 얽기 공방에 특화된 모습을 보인다. 시연하는 모습을 보면 그냥 유술가가 가라테가를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키나와 전통 궁중무용과 결합된 형태로 카타가 존재한다. 서양을 예로 들자면, 왈츠가 격투기술이 된 것과 같은 이치. 무기를 소지할 수 있는 왕족들이 배우던 기술이라 일반 가라테와 달리 무기술에 검술과 창술이 들어가있다. 다른 가라테 유파와 이어지는 카타는 내보진(内歩進 나이한치)하나 뿐이며[19], 이 역시 원래 궁중 무사들이 배우던 기술이다.

물론 하수나 중수는 그런 거 없고, 다른 유파처럼 스텝도 밟고 주먹질 발질도 하며 지극히 가라테처럼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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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극 1장 품새 초반부와 유사하다. 앞에서 지도하는 사람이 신판 구스쿠마(城間真繁)인데, 이미 유도와 무술 교류한 이후이기에 도복과 띠를 착용하고 있다.[2] 발차기, 펀치[3] 스포츠화된 현대의 가라데 보다 유술기가 더 많이 남아있다.[4] 1879년, 류큐 왕국이 멸망한 이후론 일본 제국 오키나와현[5] 林流와는 발음만 같은 다른 유파임으로 주의하자.[6] 류큐어우치나아디(うちなーでぃー)라고 발음한다.[7] 류큐어 발음이다. 手 홀로 쓰일 때는 보통 라고 발음하지만, 위에 沖縄手처럼 앞에 단어가 붙어서 나올 때는 라고 발음하기도 한다.[8] 세 곳 모두 현재는 나하시로 통합되었다.[9] 이는 지역에 따라서 어떠한 공통점이 있을 수 있다는 개념에서 편의상 하나의 그룹에 넣은 것이지, 특징에 따라 분류한 것이 아니다. 또한 이러한 분류 자체가 20세기 중반에 처음 이루어졌다고 한다.[10] 후나고시 기친의 스승. 이토스류에서 파생된 가라테 유파를 수련하는 사람들에게는 거의 뭐 태사조격인 인물이다.[11] 고주류(剛柔流), 우에치류(上地流), 쇼린류(林流).[12] 쇼토칸류(松濤館流), 고주류(剛柔流), 시토류(絲東流), 와도류(和道流). 이 중 고쥬류만이 나하테 계통으로 나머지는 슈리, 토마리 계통의 이토스류에서 파생되어 나온 유파들이라 한다.[13] 정확히 말하자면 카타의 흐름은 비슷하지만 동작의 면면이 다르다. 우에치류는 좀 더 쿵푸같은 느낌.[14] 특이하게도 중지가 아닌 검지손가락으로 밤주먹을 만든다.[15] 林流와는 발음만 같은 다른 유파임으로 주의하자.[16] 오키나와 방계 왕족 출신으로 모토부류의 모토부 쵸키와 먼 친척이라고 한다.[17] 류큐 왕국 제 2 쇼씨왕조 10대 왕인 쇼 시츠(尚質)의 6남 모토부 오우지 쵸헤이(本部王子朝平)를 시조로 하는 가문이다. 우둔은 류큐 왕족 가문을 이르는 오키나와어 단어인데 앞에 써있듯이 한자로 어전이며, 한국인이 임금님이 계시는 궁전을 말할 때 쓰는 그 어전 맞다.[18] 안그럴 것 같아 보여도 의외로 후나코시 등과 함께 본토에 진출한 가라테 1세대다. 1922년 교토에서 열렸던 권투 대 유도의 친선경기에서 러시아인 권투가를 일격에 눕혔다고 한다. 당시 나이 52세. 이 일화가 당대 인기 잡지였던 킹에도 실렸다고 하니 다소 과장은 있을지 몰라도 ㅎㄷㄷ한 실력이었던 듯.[19] 모토부 쵸키 역시 나이한치밖에 모르는 바보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자주 했지만 실제로는 발새(밧사이)나 십삼(세이산) 평안(핑안) 등의 카타도 하긴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