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야부 하루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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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藪春彦

파일:external/f.hatena.ne.jp/20081114073848.jpg

1935년 2월 22일 ~ 1996년 2월 26일
1. 개요
2. 작품 특징
3. 작가 이전 생애
4. 작품 활동
5. 여담
6. 오야부 하루히코상


1. 개요[편집]


20세기 일본하드보일드 소설가. 트로피 헌터이자 일본식 총덕후의 원조격인 인물이기도 하며, 교사였던 아버지가 근무하던 일제강점기 조선경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참고로 오야부의 실제 발음은 '오오야부'에 가깝다.

2. 작품 특징[편집]


오야부 하루히코는 굳이 계보를 따지자면 마이크 해머 계열의 섹스 & 바이올런스를 전면에 내세운 폭력적이고 오락적인 피카레스크 하드보일드 소설을 백 편 가까이 양산함으로써 초창기 일본 하드보일드 소설의 기반을 다졌고, 특히 장장 몇 페이지에 걸쳐 이어지는 총기와 자동차에 대한 집요하다 못해 페티시적인 묘사와 설명은 예나 지금이나 따라올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1] 일본에서 요시모토 바나나무라카미 하루키는 몰라도 오야부 하루히코를 아는 사람은 있을 정도로 유명하며, 현대에도 20세기에 쓰인 작품의 상당수가 여전히 종이책이나 전자책으로 유통되고 있다. 팬들의 말을 빌리자면 "별볼일 없는 소도시로 혼자 출장가서 쓸쓸한 밤을 맞이한 샐러리맨이 숙소에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읽으면 딱 좋은 책"을 썼으며, 이런 특이한 작가적 위상은 조금 더 문학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기타가타 켄조의 현대 하드보일드 소설[2]들이 등장할 때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3. 작가 이전 생애[편집]


1935년 아버지가가 근무하던 경성에서 태어난 오야부 하루히코는 1945년에 신의주에서 국민학교를 다니던 중 교사였던 아버지가 일본군에 징병되어서 졸지에 소년 가장이 되었다. 만주나 조선에 거주하다가 광복 전후에 일본의 패전 정보를 재빨리 입수한 일본의 높으신 분들은 다른 일본인들을 저버리고 가솔과 재산을 챙겨 재빨리 귀국했는데, 그 결과 도망가지 못하고 뒤에 남겨진 일본인 말단 경관이나 헌병들이 조선인들에게 보복 살해되는 걸 목격한다. 오야부 소년은 어머니와 어린 여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부랑 소년이 되어 신의주에 주둔한 소련군이 훔친의 석탄을 훔치거나 시장에서 도둑질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고, 그 과정에서 소련군의 총검에 등을 찔리거나 따발총 세례를 받은 적도 있었다. (도둑이 부랑 소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맘 좋은 소련군 경비병은 일부러 허공에 대고 따발총을 갈겼고, 따발총의 드럼 탄창에 서너 발에 한 발 꼴로 장전되어 있었던 7.62mm 예광탄이 어둠을 가르는 아름다운(...) 광경에 오야부 소년은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매주 주둔군의 급식을 담당한 소련군 병사가 신의주의 신사로 소를 한 마리 끌고 와서 토카레프 권총 한 방을 소의 정수리에 쏘니 그 큰 소가 그대로 쓰러지는 것을 목격하고 총기의 위력을 실감했고, 약자를 강자와 동등한 입장에서 싸울 수 있게 해 주는 '균등화된 폭력(equalizer)'을 상징하는 총에 대한 기아감에 가까운 집착과, 국가권력 및 천황제에 대한 불신감 및 나고 자란 고향인 한반도에 대한 애증[3]은 훗날 그의 소설 세계 전체를 지배하는 원풍경으로 남았다.

1946년에 인천과 부산을 거쳐 밀항선을 타고 천신만고 끝에 일본으로 귀국해 보니 아버지는 이미 시코쿠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문학소년이었던 고등학교 시절에는 공산주의 혁명에 탐닉해서 학교 신문에 천황제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가 신문이 압수당해 불태워지는 사태를 목도하면서 한층 더 반골/반권력/아나키즘 기질이 강해졌다. 그 시절부터 미키 스필레인과 대실 해밋레이먼드 챈들러를 위시한 미국의 하드보일드 소설가들의 작품을 페이퍼백 원서로 탐독했고, 영미의 대중문학과 연극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4. 작품 활동[편집]


사립 명문 와세다대학 영문학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문단에서는 순문학과 장르문학 양쪽을 통틀어 이단으로 취급받았다. "오야부는 총과 (섹스와) 자동차를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라는 평론가의 악평을 받은 것으로도 유명한데, 팬들은 이것을 "오야부의 진가를 모르는 무지한 평론가의 헛소리" 라며 분개하지만, 장르 소설치고도 문장이 너무 단조롭고 건조하며 반복적인 데다가 "폭력이 전부"라는 느낌이 없지도 않은 오야부의 작풍 자체가 워낙 편집증적이고 이질적이었기 때문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특히 여성 혐오도 아니고 여성을 섹스나 범죄를 위한 이용 수단으로밖에는 보지 않는 여성 물화(物化) 경향이 현저한데,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의 여성 지위가 워낙 낮은 데다가 관련 묘사들이 거의 만화적인 느낌을 줄 정도로 과장된 탓에 이 부분이 큰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주인공들의 총기나 도검류나 그밖의 무기를 이용한 폭력과 고문 묘사는 잔인하고 필요 이상으로 상세하지만 워낙 오락성과 중독성이 강해서 큰 인기를 끌었고, 현재의 단카이 세대(=베이비붐 세대[4]), 그러니까 5~60대 일본인 남성들 중 상당수는 오야부 하루히코의 문고본을 탐독하며 자라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소설은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외로운 늑대형 범죄자나 반체제적인 폭력 전문가(야쿠자, 킬러, 스파이, 직업 사냥꾼, 전직 특수부대원 등등)의 권력자들에 대한 잔인하고 처절한 복수와 일확천금, 그리고 궁극적인 파멸을 다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5] 복수의 대상은 초대형 범죄 조직의 두목에서 내각총리대신를 포함한 부패 정치가들을 망라하며, 그 탓에 일본 특유의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와 자민당의 장기집권에 염증을 느낀 쇼와의 일반인 남성들, 특히 전공투 세대를 위한 소망 충족적 판타지라는 평을 종종 받기도 한다.

《부활하는 황금늑대(蘇える金狼)》(1964)로 대표되는 초기 작품의 주인공은 일견 평범한 말단 샐러리맨이지만, 실은 타고난 초인적인 체력을 바탕으로 총과 폭력과 마약을 이용, 무자비한 대량 살인을 저지르는 한이 있더라도 권력과 돈과 섹스를 손에 넣으려고 작정한, 현대 기준으로 보면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파멸형의 허무주의적인 인물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와세다대학 영문학과에 재적하며 사격부에서 사격에 열중하던 시절 투고했다가 무려 에도가와 란포의 추천을 받고 세상에 나온 데뷔작 《야수는 죽어야한다(野獣死すべし)》(1958)의 주인공 다테 구니히코가 그 원점인데, 여자들이 절대로 저항하지 못하는, 아폴로처럼 균형잡힌 육체를 가진 미남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작가의 알터 에고라고 해도 무방하다.[6] 다테 구니히코의 연장선상에 있는 주인공이 활약하는 작품으로는 돈 펜들턴의 익세큐셔너(The Executioner) 시리즈와 이언 플레밍007 시리즈의 영향을 받은 '사이죠 히데오(西城秀夫)' 시리즈와, 혼혈 모터사이클 레이서를 주인공으로 하는 《더러워진 영웅(汚れた英雄)》 (1982) 4부작 등이 있다.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면서 과거 작품에서는 그나마 조금은 볼 수 있었던 문학적인 내면 묘사나 사회적 관점은 거의 생략되고 "폭력을 묘사하기 위한 폭력"으로 이어지는 비현실적인 설정과 "물건"[7]에 대한 매뉴얼 뺨치는 세밀한 정보 묘사가 늘어나는 경향을 보이는데, 작중에 서바이벌 기술 및 요리(주로 고기 굽기)에 관한 묘사가 은근히 많은 것도 특징이다.

반사회적인 주인공에 의한 범죄는 오야부 작품에서는 빠질 수 없는 필수 요소였다. 1968년에 잡지에 연재중이던 《피투성이의 야수(血まみれの野獣)》(1969)에는 주인공이 가짜 경찰차를 이용해서 현금 수송차를 습격하는 내용이 있는데, 같은 해 12월에 3억 엔 사건이 일어나자 범죄 수법이 이와 너무 유사했던 탓에 매스미디어의 문의가 빗발치고 경찰까지 작가인 오야부를 "중요참고인"으로 소환한 사건으로 일약 유명세를 탔다.

5. 여담[편집]


일본에서 루거 P08이나 발터 P38이나 윈체스터 M70의 인지도가 높은것도, 루팡 3세발터 P38을 쓰는 것도, 아예 이런 총 이름을 제목으로 쓴 그의 소설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번역된 작품은 상술한 《더러워진 영웅(汚れた英雄)》[8] 과 《야수는 죽어야 한다》뿐이다.

그의 작품들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야수는 죽어야한다》와 《부활하는 황금늑대(蘇える金狼)》는 마츠다 유사쿠, 《더러워진 영웅(汚れた英雄)》은 다테 구니히코를 방불케 하는 미남 혼혈 배우 쿠사가리 마사오가 주연을 맡았다. 드라마 《蘇える金狼》의 경우는 카토리 싱고가 주연을 맡았다.

오야부는 주일미군 기지에서 열린 NRA의 라이플 사격 극동 대회에 참가해서 1급 마크스맨으로 입상한 경력이 있을 정도로 출중한 사격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경제적 여유가 생긴 1970년대부터는 헤밍웨이처럼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북미 등지의 유명 사냥터를 돌아다니며 버펄로나 무스 등 대형동물의 트로피 헌팅에 몰두했고, 오스트레일리아의 다윈의 광활한 사냥터에서 야생 버펄로 43마리를 사살해서 해리 더 킬러(Harry the Killer)[9]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헌터로서의 이런 경험은 중기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간주되는 《헤드헌터(ヘッド・ハンター)》 (1982) 연작으로 결실을 맺었다.

작품 수가 많은 것에 비해 쓰는 속도가 매우 느렸으며, 자기가 쓴 소설 내용과는 딴판으로 상당히 온화하고 가정적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잡지 편집자였던 아내는 오야부의 담당자였는데, 그가 끼니를 거르며 연재 소설을 집필하는 것을 보다 못해 아침밥을 지어서 날라주다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결혼했다고 한다(...)

일본 경찰이 이런저런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적극적으로 불법 총기 적발에 나서던 시절인 1965년에는 하필 몰래 소지하고 있던 권총을 지인이 훔쳐 달아나는 통에 경찰에 자수했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받고 엽총 소지 면허를 3년 동안 정지당한 적도 있다. 사냥을 못 하는 동안에는 레이싱팀을 만들어서 자동차 경주에 참가했고 요트와 비행기 조종 등에도 열중했다. 이 경험은 상술한 《더러워진 영웅(汚れた英雄)》에서 결실을 맺었다.

부랑소년 시절의 기아 체험 탓인지 크지 않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대식가로 유명했는데, 특히 고기와 소시지와 치즈를 좋아해서 상술한 《야수는 죽어야 한다》로 고액의 원고료를 받는 인기 작가가 된 뒤부터는 (1960년대에는 고가였던) 수입 소시지와 고기를 3, 4킬로그램 단위로 사들여 자기 소설의 등장인물처럼 한 자리에서 다 먹어치우곤 했다. (요정에서 고급 회 등을 실컷 먹은 뒤에도 따로 가지고 온 소시지를 씹었다고 한다.) 오야부는 이런 불건강한 식습관 탓에 젊은 시절부터 만성적인 고혈압에 시달렸고, 1996년에 61세로 사망했다.

6. 오야부 하루히코상[편집]


1997년, 그 해의 우수한 미스터리•하드보일드•모험소설에 수여되는 오야부 하루히코상이 창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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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순한 킬링타임용 소설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작풍 자체가 너무나도 편집증적이고 이질적이다.[2] 기타가타는 순문학을 지향하다가 좌절하고 쓴 액션 하드보일드 소설이 상을 받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하드보일드 소설을 양산하다가 업계 중진 자리에 오른 후에 역사소설가 크리를 탄 작가다. 문학도 출신답게 오야부에 비하면 문장이 훨씬 더 섬세하고 상식적인 데다가 총이라고 해 봤자 기껏해야 권총이 등장할 정도이지만, 초기작의 주인공들 대부분이 폐쇄적인 일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파멸형의 내향적 아웃사이더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3] 초기 작품에서는 빈대떡을 비롯한 이북 음식에 대한 노스탤직한 묘사가 종종 있고, 그의 주인공들은 자이니치 출신이 많은 야쿠자나 부패 정치가들을 잔인하게 학살하면서도 한국 음식을 탐식한다.[4] 1947~1949년대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를 일컫는 말. ‘단카이(だんかい, 團塊)’란 '덩어리'라는 뜻인데, 이 세대의 인구수가 상대적으로 많아서 인구분포도를 그리면 덩어리 하나가 불쑥 튀어나온 것처럼 보인다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5] 오야부의 주인공들은 막판에 적들의 총을 맞고 벌집이 되어 죽든지, 아니면 (시리즈화된 다음) 나중에 죽든지 둘 중 하나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6] 구니히코의 어린 시절에 관한 대목은 작가의 신의주 경험과 완전히 일치한다.[7] 총, 자동차, 바이크, 비행기, 요트, 커스텀 나이프, 군사용 병기, 아웃도어 용품, 아웃도어 의류, 서바이벌 용품, 술, 담배, 마약, 약물, 의약품, 스위스 시계 등.[8] 작중에서 언급되는 미하일 레르몬토프의 《현대의 영웅(우리 시대의 영웅) 》을 따서 30여년 전에 《현대 영웅》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적이 있다.[9] 서양인 헌팅 가이드들은 하루히코는 발음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해리라는 애칭으로 그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