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르 니에메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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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브라질의 건축가이다. 모더니즘 건축 태동기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거론되곤 한다. 브라질의 행정 수도인 브라질리아를 설계한 것으로 유명하다.
2. 생애[편집]
독일과 포르투갈 혈통이다. 증조부는 독일계 포르투갈인이었으며 브라질로 이민을 온 것이다. 리우데자네이루 연방 대학교의 국립 예술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1934년 졸업 후, 아버지의 활판인쇄소에서 일하며 대학시절 스승이자 후에 브라질리아 설계를 공동 담당하게 될 루시우 코스타와 만났다.
1939년, 니에메예르와 코스타는 뉴욕세계박람회의 브라질 전시관 설계를 담당했다. 1940년, 당시 벨루오리존치 시장이었던 주셀리누 쿠비체크의 지시로 니에메예르는 '팜풀랴 건축 단지'라는 교외 지역 개발 프로젝트의 설계 담당을 맡았다. 이때 설계한 상프란시스쿠 교회[3] 는 브라질 최초의 현대적 건축물이었고 201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4] 또한 이후 브라질리아 건설에서 조경을 담당했던 호베르투 마르크스와의 첫 합작이기도 했다.
1956년, 대통령에 당선된 주셀리누 쿠비체크는 브라질리아 도시 설계 담당자로 루시우 코스타를 임명했고 니에메예르는 건축 담당자로 선임되었다. 1960년 4월 21일, 브라질리아 건설이 완료되고 니에메예르는 브라질리아 연방 대학교의 건축대학장으로 임명되었다.[5]
1964년 3월, 군부 쿠데타가 발발하고 브라질 군사정권이 들어섰다. 군부는 니에메예르를 탄압했고 1965년 교수직에서 퇴임되었다. 결국 니에메예르는 1966년 프랑스 파리로 떠났고 1985년 브라질이 민주화를 이루고 나서야 귀국했다. 1988년, 니에메예르는 건축의 가장 권위 있는 상인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하였다. 니에메예르는 1992년부터 1996년까지 브라질 공산당(PCB)[6] 의 대표를 역임했다. 100번째 생일날, 러시아 대통령인 블라디미르 푸틴은 니에메예르에게 '우의훈장'을 수여했다. 2012년 6월, 외동딸인 안나 마리아가 세상을 뜨자 건강이 크게 악화되었고 같은 해 12월 니에메예르는 104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2023년 1월에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 임시 총회에서 니에메예르가 설계한 레바논 트리폴리의 라시드 카라미 국제 박람회장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3. 여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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