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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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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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파일:Oh_Se_Hun_Simizu_official.jpg

시미즈 S펄스 No. 20
오세훈
{{{#ffffff 吳世勳[1] | Oh Se-hun
출생
1999년 1월 15일[입학유예] (25세)
인천광역시 연수구 연수동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2]
193cm, 85kg, A형
포지션
스트라이커
주발
왼발
등번호
울산 현대 - 39, 19
아산 무궁화 FC - 9
상주-김천 상무 FC - 18, 9
시미즈 S펄스 - 20
대한민국 U-20 대표팀 - 9
대한민국 U-23 대표팀 - 18, 9
학력
인천안남초등학교 (전학)
인천석남서초등학교 (졸업)
현대중학교 (졸업)
현대고등학교 (졸업)
소속 구단
울산 현대 (2018~2021)
아산 무궁화 FC (2019 / 임대)
상주-김천 상무 FC (2020~2021 / 군 복무)
시미즈 S펄스 (2022~ )
국가대표
18경기 5골 (대한민국 U-23 / 2019~2022)
종교
개신교[3]
에이전트
스포트라이트그룹[4]
링크
#




1. 개요[편집]


대한민국 국적의 시미즈 S펄스 소속 축구 선수. 포지션은 스트라이커.


2. 선수 경력[편집]



2.1. 울산 현대[편집]


2017년 10월 18일, 울산의 우선 지명을 받아 프로에 입단했다. 당시 등번호는 39번.

파일:Ohsehun_UlsanHyundae.jpg


2.1.1. 2018 시즌[편집]


2018년 3월 1일, 1라운드 전북 현대 모터스전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르며 좋은 활약을 하였지만 팀은 패배하였다.[5]

데뷔 시즌 리그 3경기, ACL 1경기에 출전했다.


2.1.2. 아산 무궁화 FC (임대)[편집]


2019년 1월 23일, 팀 동료 김레오와 함께 군경 + 시민 구단 체제가 된 아산 무궁화로 임대되며 구단 역사상 최초의 민간인 선수가 되었다.

파일:Ohsehun_AsanMugunghwa_No9.png

3월 2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개막전에서 골문 구석을 노린 왼발 슛으로 프로 데뷔골을 기록했다. 거기에 어시스트까지 기록하며 멋진 활약을 펼쳤다.



4라운드 서울 이랜드 FC전에서 PK를 성공시켰다. 8라운드 수원 FC전에서 프리킥으로 동점골을 넣었다. 23라운드 안산 그리너스 FC전에서 날카로운 코너킥 헤딩으로 결승골을 넣었다. 26라운드 부천 FC 1995전에서 PK를 성공시키며 동점골을 기록했다.

27라운드 광주 FC전에서 측면 크로스를 어깨로 받아 동점골을 기록했다. 커리어 역사상 첫 2경기 연속 골. 35라운드 부산 아이파크전에서 PK를 깔끔하게 마무리하며 역전골을 기록했다.

2019 시즌 기록은 30경기 7골.


2.1.3. 상주-김천 상무 FC (군 복무)[편집]


파일:ohsehun_Join_sangmu_2019.png
2019 시즌 후반기, U-20 대표팀 동료인 전세진과 함께 상무에 지원하여 12월 2일 최종 합격하였고 9일 입소했다. # 김태완 감독이 공격수를 잘 키우는 감독이라 성장이 기대된다는 반응이 많다. 전역예정일은 2021년 6월 23일이다.

이로써 군경구단인 아산 무궁화와 상주 상무에서 모두 뛰어본 특이한 이력을 가진 선수가 되었다. 물론 군경구단에서 시민구단으로 전환될 시점인 아산에서 민간인 신분으로 뛴 것이다.


2.1.3.1. 2020 시즌[편집]

2020년 1월 올림픽 예선 참여로 기초 군사 훈련 중 차출되었다가 2월 재입소해 훈련을 수료했다. 훈련 일정 때문에 개막전 엔트리에서 제외될 뻔했으나 코로나로 인해 리그 개막이 연기되면서 시간을 벌었다.

2020 도쿄 올림픽에 출전해 메달을 획득하는 방법으로 조기 전역을 노렸지만 도쿄 올림픽이 코로나 19로 인하여 2021년으로 1년 연기되어서 아쉽게도 2021년 6월 23일에 군생활을 모두 다 마치고 만기전역을 하게 되었다.

4월 29일, 코로나 전수 검사를 받기 위해 구단 차량을 타고 이동하던 중 1톤 트럭과 충돌하는 사고를 당해 전치 6주 판정으로 입원 치료를 받게 되었다.

6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전에서 불완전한 컨디션에도 선발 출전하며 상주 데뷔전을 치렀다. 전반 35분 강력한 오른발 슛으로 K리그 1 데뷔골을 기록했고, 후반 24분 PK를 성공시키며 멀티골을 기록하였다.

11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전에서 강상우가 올린 코너킥을 앞에서 잘라 먹으며 선제골을 기록했다. 12라운드 대구 FC전에서 강상우가 올린 크로스를 받아 헤딩 선제골을 기록한데 이어, 강상우의 골을 어시스트 하였다. 이 경기에서의 맹활약으로 12라운드 MVP로 선정되었다.

14라운드 강원전에서 김보섭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했다. 16라운드 서울전에서 선발 출전한 이후 손목 부상으로 23라운드 전북전에 선발로 복귀했고 24라운드 이후 다시 부상을 당해 시즌을 마감했다.

2020 시즌 앞뒤로 부상이 겹치면서 13경기 출전에 그쳤지만 4골 2도움을 기록했다.


2.1.3.2. 2021 시즌[편집]

2021 시즌에는 팀과 함께 K리그2에서 시작하게 됐다.

개막전부터 꾸준히 명단에 들며 풀타임 출전을 하다가, 5라운드 FC 안양전 이후로 부상으로 명단 제외되고 있다.

교통사고 여파에서 아직 회복이 덜 된 건지 올 시즌 유효슈팅을 하나도 기록하지 못하는 등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4경기 출전에 그쳤고, 떨어진 경기감각이 고스란히 올림픽 대표팀 경기에서 전해지며 2차 명단에 소집되지 못했고, 그렇게 전역했다.


2.1.4. 2021 시즌[편집]


2021년 6월 23일자로 전역을 맞이하면서, 다시 울산 현대에 합류하게 되었다. 6월 울산은 AFC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경기들을 치루기 위해 중립경기 개최지인 태국에 있는데, 오세훈 또한 같은 날 전역하는 박용우, 이명재와 함께 즉시 출국해 팀에 합류할 예정이라고 한다. 등번호는 19번을 달았다. 선수 소개 멘트는 울산 유스가 낳은 고공 폭격기.

ACL 조별 리그 1차전 비엣텔전에서 벤치에 있다가 후반 31분 김성준과 교체되며 울산 복귀전을 치뤘다. 그리고 남은 15분 가량의 시간 동안, 김지현과 힌터제어와는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의 공중볼 경합과 포스트 플레이를 보여주며 답답했던 울산 팬들에게 한 줄기 단비를 뿌려줬고, 결국 후반 막판 코너킥 상황에서 헤더로 떨궈준 볼을 힌터제어가 욱여넣고 상대 GK의 발에 또 한번 맞아 굴절되며 극적인 선제 결승골에 어시스트를 적립하는 데 성공했다.[6]

ACL 조별 리그 3차전 카야 FC전, 전역 후 처음으로 선발출전했다. 전반 11분 바코가 좌측면을 돌파하고 낮게 올린 크로스를 논스톱 왼발 슈팅으로 연결하며 울산 입단 후 4년 만에 데뷔골을 넣었고 전반 40분 홍철의 프리킥 크로스를 높은 타점의 헤더로 이어가며 멀티골까지 기록했다. 후반 막판 해트트릭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으나 아쉽게 골대 위쪽을 맞히며 찬스가 날라가고 말았다. 그래도 특기인 부드러운 턴 동작으로 위협적인 위치에서 프리킥을 두 번 얻어내는 등 전체적인 경기력은 매우 좋았던 편. 경기 후 MOM에 선정되기도 했다.

ACL 조별 리그 4차전 카야 FC전에서 후반 시작하자마자 힌터제어와 교체되어 들어갔다. 팀이 후반 2분에 동점골을 먹혀 경기가 어렵게 풀릴 듯 했던 그 순간에 후반 6분 윤빛가람에게 완벽한 스루패스를 찔러주며 윤빛가람의 골에 어시스트를 적립, 두 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를 기록했다.

ACL 조별리그 5차전 비엣텔 FC 전에서 후반 27분에 김지현과 교체되어 들어갔다. 그리고 후반 41분, 이청용의 크로스를 정확한 가슴 트래핑으로 잡아두고 바로 하프 발리 슛으로 연결해 팀의 3번째 골을 득점하였다.

조별리그 6경기에 모두 나와 3골 2도움을 기록함으로서 힌터제어, 바코와 함께 울산 측에서 가장 많은 공격포인트를 기록했다. 이 폼을 리그에서도 이어갈 수 있다면 김민준과 함께 후반기 울산의 U22 카드로 적극 기용될 수 있을 듯 하다.

21R 수원 FC전에서 후반 시작하자마자 신형민과 교체투입되며 문수에서의 복귀전을 가졌다. 팀의 2:5 대패를 막지는 못했으나 전체적으로 정신 나간 경기력을 선보이는 울산 선수들 사이에서 제일 좋은 모습을 보였고, 후반 11분 PK를 얻어내며 추가골에 기여하기도 했다.

22R FC 서울전에서 선발로 나왔다. 전반전 홍철의 땅볼 크로스를 밀어넣으려 했으나 아쉽게 깻잎 한 장 차이로 공에 발이 닿지 못해 리그 1호 골은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특기인 포스트 플레이로 공격 쪽에서의 연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등 활약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후반 시작하자마자 힌터제어와 교체됐다. 교체된 힌터제어는 역시나 연계 면에서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며 이 교체는 홍명보 감독의 아쉬운 용병술로 남게 됐다.

25R 제주 유나이티드 FC와의 원정경기에서 후반 13분 힌터제어와 교체투입되어 후반 28분 김기희의 롱 패스를 받아낸 뒤에 환상적인 턴으로 찬스를 잡았고, 이를 왼발 슈팅으로 연결해 동점골을 만들어내며 드디어 울산 소속으로 리그 데뷔골을 기록했다.

26R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홈경기에서 선발로 나왔다. 득점은 아쉽게도 기록하지는 못했으나 최전방에서 그 도닐 헨리를 상대로도 전혀 밀리지 않고 포스트 플레이와 볼 키핑을 안정적으로 수행해냈고, 안정적인 볼 키핑으로 이청용의 동점골에 기점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상대 수원 선수들이 오세훈과 충돌했을 때 정작 수원 선수들은 엄청 아파하는데 오세훈 본인은 잠시 아파하다 벌떡 일어나는 강철 몸의 면모를 뽐내기도 했다.

27R FC 서울과의 원정 경기에서도 선발 출전해 위협적인 중거리 슛과 상대 수비 한 명을 턴으로 따돌리고 유효슈팅을 날리는 등 좋은 경기력을 선보였다.

8월 29일에 갑작스럽게 힌터제어가 울산을 떠나 이적한다는 루머가 돌고 있었고 결국 8월 31일에 오피셜이 나 스트라이커 자리에 한 사람 공백이 생겼는데, 후반기에는 김지현과 함께 울산의 최전방을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되었고, U-22 제도에 힘입어 스트라이커 자리에 무혈입성했다.[7]

28R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홈 경기에서도 선발출전했는데, 전반전 김태환의 크로스를 머리로 밀어넣었으나 오프사이드가 선언되며 아쉬움을 삼켰다. 그러나 후반 8분 박스 근처에서 날린 기습적인 오른발 중거리 슛이 골문 우측 하단으로 빨려들어가며 드디어 팬들도 바랬지만 본인이 가장 바래왔던 문수구장에서의 첫 골을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후반 막판 적극적으로 달려들며 1:1 찬스를 잡았지만 마지막 터치가 길어 아쉽게 놓치기도 했으나 힌터제어의 공백을 매꿔줄만한 준수한 폼을 보였다는 평이 많다.

31R 포항과의 동해안 더비에 선발로 나왔다. 전반부터 좋은 허슬 플레이를 보여주다 전반 38분 코너킥 상황에서 이동준이 머리로 떨궈준 공을 받아 터닝슛을 날렸는데 상대 조성훈 키퍼가 처리를 잘못하며 행운의 선제골이 들어가 본인의 동해안 더비 첫 골을 기록했다. 경기 후 시즌 첫 라운드 베스트 11에 선정되기도 했다.

ACL 8강 전북과의 현대가 더비에 선발로 나왔고, 이번에도 여느 때와 같이 최전방에서 등을 지고 버티는 역할을 수행했다. 득점은 아쉽게도 기록하지 못했으나 엄청난 활동량과 압박은 충분히 상대 수비진에게 부담을 줄 만 했으며, 연장 후반 막판에는 다리에 쥐가 났을 정도로 정말 열심히 뛰어다닌 모습은 팬들을 감동케 했다. 전반 추가시간 설영우의 패스를 받아 날린 슛이 빗맞았는데, 이게 절묘한 횡패스로 윤일록에게 연결되며 윤일록의 골에 어시스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리그 34R 수원 FC와의 홈경기에서 선발출전해 전반 15분 윤일록의 크로스를 정확한 헤더로 꽂아넣으며 리그 4호 골을 득점하는 데 성공했다. 후반 26분 박스 안으로 온 원두재의 롱패스를 머리로 떨궈 이동경의 골까지 어시스트하는 최고의 활약을 보이며 시즌 두번째 라운드 베스트 11에 선정됐다.


리그 36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홈경기에서 후반 10분 기가 막힌 턴으로 찬스를 잡아 침착하게 마무리해 선제골을 만들어냈고, 윤일록의 자책골로 무승부의 늪에 빠질 위기가 찾아왔으나 후반 막판 이동준의 크로스를 혼신의 힘을 다해 다이빙 헤더로 밀어넣으며 멀티골을 성공시켜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이 멀티골로 리그 6호 골을 달성, 여름에 울산을 떠난 힌터제어와 리그 득점 동률을 이뤘다.[8] 덕분에 팀은 막판 이동경의 쐐기골을 더해 3:1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1위 전북과의 승점 동률을 이루어내는데 일등 공신이 됐다. 경기의 MOM과 라운드 베스트 11는 물론이고 시즌 첫 라운드 MVP도 차지했다.

12월 5일의 리그 마지막 라운드 대구 FC 전에서도 전반 추가시간 2분에 설영우가 왼쪽에서 올려준 자로 잰듯한 크로스를 헤더로 연결지으며 골을 성공시켰다. 이로서 리그 7호 골이자 시즌 10호 골을 넣으며 2021년을 마무리함과 동시에 울산의 이번 시즌 마지막 골을 기록했다. 2021 시즌 울산에서의 기록은 리그와 FA컵, ACL을 포함해 도합 29경기 출전 10골 4도움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9]

2021 시즌을 요약하자면 울산의 소년가장. 상무에서 부상 후유증 때문에 2021년 전반기를 제대로 소화하지도 못하고 전역했는데, 전역 후 울산 최전방 자원 중에서 제일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후반기에 폼을 끌어올리며 최전방의 믿을맨으로 부상했다. 우승 팀 전북의 최전방 무게감을 따라잡긴 버겁긴 했으나[10] 오세훈의 분투가 아니였다면 울산과 전북의 우승경쟁이 조기 종료됐을 가능성이 컸다는 의견이 많다. 내년에는 U-22 쿼터에서 벗어나긴 하나 충분히 백업 이상의 공격수 자원으로 활용 가능한 선수임을 증명했다.


2.1.5. 이적설[편집]


1월 말까지 울산이 이번 시즌 1옵션으로 활용할 외국인 스트라이커 영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에 시즌 초반에는 작년 후반기처럼 주전을 차지할 것으로 보였지만...

2022년 1월 22일, J1리그 시미즈 S펄스에서 오세훈의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다만 현재 울산의 외인 공격수 영입 작업이 지지부진한 것을 보았을 때 거절 가능성도 있지만 아직 이적 시장 기한이 남아있고 여러 사정이 얽힌 만큼 속단도 힘들다.

결국 1월 28일, 시미즈에서 150만달러(약 18억)에 해당하는 바이아웃을 지르며 일본행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이에 울산 입장에선 발등에 큰 불이 떨어지게 됐다. 당장 스트라이커 포지션에는 오세훈이 없으면 박주영과 플랜 F-G 수준에서 겨우겨우 데려온 외인 레오나르두 말고는 자원이 아예 없어 시즌 준비에 치명타가 되어 버린다. 팬들은 무작정으로 바이아웃을 건 프런트를 비난하는 것은 물론이오, 울산의 현 상황이 어떤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리라 믿었음에도 시즌 개막이 3주도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J1리그 강등권에 있는 팀으로 가길 결정했다는 선수 측에도[11] 큰 실망감과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이윽고 2월 4일 울산 측에서 등번호를 발표했을 때도 오세훈의 이름이 제외된 것으로 보아 이적이 더욱 확실시 되고 있다.

류청 기자와 울산 김광국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이적 비사가 살짝 드러났는데, 연봉이 프로 초년생 수준으로 상당히 낮은 데다 이번 시즌부터 U-22 쿼터가 미적용되기에 (외국인 공격수가 오면) 백업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높아 구단에서도 이미 22시즌에 언제라도 이적을 예상했다고 한다.#[12]

2월 18일 K리그 데이터 포털의 소속팀 정보가 울산에서 시미즈로 변경됐고, 24일 시미즈 S펄스 구단 측에서 공식적으로 영입을 발표했다.


2.2. 시미즈 S펄스[편집]


파일:오세훈시미즈.jpg
2022년 2월 24일 시미즈 S펄스 구단이 완전 이적을 공식 발표했다. 입단 코멘트에서는 과거 S펄스에서 활약했던 안정환, 조재진을 잇는 대형 스트라이커로 성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2월 28일 이적 후 언론과 인터뷰를 했고, 인터뷰에서 선수 본인이 밝힌 바에 의하면 본인이 구단에 요구한 것은 바이아웃 금액의 인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각 축구 커뮤니티에서는 알려진 것과 다른 내용이 정말 많다는 점에서 신빙성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 심지어 전 소속팀의 홍명보 감독도 "사실 관계가 다르지만 더 이상 우리 선수가 아니니 언급하지 않겠다."고 발언했을 정도다.# 해당 언론사의 기자 역시 오세훈과 같은 에이전시에 속한 정승원의 이적 파동 때도 선수를 감싸는 기사를 여러 차례 작성하는 등 해당 에이전시와 연관되어 있다는 여러 정황들이 나온 상황이다.[13] 결국 이 인터뷰가 나온 이후로 대다수의 울산 팬들은 오세훈에게 등을 돌렸다.

3월 18일 팀 훈련에 합류했다.

4월 7일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와의 경기에서 J리그에 교체출전으로 데뷔했다.

4월 10일 감바 오사카와의 홈경기에서 57분 데뷔골을 기록했다.

5월, 6월은 30분 내외로 교체출전하거나 명단제외를 기록하고 있다.

7월 2일 요코하마 F. 마리노스와의 리그 경기에서 후반 교체출전 했으나 상대 실책으로 얻은 기회를 허무하게 골문 위로 날려버렸다. 팀은 2-5 대패.

시즌의 반절이 지난 7월말 시점, 오세훈의 성적은 13경기 출전 1골이다. 시미즈의 최근 리그 다섯 경기에서 전부 벤치 명단에서 경기를 시작했고, 세 경기만 교체투입되었다. 시미즈의 주포는 7골을 올린 브라질 출신 티아고 산타나이며, 파트너로는 일본 공격수 카미야 유타가 나선다. 서브 멤버로는 또 다른 브라질 선수인 카를리뉴스 주니오르가 있다. 여기에 현재 강등권 근처까지 팀 성적이 떨어진 시미즈는 또 다른 공격수를 알아보고 있다는 소식이 있다.# 한 마디로 경기에 제대로 나서지 못하는 일이 장기화되고 있다. 일본 현지에서는 센터백으로 포지션 바꾸라는 비아냥까지 나올 정도.

설상가상으로 8월 10일 트레이닝 도중 전치 3개월의 부상을 입으며 사실상 시즌 아웃이 되고 말았으며, 오세훈이 일본으로 떠난 바로 그 시즌에 울산이 K리그1 우승을 차지하면서 처지가 더욱 비참해졌다. 여기에 차기 국가대표 공격수로 주목받고 있었으나, 일본행으로 관심밖으로 밀려난 사이, 조규성이 벤투호에서 입지가 탄탄해지고[14], 2022시즌 K리그 득점왕을 차지했을 뿐더러 밑에서는 오현규도 떠오르고 있기에 오세훈 입장에선 더욱 씁쓸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제카를 잃은 대구 FC가 대체자로 오세훈을 임대 영입을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수원 삼성과의 영입 경쟁도 있고, 시미즈에서 거액을 주고 영입한지 한 시즌 밖에 안되었기 때문에 임대를 수락할지는 알 수 없다. 또한 거액의 이적료를 주고 영입한 만큼 시미즈 구단에서 다음 시즌에도 한번 더 기회를 줄 가능성도 높다.

결국 11월 5일 최종전에서 시미즈의 강등이 확정되고 말았다. 이로서 이적하지 않는 한 다음 시즌에는 J2리그에서 뛰게 됐다 게다가 같은 시즌 친정팀이었던 울산 현대는 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오세훈의 처지만 더욱 비참해졌다. 이후 수원 삼성에서 맥스웰 아코스티 선수를 영입을 준비하게 되면서 임대 가능성이 낮아졌다.

2023년 초 재계약 오피셜이 발표되었다.#

개막전과 2라운드에서 두 경기 연속으로 명단 제외됐다.

3월 8일 가와사키 프론탈레와의 리그컵 경기에서 선제골을 기록하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J2리그에서는 시즌 내내 대부분 교체로 뛰었고 이 때문에 25경기를 뛰었지만 경기 시간이 700분이 채 되지 않았다. 최종 성적은 25경기 697분 2골 5도움.

거기다 소속팀 시미즈가 도쿄 베르디와의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후반 96분 동점골을 내주며 승격이 코앞에서 날아갔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파일:ohsehun_u20nationalteam_no9.png


3.1. 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2015년 FIFA U-17 월드컵 기니전에서 추가 시간 극장 결승골을 넣으며 2연승과 16강 진출 확정에 기여했다. 이 때 네이버에서는 동명의 전 서울시장 프로필을 잠시 밀어내기도 했다.


3.2.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3.2.1. AFC U-19 챔피언십[편집]


2017년 11월 4일 대한민국 파주스타디움에서 열린 AFC U-19 챔피언십 예선 인도네시아전에서 후반전에 추가골을 넣었다.

2018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AFC U-19 챔피언십에 참가했고 조별리그 3차전 베트남전, 8강 타지키스탄전에서 선발 출전했다.


3.2.2. 2019 FIFA U-20 월드컵 폴란드[편집]


조별리그 3차전 아르헨티나전에서 이강인과 투톱으로 선발 출전했다. 전반 41분 왼쪽 측면에서 올라온 이강인의 정확한 크로스를 깔끔하게 내려 찍는 헤딩으로 연결해 선제골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와 16강 진출에 기여했다.

16강 한일전에서 일본 수비수들을 제공권에서 압도하며 좋은 장면을 많이 만들어 냈고, 후반 39분 왼쪽 측면에서 올라온 최준의 크로스를 감각적으로 방향만 돌려 놓는 헤딩으로 연결해 결승골을 기록하며 팀의 8강 진출에 기여했다.

8강 세네갈전에서 원톱으로 선발 출전했다. 경기 내내 장신의 세네갈 수비수들을 상대로 준수한 포스트 플레이를 보여 주며 고군분투했다. 경기는 연장 접전 끝에 승부차기로 넘어갔고, 승부차기 스코어 2-2 상황에서 5번 키커로 나섰다. 처음에 오른쪽으로 차서 상대 골키퍼에게 막혔지만, 골키퍼의 파울[15]이 인정되어 다시 기회를 얻었고 침착하게 중앙으로 차 넣으며 36년 만의 4강 진출에 일조했다.

4강 에콰도르전, 결승 우크라이나전에도 선발 출전했지만 득점을 추가하지 못했고, 팀은 결승전에서 1-3으로 패하며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3.3.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2019년 10월 11일, 화성종합경기타운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 U-22 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 선발 출전했고 후반 25분 코너킥 헤딩으로 2-1을 만드는 결승골을 기록했다.

11월 15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바레인과의 두바이컵 경기에 선발 출전하여 멀티골을 기록했다. 팀은 3-0으로 승리했다. 11월 17일 이라크와의 두바이컵 경기에서 조규성과 교체 투입되어 이동준의 골을 헤딩으로 어시스트했다. 팀은 3-3으로 비겼다.

2020년 10월과 11월 올림픽 대표팀 평가전에 원톱 스트라이커로 모두 발탁 되었다. 2020년 10월 월드컵 대표와의 2차전에서 회심의 헤더를 날렸지만 조현우의 슈퍼 세이브에 막혔다.

2020년 11월 14일 카이로에서 열린 브라질 U-23 대표팀과 친선 경기에서 이동경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했다. 전반 중반에 얻은 PK에 패널티 키커로 나섰지만 크로스바를 맞고 튕겨나가며 실축했다. 허나 그 외에는 체격이 좋은 브라질 선수들을 상대로도 최전방에서 포스트 플레이 역할을 정말 잘 해냈다. 특히 이번 시즌 아스날로 가 수비진에 자리를 잡은 가브리에우 마갈량이스를 상대로 전혀 꿇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2021년 6월 15일 가나와의 평가전 2차전에 선발로 나왔다. 소속팀에서 경기를 오랫동안 못 뛰다보니 득점 기회 몇 번에서 아쉬운 판단을 보이기도 했지만 두 골 모두에 기점 역할을 했고,[16] 원터치 패스를 통한 기회 창출 역할을 잘 수행했다.

그러나 평가전 이후 발표된 2차 소집 명단에서 제외되며 올림픽 본선 출전은 좌절되었다. 최종명단 발표 기자회견에서 김학범 감독이 밝힌 바로는 조기에 황의조의 와일드 카드 발탁이 정해지면서 과감하게 배제한 것이라고 한다.[17]


3.3.1. 2020 AFC U-23 챔피언십 태국[편집]


2019년 12월 28일, U-23 챔피언십 최종 명단에 발탁되었다. 상무 입대 후 훈련 기간과 대표팀 소집 기간이 겹쳐 기초 군사 훈련 중 대표팀에 합류했는데, 이 탓에 폼 저하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조별리그 1차전 중국전에 선발 출전했다. 나름대로 분전했으나 전반적인 팀 조직력이 덜 올라와 아쉬운 모습이 나왔고, 이후 이란전에서 경쟁자 조규성의 맹활약으로 주전 경쟁에서 밀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조별 리그 3차전 우즈베키스탄전에서 맹활약하며 다시 주전 경쟁에 불을 붙였다. 전반 5분 정승원의 중거리 슛이 오세훈의 몸에 맞고 굴절되어 들어갔고, 오세훈의 골로 기록되었다. 후반 26분 박스 정면에서 감각적인 슈팅으로 멀티골을 기록하며 생일을 자축했다.

4강 호주전에서 선발 출전했다. 전반 23분 강력한 왼발 터닝 슛을 시도했으나 아쉽게 골대를 맞혔고, 이후 득점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경기 내내 전방에서 공중볼 경합과 볼 소유/배급에서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 주며 팀의 2-0 승리에 기여했다.

결승 사우디전에서도 120분 풀타임을 소화하며 역사상 최초 U-23 챔피언십 우승에 기여했다.

파일:d46a18c6f103d554b46adf0fc5831923.jpg
폭스 스포츠 아시아가 선정한 대회 베스트 11에 포함되었다. #


3.3.2. 2022 AFC U-23 아시안컵 우즈베키스탄[편집]


2022년 5월 16일 U23 아시안컵 최종명단에 발탁되었다.

6월 8일 태국전에서 축구선수 오세훈이 아니라 서울시장 오세훈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경기 내내 좋지 못한 폼을 보여주었다. J리그에서 12경기 한 골에 그친 부진이 아시안컵에서도 이어지는중.

6월 12일 일본과의 8강전에서 후반전에 교체투입됐다. 그러나 완벽한 헤더찬스를 또 놓치며 최종적으로 무득점에 그쳤고, 한국은 일본에게 3:0으로 완패를 당해 4강 진출이 좌절됐다.[18]


4. 플레이 스타일[편집]


큰 키를 활용한 포스트 플레이에 능한 스트라이커이며, 흔하지 않은 왼발잡이인 데다 반댓발 사용 능력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원톱 전술에서 직접 슈팅은 좋은 편이고 슈팅력도 준수한 정도로 갖추고 있다. U-20 월드컵에서 세네갈이나 남아공의 피지컬이 좋은 수비수들을 상대로 피지컬로 밀리지 않으며 적극적으로 수비수들과 경합, 발 빠른 윙어들에게 공간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했다.

뛰어난 신체 밸런스도 장점으로, 후방에서 수비수들이 압박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드필더진이나 수비진의 롱 패스로 온 공을 안정적으로 잡아내며 원터치로 윙어에게 보내주는 등 소위 등딱도 능숙하게 수행할 정도로 나이에 비해 뛰어난 연계 플레이 능력을 가지고 있다. U-20 월드컵에서 보여줬듯 동료들의 크로스를 침착하게 헤더로 연결시키는 등 공중볼 장악 능력도 수준급. 김신욱과 마찬가지로 큰 키와 더불어 피지컬이 우수하고 발 기술도 뛰어나지만, 그와 차이점이라 한다면 오세훈은 상당히 부드러운 움직임을 가지고 있으며 위에서 설명했듯이 연계 플레이가 보다 우수하다. 또한 경합을 꺼리는 김신욱과 달리 등딱을 비롯한 수비수와의 경합도 꺼리지 않아서 타겟맨으로의 성장 가능성이 보인다.

다만 볼터치의 기복이 존재하는 데다 현대축구에서 스트라이커에게 요구하는 오프더볼 센스가 부족해 2선과의 스위칭 플레이나 오프사이드 라인을 깨는 플레이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기동력도 다소 아쉬운 편으로, 비슷한 나이대의 경쟁자인 조규성에 비해 활동 범위와 기동력이 떨어지는 편.[19]

요약하자면 클래식한 타겟맨에 가까운 유형.


5. 평가[편집]


2020년까지만 해도 U-20 대표팀과 U-23 대표팀에서 세계 축구의 유망주들 사이에서도 훌륭한 피지컬과 킥력으로 두각을 보이며, 발밑까지 좋은 타겟맨이 될 것이라며 많은 팬들이 기대했으나 시미즈 이적 이후 모든 것이 완전히 꼬여버렸다.

울산은 2022 시즌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오세훈을 바이아웃으로 잃게 되었지만, 그 대신 겨울 이적시장에서 레오나르도를 임대 영입하고, 여름 이적시장에서 마틴 아담을 오세훈의 이적료를 보태 영입하여 최전방을 채웠다. 그 결과 두 영입생이 대활약을 선보이며 울산의 17년만의 K리그 우승이라는 대업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반면 오세훈은 시즌 내내 부상에 시달리며 제대로 뛰지도 못하다가 시미즈와 함께 J2리그로 강등당하고, 울산에서의 민심도 완전히 잃어버렸다.

국가대표 커리어도 마찬가지. 앞서 말한 연령별 대표팀에서의 활약으로 빨리 A대표팀에 차출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고, 올림픽 대표팀 경쟁자였던 조규성이 먼저 A대표팀에 발탁되자 오세훈이 아닌 조규성을 발탁한 것에 대해 많은 불만의 목소리가 있었을 정도로 한때는 전망이 밝았었다.[20] 하지만 파울루 벤투 감독의 안목이 정확했다는 것을 증명하듯 조규성은 점점 무섭게 성장했고, 오세훈이 부진한 2022년 한 해동안 조규성은 K리그1 득점왕 및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2득점[21] 등으로 한국 대표팀의 새로운 1순위 스트라이커로 자리잡았다. 그 이후에도 조규성은 이적 과정에서 여러 잡음이 있었지만 결국 유럽 무대에 진출해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중이다.

그렇게 조규성이 A대표팀에서 맹활약하는 동안 오세훈은 황선홍호의 U-23 대표팀에서 "옛날 그 오세훈은 어디가고 서울시장 오세훈이 뛰고 있냐"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기량이 저하된 모습을 보이며 커리어가 계속 꼬이는 상황이다. 일단 시미즈가 재계약을 맺으며 다시 한 번 기회를 줬으니, 반드시 J2리그에서라도 맹활약을 펼쳐야 커리어 반전을 노려볼 수 있을 것이다.

6. 통산 성적[편집]



6.1. 국가대표[편집]


  • 2021년 6월 15일 기준.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9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b71d27 0%, #FF2E3C 20%, #FF2E3C 80%, #b71d27)"
소속 대표팀 }}} ||
연령
[1] 오세훈 서울특별시장, EXO의 멤버 세훈과 한자까지 같은 동명이인이다.[입학유예] [2] 시미즈 S펄스 공식 웹사이트[3] [4] 정승원과 같은 에이전트다.[5] 본인은 너무 긴장해서 좋은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고 말했다.[6] 경기 직후에는 상대의 자책골로 기록됐지만 추후 힌터제어의 골로 정정되며 오세훈의 어시도 인정됐다. 여담으로 이 어시스트는 오세훈이 울산 현대 소속으로 처음 올린 공격포인트다.[7] 우선 오세훈이 ACL 조별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것도 크고, 8월 말에 힌터제어가 분데스 2부로 이적해 울산의 스트라이커 뎁스가 얇아졌는데, 김지현이 극도의 부진을 보이고 있기에 원톱 자리에 오세훈을 선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한 오세훈을 선발로 쓴다면 울산의 이번 시즌 최대의 강점인 2선 미드필더 및 윙어 자원을 풀전력으로 가동하는 것이 가능하다. U-22 자원 김민준을 선발로 쓰면 현 시점 팀 내 최다 공격포인트를 기록하고 있는 이동준은 아무리 빨라도 전반 중반부터 교체되어 뛰어야 하는 비효율적인 상황이 이어진다.[8] 단 힌터제어는 6골 중 두 골을 PK로 넣었으나 오세훈은 모두 순수 필드골이며, 힌터제어는 24라운드만에 6호 골을 넣었으나 오세훈은 17라운드만에 달성했다.[9] 데뷔 후 처음으로 시즌 두 자릿 수 골을 넣었다.[10] 물론 이는 오세훈의 기량 부족으로 인해 발생한 상황이 절대 아니다. 외인 공격수 힌터제어가 기대치에 못 미치는 활약으로 스쿼드에서 도중 하차해 독일로 복귀한 상태에서 김지현이 결국 마지막까지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 제일 컸다.[11] 바이아웃을 행사해도 선수를 강제로 데려갈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 본인의 의사이다.[12] 다만 구단 측은 오세훈을 사실상 1.5 옵션 이상의 자원으로 보고 시즌을 준비했을 가능성이 크다. 애초에 힌터제어가 떠난 뒤 오세훈이 남은 기간동안 좋은 폼을 보이자 울산 프런트는 오세훈의 성장 가능성을 믿고 제공권과 힘을 갖춘 오세훈과는 스타일이 다른, 연계 능력과 한 방이 있는 플레이 스타일의 외인을 영입하고자 힘썼기에 외인 용병의 무조건적인 로테이션 용도가 아닌, 팀도 상황에 따라 둘을 적절하게 바꿔 썼을 것이다. 하지만 오세훈이 시즌 개막을 앞두고 덜컥 이적해 버리면서 오세훈과 스타일이 비슷한 외인을 급하게 또 알아봐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13] 당장 포털 사이트에 기자의 이름과 선수의 이름만 검색해도 선수를 감싸는 기사를 많이 찾을 수 있다.[14] 심지어 황의조가 그리스 임대 후 부진하면서 조규성의 입지는 더욱 커졌다.[15] 키커가 차기 전에 골라인에서 양 발이 벗어났다.[16] 오세훈이 등딱으로 버텨준 뒤 조영욱에게 패스를 준 다음 날린 조영욱의 슛이 골대를 맞은 뒤에 세컨볼을 정우영이 밀어넣어 선제골로 이어졌고, 이동경에게 주저없이 원터치 패스를 준 게 이동경의 기막힌 스루패스로 이어지며 이동준이 마무리해 추가골을 만들었다.[17] 또 이스타 TV 소속 김환 기자의 말로는, 훈련 도중 김학범 감독이 오세훈에게 플레이 방식에 대한 주문을 했는데, 오세훈 본인이 이를 1년 가까이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그렇게 오랫동안 이해를 못 해도 꾸준히 트레이닝 명단에 소집됐기 때문에 올림픽 최종 명단에 반드시 들 거라고 굳게 믿었다고 한다.# [18] 반면 소속 팀 시미즈에서 오세훈의 경쟁자 스즈키 유이토는 멀티골로 일본의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19] 2022년 기준으로 조규성은 K리그 최상위권 공격수로 성장하며 황의조의 경쟁자이자 후계자로 거론, 월드컵에 나서 멀티골까지 기록하며 라이징스타가 된 것에 비해, 오세훈은 울산에서 무리하게 J리그 이적을 했다가 폼이 망가지고 성장세도 정체된 상황이라 상당히 아쉽다.[20] 2021 시즌 당시 오세훈은 전역 후 K리그1 울산에 복귀해서 좋은 활약을 펼치는 중이었고, 조규성은 아직 K리그2 김천에 있던 시기였기에 상대적으로 활약상이 저평가된 편이었다.[21] 한국 축구 역사상 첫 월드컵 본선 멀티골이자, 아시아 축구 역사상 첫 월드컵 본선 헤더 멀티골이라는 신기록을 썼다.
경기 }}} ||
득점
대한민국
U - 17
11
1
U - 20
21
3
U - 23
14
5
A 대표
-
-
통산
46
9


6.2. 클럽[편집]


  • 2021년 8월 29일 기준.
연도

리그
FA컵
대륙 대회
합계
출장
득점
도움
출장
득점
도움
출장
득점
도움
출장
득점
도움
2018
울산
3
0
0
-
1
0
0
4
0
0
2019
아산
30
7
3
-
-
30
7
3
2020
상주
13
4
2
-
-
13
4
2
2021
김천
4
0
0
-
-
4
0
0
울산
19
7
1
1
0
0
9
3
3
29
10
4


7. 기록[편집]



7.1. 대회 기록[편집]







7.2. 개인 수상[편집]




8. 여담[편집]


  • 상무에 일찍 입대한 만큼 2020 도쿄 올림픽 대표팀 멤버로 뽑혔다면 조기 전역을 노려볼 수도 있었지만 올림픽이 2021년 7월로 연기되면서 상무 전역 후에나 출전이 가능하게 됐다. 오세훈 본인은 병역과는 상관없이 올림픽 출전을 간절히 원한다는 인터뷰를 한 바 있다. #


  • 과거 수비수 출신에다 193cm의 장신 덕분인지 김신욱의 후계자라는 타이틀이 생겨났으며, 본인도 롤 모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김신욱은 정통 타깃맨보다는 세컨톱에 어울리고, 오세훈은 최전방 스트라이커라는 차이점은 있다.

  • 오세훈 서울특별시장과 동명이인이라서 해축갤 등지에서 서울시장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그래서 오세훈이 국대 경기에 출전할 때마다 해축갤에서는 오세이돈 등 오세훈 시장 관련 드립이 쏟아진다.

  • U-20 월드컵 이후 인터뷰에서 입담을 뽐냈다. 이강인을 '급식충'이라고 하고 이광연이 '스타병'에 걸렸다고 하는 등 대표팀 내부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묘사했다. 인터뷰에 따르면 대표팀에서는 '오바마'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듯 하다. 이름이 '오'로 시작하는 데다 자세히 보면 얼굴도 조금 닮았다(...). 또 당시 임대 신분으로 소속되어 있던 아산에 대한 큰 애정을 드러냈다. U-20 월드컵에서 활약한 것은 아산에서 프로 무대를 많이 경험했던 덕분이라는 멘트도 잊지 않았다.

  • 아산과의 인연은 1년 임대로 끝났지만 뛰게 해줘서 고맙다[22]는 마음은 잊지 않은 모양이다. 2020년 대한축구협회의 유튜브 이벤트인 파워에이드 BATTLE 챌린지에서 얻은 파워에이드 1,010병을 아산 무궁화의 해체 후 같은 연고지에 프런트, 코칭스태프 및 일부 선수단을 계승해 만들어진[23] 충남 아산 FC에 전달했다. #

  • 99년 1월 15일생으로 빠른 생일이지만 99년생과 같이 입학해서 99년생들과 친구다. 99년 1월 29일생인 황태현보다 2주 더 빨리 태어났고 99년 2월 5일생인 조영욱보다 3주 더 빨리 태어났지만 이 둘은 98년생들과 입학한지라 이 둘에게 형이라고 부른다. 너무나도 아이러니한 상황. 한 마디로 족보 브레이커인 셈. 황태현은 오세훈에게 말 놓기를 제안한 것으로 보이나 오세훈은 U-17 대표팀 시절 부터 오랫동안 형동생 사이로 지냈는데 갑자기 말을 놓고 야라고 하는 건 너무 이상하다면서 거절한 듯 하다. 체육계는 상하간의 위계질서가 강한 직군이다보니 빠른 생일을 암묵적으로 인정해주는 경우가 많다.

  • 오세훈 본인이 나무위키 본인 페이지에 접속했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나무위키 자체를 몰랐다고 한다.#

  • 오른발잡이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왼발잡이가 맞다. U-20 월드컵 세네갈전 승부차기 당시 왼발로 킥을 한 걸 보면 알 수 있다. 오세훈이 첫 번째 시도에서 실축하자 MBC의 안정환 해설위원이 "왜 왼발로 찼을까요"라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 출생지는 인천광역시 출신이지만, 말투를 들어보면 표준어동남 방언이 섞여서 구사한다. 아마도 중고등학교와 선수 생활을 울산에서 보내다보니 사투리 억양이 밴 듯.

  • 2020 AFC U-23 챔피언십에 참가하면서 기초 군사 훈련을 두 번에 끊어서 받은 특이한 사례가 되었다.[24]

  • 2015 FIFA U-17 월드컵 브라질전이 끝난 뒤에 선수단을 대상으로 드림 클럽에 대한 인터뷰를 했는데, 21명 중 20명이 유럽 명문 팀을 언급한 반면 유일하게 드림 클럽이 울산 현대라고 답하는 근본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며 울산 팬들을 기쁘게 했다. 그러나 전술했던 시미즈 이적 후 팬들의 시선은 차가워졌다.

  • 고등학교 2학년 때 탈장 부상을 당한 적이 있다고 한다.


9. 둘러보기[편집]


1 이광연 · 2 황태현

C
· 3 이재익 · 4 이지솔 · 5 김현우 · 6 김정민 · 7 전세진
8 이규혁 · 9 오세훈 · 10 이강인 · 11 엄원상 · 12 박지민 · 13 고재현 · 14 박태준
15 정호진 · 16 김주성 · 17 이상준 · 18 조영욱

VC
· 19 최준 · 20 김세윤 · 21 최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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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송범근 · 2 이유현 · 3 강윤성 · 4 이상민

C
· 5 정태욱 · 6 김동현 · 7 정우영 · 8 김진규
9 조규성 · 10 이동경 · 11 이동준 · 12 김재우 · 13 김진야 · 14 김대원 · 15 김태현 · 16 정승원
17 엄원상 · 18 오세훈 · 19 맹성웅 · 20 원두재

VC
· 21 안찬기 · 22 윤종규 · 23 안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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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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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동민 · 2 최준 · 3 이규혁 · 4 이상민 · 5 김주성 · 6 고재현 · 7 조영욱 · 8 홍현석
9 오세훈 · 10 박정인 · 11 양현준 · 12 조현택 · 13 이강인 · 14 엄지성 · 15 박재환 · 16 권혁규
17 이진용 · 18 정상빈 · 19 고영준 · 20 김현우 · 21 민성준 · 22 김태환 · 23 박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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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0 08:20:10에 나무위키 오세훈(축구선수)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22] 아산 임대 전까진 K리그1 최상위권 팀인 울산 현대에서 출전 기회를 많이 잡지 못했지만, 의경 선수의 전원전역 및 선수 추가모집 미실시로 선수층이 후반기로 갈수록 얇아진 아산에서는 지속적으로 기회를 잡으며 30경기 7골을 기록했다. 출전 경기 수와 득점 모두 커리어하이 기록이었다. 물론 많은 출전에는 실력이 높아야 선발하는 의무경찰 선수가 즐비했던 시즌 초반부터 기회를 잡은 오세훈의 실력도 이유가 됐다. 오세훈은 아산에서의 활약을 발판 삼아 U20 월드컵 준우승과 김천 상무 입대를 이루며 선수 커리어에 전환점을 만들어냈다.[23] 의무경찰 선수 자체가 사라지면서 경찰대학 산하의 무궁화체육단 소속인 아산 무궁화는 해체됐지만, 박동혁 감독을 필두로 한 코칭스태프와 박공원 단장이 중심이 된 사무국은 거의 그대로 충남 아산 FC 소속이 되었다. 박세직, 정다훤 등 군경구단 시절의 역사를 안고 있는 선수와 2019년 말 민간인 선수로 아산 무궁화에 있던 이기현, 이재건 등의 선수도 충남아산과 계약했다. 또한 상징색이 노랑/파랑으로 같고 미즈노, 푸드렐라 등 대부분의 굵직한 스폰서와의 계약이 유지됐으며 구단 홈페이지에도 비타민하우스(후원의 집) 안내 등 일부 페이지에 아산 무궁화 시절의 사진이 남아 있는 등 공식 기록상으로는 별개의 구단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계승 관계가 있는 구단이다.[24] 다만 오세훈만 군사훈련을 두 번에 걸쳐 받은 건 아니고, 상무 축구단 소집 선수들 중 축구 시즌 중에 입대하는 선수들은 1주만 군사훈련을 받고 국군체육부대로 전입했다가 나머지 훈련은 비시즌(12월이라든지)에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