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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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도 (梧桐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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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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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오동도.jpg

여수시 자산공원에서 바라본 오동도의 전경.[1]

면적
0.12㎢
위치




전라남도 여수시 오동도로 222 (한려동)
홈페이지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
2. 교통
2.1. 철도
2.2. 버스
2.3. 자가용
3. 기타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전라남도 여수시 한려동에 위치한 섬.한려해상국립공원의 시작점이다. 본래 여수항 동쪽에 있는 섬이었으나 일제강점기인 1935년 축조한 길이 768m의 방파제로 육지와 이어져 있다. 면적은 약 0.12㎢. 행정 주소는 전라남도 여수시 수정동 산1-11.

섬의 이름은 오동나무에서 유래했는데, 섬의 모양이 오동나무 잎을 닮았고, 섬에 오동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고려 말 신돈이 오동나무 숲은 왕조에 불길하다고 주장하여 오동나무들을 모두 베어버렸다는 전설이 있다.

여수시가 관광 도시로 유명해지기 전부터 유명한 관광지로 꼽히고 있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동백꽃 자생지이며 해식애가 발달해 여러 기암절벽들이 존재하고 있다.

섬 정상에는 1952년에 세운 오동도 등대가 있다. 그리고 등대 내에 전망대를 만들어 일반인에게 개방했는데, 올라가보면 여수항과 남해바다가 꽤 잘 보인다.


2. 교통[편집]



2.1. 철도[편집]


전라선 여수엑스포역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걸린다. 버스로는 2번과 333번이 있다. 오동도입구에서 하차하면 된다.


2.2. 버스[편집]


여수버스터미널에서는 68번, 76번, 333번이 있으며, 333번이 배차가 짧다. 아니면 여수 시내로 일단 온 다음 2번으로 갈아타는 것도 좋다. 2번은 여수시 시내버스 중 가장 편수가 많아서 금방 환승이 가능하다.


2.3. 자가용[편집]


자가용으로 올 때는 주차할 곳을 찾기 힘들다. 인근에 주차장이 꽤 있긴 하지만, 이 곳이 오동도 외에도 여수세계박람회장, 해상 케이블카 등 여수시 관광의 핵심 지역이라서 주차 수요가 대단히 많다. 오동도 입구의 주차장은 평일 오전에도 만차가 될 지경. 심할 때는 인근 해안 도로의 임시주차장까지 만차가 되기도 한다.


3. 기타[편집]


  • 섬 내에는 허가 차량 외에 자동차 통행을 통제하고 있다. 들어가는 방법은 도보, 동백열차, 여객선, 자전거 등이 있다. 동백열차는 실제 열차는 아니고 디젤 자동차에 승차칸을 연결한 버스에 가까운 관광차량이다. 그 외에 여수시에서 운영하는 관광 2층버스인 낭만버스가 섬 안으로 운행한다.
  • 가방 들고 가기 귀찮은 사람들을 위해 섬 입구에서 무료 보관함을 운영 중에 있다.
  • 섬 안에 판옥선거북선 모형을 전시하고 있으며, 옆에는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라고 쓴 비석이 놓여져 있다.
  • 요새 파도가 예전보다 거세졌는지 진입로의 방파제를 더 높게 쌓았다.
  • 이나바의 흰토끼 설화와 유사점이 보이는 오동도 토끼 설화의 무대이기도 하다.
  • 박명수의 흑역사인 '오동도 사태'의 무대(?)이기도 하다. 무한도전에 익숙한 세대는 오동도를 이 사태 때문에 익히 알고 있다. 워낙에 박명수를 까는 데 사용해서. 이 때문에 KPOP 팬덤 사이에선 '라이브를 망치는 행위' 를 가리키는 은어로 오동도를 쓰고 있다.[1] 지금까지도 간간히 여행 리뷰에 이 사건이 회자된다. 유튜브에서 오동도를 치고 검색하면 해당 영상이 맨 위에 뜰 정도.
  • 향일암과 함께 여수의 주요 해돋이 명소이기도 하다. 매년 새해 첫날이 되면 해돋이를 보러 이른 새벽부터 시민들과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 전래에 따르면 봉황은 왕을 상징하는 영물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고려말 신돈은 봉황이 오동도의 무성한 오동나무 숲에서 무리지어 살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듣고 새로운 임금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섬안의 오동나무를 모두 베어버려 당시까지 전해오던 `오동도의 명성'을 지워버렸다는 것이다. 신돈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려는 전라도 출신의 전주 이씨인 이성계에 의해 망하고 말았으니 결국엔 오동나무가 없는 오동도가 된 지 오래되었다.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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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날 같은 무대에서 박정현이 '꿈에'를 불렀다. 물론 호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