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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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명
Paulownia coreana
이명 : 머귀, 포동, 오동목
Paulownia coreana Uyeki, 1925
분류

식물계

속씨식물문(Angiospermae)

쌍떡잎식물강 (Dicotyledoneae)

꿀풀목(Lamiales)

오동나무과 (Paulowniaceae)

오동나무속 (Paulownia)

오동나무
梧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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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특징
3. 쓰임새
4. 기타


1. 개요[편집]


꿀풀목 오동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다. 붉동나무, 오동이라고도 하며 옛부터 가구를 비롯하여 여러가지 용도로 쓰인 목재이기도 하다.

본 항목은 오동나무의 학명을 Paulownia coreana라고 제시했지만, 사실 식물분류학계에선 미해결학명, 즉 분류적 문제가 있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으로 본다. 따라서 미래에는 학명이 바뀔 여지도 있다.

2. 특징[편집]


잎은 넓고 뒷면에는 잔털이 있다. 5월~6월에는 잎보다 먼저 보라색 꽃을 볼 수 있으며 과실은 10월에 성숙한다.

어릴 때는 1년에 1∼2.5 m씩 자라며 높이는 15 m 정도. 주로 촌락에 심는 편이지만 도심의 빈터 등에 자연적으로 잘 자라는 나무이기도 하다. 가느다란 상태에서 이미 목질화가 시작되는 일반적인 나무들의 묘목과는 달리, 얘는 해바라기마냥 푸른 줄기와 크고 아름다운 잎을 뽐내며 잡초의 초거대 버전처럼 자라난다. 성장속도도 어마무시하고 베어내도 그 자리에 어느샌가 순식간에 다시 자라나서 오동나무인지 모르는 사람은 무시무시한 거대 잡초 정도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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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오동나무의 모습. 잎사귀가 하도 커서 잡초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줄기를 보면 알겠지만 1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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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잎과 다른 사물 간 크기 비교. 어린 잎일수록 빛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서 다 자란 잎보다 크기가 더 크다.

도시에서는 공터, 건물의 틈새 등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다.[1] 이 나무가 건물의 틈새에서 자라나[2] 문제가 되곤 하지만, 은행나무소나무에 비하면 오히려 양반이다.[3] 성장속도도 빠르고 어디에서나 잘 자라는 특성 탓에 제거가 쉽지 않다. 이런 나무를 왕의 상징으로 삼을 이유가 있을까 싶지만, 옛날 선비들은 넓은 오동잎을 보면서 답답한 마음을 탁 트이게 할 수 있어 좋아했기에 대청마루나 정자 앞에 즐겨 심었다고 한다.

원산지는 울릉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평안남도·경기도 이남에 주로 분포한다.

청주시의 지명 중에 오동나무 오(梧)자로 시작하는 것이 많다. 오근장, 오동동, 오창 등. 다만 오송읍은 다섯 오(五)를 쓴다. 예전에 이들 지역에서 오동나무가 무성했을 것이다.

일본 원산인 참오동나무(Paulownia tomentosa)가 있는데, 생김새가 매우 비슷하지만 오동나무보다 털이 많다. 또한 오동나무는 털이 다갈색을 띠는 반면 참오동나무는 흰 빛을 띤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문장이 참오동나무이기도 했다. 현재 일본 정부의 문장이기도 하며, 일본 내각총리대신의 문장이기도 하다.

그 밖에 비슷한 나무로 벽오동나무가 있다. 비슷하게 생겼고, 비슷하게 성장이 매우 빠르지만 촌수가 많이 차이나는 나무. 한국에서는 흔히 벽오동과 오동을 구분하진 않았지만, 본초강목에는 벽오동의 줄기가 푸르다고 분명히 구분했다. 봉황은 벽오동에만 둥지를 튼다고 하고, 조선시대에도 왕의 상징으로 벽오동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한다.

씨앗이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 광야에서 싹을 틔우도록 진화했으나, 오늘날엔 드넓은 들판 같은 곳이 없어서 엉뚱한 곳에서 싹을 틔운다.

3. 쓰임새[편집]


오동나무는 대대로 쓰임새가 많았다. 옛날에는 '내나무 심기'라는 풍습이 있어 아들이 태어나면 선산에 소나무를, 딸이 태어나면 밭에 오동나무를 심어서 딸이 나이가 차 결혼하게 되면 오동나무를 베어 가구를 만들어서 혼수로 삼는 풍습이 있었다.[4] 또한, 사람이 죽고 나면 을 짤 때도 쓰인다. 그래서 '오동나무 코트를 입혀주지'라는 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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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나무 문양을 고시치노키리(五七の桐)이라고 하며 본래는 일본 황실이 쓰던 문장 중 하나였는데, 아시카가 다카우지고다이고 덴노에게 하사받은 이래 재상이나 주요 정치가에게 하사되는 문장이 되었다.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이 문장을 하사받은 적이 있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하사받아 사용하였다. 현재는 일본 정부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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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에서 이라고 부르는 것도 사실 오동나무 잎이다. 이런 오해가 생긴 이유는 오른쪽 일본 버전과 달리 한국으로 화투가 넘어오면서 오동잎을 그 어떤 세부묘사 없이 완전히 검게 칠했기 때문. 그리고 '똥광'의 새는 닭이 아니라 봉황.

국악기를 제작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나무로, 정악가야금은 이 오동나무를 통째로 깎아 만들며 산조가야금/거문고/아쟁 또한 악기의 앞판은 오동나무, 뒷판은 밤나무로 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충무공 이순신은 발포만호 시절 직속 상관이었던 전라좌수사 성박이 거문고를 만들기 위해 관사의 오동나무를 베어가려하자, 관사의 나무도 나라물건인데 어찌 사사로운 목적으로 베어가냐며 거부한 일화가 있다.

이원익의 호도 오동나무 마을을 뜻하는 오리(梧里)로 똑같은 단어가 된 지하철역도 있다.

목재로서는 참나무처럼 단단한 목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당히 가볍고 무른 편이다. 다이소에서 파는 오동나무 도마 정도면 두 손으로 쪼갤 수 있을 정도. 하지만 자라는 속도나 무게에 비하면 꽤 강한 편이다.

흔하고 빨리 자라는 덕에 가격이 매우 낮아서 초저가형 일렉트릭 기타의 바디에도 사용된다. 오동나무로 만든 기타는 잘 찾아보면 30달러 남짓한 가격에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기타로 쓰기에는 내구성이 영 거시기한 관계로 보통 급이 조금 더 되는 브랜드는 마호가니처럼 더 튼튼한 목재와 보강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워낙에 가벼운 목재라서 소리는 기대하지 말자.

오동나무를 베어내면 밑동에서 새싹이 올라오는데 이것을 자오동이라고 해서 목질이 더 좋았다. 한번 더 베어내서 나오는 새순은 손오동이라고 하며 오동나무 중 최상품으로 쳤다고.

오동나무가 봉황의 상징이 된 탓에 봉황을 조각한 바둑판이 시중에서 꽤나 고가로 팔린다. 우리나라에는 위에서 설명했듯이 자식이 태어나면 일단 오동나무를 심고, 여자는 시집갈 때 가구를 짜게 하고, 남자는 장례시에 관을 짜게 하는 풍습이 있었다. 무덤가에 서있는 소나무와 오동나무는 송추라고 하여 함부로 가지를 꺾지 못하게 했는데, 나무가 무덤을 지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살충효과도 있어서 옛날에는 변소에 오동잎 몇 장을 놔둬서 구더기 방지와 악취 제거에 이용하기도 했으며 비오는 날에는 토란잎과 함께 우산 대용품으로 쓰기도 했다.


4. 기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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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주하이 시에는 오동나무 모습을 형상화한 오동수 빌딩이 있다

  • 과거 중국에서는 잎이 큰 나무를 통틀어서 오동이라고 불렀다. 벽오동[5], 개오동, 냄새오동(누리장나무), 기름오동(유동나무) 등이 그 편린이다

  • 한국에서는 뜬금없이 유행어가 된 적이 있었다. 2017년 코미디빅리그에서 개그맨 신규진이 사건 현장의 목격자 역할로 출연해서 형사들에게 증언을 했는데 뭘 해도 뜬금없이 요거 오동나무네로 연결했기 때문. 참고로 신규진에겐 코빅으로 데뷔 후 맡게 된 첫 캐릭터였다. 그러다가 재발굴되면서 아예 별명이 오동이로 굳혀졌다. 이후 웹예능 출연할 땐 예명으로도 활용한다.


  • 전래에 따르면 봉황은 왕을 상징하는 영물이다. 신돈은 봉황이 오동도의 무성한 오동나무 숲에서 무리 지어 산다는 말을 전해 듣고 새로운 임금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섬 안의 오동나무를 모두 베어버렸다고 한다. 신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려는 전라도 출신 전주 이씨 이성계의 손으로 망하고 말았으니# 결국엔 오동나무가 없는 오동도가 된 지 오래되었다.

  • 과거 송암이라는 한국의 승려 무술가가 모 방송에서 나무 격파 시범을 보였으나 실패하자 그 나무가 백오동나무여서 실패한 것이라고 말을 돌리는 영상이 한때 인터넷 밈으로 유행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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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히려 도시에서 더 많이 목격되는 경향이 있다. 다른 나무들이 도시에 잘 적응하질 못해 밀려날 때 이 나무만은 질긴 생명력으로 소나무, 은행나무, 느릅나무와 함께 도시를 지배하기 때문이다.[2] 제거를 제때 해주지 않으면 점점 건물의 틈새에 균열을 크게 만들며 붕괴 위험까지 초래할 수 있는 무서운 나무다. 오동나무 성목은 15미터까지 자란다.[3] 은행나무는 그 종자의 냄새 때문에 그다지 인상이 좋지 않고, 소나무는 주변에 식물이 못 자라고 봄철마다 날리는 꽃가루가 탈을 일으킨다.[4] 이 풍습은 일본 귀족에게도 있었다[5] 중국에선 이것이 진짜 오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