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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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여담


1. 개요[편집]


일제강점기, 북한의 사회주의 운동가.

2. 생애[편집]


1903년생으로 일제강점기 때부터 함경남도 지역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토착 공산주의자였다. 원산 총파업 등에 참여했다.

해방 이후 북한 지역에서 조선공산당이 재건될 때 함경도 지역에서 활동했으며 1945년 9월 소련에서 귀국한 김일성이 북한만의 공산당인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을 만들자고 주장했을 때 박헌영의 서울 중앙당을 지지하면서 크게 반대하는 등 김일성과는 갈등이 심했다. 정통 공산주의자였던 오기섭은 김일성과 달리 공산당에 대한 직업동맹의 자율성을 주장하면서 충돌했다. 심지어 오기섭은 북한에서 김일성 가짜설에 대한 문서까지 퍼뜨리고 다녔다고 한다. 김일성 가짜설의 원조인 셈.

김일성은 이러한 오기섭을 여러번 자아비판 시키며 견제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김일성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한번에 숙청해버릴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자아비판 정도로만 넘어가고 북한에서 북조선노동당 중앙위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의 직책을 역임했다. 국내파 공산주의자였을뿐 남로당 계열은 아니었기 때문에 1953년 남로당 숙청 때도 살아남아서 1956년 3차 당대회에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에 재선, 1956년 5월 11일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수매량정상에 임명되었다.

1957년 8월, 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재선되었으나 1958년 3월, 1차 당대표자회에서 김일성이 김두봉, 박의완 등 비빨치산 계파를 종파주의자로 몰아서 모조리 숙청하는 과정에서 출당, 제명되고 숙청당했다. 김일성은 "오기섭이 역시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생각했습니다. (...) 당의 로선과 당의 정책을 불신임하고 당을 반대하여 무엇을 하나 새 것을 내놓아 볼가 하는 생각에서 나온 것입니다."라고 그를 공격하며 그를 개인 영웅주의자로 규정했다. 오기섭은 자신이 8월 그룹과 무관하다면서 그들의 죄행에 대해서 골육이 떨린다고 변명하였으나 김일성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이후 생사는 불명이나 다른 소위 '종파분자'들과 함께 하방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을 것으로 보인다.

3. 여담[편집]


오기섭에 대해 다룬 책으로는 <오기섭 평전>(2013년)이 있다.

2011년 북한에서 나온 소설 총서 <불멸의 력사> 미래 편에 허가이와 함께 주요 등장인물로 나온다. 허가이가 그래도 김일성을 존경하지만 소련에서 오래 산 탓에 사대주의를 버리지 못했다고 안타깝게 묘사되는 반면 오기섭은 종파주의에 찌들어서 음모를 꾸미는 예비 반당반혁명 종파주의자로 나오는 등 훨씬 더 가혹한 묘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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