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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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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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스테파노
정진석 니콜라오
염수정 안드레아
PRO VOBIS ET PRO MULTIS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OMNIBUS OMNIA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
Amen. Veni, Domine Jesu!
(아멘. 오십시오, 주 예수님!)



염수정 추기경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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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0 제13대 천주교 서울대교구
추기경
염수정 안드레아
廉洙政 | Andrew Yeom Soo-jung

파일:10000060-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jpg

출생
1943년 12월 5일 (80세)
경기도 안성군 삼죽면 미장리
(現 경기도 안성시)
신체
165cm 추정[1]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 [[바티칸|

바티칸
display: none; display: 바티칸"
행정구
]]

사제 수품일
1970년 12월 8일 (53주년)
주교임명일
2001년 12월 1일 보좌주교 임명(티비우카 명의주교)
2012년 5월 10일 교구장 임명, 대주교 승품
2014년 1월 12일 추기경 임명
재임기간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2002년 1월 25일 ~ 2012년 6월 24일
서울대교구장
2012년 6월 25일 ~ 2021년 12월 8일
추기경[2]
2014년 2월 22일 ~[3]
링크
주교회의 서울대교구
#

Amen. Veni, Domine Jesu!
(아멘. 오십시오, 주 예수님!)
#

1. 개요
2. 생애
2.1. 추기경 임명
2.2. 은퇴
3. 평가
3.1. 관리자형 사목자
3.2. 서소문 성지 사업
3.3. 천주교 평양교구장 서리로서의 발자취
3.4. 난민 지원 노력
4. 논란
4.1. 내란음모혐의 이석기 선처 탄원
4.2. 세월호 유가족 양보 발언 논란
4.3. 명동성당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 사건
4.4. 명동성당 장애인 출입 거부 및 추기경 면담 요청 거부 사건
5.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염수정 추기경은 제13대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겸 제10대 평양교구장 서리로 봉직했던 한국 가톨릭 성직자이다.


2. 생애[편집]


1943년 12월 5일(현재 80세), 경기도의 독실한 가톨릭 신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4대조 할아버지 염석태 베드로가 1850년에 아내 김마리아와 함께 순교하였으며, 일명 옹기장이 순교자라고 칭되기도 하다. 그의 할머니와 어머니는 집안에서 성직자가 나오기를 기도하며 30년간 매일 성당과 성지를 순례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의 넷째 동생 수완과 다섯째 동생 수의가 모두 신부가 되어 3형제 신부라는 이름으로도 매우 유명했다. 어렸을 적 소학교 시절 어려웠던 친구를 위해 발품을 팔아가며 도시락까지 손수 만들어서 전달했을 정도로 착했던 성품으로 알려져 있다. 집에 돈이 없어 신학교 입학이 어려웠고, 해서 처음 신학교에 입학할 때 항상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1970년 12월 8일에 임덕일 아마또 부제, 박용일 타데오 부제, 김충수 보니파시오 부제와 함께 사제품을 받서울대교구사제가 된 그는 주로 본당 사목구, 가톨릭대학교 사무처장, 교구 사무처장과 같은 사목의 일선에 있었다. 주교품을 받은 대부분의 성직자들이 신부 시절 학자로 명망이 높았거나 유학 생활을 오래하였던 반면, 그는 사목의 일선에서 교회 행정가로서의 명망을 키운다. 특히 일선에 인내심이 뛰어나고 항상 끈기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라는 평가가 있다. 1975년 2월에는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상담 심리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1년 12월 서울대교구 목동성당 주임 신부였던 그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하여 이한택 요셉 신부(훗날의 천주교 의정부교구 초대 교구장)와 함께 서울대교구 보좌 주교로 임명되었고, 2002년 1월 25일에 주교품을 받았다.

교회 행정전문가의 이력을 살려 염 주교는 서울대교구 총대리로서 교구의 살림을 도맡아 처리하였으며, 평화방송 이사장, 교구 생명위원회 위원장, 주교회의 평신도사도직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사회와 교계 여러 영역에 영향을 끼쳤다.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사망 후, 그의 뜻을 따라 발족된 사회복지재단인 '바보의 나눔'과 장학재단인 '옹기장학회'의 이사장으로서 김 추기경의 유지를 이어 나가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했다.

특히 생명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여러 생명윤리운동에 앞장서 왔고,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의 1대 위원장이기도 하다. 황우석 교수가 한창 배아줄기세포를 연구할 때 가톨릭 측의 대표로서 그를 비판하기도 했다.

2012년 5월 10일, 제13대 서울대교구장인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의 은퇴의사가 받아들여짐에 따라,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하여 제14대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되었다.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된 염수정 주교는 대주교로 승품되었으며, 2012년 6월 25일 서울대교구장으로 정식 착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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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베네딕토 16세로부터 팔리움(관구장 대주교(대교구장)의 상징)을 받는 염수정 대주교


2.1. 추기경 임명[편집]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1월 12일 정오(현지시각, 한국시각 오후 8시)에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만 70세의 염수정 안드레아 대주교를 추기경으로 임명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2014년 2월 22일 바티칸 현지에서 추기경 서임식이 거행되었으며,# 이로써 한국 가톨릭에 세 번째 추기경이 탄생한다. 당시 정진석 추기경은 만 80세가 넘어 교황 선출권을 상실한 상태였기 때문에,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도 새 추기경이 필요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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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비레타와 반지, 명의본당 칙서를 받는 염수정 추기경



2.2. 은퇴[편집]


2021년 10월 28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염 추기경의 교회법상 정년에 따른 사임청원을 받아들이고 서울대교구 보좌 주교인 정순택 주교를 신임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하였다. 염 추기경은 은퇴후 전임 서울대교구장인 김수환, 정진석 추기경이 머물렀던 가톨릭대학교/성신교정 주교관에서 생활하게 된다.


3. 평가[편집]



3.1. 관리자형 사목자[편집]


2001년 12월 1일 추기경님께서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의해 서울대교구의 보좌 주교로 임명되셨고, 2012년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되실 때까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 직무에 헌신해 주셨습니다. 주교로서 20년을 봉직하시는 동안 추기경님께서는 하느님 백성을 위한 봉사에 헌신하셨고, 참으로 충실하고 주님 포도밭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목자의 모습을 훌륭하게 보여주셨습니다. 복음적인 온화함과 지혜로써 성직자단과 수도자들, 신자들을 이끄셨고, 복음화와 교육, 사회적 애덕의 여러 분야의 많은 일들을 시작하시고, 그 일에 투신하도록 교구민들을 격려하셨습니다. 또한 추기경님께선 세계 곳곳의 다른 가난한 교회들, 특히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교회들에 대한 연대성을 보여 주셨고, 이로써 저희에게 로마의 주교, 곧, 교황님과의 진정한 친교에 대한 건실한 증언과 더불어 보편 교회를 향한 커다란 개방성이란 결실을 남겨 주셨습니다.

주한 교황대사 알프레드 슈에레브 대주교,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 서울대교구장 이임 감사 미사 중 송사.

염 추기경은 본당 사목 경험이 풍부하다. 본당 사목구 사제는 다양한 성격의 신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본당의 살림을 세세하게 챙겨야 하므로 신심과 행정 능력을 적절히 두루 갖춰야 한다. 그는 이러한 경험을 적극 활용하여 서울대교구가 성장을 거듭하느라 미처 돌보지 못했던 여러 현안들을 꼼꼼히 살폈다. 전임자인 김수환 추기경과 정진석 추기경이 격동의 시기의 천주교 서울대교구를 사목했다면, 염 추기경은 그간 쉼 없이 성장해온 서울대교구의 빈틈을 채우는 '관리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행적은 후임자들 시대에 서울대교구가 도약하기 위한 밑거름이 된다.

먼저 그는 서울대교구가 비대해져서 사제들이 겪는 어려움을 듣고자 사제 전체회의를 소집했다.[4] 사제의 수가 1000명을 향해 가다보니 사제들끼리 서로 얼굴도 잘 모르는 현실, 소원해진 선후배 사제간의 관계, 경직된 교구 체계, 지구장 사제 운영의 비효율화, 보좌 사제 기간의 장기화 등 현장에서 사목하는 사제들의 소리에 직접 귀기울였다. 이를 토대로 몇년 후에 보좌/부주임 신부 제도를 개선하고 지구장 신부 제도를 정비했다.

우리나라의 특성인지 모르겠지만, 높은 분들 앞에 서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기회가 되는 대로 그런 벽을 허무시려고 애쓰셨던 기억이 납니다. 언젠가 사제 성화의 날 사제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 추기경님께서 당신께 연락하기 어려워하지 말라 하시면서 개인 휴대전화 번호를 불러 주셨죠.

김광두 고스마 신부,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 서울대교구장 이임 감사 미사 중 송사.


저도 혜화동 가서 여러분들을 마음 속에 그리면서, 우리 교회와 교구를 위해서, 또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부족하나마 그렇게 살고자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제 전화번호는 바뀌지 않았어요!

염수정 추기경, 위 송사 후 답사 중.

선후배 사제의 관계나 주교-사제의 관계를 좀더 가깝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도 위에서 언급한 그 취지의 일환이다. 한국 사회는 오랜 기간 선후배나 직급에 따른 서열이 강했고, 이는 한국 천주교 사제들의 세계에도 알게 모르게 반영되었다. 특히 서울대교구 규모가 수십년 사이에 커지면서 이런 경향이 심해졌다. 염 추기경은 타인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는 성품을 통해 이를 해소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러한 관리자형 사목자는 직접적으로는 사제단의 일치를 도모하며, 궁극적으로는 주교단과 신자의 정신적 거리도 줄인다. 염 추기경을 직접 만난 적이 없는 신자라 할지라도 염 추기경으로부터 본당 신부의 모습을 본다. 이는 특히 코로나19로 신자들과 함께 드리는 미사가 중단 된 때에 오히려 교구장과 교구 신자들의 영적 유대를 끈끈하게 만들고, 신자 수 감소나 신심 약화와 같은 타격을 줄였다.


3.2. 서소문 성지 사업[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3. 천주교 평양교구장 서리로서의 발자취[편집]


2014년 5월 21일 한국 추기경으로선 최초로 방북하여 개성공단에 방문하였다. 하루 일정으로 개성공단에 다녀온 염수정 추기경은 "남과 북이 함께 화합하는 개성공단을 방문하면서 이런 아픔과 슬픔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는 방북 소감을 밝혔다.





2020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에서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하고 있는 염수정 추기경은 평양교구와 북한 교회를 파티마의 성모께 봉헌하였다. 봉헌식에서 낭독한 봉헌문에서 염수정 추기경은 한반도 분단의 아픔을 위로해 줄 것과 평양교구와 북한교회에 신앙의 자유를 얻어 줄 것을 파티마의 성모에게 요청하였다.




3.4. 난민 지원 노력[편집]


2018년 대한민국 내의 난민 관련 각종 논란에도 불구하고 난민 문제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특히 종교적 난민들이 한국에서 난민지위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인 사실이 드러나 화제가 되었다.

8월에는 이미 대법원에서 난민 지위 거부처분취소 기각 판결을 선고받은 이란 출신 청소년을 본인의 주교관으로 불러 “교회가 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강구하겠다”며 격려하였다.# 추기경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유엔난민기구 한국 대표를 접견하기도 하였고, 10월에는 위 이란 출신 청소년의 난민 재심사를 앞두고 같은 학교 학생들이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는 것을 알고 특별히 국무총리, 법무부장관 등 심사 당국에 서한을 보내 배려를 요청하고 신자들의 기도를 부탁하는 메시지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위 학생은 이례적으로 법무부의 재심사를 받아 난민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었고, 2018년 10월 19일 위 학생이 소속된 서울 A중학교 학생회는 입장문을 발표하여 아래와 같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더불어 염수정 추기경에 대하여 특별한 감사를 전했다.#

염수정 추기경님. 수많은 사람을 만나 우리의 사정을 전해주셨습니다.

행동하는 믿음이 무엇인지 참 성직자가 무엇인지 몸으로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분들이 있어 자랑스럽습니다.

서울A중학교 학생회, 「이름은 잊혀지고 사건은 기억되어야 합니다. - 이란 친구의 난민 인정을 환영하며」 中



4. 논란[편집]



4.1. 내란음모혐의 이석기 선처 탄원[편집]


2014년 7월 내란음모혐의로 구속되어 재판에 넘겨진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을 위해 염수정 추기경이 4대 종단(천주교, 개신교, 불교, 원불교)의 최고위 성직자들과 함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제출하여 상당한 논란이 되었다.#1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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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수정 추기경이 집무실에서 '내란음모구속자' 가족들을 만나 면담한 후 위로의 기도를 봉헌하는 모습

4대 종단의 지도자들이 특수 혐의의 피고인을 구명하기 위해 일제히 의견을 모은 것도 이례적이나, 그간 천주교 사제들의 정치 참여를 비판하였던# 염수정 추기경이 정치적 사안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것 또한 이례적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염수정 추기경이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한 경위와 탄원서 전문을 공개하였는데, 그 내용이 지극히 교의적인 논리에만 입각하여 염 추기경이 선처를 호소한 이면에 어떤 정치적 입장이 내재되어있는지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4.2. 세월호 유가족 양보 발언 논란[편집]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이후 서울대교구청에서 마련된 염수정 추기경과의 기자간담회 중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질의응답 과정에서 문제의 해법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아픔을 해결할 때 누가 그 아픔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이 문제와 관련해 힘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가족들도 어느 선에서는 양보해야 뜻이 합쳐질 것”이라고 답한 염 추기경의 발언이 언론과 사회구성원들의 주목을 받으며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1 #2 #3

염수정 추기경은 “세월호 참사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뜻이냐”는 이어진 질문에 “정치적 논리에 빠지고 싶지 않다”고 선을 그은 후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라고 답변하였다. 그러나 염 추기경의 이와 같은 발언은 전체적인 맥락에서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다”고 밝힌 프란치스코 교황의 입장과 상당히 엇갈린 것이라는 각계각층의 해석이 잇따르며 비난성 여론과 질타가 쏟아졌다.

비난 여론을 인식하여 교구 대변인을 통해 “천주교 차원에서 중재 노력을 하고 있다”는 뜻을 밝혔으나, 정부와 유가족 사이의 경색된 국면의 와중에 순수한 의도의 중재가 아닌 박근혜 정부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옹호하고 대변하려는 편향된 의도라고 주장하는 세력도 일부 존재한다.


4.3. 명동성당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 사건[편집]


명동성당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 사건 문서 참조.


4.4. 명동성당 장애인 출입 거부 및 추기경 면담 요청 거부 사건[편집]


명동성당의 장애인 출입 거부 및 추기경 면담 요청 거부 사건 문서 참조.


5.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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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 종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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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대의 각 해마다 시사저널이 각 분야의 전문가 1000명에 칸타퍼블릭과 함께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 선정했으며, 최대 3명까지 중복응답이 가능하였다. 해당 틀에는 1위만 기재함.
2010
2011
2012
2013
2014
김수환
염수정
2015
2016
2017
2018
2019
김수환
염수정
김수환
미조사
같이 보기: 한국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종합) / 여권 정치인 / 야권 정치인 / 법조인 / 경제인 / 언론인 / 문화예술인 / 연예인 / 스포츠 스타 / 종교인 / 국제 인물 / NGO 지도자 / 잠재력 있는 정치인 / 대통령에 영향력 있는 인물 / 언론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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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세균(167cm)보다 작고, 박근혜(162cm)보다 크다.[2] 산 크리소고노 본당 명의사제[3] 추기경은 종신직이기 때문에 사망 때까지 직책을 유지한다.[4]
[
특집다큐
]
우리는 통(通)했습니다 (2013년 서울대교구 사제전체모임)
, 가톨릭평화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