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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廉斯鑡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2. 생애
3. 기타


1. 개요[편집]


원삼국시대의 인물. 진한의 우거수(右渠帥)였다가 낙랑군에 귀화했다고 한다.

염사치는 실제 인명이라기 보다는 '염사(廉斯)' 지역의 '수장(鑡)'이라는 뜻으로 보기도 한다.


2. 생애[편집]


정사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인용된 위략에 따르면 신나라 말기인 지황(地皇: 20년~23년) 연간에 낙랑이 살기좋다는 말을 듣고 낙랑군에 귀화하려 했다.

낙랑으로 가던 도중 호래(戶來)라는 한인(漢人)을 만났는데, 호래는 3년 전 벌목하기 위해 진한으로 왔다가 노예로 붙잡힌 1,500명의 한인 중 하나였다.

그는 호래를 데리고 낙랑군 함자현에 이르러 한인의 나포사실을 알렸고, 낙랑군은 그에게 포로를 쇄환하는 임무를 주었다. 염사치는 잠중(岑中)에서 큰 배를 타고 진한으로 왔고, 진한과 협상해서 노예로 붙잡힌 1,000명과 진한인 15,000명, 변한포(弁韓布) 5천필을 받아서 낙랑군으로 귀환했다. 낙랑군은 그의 공과 의를 표창하고 관책과 전택을 주었다고 한다.


3. 기타[편집]


그의 후손들은 쭉 낙랑군에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125년 그의 후손은 선조의 공으로 부역을 면제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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