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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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배경
3. 관련 명언 및 명대사
4. 예시
4.1. 현재진행형인 예시
4.1.1. 스포츠
4.2. 종결된 예시
5. 푸코주의자들의 반론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영어: History repeats itself, 숙어식으로 표현하면 Historic recurrence(역사 반복)

서양 속담/격언 중 하나로,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뉴스에서, 책에서, 강연에서 지겹게도 많이 듣게 되는 격언. 같은 원인에 같은 결과가 반복된다는 논리를 역사에 적용한 것으로, 이미 역사가 보여준 그 인과를 다시금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가 담겨 있는 격언이라고 할 수 있다.

큰 줄기로 보면 비슷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하며 이를 멜서스 트랩이라고 한다.

사실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은 당연한 말일지도 모른다. 한번 일어났다는 점에서 가능 여부를 증명한 바이므로 그 것이 다시 일어난다고 해서 크게 이치에 어긋나는 바도 없기 때문이다.


2. 배경[편집]


이러한 격언의 사상적 배경은 주로 왕조사관이나 상인사관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의견이 있다. 중국 역대 왕조의 흥망성쇠를 살펴보면 비슷한 과정을 되풀이하는데, 정치적 문란으로 혼란에 빠진 와중에 농민 봉기가 일어나고 농민 지도자가 집권한다는 시나리오가 반복된다는 점에 착안한 주장이다. 또 상인들의 경우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사이클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그들의 역사관을 역사가 반복된다는 주장에 쉽게 적용할 수 있었다.


3. 관련 명언 및 명대사[편집]


Was die Erfahrung aber und die Geschichte lehren, ist dieses, daß Völker und Regierungen niemals etwas aus der Geschichte gelernt und nach Lehren, die aus derselben zu ziehen gewesen wären, gehandelt haben.

역사와 경험이 가르쳐주는 것은, 민족과 정부가 역사를 통해서 무엇을 배우거나, 원칙을 끌어내고 그에 따라 행동했던 적이 없다는 점이다.

-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역사의 철학에 관한 강연 중 서론, 1832년)


헤겔은 어디선가 세계사에서 막대한 중요성을 지닌 모든 사건과 인물들은 반복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은 소극(farce)으로 끝난다는 사실 말이다.

- 카를 마르크스, 《The Eighteenth Brumaire of Louis Napoleon》(루이 보나파르트브뤼메르 18일, 1852년)


역사는 언제나 동일한 방식으로 반복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한 번은 비극의 형태로, 다음에는 우스꽝스러운 희극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상이한 형태의 비극들로 계속 반복되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몇몇 법칙,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들이 있으며, 그것에 비추어 볼 때 역사학은 수사학적 의미가 아닌 지극히 과학적인 의미에서 여전히 <삶의 스승>이다.

- 움베르토 에코, <미네르바 성냥갑>


과거는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을지라도, 분명 그 운율은 반복된다.

- 마크 트웨인


Hegel was right when he said that we learn from history that man can never learn anything from history.

우리가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우리들은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는 것이라는 점에서 헤겔은 옳았다.

If history repeats itself, and the unexpected always happens, how incapable must Man be of learning from experience.

역사는 되풀이되는데 이를 항상 예측하지 못한다면 인간은 얼마나 경험에서 배울 줄 모르는 존재인가.

- 조지 버나드 쇼


Toutes choses sont dites déjà ; mais comme personne n'écoute, il faut toujours recommencer

모든 것은 이미 일컬어졌으나 아무도 듣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 앙드레 지드(André Gide, 프랑스 소설가 겸 비평가)


The one who does not remember history is bound to live through it again.

역사를 기억하지 못한 자,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

- 조지 산타야나 (George Santayana, 에스파냐 출신의 미국 철학자)


Whoever wishes to foresee the future must consult the past; for human events ever resemble those of preceding times. This arises from the fact that they are produced by men who ever have been, and ever shall be, animated by the same passions, and thus they necessarily have the same results.

미래를 내다보고자 하는 자는 과거를 돌이킬지어다. 인간사는 선대의 그것을 닮게 되나니. 이는 그 사건들이 그때 살던 사람이든 지금 사는 사람이든 동일한 성정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 창조되고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그로써 그것들은 같은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 니콜로 마키아벨리, <로마사 논고>


History, with all her volumes vast, hath but one page

역사라는 책은, 그 두께에도 불구하고 단 한 장의 페이지로 되어 있다.

- 조지 고든 바이런


인간의 본성이 쉽게 바뀐다면 아무도 고생하지 않습니다.

- 아라키 히로히코, <죠죠의 기묘한 모험>[1]


소는 잃어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 박완서, 윤문규 등,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에 대한 반박. 널리 퍼져 있기에 정확한 출처는 찾을 수 없으며, 이외수의 명언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사람을 비웃지 마라. 그는 지금 반성하고 있는 것이다.

- 이외수


History abhors a paradox

역사는 역설을 거부한다

- 케인


"전쟁. 전쟁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바뀔 수 있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통해서.

- 율리시스(폴아웃: 뉴 베가스), Lonesome Road의 엔딩에서.


"살다보면 항상 세상은 반복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구세대가 경험한 실수와 성공의 사실들을 신세대들은 똑같이 답습한다. 아무리 구세대가 자신의 경험담을 신세대들에게 알려주어도. 그들은 실제로 경험해보기 전까지는 그 경험들을 애써 무시하거나 모르고 있다. 이것은 그 얼마나 시간 낭비이고 불필요한 진실인가? 마치 결혼 전 처녀가 양아치 같은 놈에게 눈이 멀어서 결혼을 감행하려는 것과 같은, 그녀의 부모들은 양아치의 앞날이 뻔히 보이기에 결사 말리지만 그녀는 모른다. 아니 알고 싶어하지도 않고 눈앞의 달콤함에만 빠져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시간이 지난 뒤에 알게 된다. 먼 예전 자신의 부모들이 했던 말이 모두 사실이고 진실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의 딸에게는 그런 전철을 밟지 않게 해주려 또 말하지만, ('집어 쳐! 난 엄마처럼 살지않아! 난 멋지게 내 삶을 살 거니까 자꾸 내 인생 참견하지마.'[2]

) 그러나, 멋진 삶?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웃기는 소리다! 결국은 그 처녀의 딸 역시 그 처녀와 똑같이 살게되는 인생의 비극을 맛보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그동안의 내가 삶을 바라보는 대부분의 결과였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연장자의 경험을 인정하고 그 경험을 자신의 삶에 대비하는 자들! 결국 인생의 승리자는 그런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지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선, 우리 업계도 마찬가지다. 왜? 뻔히? 결과적으로…. 되지도 않을 싸움을 하려 드는가?"[3]

- 류존하, 대털 2.0


지옥과 저승은 아무리 들어가도 한이 없듯이 사람의 욕심도 끝이 없다.[4]

- 성경 잠언 27장 20절(공동번역)


지금 있는 것은 언젠가 있었던 것이요, 지금 생긴 일은 언젠가 있었던 일이라. 하늘 아래 새 것이 있을 리 없다.

- 성경 전도서 1장 9절(공동번역)


이 상소[5]

의 맺음은 부녀자에게 일을 시키고, 사치품을 금하자는 매우 엉뚱한 결론이었지만… 시대상은 현대의 그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존재한다고 본다. 그리고 이렇기 때문에 언제나 역사를 알고 배우는 게 매우 중요한 것이다.

"언제나 말하지만 삼국지는 1800년전 이야기입니다. 겨우 청동기 지나고, 철기를 쓰던 시대라구요. 1800년전 사람들도 현대인들과 이리 비슷하게 생각하고, 움직이는데, 100년안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은 말할 필요도 없죠. 역사는 끝없이 반복되고, 그래서 미리 알고 있을 필요가 있는거예요."

- 최훈, 삼국전투기[6]


미래에도 이미 내가 들은 것과 똑같은 주제가 다시 울려 퍼지리라. 이성적인 사람이 이성적인 목적을 위해서, 또는 미치광이가 어이없는 일과 대참사를 위해서 똑같은 짓을 저지르지 말란 법은 없다.

- 조지프 캠벨, <신의 가면 : 원시신화학> 서문에서



4. 예시[편집]


  • 유사한 원인으로 인해 유사한 결과가 반복된 경우만 기재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연적 원인이 아닌, 특정인의 원인 제공으로 역사가 반복된 예에 대해서만 서술합니다.
  • 현재진행형인 예시는 해당되는 사건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은 예시를 말합니다. 그 외의 것은 종결된 예시에 넣으시기 바랍니다. 단, 안전불감증과 관련된 사건들은 예외적으로 현재진행형인 예시에 들어가며, 별도로 (칼표)로 표기합니다.


4.1. 현재진행형인 예시[편집]


매우 적은 숫자이지만 대물림을 끊는 사례가 있지만, 후대가 잘못하면 다시 가난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 가족 간의 성향 대물림
부모와 자녀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거울과 같다. 그래서 정치관, 종교관, 인성, 성격, 도덕성, 취미 등도 곧잘 계승된다. 세대차이로 인한 서로의 환경과 경험이 다르지만, 성장하면서 경험하는 독서라는 가능성도 존재하다.


각각 불교, 유교, 기독교 본연의 초심을 잃은 채 탐욕에 물들어 타락했다.

둘 다 감식반의 미스와 초동수사의 미흡, 경찰의 무능이 겹친 사건이다.

세계 대공황의 경우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세계금융위기는 테러와의 전쟁 이후, 전 세계적으로 더블딥의 결과를 낳고 말았다. 사실 경제 위기는 크건 작건 계속 발생하는 문제이고, 완전히 없애는 방법은 없다. 또한 자유방임주의와 신자유주의가 어느 정도 힘을 잃는 사건이기도 했다.

이 둘은 초동 대처가 미흡한 탓이 매우 컸고, 공직자들의 보여주기 식 행태가 문제라는 비판도 있다. 피해 규모와 피해액은 차마 비교할 수 없지만, 시 단위의 광범위적 사고라는 점에선 모두 끔찍한 사고다. 원자력 발전소 사고도 자주는 아니지만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일단 한번 사고가 나면 그 피해는 엄청나다.

모두 허술한 감리를 틈탄 부실시공이 주된 원인이었다.

모두 정경유착이 주된 원인이었다. 이 사건사고에 휘말린 담당 공무원들은 어김없이 경찰 조사를 받아야 했다. 이 중 삼풍백화점 붕괴와 세월호 침몰 사고는 그룹 회장의 비리가 드러난 것과 멋대로 설계를 바꾼 것도 한몫한다.

넷 다 안전불감증이 원인이 되어 일어난 데다가 시설의 관리 소홀, 무허가/불법 증축, 인솔교사/관계자들의 학생관리 소홀로 일어났다는 점에서 똑같다. 씨랜드 화재의 경우는 정상적인 경로로는 허가가 날 수 없었던 곳이라는 점에서 무허가나 다름없었다. 충격적이게도, 해병대 캠프 참사 이후의 사건들은 7개월도 안 돼서 연쇄적으로 터진 사건들이다.

모두 보안불감증이 낳은 결과다. 그리고 모두의 주민번호는 그렇게 중국으로 팔려갔습니다. 아예 인터넷 실명제 자체가 문제라는 의견도 커지고 있다. 특히 2014년 1월 터진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사건은 피해 규모·유출 범위 역대 최대·최다를 경신해버렸다. 사실 개인정보에 대한 접근 자체를 막아놓지 않는 이상 작정하고 뚫을려고 마음 먹으면 못 뚫을 건 없긴 하지만,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사건은 하청업체 직원이 보안 테스트를 빌미로 USB로 빼갔다. 사실 작정할 필요도 없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래 1995년 전직 대통령 노태우, 전두환이 대검찰청에 직접 소환 출두하게 되었고 그 후로 14년 후인 2009년에는 전직 대통령 노무현이 대검찰청에 소환되고, 2017년에는 박근혜가, 2018년엔 이명박이 대검찰청에 소환됨에 따라 지금까지 5명의 전직 대통령들이 대검찰청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게 되었다. 그 이전에도 대검찰청에 소환되지 않았을 뿐이지, 레임덕 등으로 끝이 안 좋은 경우가 100%를 차지한다.(하야 - 중도 실각 - 암살 - 중도 실각) 이 중 전직 대통령 은 한꺼번에 검찰에 구속되어서 교도소에 수감된 적이 있으며 전두환은 사형 판결까지 받았다.

  • 대한민국 대통령 직계가족 검찰청 소환 출두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래 전직 대통령 김영삼의 아들인 김현철과 전직 대통령 김대중의 차남 김홍업, 3남 김홍걸이 잇따라 비리사건에 연루되어 검찰청에 소환출두하게 되었고 이후에는 전직 대통령 노무현의 친형 노건평과 전직 대통령 이명박의 친형 이상득이 검찰청에 소환됨에 따라 헌정사상 유래없이 대통령의 아들들과 친형들이 잇따라 검찰청에 소환출두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들 모두 비리사건 등으로 연루되어 검찰소환을 받았고 세간에서는 국왕의 아들이나 형을 지칭한다는 대군(大君)이라는 비아냥도 받았다. 다만 이들의 직종은 각각 국회의원과 농부라는 현격한 차이가 있어보이긴 했지만 모두 대한민국 대통령의 친형이나 아들이라는 이유 때문에 대통령인 아버지나 동생들 못지않게 세간의 주목을 받아왔다. 박근혜는 결혼하지 않았고 박재옥, 박근령, 박지만, 박영옥, 홍소자, 조귀분, 육예수 등 다른 남매들과 아버지 박정희 가문의 친가와 어머니 육영수 가문의 외가 친척, 사촌들과도 교류가 별로 많지 않았고,[7] 실제로도 박근혜는 친동생인 박근령, 박지만과도 사이가 좋지 않거나[8] 이복언니 박재옥과 사촌언니였던 홍소자, 박영옥하고도[9] 이렇다 할 교류 없이 소 닭보듯이 여겼기에 이런 역사를 끊거나 박근혜의 대통령 재임기간 내에는 없을거라고 생각했었던 이들도 있었지만 박근혜 정부 말기인 2016년 겨울 박근혜의 민간인 친구 최순실대한민국 국정에 개입하고, 그녀와 그녀의 일가족들, 박근혜의 최측근들이 대규모 부정부패를 저지른 사실이 발각되면서 결국 박근혜는 대통령직에서 탄핵당하였고, 탄핵 후 구치소에 수감되면서 역사는 다시 반복되었다.

인류 역사가 끝날 때까지 반복될 원죄급 쳇바퀴.

두 사건 모두 사고 후 늑장 사후대처로 피해가 커졌으며, 언론의 오보 또한 추가된 사건들이다.

서해 페리호 침몰 사고의 원인인 과적과 타이타닉 침몰사고의 원인인 부실관리 그리고 아리아케마루 전복사고의 직접적 원인인 변침과 승객을 버리고 도망간 인간 쓰레기 선장의 이기심이 합쳐진 최악의 대참사다.

사태 발생 직후 기관사나 선장이 탈출로를 막고 먼저 탈출해 훨씬 많은 사상자를 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결국 세월호는 예전 참사들의 문제를 모두 담은 곪은 상처가 터진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4발기와의 악연(?)으로 또 효율에 밀려 단종됐다.

세 사건 모두 병영부조리로 인해서 같은 사단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게다가 530GP 사건의 경우는 1985년에 있었던 화학지원대 총기난사 사건의 재래 수준이었으며, 그 이후로 28사단은 물론이고 육군 전체가 대대적으로 병영부조리를 발본색원했으나, 9년이 지난 2014년에 제28보병사단 폭행사망 사건이라는 최악의 병영부조리 사건이 다시 발생하면서 다시 한번 불명예를 얻게 된다. 게다가 그당시 28사단의 병영부조리 발본색원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등잔 밑이 어두운 꼴.

21세기 이후에 병영부조리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들로 530GP 사건 이후로 전군 차원에서 병영부조리 근절을 외쳤지만 결국 허상이었다는 것을 증명했다.



위의 일련의 사건들은 모두 전매상들의 소행으로 결국 역사를 반복하는 주체는 되팔이 역사를 반복하는 주체는 결국 인간 라고 봐도 무방하다.

  • 서문시장 화재 (1967년 → 2005년) 둘 다 전기합선이 원인이고 둘 다 시장을 초토화 시켰다.



두 사건 모두 같은 장소, 같은 민족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이 유사하다. 이로 인해 안그래도 좋지 않은 조선족에 대한 인식을 더더욱 악화시켰다.

리퍼트 대사 쾌유 기원을 내세운 각종 집회 및 과도한 거국적 사과 분위기의 정도가 지나쳐서 19세기 일본이 러시아의 눈치를 보게 만들었던 오쓰 사건에 비유당하고 있다.


셋 다 사이비종교가 일으킨 집단자살 사건이다.

두 사건이 비슷한 점은 이란 내에서 벌어진 일이고 첫 번째는 미국 군함이 이란 항공기를 격추시킨 사건이고 두 번째 사건은 이란 군부가 미사일을 발사해 격추시킨 사건이다.


최악의 물수능이다 하는 소리는 사실 학력고사 때도 있었던 소리다. 다만 학력고사 시절에는 전 과목 만점자가 나오지 않았다.

악어와 그의 방송 관계자들은 자신들을 도와준 자원봉사자들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마음대로 부려먹고 폭언과 욕설, 열정페이를 일삼았으며, 사건이 있을 때마다 제대로 된 반성과 사과를 하지 않고 쉴더들을 이용해 이익을 채워갔다. 실수가 아닌 의도적인 사건들이며 벌써 4번째다.


북한의 가장 길고도 긴 역사의 반복과정으로 북한이 태환권을 발행하여 돈표를 통한 농민시장이 형성되고 그것을 통한 밀무역 등 상당한 농민시장이 형성되어 많은 경제가 활성화되었다. 이것을 김정일이 화폐개혁으로 돈표의 환수를 바라보고 추진하였으나 실패 결국 농민시장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하지만 결국 저질러 놓은 것은 대부분 연형묵이 책임져야 하였다. 결국 이것으로 인하여 고난의 행군이 오게 되었으며 김정일은 암묵적으로 농민시장을 인정하여 많은 세수를 얻게 되었고 시장경제는 돌이킬 수 없었다. 그리하여 2002년 12월 공산품의 판매를 허용하고 2003년에 종합시장으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또다시 정신 못차린 김정일은 외화의 환수를 노리려고 5차 화폐개혁을 박남기의 보고로 추진되려다 실패하여 간신히 김영일의 사과를 통해 잠재우는 데 성공하고 3월에 박남기를 숙청하였다. 결국 5월 26일 시장화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2021년 김정은은 오수용이 추진한 것으로 추정되는 태환권을 다시 도입하여 6차 화폐개혁을 시행을 하였다.[10]


넷 다 공무원의 무책임하고 안일한 탁상행정이 근원이 되어서 시민들에게 많은 불편과 공분을 샀다.


산업재해로서, 사용자 측의 안전불감증이 문제가 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소위 '위험의 외주화'로 대표되는 비정규직 문제도 포함된다.

두 사건 모두 지리적으로 고립된 섬이라는 닫힌 사회에서 발생한 성폭행 사건들이다.

네 사건 모두 넥슨에서 일으킨 유료 아이템 관련 사건 사고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 시대를 불문하는 각종 악질빠와 충들의 민폐짓. 예시는 여기에 적지말 것.


이들은 발열과 소비전력이 지나치게 높고 AMD에게 털렸다는 공통점이 가지고 있다. 특히 스카이레이크-X의 발열과 소비전력 문제는 프레스캇시절에 비해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정도로 매우 심각하다. 게다가,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인텔 CPU만을 고집하던 PC덕후마저 만악의 근원인텔 CEO가 바뀌지 않는 한 차기작인 커피레이크이와 유사한 문제점들으로 인해 실패할 거라는 우려스런 전망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 오송역공주역무안공항역: 업적쌓기에 혈안이 된 정치인의 개입으로 인해 계속해서 새로운 흑역사를 만드는 중이다.

  • 코나미코지마 히데오 해고 사태, 캐리소프트의 강혜진 퇴사 통보 사건카도카와의 케모노 프렌즈 애니 1기 스태프(오모토 타츠키[11] 감독 포함) 강판 사태카를로스 곤 구속 사건


대우자동차가 쌍용자동차 인수로 대형 세단 체어맨을 얻으면서 쉬라츠 프로젝트는 위기에 봉착했고, IMF외환위기가 터지면서 프로젝트는 폐기되었는데 이후 나오는 대형 세단마다 줄줄이 폭망하면서 '쉬라츠의 저주'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근데 임팔라가 출시됐을 때 해외 OEM 방식이 아니라 국내생산 방식으로 채워나갔다면 종결된 사건의 예시로 바뀔 수도 있었다는 건 함정

자본주의와 인간의 욕망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반복될 예시들.

세 사태 모두 합당으로 인한 문제점으로 인해 발생한 사태이다. 신민당 사태는 김동길박찬종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발생했고, 친이-친박 간의 갈등은 3당 합당 이후 민정당계와 통일민주당계의 성향 차이로 인하여 발생했고, 마지막의 바른미래당 사태는 친안친유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발생했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대한민국 정부의 공식적인 수립 시점의 초대 이승만대한민국 제6공화국의 초대이자 제13대 대통령 노태우[12]

소녀전선 K7 업데이트 연기 논란 사건을 시작으로 클로저스 아트 팀 트위터 논란 덕분에 소울워커가 크게 수혜를 보면서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게 된 상당수 총박이들이 소울워커로 넘어갔고 소녀전선 때 했던 병크들을 소울워커에서도 그대로 답습했다.

둘 다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하나도 없는 쓰레기 애니라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켚2 쪽이 김치 전사보다도 약간 더 심하다.

세 사건 모두 연예인인 피해자가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했지만, 정확한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으며 정보기관에 의한 암살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인해 수많은 국민들이 그들의 죽음을 애도했을 정도로 사회적 충격이 컸다.

둘 다 자유도가 높은 '스테이지 만들기' 모드 때문에 야릇하거나 잔혹한 유저 스테이지가 늘어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닌텐도 팬덤 사이에서 "역시 검은 닌텐도!"라는 평이 나오고 있다.

  • 햇볕정책
두 명의 정권에서 핵무기를 포기시키는 것에 실패한 정책임에도 아직도 꾸준히 밀고 있다.

둘 다 정치인으로서 선거 때마다 패배를 모르고 승승장구해 왔으나 아들 때문에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어 4년 주기지방선거에서 자신들의 정치인 커리어 사상 첫 패배를 당하고 정계에서 은퇴했다.


  • 예술 분야: 대부분 새로운 예술 사조가 등장하면서 '이것도 예술인가?'란 논란이 일어난 사례들.
    • 패관문학[13] → 장르소설(통속소설, 펄프 픽션) → 인터넷 소설 → 라이트 노벨
    • 인상파야수파입체주의다다이즘초현실주의 → '현대미술'
    • 채털리 부인의 연인자유부인[14] → 반노(叛奴) → 즐거운 사라 → 천국의 신화내게 거짓말을 해봐와 그 영화판 거짓말(영화)
이쪽의 사례들은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 관하여 논란이 있었던 사례들이다.

  • 황가구[15] 추락 사건 → 웬디 추락 사건 : 두 사고 모두 방송 촬영 중[16] 발생한 무대 추락 사고로 사고 후 황가구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얼마 뒤에 숨진 반면, 웬디는 생존하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게다가 사고가 발생한 두 개방송사에 대한 대처도 성의가 없었던 터라 팬덤들이 분노했다.

  • 아육대SBS 가요대전: 두 프로그램 모두 여러 사고와 논란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4.1.1. 스포츠[편집]


둘 다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에서 0.01초차로 금메달을 놓친 대한민국 선수이다. 차이점은 김윤만은 남자 1000m, 차민규는 남자 500m에서 한 끗차로 금메달을 놓쳤다는 점이다.
셋 다 9회 2사까지 노히트 노런을 이어가다 마지막 한 타자를 넘지 못하고 대기록이 깨졌다.[17]
재밌는 것은 조계현과 이범석은 모두 당시 타이거즈 투수였다는 것이고, 박석민과 최형우는 당시 삼성 라이온즈 타자였다는 것이다. 또한 조계현이 1997 시즌 종료 후 삼성으로 트레이드되고 얼마 후 그의 노히트 노런을 깬 송구홍이 해태로 트레이드되었고, 이범석의 노히트 노런이 깨지는 순간 상대팀 삼성 벤치에는 조계현이 투수코치로서 앉아 있었다. 또한 김광현 때 그의 노히트 노런을 저지한 최형우는 2015년 4월 4일 LG 트윈스와의 잠실 원정경기에서 9회 1사까지 LG에게 팀 노히트 노런으로[18] 끌려가던 상황에서 투런 홈런을 쳐 또다시 기록 브레이커가 되었고, 2016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취득한 후 과거 조계현과 이범석이 뛰었던 KIA 타이거즈로 이적했다.
종목은 다르지만 둘 다 팀워크의 분열이 화를 불렀다.
종목만 다를 뿐 중계권 문제로 게임사나 협회, 방송사 간의 갈등이 벌어지고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팬들에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사건의 성격이 유사하다.
물론 타이중 참사 때는 네덜란드전에서 5:0으로 말아먹는 바람에 2승 1패를 기록하고도 상대 득실차인 TQB가 대만과 네덜란드에 밀려서 2라운드 진출에 실패했지만, 고척돔 참사는 약체라 평가받던 이스라엘을 상대로 2:1로 참패하고, 네덜란드전에서 또 5:0으로 말아먹는 바람에 1승 2패로 아예 망한 경기라서, 후자가 더 후폭풍이 심했다. 자카르타의 경우에는 금메달을 따긴 했지만, 사회인 야구팀인 대만에게 패했고 그 뒤에도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해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
비록 스코어는 달랐지만 두 경기 모두 3월 3일에 열렸으며, 당시 여론의 예상을 뒤엎는 결과가 나왔다. 전자의 프로토스는 당시 생애 두 번째 개인리그 본선이었고, 후자의 프로토스 역시 현역 시절 개인리그 전적이 겨우 11전 6승 5패였다. 또한, 전자의 저그는 다전제서 프로토스를 상대로 진 적이 한 번도 없었고, 후자의 저그 역시 아프리카TV 스타리그가 시작된 이래 다전제서 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4.2. 종결된 예시[편집]


금나라가 몽골족을 견제하기 위해 편 이이제이 정책과 몰아주기 정책이 결과적으로 몽골족의 반감을 사 훗날 칭기즈 칸이 세운 몽골 제국에 의해 금나라가 멸망하는 결과를 자초했으며, 명나라가 여진족을 견제하기 위해 편 위소체제와 회사정책 또한 도리어 여진족이 성장하여 청나라의 전신인 후금이 세워지는 결과를 자초했다.
과거에는 둘다 생전의 막장기행[20]과 무자비한 정적 숙청때문에 악명높은 폭군으로 여겨졌지만 후대의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두사람이 선정을 펼쳤다는 기록들이 발견되면서 다시 재평가를 받고 있다.
'로마 제국은 창건자와 같은 이름을 가진 황제의 치세에 멸망한다'라는 예언이 있었는데, 로마국조 로물루스와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이름을 모두 가진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의 치세에 둘로 나뉜 제국의 반쪽인 서로마 제국이 멸망함으로써, 예언이 실현되었다. 그리고 남은 반쪽인 동로마 제국노바 로마 천도 이후의 첫번째 황제이자 최초의 기독교인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같은 이름을 가진 콘스탄티노스 11세의 치세에 멸망하여 또다시 예언이 실현되는 것을 보여주었다.
고대부터 북방 유목민족들이 중국 본토인 중원을 침략하는 일이 빈번했으며 아예 정복왕조를 세워 직접 중원을 통치하기도 했다(오호십육국시대의 북방 유목민족 국가들, 위진남북조시대북위, 금나라, 원나라, 청나라). 역대 한족왕조들 중 북방 유목민족과의 군사적 충돌을 완전히 해결한 왕조는 없었으며 한족왕조들 중 가장 이민족에 관대했던 당나라조차도 안록산의 난 이후 거란족 등 이민족의 성장을 막지는 못했다. 오히려 이민족 왕조인 청나라가 준가르 부를 무너뜨림으로써 중국역사의 뜨거운 감자였던 북방 유목민족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다. 그러나 그 청나라도 서구 열강의 침략으로 쇠퇴했고 이후 중화민국 시절에는 일본의 침략으로 혼란에 빠졌으니 외세에 의해 중국이 혼란에 빠진 것 역사는 계속 이어졌던 셈.
카를 마르크스가 그의 저서 '루이 보나파르트브뤼메르 18일'에서 다루었을 정도로 유명한 예시이다.
둘 다 이후의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 집권하여, 혁명으로 수립된 공화국을 전복시키고 을 수립했고, 에서 패하여 축출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나폴레옹 1세가 쿠데타로 집권한 후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제정으로 체제를 전환한 것과는 달리, 나폴레옹 3세는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집권한 후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제정으로 전환했다는 차이점도 있다. 또한 나폴레옹 1세가 비록 마지막에는 패했지만 군사적 능력이 뛰어났음은 누구나 인정하는 반면, 나폴레옹 3세는 군사적 능력이 형편없어서 직접 나선 전투를 처참하게 말아먹고 축출되었다는 차이점도 갖고 있다.
그리고 충격적인 진실이 하나 있는데 나폴레옹 3세가 나폴레옹 1세의 동생 루이 보나파르트의 아들이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사실은 루이의 아내 오르탕스 드 보아르네가 낳은 사생아라서 보나파르트 가문과는 혈연 관계가 전혀 없었다. 물론 당대에는 본인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나파르트 가문의 일원이 맞다고 굳게 믿고 있었고, 나폴레옹 3세의 혈통이 단절되고도 한참이 지난 후에 유전자 검사로 밝혀진 것이기에 계승권 분쟁이 생길 여지도 없으므로 큰 의미는 없다. 물론 처음 안 사람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지만 말이다.
1994년 7월 북한 주석이었던 김일성이 당시 대통령 김영삼과의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17년 후인 2011년 12월 그의 아들이자 북한 국방위원장이었던 김정일은 심근경색으로 인해 급사하게 되었다. 둘 다 이전에도 와병설 등 사망설이 돌아다녔으나 그 와중에도 자신의 건재를 과시하기도 했으나 졸지에 심근경색으로 사망. 후계도 똑같이 반복하고 이 과정에서 똑같이 붕괴설이 돌아다녔다.
  • 북한의 잇따른 남파 간첩사건
1945년 남북분단과 1950년 6.25 전쟁 이후 북한은 끊임없이 남한에 고정 및 비고정 간첩을 밀파했으며 특히 1968년에는 서울 청와대울진군,삼척시지역에 간첩을 밀파했고 그 이후 1996년에는 강릉시에 무장공비를 파견하는 만행을 저지르면서 역사를 반복하게 만들었다.
정말 비슷하다. 우선 아케치 미츠히데김재규의 경우, 의 핵심적인 중추였던 정권의 수장을 제거했지만, 막상 일을 저질러 놓고 후속 대응을 제대로 못해서 결국 시망 테크를 탄 점, 정권의 수장을 죽인 것이 결국 죽 쒀서 개 준 꼴이 되어버린 것, 무엇보다 '거사'를 일으킨 동기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것 등.[21] 이쯤 되면 무서울 정도다. 그리고 사실상 정권의 1인자로 남게 된 시바타 카츠이에정승화[22]도 대응을 제대로 못해서 아랫사람에게 1인자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시바타는 히데요시에게, 정승화는 전두환과 노태우에게.)
  • 중동 재스민 혁명, 무바라크와 카다피 정권의 잇따른 몰락
2011년 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시작된 중동 재스민 혁명으로 인해 오랫동안 독재집권을 해 왔던 아랍권 국가들의 수장들이 물러났으며 특히 이집트리비아에서도 장기집권을 해 왔던 무바라크와 카다피 정권이 몰락하는 계기가 생겼다. 그러나 혁명 후 유일하게 안정적으로 민주주의 체제가 정착한 튀니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나라들은 독재정권이 있었을 때보다 내전, 쿠데타등으로 더욱 혼란해졌다.
2001년 9.11 테러를 겪은 미국은 당시 대통령 J.W 부시의 승인하에 2001년에는 아프가니스탄을, 2003년에는 이라크를 공습하여 각각 탈레반과 사담 후세인 정권을 잇따라 무너뜨렸다.
이 두 전쟁의 공통점은 아시아 대륙에서 일어났다는 점과 모두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며 서로 싸우고 대립했던 것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건너온 군인들까지 총부리를 겨누며 서로 싸웠다는 점을 보면 사실상 단순한 동족간의 전쟁을 넘어 세계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국전쟁 때는 미국을 비롯한 21개국의 군인들이 참전했고 베트남 전쟁 때에도 한국,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국가들이 군대를 파병했다. 하지만 이 두 전쟁의 종결 과정에선 전자는 각각 휴전과 계속되는 분단현상, 그리고 후자는 공산주의 진영의 승전과 사회주의 통일국가 수립에서 엇갈리게 된다.
이 세 전쟁의 경우 모두 중동에서 일어났다는 점과 공교롭게도 중동전쟁을 제외한 나머지 두 전쟁에 이라크가 개입되었다는 점이 있는데 특히 걸프전쟁 때 이라크쿠웨이트를 무력침공했으며 중동전쟁의 경우 이스라엘과 아랍이 서로 대립하는 목적에서 전쟁을 벌였다는 것을 보면 결국 아랍과 유대의 대립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알 수 있다.
집권여당이 저지른 희대의 병크. 둘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망가뜨렸다.
  • 평창군 동계올림픽의 3회 유치 도전과 실패 그리고 성공
강원도 평창군은 2003년에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도전했으나 실패했고 다시 4년 후 2007년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에도 나섰으나 다시 한 번 실패하면서 역사를 반복하게 만들었다. 특히 두 번의 유치전 때 모두 IOC 총회의 2차 투표에서 탈락하는 아픔과 슬픔을 겪었으며[23] 이로 인해 대한민국평창군에 두 번이나 통한의 눈물과 상처를 안겨줘야 했었다. 1차 투표와 그 이후의 중간 과정에서 홍보가 부족해 표가 다른 곳으로 쏠린 것이 결정적인 패인(敗因)이 된 것. 그리고 4년 후인 2011년에는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고 재도전하여 계획대로 IOC 총회 1차 투표에서 압승, 마침내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두 게임 모두 3번째 테마까지만 공개되었고, 그마저도 3번째는 대충 만든 감이 컸다. 사실 소드 퀘스트는 아타리 쇼크로, 어니스와 프리키는 하향패치 병크와 개발팀 해체로 이렇게 되었고 결국 두 게임 모두 1년을 전후하여 사라지고 말았다. 이 때문에 소드 퀘스트 에어 월드와 어니스와 프리키 카지노 테마(가칭)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두 전쟁 다 많은 군인들과 민간인들이 희생된 사건이고, 두 개 다 이 국가는 패전국이 되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 해방 이후 1945~1949년까지 암살 및 저격당한 인사들
1945년 12월 30일 송진우, 1947년 설산 장덕수, 몽양 여운형, 1949년 6월 26일 백범 김구가 모두 암살당했다. 이들 모두 총살과 1950년 6.25 전쟁 발발 전에 모두 사망했다. 백범 김구 사건은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아있다.
  • 삼성과 현대 두 거인의 병사(病死)
20세기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었던 두 거인으로 알려진 삼성 창업주 호암 이병철과 현대 창업주 아산 정주영 모두 병고(病苦)로 별세했는데 공교롭게도 이들 모두 1988 서울 올림픽과 2002 한일월드컵을 1년 앞두고 사망하게 되었다. 둘 다 국내에서 개최되는 경기대회를 보지 못하고 별세했는데 정주영의 경우 1988 서울올림픽은 살아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아들인 정몽준이 유치 당시부터 이끌어내었던 2002 한일월드컵을 살아서 직접 보지는 못했다.
위는 후한의 황위를 찬탈하여 만들어진 국가나, 이러한 역사는 나중에 서진에 의해 반복되었다.
마르샤의 경우는 당시 우리나라 최고의 플래그쉽 차량인기 많은 동생 사이에 낀 애매한 위치에 있었고 돈을 더 줘서라도 그랜저를 사 겠다는 분위기 때문에 카드놀이를 하다가단종되었고, 아슬란의 경우는 우리나라 최고의 플래그쉽 큰형작은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고급스러워진 동생들 덕분에 안습한 판매량을 보이다 2017년을 끝으로 단종되었다. 마르샤의 경우는 쏘나타의 상위 트림이라는 점과 아슬란의 경우는 그랜저 HG 330 셀러브리티의 저조한 판매량을 메우기 위해 내놓은 그랜저의 상위 트림 차량이었다.또한 둘 다 내수형 차량이라는 공통점이 있다.[24]
둘 다 하기 싫은 더빙이나 한국어화를 어거지로 해서 폭망한 사례다. 다른 점이라곤 전자는 '애니' 및 '더빙', 후자는 '게임' 및 '자막'이다. 하지만, 다키스트 던전의 경우 제작사와 팀 왈도의 대응으로 사태을 순식간에 종결지었다.
두 브랜드 모두 혼다가 중국에서 만든 산하 브랜드이며,주체가 각각 '광치 혼다'와 '둥펑 혼다'라는 점만 다르고,나머지는 역대 생산한 품목이 하나라는 점[25]과 생산차량이 뱃지 엔지니어링을 거친 차량이라는 점[26]과 원판 차량의 글자에서 'CI'가 공통적으로 들어간다는 점이 있으며,브랜드 역시 저조한 판매량을 기록했다. 시모 브랜드는 폐기된 것으로 보이지만, 에베루스는 다른 차량을 출시하긴 햇다는 점은 차이가 있다.
  • 정치활동정화법과 정치풍토쇄신법
쿠데타를 통하여 집권한 대통령들이 기존 정치인들의 발을 묶기 위하여 제정한 악법들.
제너럴 모터스캐나다 시장에 만든 브랜드로 대우 르망배지 엔지니어링해 판매했지만, 두 브랜드 모두 망했어요를 시전했다.
정부의 무능에 대항하여 들고 일어났고, 자치기구를 구성하여 나름대로 해방구를 이끌어 갔으나, 결국 외세와 결탁한 정부[27]에 진압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5. 푸코주의자들의 반론[편집]


역사를 공부하는 효용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지지를 얻고 있으나 반대하는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니며 대표적으로 푸코디언(푸코주의자)들은 역사는 반복, 순환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역사는 단순히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지는 단편적인 사건들의 모음이 아니라 수많은 맥락들과 얽혀있는 총체이기 때문에 현상적으로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고 해서 그것을 반복되는 사건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 가령, 구한 말에 청, 일본, 러시아, 영국 등 열강들이 조선에 진출하고자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것과 1990년대 동구권이 붕괴하면서 러시아, 중국, 일본, 미국 등이 한반도에 큰 관심을 가진 것이 비슷한 사건이라 하여 1990년 당시 국사학계에서 구한 말 연구가 붐을 이루었지만 제국주의 시대의 논리와 탈냉전 시대의 논리를 똑같은 사건으로 보는 것은 맥락을 무시한 단편적인 사고에 불과하다. 흐름은 비슷한 것 같아도 시대 여건에 따라 상황은 변하고, 그렇기 때문에 해결책도 옛날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래의 예시들을 볼 때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과연 이것이 반복된 역사인가 스스로 따져보자.

파일:attachment/장하준/ISBN9788960511194_hajun.jpg
장하준의 저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서문중에서
또한 정말로 역사가 진보하지 않았더라면 역사가 반복된다는 말조차 없었을 것이다.

좀 더 이론적인 얘기로 들어간다면, 역사의 반복성을 긍정하는 것은 곧 과거의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보편적인 어떠한 이론아니 설명체계를 구축하여, 미래를 설명할 수 있는 어떤 보편적인 원리로 일반화해낼수 있다는 보편주의를 긍정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것은 사회학의 영역이지 역사학의 영역이 아니다. 모든 역사적 사실들은, 그 사실이 발생하던 사회를 구성하는 문화적, 경제적, 심지어 질병과 같은 자연적인 요소들이 총체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만들어진 단 하나의 특수한 사실이다. 인간의 발전 정도가 미약하여 생활 및 문화가 거의 고정되었던 고대사의 왕조들에서조차, 반복적으로 일어나며 전혀 개별적 특수성이 없어 보이는 보이는 왕위찬탈이라는 사건들조차 그 개개는 복잡하고 재현 불가능한 어떤 특수성을 가지고 일어난 것임을 자세한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땐 깨달을 수 있다. 반면, 사회학에서 가정하는 '투명한' 어떤 사회는 이러한 특수한 맥락을 획득하지 않은, 어떠한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사회로 정의된다.

아래에서처럼 역사가 반복된다는 말을 했던 마르크스도 개인적으로는 역사를 일반화하여 현실의 정강으로 사용하려는 것, 또는 뉴턴의 자연법칙과 같이 현실을 예언하는 어떤 도구로 남용되어 역사의 영역을 벗어난 어떤 부문에서 소비되는 것에는 경계를 표했다.

"놀라울 만큼 유사하더라도 상이한 역사적 환경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은 완전히 다른 결과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발전의 결과들을 따로따로 연구하고 난 후에 그것들을 비교한다면, 그 현상을 이해하는 열쇠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를 초월하는 것을 위대한 미덕으로 삼고 있는 어떤 역사철학 이론의 만능열쇠를 사용해서는 방금 말한 것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마르크스가 개인적으로 나눈 편지의 내용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객관적인 사실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경험적 자료로 파악하여 현재로 이어지는 무엇인가로 환원해낼 수 있다는 인식, 또는 과거에 일어나고 있던 일이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다는 여러 사람들의 통찰은 어째서 발생하는 것인가?

그것은 역사적 사실이라는 사실이, 인간의 인식적 한계를 벗어나는 거대한 피인식항, 관념적 객체라는 사실 때문에 발생한다. 우리는 역사적 사건들을 구성하는 요인들에 대해서 역사학자들에 의해서 승인된 일련의 판단들을 공유하고 그것이 사실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을 뿐, 정말로 그 결과에 이르게 만든 세계의 전적인 요소들에 대해서는 모두 파악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흐름들과 모든 맥락들은 편집해서 보지 않으면, 인간이 우주의 넓음을 시각적 한계 때문에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듯이, 또는 11차원 공간을 인공지능의 도움 없이는 머릿속의 가상평면에 그려볼수조차 없듯이, 인식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특수성과 개별성에도 불구하고 역사가 반복된다고 느끼는 이유는, 이러한 인식적 한계로 인해 현재의 상황을 과거에 투사하여 파악하기 때문에, 그리고 오직 그 방법으로만 역사에 대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관찰자가, 관찰자의 시대를 바탕으로 형성된 시각으로 과거를 바라보았기 떄문에 현재와 역사적 사실로부터 동질성을 느끼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역사학의 불멸의 고전 '로마사'를 쓴 테오도르 몸젠은 로마의 번영의 원인으로 카이사르를 지목하며, 그 전까지의 논의와 다른 관점에서 발견된 자료들을 바탕으로 키케로를 깎아내렸다. 그가 그러한 역사관을 구성하여 로마 시대에 대한 통찰에 다다를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로마사를 저술하던 시기 그가 몸담고 있던 독일 사회의 혼란한 정치 상황을 그가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독일은 민족적 열망의 실현이라는 거국적 과제에 대해 뚜렷한 공감대를 모든 국민이 가지고 있었던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학적 논의에 빠져 있던 자유주의자들의 지리멸렬한 다툼과 공박으로 인해 너무나 뻔히 보이는 실행안이 현실로 실현되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만인의 자유가 허용되는 바람에 결국 누구의 의지도 실현되지 못하는 자유주의의 무정부적 속성에 대한 이해를 이러한 독일의 시대적 상황이 몸젠에게 제공했기 때문에 카이사르에 대한 재발견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독일은 곧 비스마르크 등 독재적 집권자에 의한 긴 통치 기간에 들어간다. 이와 같은 연구 상황을 염두에 두고도 과연 로마의 역사적 경험이 독일에서 반복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몸젠이 제시한 것은, 과거에 대한 연구처럼 보였지만 사실상 당시 독일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예언이었고 당시 독일 사회에 대한 통찰이었다. 전혀 다른 역사적 맥락이 몸젠과 같은 역사학적 탁월성을 지닌 인물에게 제공되었더라면 우리가 현재 인식하는 카이사르의 입지와 위치는 전혀 다를 수 있었다. 즉 역사가 반복된다는 말은 정확히 말하면, 현재를 바탕으로 역사를 파악하는 인간의 본능적 함정과 인식적 한계에 대한 경고에 가깝다.[28]

즉, 역사는 반복된다는 주장은 지금까지 역사에 어떤 실용적인 의의를 부여하여 역사학 연구와 역사 교육 등등의 본질적 가치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으나, 근대에 들어 학문적 개념이 끊임없이 발전하고 논쟁이 진화됨에 따라 역사는 반복된다는 주장은 이론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의미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여기서부터는 각 학파와 사관 그리고 역사철학에 따라 무수히 새롭게 창조된 역사의 효용과 의의론이 등장하게 된다.

상기의 반론은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전개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된 것으로 카가 제시한 '역사는 일련의 승인된 판단'이라는 말은 과거 플라톤과 대립하던 소피스트들의 '더 강한 주장과 더 약한 주장'이라는 상대주의의 악습을 연상시키는 바가 있어, 또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하는 부분이다.


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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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말은 본편 속에서 보잉고도 언급한다.[2] 이부분은 류존하가 예시로 든 처녀의 딸의 대사다.[3] 김화백 만화 명대사 대부분이 개그계 명대사로만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런 진중한 감동계 명대사도 적지 않으며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럭키짱을 봐도 의외로 사회문제나 작가의 철학을 담아내고 있는 대사가 많다.[4] 흔히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로 알려져 있다. 이쪽의 경우는 익명.[5] 전투외편 8-3에서 화핵이 올린 상소다.[6] 따옴표 안은 최훈의 오너캐가 말하는 부분이다. 실제 만화에서는 나레이션과 오너캐 대사가 반씩 2컷을 차지하고 있다.[7] 박재옥과 박근령, 박지만, 박영옥, 홍소자는 결혼하지 않고 노처녀로 평생 늙은 박근혜와 달리 남편 한병기, 신동욱, 김종필, 한승수와 아내 서향희 등과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렸다.[8] 박근혜와 박지만, 박근령 등 박정희와 육영수의 자식 3남매들은 육영재단을 놓고 서로 두 차례씩 싸움을 벌인 이력이 있었다.[9] 박영옥은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드러나기 전인 2015년 2월 노환으로 사망했다. 어쩌면 사촌 여동생이었던 박근혜의 추악한 이면을 보지 않고 시의적절하게 사망한 셈.[10] 다만 여기서는 오수용의 정책에 다행인점은 강압적으로 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추진하여 3차 화폐개혁 같은 상황을 만들려고 계획을 하였다는 점이다. 3차 화폐개혁이 대부분 자발적으로 농민시장이 암시장화가 되어 환율과 대출 등 상당한 사금융과 환율시장이 형성되고 TV 판매와 같은 그러한 암시장화가 되어 많은 돈주들이 그걸 노리고 돈표를 마구 사들였다는 점이다. 그러면 당연히 북한 원화는 환율이 계속 떨어진다는 점이다.[11] 케모노 프렌즈 애니메이션 1기 감독.[12] 양측 둘 모두 현대사 격동기의 가장 중요한 또한 제법 의미적인 시기에서 각자 나름의 초대 이미지와 타이틀을 굳히기도 의외로 지니기도 하였던 인물들이다. 다만 특히나 국내 정치 (극)진보계 인사 측 시각으로나 진보색을 띈 (대)다수의 국민 일부분으로는 둘 모두 그닥...(조금 막말로)수치스럽고도 괘씸한 별~ 탐탁치 않은 인물들로만 여겨진다. 마치 이 대한민국 두 중대시기의 첫단추가 '왜 이 두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어야만했는가?'의 그런 시각으로...[13] 민간에서 수집한 이야기에 창의성과 윤색을 더한 산문 문학. 뒤에 소설 발달의 모태가 되었다.[14] 이쪽은 소위 말하는 '야설'은 아니다. 대충 현대 '막장 드라마' 정도의 수위. 그러나 당시(1950년대) 기준으로는 '야설'에 준하는 취급을 받았다.[15] 홍콩의 록밴드인 비욘드의 리더다.[16] 자세히 말하자면 황가구는 예능 녹화 중, 웬디는 리허설 중에 발생했다.[17] 조계현 때는 LG의 송구홍이, 이범석 때는 삼성의 박석민이, 김광현 때는 삼성의 최형우가 깼다.[18] 이미 LG는 전년도인 2014년 10월 6일 NC 다이노스를 상대로 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바 있었다.[19] 하지만 이 사례는 어디선가 본 듯한 사례랑 비슷하지만 이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스페인의 결과랑 비슷하게 끝났다.[20] 네로는 지독한 예술덕후라서 예술을 위한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기행을 일삼은데다 광해군도 궁궐 터를 넓힌다면서 민가를 강제로 허물어서 백성들에게 원성을 샀다.[21] 비슷한 사례로 호사가들에게 언급되는 마르쿠스 브루투스의 경우 독재자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암살하고 로마 공화정을 회복한다는 동기는 확실했다.[22] 이 둘은 전형적인 무인(군인)이라는 공통점도 있다.[23] 1차 투표의 경우 두 번의 도전에서 모두 투표 선두권으로 앞섰기 때문에 유치에 성공할 듯 싶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이 두 유치전에서 2차 투표에서 뜻밖의 역전패를 당해왔기 때문에 세번째 도전에서도 2차 투표에 대한 신경과 관심이 컸었으며 특히 두번째 도전에서 실패했을 때 당시 세간에서는 4년 전의 악몽이 재현되었다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24] 만약 그랜저 IG의 롱휠베이스 차량도 출시 이후 계속 저조한 판매량을 보인다면 현재진행형으로 바꿀 것[25] 에베루스는 에베루스 S1만 생산되었고,둥펑혼다 시모 역시 시모 차량 1대만 생산되었다.[26] 에베루스 S1은 혼다 시티를,시모는 혼다 시빅을 기반으로 한 차량이다.[27] 파리 코뮌은 프로이센과 결탁한 티에르에 의해 진압되었고, 동학은 일본과 결탁한 관군에 의해 진압되었다.[28] 과학에서 사용하는 인과모델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사과를 탑에서 떨어뜨렸다-땅에 떨어졌다. 와 같이 재현 가능하고 특수성 없는 어떠한 일반적인 사건이 대상이어야만 한다. 역사를 바탕으로 인과모델을 형성하여, 가설적 한계를 인정하지 않은 일반화를 시도하는 것은, 이러한 역사의 짙고 짙은 특수성 때문에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