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튼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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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튼 브랜드의 수상 이력




엘튼 타이론 브랜드
Elton Tyron Brand

출생
1979년 3월 11일 (45세)
뉴욕주 코트랜드 마너
국적
[[미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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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출신학교
듀크 대학교
신장
206cm (6' 9")
체중
115kg (254 lbs)
윙스팬
227cm (7' 5")
포지션
파워 포워드 / 센터
드래프트
1999 NBA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
시카고 불스 지명

소속 팀
시카고 불스 (1999~2001)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2001~2008)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2008~2012)
댈러스 매버릭스 (2012~2013)
애틀랜타 호크스 (2013~2015)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2016)
등번호
42번 - 시카고 / 클리퍼스 / 필라델피아 / 댈러스
7번 - 애틀랜타

1. 개요
2. 커리어
3. 수상 내역
4. 플레이 스타일



1. 개요[편집]


NBA의 前 농구선수. 2000년대를 풍미한 빅맨으로, 평균 20-10을 4번이나 기록할 정도로 꾸준한 선수였다.


2. 커리어[편집]



2.1. 아마추어 시절[편집]




2.2. NBA 커리어[편집]



2.2.1. 시카고 불스[편집]


1999년도 NBA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로 시카고 불스에 입단했다. 듀크 대학교 시절 온갖 상은 다 수상하며 명성을 높이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불스 팬들로부터 많은 기대를 받았다.

실제로 데뷔 첫 시즌인 1999-00 시즌부터 81경기에 출장해 평균 37분을 소화하며 20.1득점-10.0 리바운드로 시즌 더블더블을 달성하면서 그 기대치를 어느 정도 충족시켰고, 신인왕 및 올 루키 퍼스트 팀에 선정되었다. 하지만 함께 드래프트된 론 아테스트 정도를 제외하고는 팀 내에 괜찮은 동료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팀은 17승 65패로 동부 컨퍼런스 최하위에 그쳤다.

다음 시즌인 2000-01 시즌에도 20.1득점-10.1리바운드로 2시즌 연속 더블·더블을 기록하면서 활약했지만 팀 성적은 15승 67패로 오히려 더 나빠졌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무난히 시카고의 새로운 스타로 자리잡는듯 했다.

2.2.2.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편집]


하지만 제리 크라우스 단장이 2001년 6월, 눈여겨보던 유망주 타이슨 챈들러와 브라이언 스키너를 손에 넣기 위해 브랜드를 클리퍼스로 트레이드하면서 졸지에 3년차에 팀을 옮기게 됐다.

클리퍼스 이적 후에도 20-10에 가까운 꾸준한 활약을 펼쳐주며 2002년에는 1994년 대니 매닝 이후 처음으로 올스타로 선정된 클리퍼스 선수가 되었다. 이런 활약에 마이애미 히트에서 2003년 제한적 FA가 된 브랜드에게 6년 8200만 달러라는 거액의 계약을 제안했지만 클리퍼스가 이를 매치하면서 이적이 무산되었다. 당시 클리퍼스 구단주였던 도널드 스털링이 매우 짠돌이로 유명했던데다가 1년전 브랜드에 대한 연장 계약 제안을 거부했던 바 있어 상당히 예상 외의 행보로 여겨졌다.

2005-06 시즌은 그야말로 커리어 하이 시즌이었는데, 평균 24.7득점-10리바운드을 올리면서 클리퍼스의 1976년 이후 첫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다. 덕분에 시즌 MVP 후보로도 손꼽혔지만 실제 투표에서는 7위에 그쳤다.[1]

이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서부 컨퍼런스 1위를 차지한 피닉스를 서부 컨퍼런스 세미 파이널에서 만나 7차전까지 승부를 이끌고 가는 활약을 펼쳤지만 끝내 패해 탈락했다. 그래도 이 시즌 활약으로 NBA 스포츠맨십 어워드를 수상하고 All-NBA 세컨드 팀에 선정되었다.

하지만 이후 성적이 떨어지다가 아킬레스건 파열 부상까지 당하면서 커리어가 한풀 꺾였고, 2008년 플레이어 옵션을 포기하고 FA가 되었다.

2.2.3.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1기[편집]




2.2.4. 댈러스 매버릭스[편집]




2.2.5. 애틀랜타 호크스[편집]




2.2.6.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2기[편집]


2016년 1월 4일, 듀크대학교 감독이자 미국 대표팀 감독인 마이크 슈셉스키의 설득으로 선수로 전격 복귀했다.

한동안 프로 생활에 다시 적응하는 기간을 가지다가 3월 4일, 마이애미 히트와의 경기에서 드디어 코트에 다시 나섰고, 3월 12일에 열린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와의 경기에서는 복귀 이후 첫 두 자릿수 득점을 올렸다.

주로 벤치 멤버로 출전하면서 평균 13.2분 출전해 4.1득점을 기록했다. 다만 이 시즌이 소위 프로세스(The Process)로 불리던 탱킹 기간이었기 때문에 팀 성적은 바닥을 기고 있었던지라 별로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식서스에서는 9월 7일 재계약을 제안하고 이를 받아들이면서 현역 생활을 이어가는 듯 했지만 그로부터 한달 뒤인 10월 20일, 두번째 은퇴를 선언하며 코트를 떠났다.

2.3. 선수 은퇴 이후[편집]


2018년 9월 20일,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단장으로 임명되었다.#


3. 수상 내역[편집]


수상 내역
NBA Rookie of the year (2000)
NBA All-Star 2회 (2002, 2006)
All-NBA Second Team (2006)
NBA All-Rookie First Team (2000)
파일:FIBA-Logo.png 2006 FIBA 세계 선수권 대회 일본 동메달


4. 플레이 스타일[편집]


공수 모두 뛰어났던 2000년대 정상급 빅맨.

팀 던컨처럼 완성형으로 데뷔하여 누적도 꾸준히 쌓은, 과소평가된 2000년대 빅맨 중 하나이다. 실제로 그의 통산 WS는 카멜로 앤서니, 러셀 웨스트브룩, 그랜트 힐,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등 스타들보다 높다.

데뷔와 동시에 거의 전경기를 출장하여 평균 20-10을 기록했고 데뷔 첫 5시즌 연속으로 시즌 더블더블을 달성했다. 이후 한 시즌 실패한 후 세컨팀에 선정되기도 한 2005-06 시즌 다시 달성하면서 그야말로 밥먹듯이 더블더블을 하던 선수. 빅맨으로서는 다소 언더사이즈인 6-8의 신장을 가지고 있지만 사기적인 윙스팬[2]을 가지고 있어 '긴팔원숭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피지컬에선 부족함이 없는 모습이었다.

케빈 가넷, 디르크 노비츠키, 크리스 웨버 , 라쉬드 월러스 등 동시대 정상급 파워포워드들과는 달리 우직한 인사이더로서 존재감이 빛나던 선수이다. 포스트업을 선호했고, 특히 자유투 라인 부근에서 던지는 턴어라운드 점퍼가 매우 정확했다. 기동성도 뛰어나 속공 참여도 가능하고 덩크도 시원시원하게 잘 꽂았다. 말년에 까먹었음에도 커리어 평득은 15.9점이다.

수비에서는 특히 림프로텍팅이 뛰어났다. 실제로 NBA 역대 블록슛 26위에 올라있다. 우직하게 골밑을 지키며 클리퍼스의 원빅으로 제 몫을 다했다.

전반적으로 폭발력이 부족하고 2% 아쉽다는 느낌은 있지만, 늘 꾸준하고 우직한 플레이로 팀의 방향성을 잡아줄 수 있는 20-10급 빅맨이다.

[1] MVP는 피닉스 선즈의 포인트 가드 스티브 내시에게 돌아갔다.[2] 22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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