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세바스티안 데 엘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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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an Sebastián Elcano
후안 세바스티안 엘카노

본명
후안 세바스티안 엘카노[1]
출생
1476년 11월 30일 카스티야 연합 왕국 기푸스코아 주 헤타리아
사망
1526년 8월 4일 (향년 49세) 태평양
국적
스페인 제국 파일:스페인 국기.svg
직업
항해사, 탐험가
종교
로마 가톨릭
별칭
안토니오 람바르도
가족
마리아 헤르난데즈 데르니알데 아내
도밍고 엘카노 3세

1. 개요
2. 생애
3. 사후
4. 2차 창작물에서



1. 개요[편집]


스페인의 탐험가, 항해사.


2. 생애[편집]


스페인의 바스크 지방 출신의 항해사. 여덟 남매 중 아들로 태어났다.

곤살로 데 코르도바 밑에서 제 2차 이탈리아 전쟁에 참전했으며, 병사들을 수송하는 일을 맡다가 2년 후에는 아프리카에서 아랍인들과 전쟁 중이던 스페인의 병사들과 군수품을 수송했고 또다시 1년 후에는 200톤을 수송할 수 있는 함선의 선주이자 선장이 되었다.

1509년에 추기경이자 톨레도의 대주교인 프란시스코 히메네스 데 시스네로스가 조직한 알제 공략에 합류해서 세비야에 정착해 상선의 선장이 되었다.

그러나 제노바의 은행에 대한 부채 상환에 배를 포기하여 스페인의 법을 위반하자 국왕인 카를로스 1세에게 사면을 요청하였지만 그 사면 조건으로 남아메리카 대륙을 돌아서 향로제도를 발견하려는 페르디난드 마젤란의 항해에 협력하는 것을 수락하면서 1519년 마젤란의 항해사로써 참가한다.

그러나 마젤란의 항해 도중에 성과가 없자 1520년 3월 31일에 후안 데 카르타헤나, 루이스 데 멘도사, 가스파르 데 케사다와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되었다. 선상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 중에서 마젤란에게 유일하게 용서를 받았다.

항해 도중에 필리핀 세부의 막탄 섬에서 마젤란이 원주민들의 공격을 받고 전사하자 지도자가 두 차례 바뀌었으며, 필리핀을 떠나 북 보르네오의 브루네이에 들렀을 때 주앙 카르발류를 지도자직에서 끌어내리고 빅토리아 호의 선장이 되었다.

도중에 몰루카 제도(향료 제도)에서 트리니다드호와 빅토리아 호에 막대한 양의 향료를 적재하고 목적지인 몰루카 제도에 상륙해 대량의 향신료를 싣고 귀향길에 오르려는 순간에 마젤란 함대의 기함이었던 트리니다드의 함체가 파손되어 항해를 하지 못하게 되자 빅토리아 호만을 스페인으로 먼저 출발하도록 하면서 엘카노가 총사령관이 되었다.

그러나 동남아시아의 수많은 섬들이 포르투갈의 영역이라 기항이 금지당하는 등 가는 곳마다 향료와 금을 줘야 했고 또한 트리니다드 호가 폭풍우를 만나 대열에 이탈하여 포르투갈에 나포되는 등 어려운 상황을 겪어 다섯 척의 배에서 오로지 빅토리아 한 척만 이끌게 되었다.

또한 인도양을 횡단해 남아프리카을 지나 서아프리카의 대서양 연안으로 진입하지만 포르투갈 군함의 공격으로 26톤의 향료를 넘겨주고 통과하며 아프리카에서 식량이 떨어지는 고난을 겪으며 출발 당시 270명인 선원이 18명만 본국으로 귀환했다고 한다.

1522년 9월 6일에 출항을 시작했던 산루카르데바라메다에 도착하여 죽은 마젤란을 대신하여 세계일주에 성공했다. 엘카노는 세비야에서 카를로스 1세에게 남아메리카를 돌아서 향료제도로 가는 항로가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했으며, 편지를 통해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면서 고생한 함대원들의 향료를 세금으로 바치게 하지 말아달라는 요청을 했다.

마젤란이 어떻게 죽었는지 설명하지 않았고 선상 반란, 선원들이 방탕하게 보낸 것이나 이국 여인들과의 섹스 파티 등을 한 것에 대해서는 감추었는데, 생존자들에 대해 반역, 불충에 대한 의혹, 항해일지를 꾸준히 쓰지 않는 이유에 대해 추궁받자 엘카노는 마젤란에게 죄를 씌우려고 했지만 안토니오 피가페타의 일기, 프란시스코 알보의 항해일지 등 상반된 증거들이 나오자 마젤란이 막탄 섬의 원주민들에게 죽었다고 사실을 밝혀 해명했다.

이후에는 17명의 선원들과 함께 많은 사람들의 사람들의 질투와 시기, 모함을 받았다고 한다.

1525년에 가르시아 데 호프레 로아이사가 이끄는 7척의 선단에 항해사로써 몰루카 제도(향로 제도)로 가는 탐험에 참여하였지만 1526년 8월 4일에 태평양에서 영양실조로 사망하였다.


3. 사후[편집]


스페인 해군에는 그의 이름을 딴 사관생도 훈련용 범선 '후안 세바스티안 데 엘카노' 함이 있다.


4. 2차 창작물에서[편집]



4.1. 대항해시대 3[편집]


NPC 항해사로 등장한다.

4.2.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편집]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 나오는 세계일주 이벤트의 메인 악역으로 나온다.

실제 역사와 다르게 여기에서는 마젤란의 세계일주의 업적을 축소시켜 보고하여 그 명예와 부의 영광을 자신이 다 가져가는 악역으로 등장한다. 원래는 마젤란의 두 번째 아들[스포일러로]에게 가야 할 마젤란의 수익 20%를 본인이 "고생도 못해본 젖먹이에게 이 피땀흘려 얻은 돈을 줄 수 있겠냐" 면서 삭제해버렸고 이에 마젤란의 이름은 서서히 잊혀가는 중이었다.[2]

그래서 딸과 사위를 모두 잃어버린 채 절망하던 마젤란의 장인 디에고 바르보사는 때마침 엘카노의 세계일주를 기념하기 위해 열린 서컴라이너 항해에서 세계일주를 하는 겸 마닐라에서 안토니오 피가페타의 수기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주고, 그 수기를 찾아내어 엘카노의 보고가 왜곡된 것을 밝혀내어 첫 세계일주자라는 명예를 마젤란에게 회복시켜주는 것이 세계일주 퀘스트의 주된 내용이다.

스토리를 진행하다보면 밝혀지는 내용은 아예 더 가관인데, 산안토니오 항에서 벌였던 세 척의 반란의 주동자가 엘카노였으나 마젤란은 그에게 자비를 베풀었다는 내용이 나오는 한편, 심지어 마젤란을 죽인 것은 엘카노였다는 암시가 피가페타의 수기를 통해 나온다. 마젤란이 막탄 섬에서 전투를 벌이던 도중에 결국 쓰러졌는데 정작 사망의 주요 원인이 된 독화살은 라프라프 쪽에서 날아온 게 아니었고, 마젤란이 화살에 적중당할 때 엘카노가 입꼬리를 올리는 장면을 보았다고. 그리고 피가페타는 이 때부터 엘카노가 다른 마음을 품었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그렇다면 자신의 수기조차도 의심을 받을 게 뻔하다면서 브루나이에 감춰두고 그 열쇠를 마젤란이 가지고 있던 묵주로 했다.

이후 플레이어를 비롯한 여러 항해자가 세계일주에 참여한 뒤 바르보사가 그 항해자들에게 피가페타의 수기를 찾아달라는 것을 의뢰한 것을 알고는 바르보사를 잡아가둬 심문하면서 그 수기를 지닌 항해자, 즉 플레이어를 암살하기 위해 자신의 사병을 해적으로 위장시켜 공격하게 한다. 즉 엘레나의 무한 민폐의 진짜 원인은 이 녀석.

이후 모든 사병을 몇 차례씩 총동원하기도 하고 모잠비크 지역에서 몰래 식량창고에 썩은 고기를 납입시켜 식량을 썩게 만드는 등의 플레이어가 항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유럽에 오는 것을 막으려고 했지만 결국 상납품과 태양의 부적에 다 털리는 바람에[3] 플레이어가 유럽으로 오는 것을 막지 못했던 엘카노는 자신의 부하들을 나무라면서 최후의 수단으로 왕궁에서 열리는 축하회에 참석, 플레이어의 축배에 독을 타서 수기의 존재가 밝혀지기 전에 살해하려 한다. 하지만 불만을 품은[4] 자신의 부하들이 몰래 바르보사를 풀어버려 모든 진실과 수기의 존재를 밝힌 뒤 술에 독이 탔다는 사실을 밝혀 엘카노는 실각된다.

이후 엘카노는 자신의 위신을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 위에도 써 있는 로아이사의 일주에 참여하게 되지만, 이후 폭풍에 의해 실종되었고 본국에서도 흑역사로 치부하게 되면서 엘카노에 대한 모든 흔적은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보면 알겠지만 엘카노가 저승에서 대항해시대 온라인을 해봤다면 코에이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해도 이상하지 않을 스토리. 과거 한국어 위키백과에서는 이 게임의 내용 때문에 진짜로 엘카노가 마젤란의 공적을 축소해버린 줄 알고 잘못된 사실이 오랫동안 서술되어있기도 했다. 엘카노가 마젤란에 대한 기록을 왜곡하려고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마젤란의 공적 그 자체가 아니라 상술했듯이 항해 중에 일어난 일을 마젤란에게 뒤집어씌우려고 시도한 것이 전부였다. 실제 역사에서는 마젤란의 수익을 상속받을 수 있는 인물이 없어서 이런 짓을 벌일 이유 자체가 없었기에 그렇게 된 것이긴 하지만.

4.3. 언차티드(영화)[편집]


영화 언차티드에서 그와 세계일주를 마친 17명의 선원들이 숨겨놓은 보물을 주인공인 네이트와 설리가 찾으러 다니는 것이 주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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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el Cano라고 표기하기도 한다.[스포일러로] 알려진 딸이다. 딸의 정체는 엘레나.[2] 작중에서 동남아시아의 현지인들은 마젤란을 칭찬하며 "마젤란은 틀림없이 유럽에서도 유명하게 이름을 떨쳤을 것이다."라고 말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엘레나의 대답이 나온 뒤에야 모든 사람은 이상함을 눈치채기 시작한다.[3] 세계일주에서 전투 지역을 회피하는 등의 꼼수를 쓰지 않고 정직하게 마젤란의 경로를 따라가면 총 6번의 전투를 펼치는데, 그 중 5번이 엘카노가 보낸 사병이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는데 엘레나가 해적에게 습격당해서 구출해야 하는 나머지 1번의 전투는 스킵이 불가능해서 태양의 부적으로 태워야 하지만 엘카노의 병사들은 어째서인지 임무를 받고 온 군인인데도 토박이해적용 상납품이 먹히며 심지어 칙명지역이 아닌 곳에서는 정전 협정서까지 받는다. 물론 게임적 허용이겠지만 목숨을 걸고 막기 위한 전투에서 상납품이나 정전 협정서가 통하는 건 플레이어에게 실소를 유발하는 부분.[4] 가뜩이나 명령을 따르면서도 일이 잘 안 된다고 아랫사람을 마구잡이로 갈궈대던 엘카노의 인간성을 고깝게 보던 부하들이 바르보사를 몰래 풀어버려 엘카노를 배반했던 것. 이 때 부하들의 말들이 참 일품인데, 엘카노의 추궁에 말을 더듬는 척 하더니 체포되기 직전에 "그 편이 나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라고 하고, 끌려나가는 엘카노를 보며 "당신이 늘 하던 수법이잖아... 배신은..." 이라고 중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