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슨 오니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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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lison Shoji Onizuka, 鬼塚承次(おにづか・しょうじ) (1946년 6월 24일 ~ 1986년 1월 28일)

1. 개요
2. 생애
3. 사후


1. 개요[편집]


일본계 미국인 군인, 우주비행사


2. 생애[편집]


하와이 빅 아일랜드의 케알라케콰에서 태어난 일본계 미국인으로 일본계 이민 2세이다. 콜로라도 대학교를 졸업하고 ROTC 과정을 통해 미합중국 공군 장교로 임관한 뒤 테스트 파일럿 스쿨에서 신형 항공기 개발을 담당하는 엔지니어로 복무하던 도중 NASA아폴로 계획 이후 첫 우주 비행사 모집에 지원하였고 동양계로는 처음으로 우주비행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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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미 공군의 MSE 프로그램으로 뽑힌 페이로드 스페셜리스트 게리 페이튼과 NASA 미션 스페셜리스트 제임스 버클리, 오니즈카.
아래는 조종사 로렌 슈라이버, 미션 사령관 켄 매팅리.

1985년 1월 24일 STS-51-C 디스커버리 미션에서 처음 우주 임무를 수행하여 아시아계 미국인으로는 최초로 우주에 올라간 인물이 되었다. 이 미션은 인류의 우주개발이 시작된 이래 정확히 100번째인 지구 궤도 비행 미션이어서 나름대로 상징성이 있는 미션이었다. 그 외에 펜타곤이 위탁한 기밀 위성을 궤도에 전개한 최초의 미션이기도 했다. 이 미션 자체가 아무래도 펜타곤의 기밀 미션이기 때문에 알려진 내용은 좀 적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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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오니즈카, 크리스타 매콜리프[1], 그렉 자비스[2], 주디스 레스닉
아래는 마이클 스미스(조종사), 딕 스코비(사령관), 론 맥네어

이후 정확히 1년 4일 후 발사되는 STS-51-L 미션에 투입되었으나 해당 미션이 발사 도중 공중폭발하는 참사 속에서 동료 6인과 함께 희생되었다. 사건의 진상조사에서 오니즈카의 첫 미션이었던 STS-51-C 당시에도 챌린저 폭발 사건의 주요 원인인 O링 결함이 드러나 폭발하기 직전까지 갔던 것이 참사의 진상규명 과정에서 대대적으로 알려지며 더욱 큰 충격을 주었다.


3. 사후[편집]


이후 고향인 하와이 주 호놀룰루에 묘소가 마련되었고, 중령이었던 공군 계급이 대령으로 1계급 특진되었으며 의회 우주 명예 훈장을 추서받았다.

캘리포니아 서니베일(Sunnyvale)의 공군기지가 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고[3], 그의 이름을 딴 우주센터가 하와이 코나 국제공항에 있으며, 그의 이름을 딴 국제 천문 센터가 하와이 마우나케아 관측소에 있다. 하와이주의 여러 대학들에서도 1월 말마다 오니즈카의 첫 우주비행 날짜인 1월 24일 또는 챌린저 참사 날인 1월 28일 전후로 오니즈카를 추모하는 행사를 갖는다. 텍사스 휴스턴의 NASA 존슨 우주 센터에서는 그를 기리며 하와이 셔츠를 입는다고 한다.

스타트렉 넥스트 제너레이션에서도 그의 이름을 딴 셔틀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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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주 원격 수업 프로젝트인 Teacher in Space 프로그램에서 뽑힌 교사[2] TDRS 위성의 궤도 전개를 위해 휴즈 항공에서 NASA로 파견된 페이로드 스페셜리스트[3] 지금은 반덴버그 공군기지 소속으로 이관되었지만 그의 이름은 여전히 기지에 남겨지며 추모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