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 노동 인민 코뮌

덤프버전 :




에스토니아 노동 인민 코뮌
Eesti Töörahva Kommuun
Эстляндская трудовая коммуна

파일:에스토니아 노동 인민 코뮌 국기.svg
국기
1918년 11월 29일 ~ 1919년 6월 5일
수도
나르바
정치체제
사회주의
언어
에스토니아어
통화
소련 루블
ISO 3166
EE
역사
• 건국: 1918년 11월 29일
• 멸망: 1919년 6월 5일

지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Estonian_SSR_map.svg.png
파일:낫과 망치.svg

1. 개요
2. 설립과 멸망
3. 러시아 SFSR의 인정과 해체
4. 대학살



1. 개요[편집]


붉은 군대발트 연합 공국을 멸망시키고 나르바에 세운 코뮌.

2. 설립과 멸망[편집]


1918년 11월 29일 붉은 군대의 지원으로 나르바코뮌이 세워졌다. 그리고 코뮌은 교회, 국유화된 산업시설, 은행을 폐쇄하고 임시 정부의 대표자들을 체포했다.

붉은 군대의 공세는 처음에는 성공적이었고 결국 탈린에서 34km 떨어진 곳까지 도달했다. 그러나 이듬해 1월 7일 요한 라이도너가 이끄는 에스토니아 인민군이 반격을 시작해 결국 붉은 군대에스토니아에서 몰아냈고, 동년 5월 17일 소수 잔당들이 프스코프,루가, 스타라야루사에서 망명 정부를 주장하면서 코뮌은 멸망했다.

3. 러시아 SFSR의 인정과 해체[편집]


1918년 12월 7일 당시 에스토니아 코뮌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국가는 러시아 SFSR가 유일했다. 그러나 1920년 에스토니아 독립 전쟁을 종결시킨 타르투 조약에서 러시아가 에스토니아의 독립을 인정함에 따라 해체되었다.

4. 대학살[편집]


1918년 11월부터 1919년 1월까지 에스토니아 코뮌은 공포정치를 펼쳤다. 1919년 12월 타르투에서 상당수의 사람들이 체포되었고, 1919년 1월 9일 강에서 다수의 독일인 부동산 소유자들이 처형되었으며, 루가 근처에 강제 수용소가 세워졌다. 그리고 타르투에서 상당수의 사람들이 체포되기 직전 공산주의자들은 마을 은행 지하에서 성직자들과 다른 죄수들을 처형했고, 약 500명의 사람들이 학살 당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9 05:10:02에 나무위키 에스토니아 노동 인민 코뮌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