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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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양태환(梁太煥)
생몰
1885년 ~ ?
출생지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면 언본리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양태환은 1885년생이며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면 언본리 출신이다. 그는 은선암(隱仙岩)의 승려로, 1919년 3월 23일 임실군 둔남면 오수리에서 이기송(李起松)·오병용·이만의(李萬儀) 등이 주동하여 전개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했다. 이때 경찰주재소에서 출동한 일제 경찰이 이기송을 강제로 체포하여 주재소로 연행하자, 그는 8백명의 군중과 함께 주재소로 달려가 이기송의 석방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에 경찰이 이기송을 석방하자, 그는 2천 명으로 불어난 군중과 함께 장터로 돌아와서 일본인이 경영하는 상점을 파괴하고 면사무소로 행진했다. 이후 면사무소에 도착하여 면장·면서기들을 끌어내어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게 한 후, 다시 주재소의 유치장을 부수고 구금되어 있던 사람들을 석방하였다. 이때 한국인 순사보 고택기(高宅基)가 총을 겨누고 위협하자, 그의 총을 빼앗고 주재소 밖으로 끌어내어 독립만세를 외치게 하였다. 그러나 그날 저녁 남원 헌병분대와 임실경찰서에서 급보를 받고 응원 출동한 일본군의 무차별 발포로 많은 사상자를 낸 채 해산했다.

이후 일제의 검속 때 체포되었고, 1919년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양태환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