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제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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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외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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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제10대 외교부장
양제츠
杨洁篪

파일:양제츠_57ef02d58a23bf6_w700_h965.jpg}}}
이름
간체자: 杨洁篪 / 번체자: 楊潔篪 (병음: Yáng Jiéchí)
한국 한자음: 양결지
국적
파일:중국 국기.svg 중화인민공화국
출생
1950년 5월 1일 (73세)
중화인민공화국 상하이시
학력
바스 대학교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난징대학교
종교
무종교 (무신론)
정당


현직
공산당 정치국 위원 겸 중앙외사공작위원회 주임
주요 이력
주미국 중화인민공화국 대사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 부부장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장
1. 개요
2. 생애
3. 행보
4. 주요 경력




1. 개요[편집]


현 중국공산당 중앙외사공작위원회 주임.


2. 생애[편집]


1950년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상하이국제학교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고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1968년부터 공장 노동자로 일하다 외교부가 뽑은 국비장학생에 포함돼 1973년 영국으로 유학을 가 바스대학과 런던정경대학교에서 공부해 학사를 땄다. 이 후 난징대학에서 세계사 박사를, 난카이대학교에서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1983년부터 중국 외무부에서 외교관으로 경력을 시작한다. 미국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한 적도 있고,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주미 중국대사직을 지냈다. 2007년에는 외교부장으로 발탁되며 외교관으로서 승승장구하였다. 외교부장직 이후에는 2013년 국무원 국무위원으로 선출되었고, 2017년에는 당 외사공작위 판공실 주임 겸 정치국원으로 선출되었다. 외교관의 지위가 낮은[1] 중국 공산당에서 외교관이 정치국에 진출한 것은 1990년 첸지천 전 부총리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3. 행보[편집]


시진핑 시대에 들어서 중앙외사공작위원회 주임(우리나라로 치면 국가안보실장겸 외교안보 특별보좌관)에 발탁되었다. 이곳은 중국 외교의 사령탑과도 같은 곳이라, 시진핑 시대의 중국 외교의 틀이 결정되는 곳이다. 그만큼 외교 분야에서 최선두 분야에 서있는 셈이다. 시진핑 시대의 외교는 왕치산-양제츠-왕이로 설명된다.

2020년 8월 22일에는 방한하여, 서훈 국가안보실장과 부산에서 회담을 가졌다.

인상을 보면 양제츠가 왕이보다 온건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성격과 인상이 다르다. 물론 자국의 이익의 외교정책에는 서로간에 대동소이하지만 업무처리를 보면 왕이는 인상이 날카롭고 예민한 인상이라 외교정책을 강경하게 처리하고, 양제츠는 인상이 부드러우면서 신사적인 인상이라 온건하게 외교업무를 처리한다. 그러나 2021년 알래스카 미국-중국 고위급 외교회담때 앵커리지에서 미국측인 토니 블링컨 장관,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과 미중관계에서 설전을 주고 받았을 때 무섭게 돌변하여 격론을 주고받았다. 그걸 보던 기자들이나 언론들은 '저 사람이 양제츠 맞나?' 라고 놀랄 정도였다.

나이가 고령인지라 2022년 양회를 기점으로 은퇴하였으며, 후임은 왕이 외교부장이다.

4. 주요 경력[편집]


중화인민공화국 역대 외교부장
파일:중국 국장.svg
10대

11대

12대
리자오싱
(2001~2007)

양제츠
(2007~2013)

왕이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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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 외교관들은 결정권 없이 당중앙의 입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타국에서는 외무장관이면 영향력이 2-3위, 못해도 5위 안에 들어가는 거물이지만 중국은 외교책임자가 상무위원은커녕 정원 25명의 정치국의 일원조차도 아니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