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모(레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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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모
梁正模 | Yang Jungmo


파일:하계올림픽양정모4.png

출생
1953년 1월 22일 (71세)
경상남도 부산시(現 부산광역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본관
남원 양씨
학력
남일국민학교 (졸업)[1]
덕원중학교 (졸업)
건국고등학교 (졸업)
동아대학교 (체육학 /학사)
종목
레슬링
체급
자유형 -62kg
신체
166cm, 62kg
1. 개요
2. 선수 경력
3. 은퇴 이후
4. 수상 기록
5. 기타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레슬링 선수이며, 대한민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1호 체육요원이다.[2] 일제강점기나 북한, 혼혈을 포함한 한민족 중에서는 5번째 또는 6번째다.[3]

2. 선수 경력[편집]


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레슬링 자유형 62kg급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대한민국에서 8.15 광복 이후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안겼다. 1973년 병역특례(現 예술체육요원에 해당)가 제정된 이후 해당 제도의 수혜를 입은 체육인 가운데 최초로 그 특례를 받았다고 한다.[4] 1976년에 이어 1978 방콕 아시안 게임 레슬링 경기에서도 우승해 2회 연속 금메달을 차지했다.

몬트리올 올림픽 당시 최후의 세 선수가 물고 물렸지만 양정모가 벌점이 가장 적어서 1위가 되었다. 당시 레슬링은 리그전으로 하되 승패의 유형에 따라 벌점을 받고[5] 리그 도중 벌점이 일정 수준 누적되면 탈락하는 방식이다. 이러면서 살아남은 선수들끼리 리그를 계속하였다. 생존자가 3명이 되는 순간부터는 다른 선수들과의 경기에서 얻은 벌점은 무시하고, 탈락이 없어지면서 이들끼리 경기에서 얻은 벌점만 계산하여 1, 2, 3위를 결정하는 방식이었다.[6] 양정모와 오이도프와의 경기가 가장 마지막이라서 자기와 나머지 두 생존 선수의 벌점을 고려한 경우의 수 다 따져보고 무리하게 이기려고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마지막 경기에서 패했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경기가 끝나는 순간 1위가 확정됐다.


3. 은퇴 이후[편집]


한국조폐공사 레슬링부 감독으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2012년 대한레슬링협회 회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4. 수상 기록[편집]


올림픽
금메달
1976 몬트리올
-62kg
세계선수권
은메달
1978 멕시코시티
-62kg
동메달
1975 민스크
-62kg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74 테헤란
-62kg
금메달
1978 방콕
-62kg
아시아선수권
동메달
1979 잘란다르
-62kg

5. 기타[편집]


[1] 1998년 광일초등학교로 통합되었다.[2] 이는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정명훈이 1974년에 소련에서 열린 차이콥스키 국제 음악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에서 스타니슬라프 이고린스키와 공동 2위로 입상함에 따라(참고로 당시 피아노 부문 1위는 안드레이 가브릴로프이다.) 예술체육요원 편입 규정을 충족했기 때문. 예술체육요원 은 병무청에서 정한 대회에서 일정 이상의 순위를 거둔 자가 기초군사훈련 수료 이후 해야 할 자대에서의 복무를 생략하는 대신 당사자가 입상한 분야에서 법으로 정해진 기간 동안 활동할 의무를 부여받은 예술요원과 체육요원을 모두 일컫는 말인 만큼, 해당 제도로 혜택을 받은 순서로 따진다면 2번째가 맞다. 물론 체육인 중에서 제일 먼저 예술체육요원 혜택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는 변함이 없다.[3] 북한의 권투 선수 구영조와 같은 날에 우승이 확정되어 5번째인지 6번째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첫 번째는 손기정(일본제국 국적), 두 번째는 새미 리(미국 국적), 세 번째는 리호준(북한 국적), 네 번째는 넬리 킴(소련 국적)이다. 패럴림픽까지 포함하면 1972 하이델베르크 패럴림픽에서 휠체어 탁구 2관왕을 달성한 송신남이 더 빠르다.[4] 앞서 언급한 대로 해당 제도 실행 이후 최초로 수혜를 본 예술&체육인은 피아니스트 정명훈이기 때문에 그는 2호 예술체육요원이다.[5] 폴승이나 큰 점수차 승리를 해야만 안 받으며 판정승도 작게나마 받는다.[6] 생존자가 4명 이상이었다가 여러 명이 같은 라운드에서 탈락하여 2명 이하가 될 때는 직전 탈락자 중 누적 벌점이 적은 순서대로 부활하여 3명을 채웠다. 경우에 따라서는 최후 3인이 결정되는 순간, 이 세 선수가 이미 서로 경기를 해버렸다면 바로 최종 순위가 결정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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