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하

덤프버전 :


梁在廈
1906년 7월 6일 ~ 1966년 3월 19일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일제강점기대한민국의 언론인, 친일반민족행위자, 정치인이다. 본관은 남원(南原)[1], 호는 건초(建初).부인은 무안박씨이다.


2. 생애[편집]


1906년 7월 6일 경상북도 문경군 산북면에서 아버지 양방환(梁昘煥, 1888. 4. 29 ~ 1950. 8. 14)[2]과 어머니 풍양 조씨 조순이(趙順伊, 1884. 7. 29 ~ 1952. 10. 3)[3] 사이의 6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조선일보, 동아일보에서 기자 및 논설위원, 중화민국 베이징 특파원 등으로 활동했다. 1941년 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을 역임했다. 1943년 잡지 춘추에 지원병 제도를 찬양하는 글을 기고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경상북도 문경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일민구락부 조병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6.25 전쟁 중 납북되었다. 이후 평양시 룡성구역 용궁1동 재북인사릉에 안치되었다.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언론/출판 부문,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8 17:50:31에 나무위키 양재하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문양공파-병사공파 29세 재(在) 항렬. 성종홍문관 대제학을 지낸 양성지의 16대손이다.[2] 초명 양세환(梁世煥).[3] 조재정(趙在鼎)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