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히야 이븐 칼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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يحيى بن خالد

(~806)

1. 개요
2. 생애
2.1. 몰락
3. 기타



1. 개요[편집]


아바스 왕조의 바르카미드 가문 출신 재상(와지르)으로 칼리프 무함마드 알 마흐디하룬 알 라시드를 섬긴 명재상이었으나 가문과 함께 몰락한 인물이다.


2. 생애[편집]



2.1. 몰락[편집]


야히야 이븐 칼리드가 무함마드 알 마흐디 치세에 재상으로 선임된 이래, 바르마크 가문은 아바스 왕조 밑에서 여러 고관과 총독을 배출하며 여러 칼리파의 통치를 도왔다. 하룬 역시 그들을 우대했는데, 특히 어릴 때부터 절친한 친구였던 자파르 이븐 야히야는 '술탄'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국정을 진두지휘했다. 그러나 803년, 하룬은 바르마크 가문에 대한 총애를 거뒀다.

이슬람 역사가 알 타바리에 따르면, 고관 야히야 이븐 칼리드가는 노년에 접어들자 은퇴를 결심하고 하룬에게 두 아들 파드힐, 자파르와 함께 메카로 은퇴하게 해달라고 청했다. 하룬은 거절하면서 두 아들 중 누가 그의 뒤를 이을 지 선택하라고 요구했다. 야히야는 맏이였던 파드힐을 선택했지만, 하룬은 자파르가 선택되는 걸 선호했기에 내심 불만을 품었다.

이때 라카의 에미르가 야히야와 그의 가족이 무신론자라고 고발하는 서신을 보냈다. 하룬은 즉위 이래로 무신론자들을 강하게 탄압하는 정책을 밀어붙인 바 있었기에, 이 고발을 접하자 바르마크 가문에 대한 불신을 품었다. 게다가 비슷한 시기에, 과거 788년 하산 이븐 알리의 후손 야히야를 따라 반란을 일으켰다가 체포된 이래 다마스쿠스 감옥에 갇혀 있던 반란군을 자파르가 하룬에게 알리지 않고 석방해버려서 의심을 더욱 샀다.

한편, 그에게는 형 알 하디가 자신을 해치려 하는 걸 막아줬던 아바사라는 누이가 있었다. 하룬은 누이를 자파르 벤 야히야와 결혼시켰지만, 부부관계를 맺는 걸 용인하지 않고 평생 신을 봉사하며 순결을 지키게 했다. 그런데 그녀가 자파르에 의해 곧 임신하자, 그는 몹시 분노했다고 한다. 이븐 칼둔 등 후대 학자들은 알 타바리가 제시한 일화 중 아바사와 자파르의 일은 사실 무근이라고 간주하며, 그가 바르마크 가문의 권세에 두려움을 느끼고 권력을 온전히 장악하기 위해 숙청을 단행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803년, 하룬은 바르마크 가문 일원들과 함께 메카로 순행했다. 그 후 이라크로 돌아오자마자 자파르를 연회장에서 기습적으로 체포한 뒤 곧바로 목을 베어 바그라드로 보냈고, 야히야 이븐 칼리드와 파드힐 무사, 무함마드 등 세 아들을 마저 체포했다. 하룬은 야히야가 보는 앞에서 모든 바르마크 일원들을 처형했고, 야히야는 심한 고문을 받은 끝에 옥중에서 사망했다. 이리하여 40여 년간 강력한 권세를 누리며 아바스 왕조가 이슬람 세계 최강의 제국으로 거듭나는 데 큰 기여를 했던 명문가는 한 순간에 몰락했다.


3. 기타[편집]


천일야화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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