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토타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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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타케루노 미코토
日本武尊


파일:야마토타케루.png

출생
(추정)

72년
사망
(추정)

114년
묘소
미에현 가메야마시 노보노 묘(能褒野墓)?
나라현 고세시 시라토리 능(白鳥陵)?
오사카부 하비키노시 시라토리 능(白鳥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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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야마토 타케루노 미코토
(日本武尊, 倭建命)
별칭
오우스노 미코토(小碓尊, 小碓命)
야마토오구나(日本童男, 倭男具那)
부모
부친 게이코 덴노(景行天皇)
모친 하리마노이나비노오오이라쓰메(播磨稲日大郎姫)
형제
2남 중 장남
배우자
후타지이리히메(両道入姫命)
키비노아나토노타케히메(吉備穴戸武媛)
오토타치바나히메(弟橘媛)
야마시로노쿠쿠마모리히메(山代之玖々麻毛理比売)
후타지히메(布多遅比売)
미야즈히메(宮簀媛)
자녀
주아이 덴노(仲哀天皇)
아시카미노카마미와케 왕(蘆髪蒲見別王)
신사
다케베타이샤(建部大社)
오토리타이샤(大鳥大社) 등

1. 개요
2. 일대기
2.1. 각종 정벌기
2.2. 사랑하는 이를 잃다
2.3. 신을 화나게 하다
2.4. 백조가 되어 돌아가다
3. 대중문화에서의 등장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전설의 영웅.

근대 일본 제국 시기, 엔화의 도안 인물이기도 했다.

제12대 케이코 덴노의 아들이자 《고사기》 등에 따르면 제14대 주아이 덴노의 아버지였다. 동방원정을 비롯해 무수한 무훈을 세웠다고 전한다.

기록마다 행적이 들쭉날쭉이고, 그 성격 또한 일관되지 않는지라, '야마토타케루'라는 이름이 그저 야마토'국'에서 가장 강한 전사'들'에게 부여되는 호칭일 뿐이고, 후대에 이들의 무용담들이 한 인물의 행적으로 묶여져 기록되었다는 설이 있다. 한국으로 치면 이름이 '삼한제일인'인 셈이다.[1]

일본서기》에는 '일본무존'(日本武尊), 《고사기》에는 '왜건명'(倭建命)으로 나와 이름의 한자 표기가 다르다. 발음은 동일하게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やまとたけるのみこと)이다. 그 외의 기록된 이름으로는 '야마토오구나'(日本童男 · 倭男具那)와 '오우스노미코토'(小碓命)가 있다.

아래의 일대기는 야마토타케루를 신으로 모시는 타케베타이샤(建部大社)의 소개문에 기반한 내용으로 기재한다.


2. 일대기[편집]



2.1. 각종 정벌기[편집]



2.1.1. 구마소(熊襲)[편집]


파일: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구마소.jpg

게이코 덴노의 명령[2]으로 오랫동안 야마토 정권에 반항하고 있었던 구마소를 평정하러 규슈에 파견된 야마토타케루는 구마소의 영역이 미나미큐슈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수장의 집 역시 쉽게 공략할 수 없도록 요새화되어 있어서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신축 낙성연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계략을 짰다.

야마토타케루는 미녀변장하고 잔치에 참석했다. 구마소의 수장은 야마토타케루의 미모에 반해 접근했고, 야마토타케루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칼을 뽑아 구마소 수장과 그 형제를 암살하는 데 성공했다. 구마소 형제는

"세계에서 제일 용감한 자신들을 죽인 타케루야말로 천하제일"[3]

이라 말하며 사망했다.


2.1.2. 이즈모(出雲)[편집]


구마소를 평정한 후 여러 지방의 반항 세력을 평정한 야마토타케루는 끈질기게 야마토 정권에 반기를 드는 이즈모 지방에 도착했다.

야마토타케루는 이즈모의 수장을 암살하기 위해, 먼저 그에게 접근해서 친구가 되었다. 긴 시간, 이즈모의 수장과 친하게 지내며 우애를 다진 야마토타케루는 어느 날 이즈모의 수장에게 수영을 하자고 한 후, 먼저 물에서 나와서 이즈모 수장의 칼을 목검으로 바꿔치기했다.

이즈모의 수장도 물에서 나오자, 야마토타케루는 검술 대결을 하자고 제안했고 아무런 의심도 없이 야마토타케루를 믿고 있었던 이즈모의 수장은 흔쾌히 승락하며 칼을 뽑았으나, 칼은 이미 목검으로 바꿔치기 된 상태였다. 이 때문에 야마토타케루는 쉽게 이즈모의 수장을 죽일 수 있었다.


2.1.3. 사가미(相模)[편집]


파일: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야마토히메-쿠사나기 검.jpg

각종 일화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일화는 사가미 정벌이다. 게이코 덴노는 서국정벌에서 돌아온 야마토타케루가 쉴 틈도 없이 그에게 이번에는 동국정벌을 명령했다. 정벌에 앞서 야마토타케루는 아마테라스 여신을 모시는 이세 신궁에 있는 숙모 야마토히메노미코토를 찾아갔다.

야마토히메노미코토는 폭풍과 바다의 신 스사노오가 괴물 야마타노오로치를 토벌하고 얻은 삼종신기아메노무라쿠모노츠루기와 부싯돌이 든 작은 주머니를 야마토타케루에게 주며 위급한 일이 생기면 주머니를 열라고 조언했다. 숙모의 선물을 받고 이세 신궁을 떠난 야마토타케루는 동쪽으로 향하다가 오와리 국에서 미야즈히메라는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에 빠져 정벌을 마치고 야마토로 돌아갈 때, 다시 찾아오겠다며 결혼을 약속하고 더욱 더 동쪽으로 향하여 사가미에 도착했다.

평소에 계략으로 유명했던 야마토타케루였으나 이번에는 오히려 사가미 호족의 계략에 빠져 초목이 우거진 마른 들판으로 유인되었다. 사가미 호족은 야마토타케루를 태워 죽이기 위해 사방에서 불을 질렀고, 야마토타케루는 타 죽을 위기에 처했다. 다급해진 야마토타케루는 숙모 야마토히메가 준 주머니를 열었다. 야마토타케루는 천총운검을 휘두르며 주위의 풀을 베고 부싯돌로 맞불을 놓아 위기를 모면했다.[4]

구사일생으로 불길에서 살아남은 야마토타케루는 사가미 호족을 멸망시키고, 사가미 국 평정에 성공했다.


2.2. 사랑하는 이를 잃다[편집]


파일:오토타치바나히메 파도.jpg

야마토타케루는 서국을 정벌하고 다시 동쪽으로 건너가려 했으나 바다의 신[5]이 분노해 파도가 거칠어지고 배는 가라앉을 뻔했다.

이때 그를 따라온 아내, 오토타치바나히메

"사가미국에서 들판이 불탔을 때, 불길 속에서 당신은 절 지켜주었어요. 당신에게 도움이 된다면 죽어도 후회는 없습니다."

라고 말하고 거친 파도에 몸을 던졌다. 그러자 파도는 진정되었고, 야마토타케루는 무사히 건너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후 바닷가에는 그녀가 쓰던 빗이 떠내려와 있었고, 야마토타케루는 울면서 그 빗으로 그녀의 무덤을 만들었다. 그리고 돌아가기 위해 아시가라 산 정상에 도착했을 때, 비탄에 잠기어

"나의 아내여"

라고 호소했다. 그래서 이 근방을 아즈마(あずま)라고 했다.


2.3. 신을 화나게 하다[편집]


파일: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멧돼지.jpg

서국과 동국을 평정하고 오와리 국에 돌아온 야마토타케루는 이전에 결혼을 약속했던 미야즈히메와 혼인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그를 위해 몸바쳐 죽은 아내는 신경쓰지 말자

이후 이부키 산에 나쁜 신이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자 이부키 산의 신을 토벌하기로 했다. 야마토타케루는 아내인 미야즈히메에게 아마노무라쿠모노츠루기을 맡기고, 맨손으로 이부키 산에 올라갔다. [산을 오르던 야마토타케루는 하얀 멧돼지를 보고 신의 사자라고 여겨서 지금은 죽이지 않고 나중에 산에서 내려갈 때 죽이겠다고 말하며 무시했지만, 멧돼지는 신의 사자가 아니라 화신이었다. 결국 신을 무시한 댓가로 우박이 떨어져 길을 가로막게 되었고, 우박을 맞아 체력을 심하게 소모하게 된 야마토타케루는 들판을 지날 때

"지금은 걷지도 못하고, 다리가 삐걱거린다."

라며 한탄했다. 그후 이 들판은 타기노(たぎの)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가 지팡이를 짚고 걸었던 곳을 '지팡이 고개'라고 하고, 어느 마을에 도착하자

"다리가 3중으로 구부러져 단단한 떡 같다."

라고 한탄한 것으로부터 미에(3중)라고 불리게 되었다. 결국 그는 고향 야마토을 그리워하며 노래를 부르다가 힘이 다해 쓰러졌다.


2.4. 백조가 되어 돌아가다[편집]


파일:日本 武尊.jpg

부황 케이코 덴노와 아내 미야즈히메, 그리고 그의 아이들은 야마토타케루의 죽음을 비통해하며 장례를 치렀고, 그의 영혼은 백조가 되어 마침내 그리운 고향으로 날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그 백조가 날다가 머물렀던 카와치 국에 무덤을 만들어 그곳을 백조의 능이라고 불렀다.

영웅 야마토타케루는 사후에 신격화되어서, 백조로 변한 그가 마지막으로 섰다는 땅 위에는 오토리타이샤가 지어졌고, 지금도 주요 제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오토리타이샤 외에도 야마토타케루 신앙의 신사들이 일본 열도 전역에 있으며, 대부분 야마토타케루의 설화와 관련되어 있는 곳들이다.

鷲神社(오토리 신사) 중 도쿄 아사쿠사에 있는 것이 유명하며 전국의 오토리 신사에서는 11월 중의 酉の日(토리노히, 야마토 다케루가 죽었다고 전해지는 날)에 酉の市(토리노이치)와 마츠리를 열고 있으며 토리노이치에서 파는 熊の手(쿠마노테)라는 갈퀴모양 縁起物는 복을 긁어모아주는 효험이 있다고 한다.

3. 대중문화에서의 등장[편집]



  • <노을빛 세계에서 너와 노래를…>에서 신성한 백성 중 한 명으로 나오며 인형처럼 귀여운 외모에 동•식물과 대화할 수 있는 어린 아이로 모두에게 사랑받는 아이돌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상의 모습일 뿐 실제 나이는 최소 수천 살이다.[6]






  • 영화 <야마토타케루>: 1994년 토호에서 제작한 영화이다. 참고로 아베 히로시가 악역인 츠쿠요미로 출연했다. <고지라 시리즈>와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7]

  • 야스히코 요시카즈의 만화 《야마토 타케루》가 있다. 이야기 자체는 타케베대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작가의 성향 때문인지 신화적인 요소나 영웅적인 모습보단 인간적인 면모를 더 보여준다. 이 때문에 사가미 국 정벌 및 아내를 잃은 후의 내용까지 다뤘고, 신 때문에 죽은 내용은 다뤄지지 않았다. 원전과 차이가 있다면 이미 아내와 자식이 있는 상태였는데 서국에 가있는 동안 다른 여자 사이에서 자식을 만들었다. 이 때문에 바다의 폭풍이 이 불륜의 탓이라 생각하여 그 여자가 스스로 바다에 빠져죽었다. 구마소에서의 미녀로 분장했다는 일화 때문인지 미남형으로 그려졌는데, 야스히코 요시카츠 작가의 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아무로 레이 스타일의 디자인이다.



  • 이우혁의 《퇴마록》에서는 백제인이었고 실제 이름은 닭우라는 역사왜곡인 설정으로 나왔다.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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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12~제14대 천황들이 가공 인물이거나 기록 윤색과 곡필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야마토타케루 역시 4~7세기 무렵의 실존 인물을 토대로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이라는 설이 있다. 애초에 어느 문화권의 영웅(특히 신화 시대의 영웅들)이든 후대에 올수록 전승이 덧붙혀지는 것은 당연하다.[2] 당시 게이코 덴노는 아들의 성격을 두려워하여 야마토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위해 위험한 임무를 명령했다고 한다.[3] 이것이 '야마토타케루노미코토'라는 이름의 시초로 여겨진다.[4] 그리하여 이 지역을 야이즈(やいづ), 천총운검을 쿠사나기노츠루기(くさなぎのつるぎ), 한국어 발음으로는 초치검으로 불렀다고 한다.[5] 흔히 바다의 신이라면 스사노오인데 야마토타케루가 사용한 아메노무라쿠모노츠루기를 스사노오가 손에 넣은 검이라는 점을 보면 단순한 우연이 아닌 그의 운명이라고 볼 수도 있다.[6] 수천 년 전에 있었던 큰 전쟁에서 친구인 오로치를 구했지만 그로 인해 오로치를 잊어버리고 3일마다 특정 기억을 잃는 처지가 되었다. 어쩌면 아이의 모습도 진짜 아이인게 아니라 전쟁으로 인해 멈췄을 수도 있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당사자는 그저 해맑을 뿐.[7] 작품 외적인 의미에서이다. 자세한 사항은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