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세이 안토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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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소련 국장.svg
소비에트 연방군 총참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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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농적군 사령관
Штаб Рабоче-Крестьянской Красной Армии
초대
제2대
제3대
파벨 레베데프
미하일 프룬제
세르게이 카메네프
제4대
제5대
제6대
미하일 투하쳅스키
보리스 샤포시니코프
블라디미르 트리안다필로프
제7대
알렉산드르 예고로프
노농적군 총참모장
Генеральный штаб Рабоче-Крестьянской Красной Армии
제8대
제9대
제10대
보리스 샤포시니코프
키릴 메레츠코프
게오르기 주코프
제11대
제12대
제13대
보리스 샤포시니코프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
알렉세이 안토노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군 총참모장
Генеральный штаб Вооружённых Сил Союза Советских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их Республик
제14대
제15대
제16대
제17대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
세르게이 슈테멘코
바실리 소콜롭스키
마트베이 자하로프
제18대
제19대
제20대
제21대
세르게이 비류조프
마트베이 자하로프
빅토르 쿨리코프
니콜라이 오가르코프
제22대
제23대
제24대
제25대
세르게이 아흐로메예프
미하일 모이셰
블라디미르 로보프
빅토르 삼소노프


명목상 노농적군 사령관부터 총참모장으로 칭할 수 있음.





알렉세이 안토노프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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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 연방 제13대 노농적군 총참모장
알렉세이 인노켄티예비치 안토노프
Алексей Иннокентьевич Антонов
Aleksei Innokentievich Antonov


파일:알렉세이 안토노프 대장(신형 예복).jpg

출생
1896년 9월 9일
러시아 제국 그로드노현 그로드노
(現 벨라루스 흐로드나주 흐로드나)
사망
1962년 6월 16일 (향년 65세)
소련 러시아 SFSR 모스크바
(現 러시아 중앙 연방관구 모스크바 연방시)
묘소
크렘린 벽 묘지
재임기간
제13대 노농적군 총참모장
1945년 2월 ~ 1946년 3월
초대 WTO 합동군 총참모장
1955년 2월 ~ 196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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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아버지 인노켄티 알렉세예비치 안토노프
어머니 테레사 크사베리예브나 안토노바
배우자
마리아 드미트리예브나 안토노바 (사별)
올가 바실리예브나 안토노바[1]
학력
파블롭스크 군사학교
복무
러시아 제국 육군
1916년 ~ 1918년
소비에트 지상군
1921년 ~ 1962년
최종 계급
소위 (러시아 제국 육군)
대장 (소비에트 지상군)
주요 참전
적백내전
대조국전쟁
소련-일본 전쟁
주요 서훈
레닌훈장 (3회)
수보로프 훈장 1등급 (2회)
적기훈장 (4회)
전승훈장
쿠투조프 훈장 1등급



파일:알렉세이 안토노프(컬러).jpg

초상화

1. 개요
2. 생애
3. 진급 이력
4. 기타



1. 개요[편집]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소련군 장군.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소련군의 부참모장으로 근무하여 작전 입안과 실행 부분에서 소련의 승리에 공헌했다.


2. 생애[편집]


포병 장교의 아들로 태어난 안토노프는 프룬제 군사대학보로실로프 참모대학을 나온 전형적인 엘리트 장교였다. 대숙청으로 인해 상관들이 죄다 목이 날아가자 안토노프는 본의 아니게 쾌속승진을 거듭하게 되었다.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안토노프는 소련 남부전선군과 남서전선군의 참모로 활동하다가 1942년에 부참모장에 임명되었다. 안토노프는 총참모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 다름아닌 자기 목을 걸고이오시프 스탈린을 달래고 설득하는 일이었다.

스탈린은 총군부사령 게오르기 주코프와 충돌이 잦았으며, 주코프에게 무척 기분이 상해 자신의 계획을 관철시키려 하거나 꼭 필요한 작전도 재가해 주지 않으려는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대개 총참모장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가 스탈린과 주코프의 갈등을 조율하고 스탈린을 설득했으나, 바실렙스키의 설득도 먹히지 않을 정도로 스탈린이 고집불통으로 나올 때 주코프와 바실렙스키는 안토노프를 투입했다. 안토노프는 교묘한 말솜씨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설득력 있는 발언으로 뿔나서 고집을 부리는 스탈린의 마음을 풀어줘서 결국 스탈린이 주코프의 의견에 수긍하도록 만드는데 언제나 성공했다.

이는 주코프와 바실렙스키가 안토노프를 "총참모부에 절대 없어서는 안될 사람."으로 평가받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스탈린이 개인적으로 안토노프를 총애하도록 만들었다. 안토노프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천왕성 작전의 실행에 깊이 관여했고, 얄타 회담에 소련군의 대변인으로 참석했다. 이 회담에서 안토노프는 독일군의 주요 도로들을 서방 연합군이 폭격해서 소련군을 도와줄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 주장은 훗날 드레스덴 폭격으로 현실화되었다.

1944년에 그의 직속상관인 바실렙스키가 스탈린의 미움을 사 해임되자 안토노프가 총참모장 자리에 올랐다. 총참모장으로 베를린 전투의 작전 입안에 개입했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캅카스 군관구 사령관을 거쳐 바르샤바 조약 기구 가맹국 합동군 참모장이 되었고, 1962년 사망할 때까지 직위를 유지했다.

"전승훈장"을 받은 유일한 대장으로, 나머지는 다 대원수 아니면 원수였다.

사후 여타 장군들과 마찬가지로 소련의 영웅들이 묻히는 크렘린 벽 묘지에 안장되었다.


3. 진급 이력[편집]




4. 기타[편집]


전승훈장 수훈자들 중 유일하게 소비에트 연방 영웅으로 등극하지 못했다. 아직까지도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2003년 세르게이 소콜로프, 드미트리 야조프, 빅토르 쿨리코프, 바실리 페트로프를 비롯한 여러 원수들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사후 추서 청원을 보냈으나 소비에트 연방 영웅은커녕 러시아 연방 영웅 훈장도 수여되지 않았다.[1] 또한 러시아의 여러 전쟁 기념관 속 대조국전쟁 영웅 목록을 봐도 안토노프의 이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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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망 날짜를 보면 알겠지만 안토노프는 현대의 러시아 연방과는 무관한 인물이다. 명예 수훈을 요청했지만 그마저도 거절당한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