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마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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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前 축구선수


파일:manninger_dpa-1469188517_zoom41_crop_800x600_800x600+318+73.jpg

이름
알렉산더 마닝거[1]
Alexander Manninger

출생
1977년 6월 4일 (46세)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잘츠부르크
국적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
display: none; display: 오스트리아"
행정구
]]

신체
189cm, 85kg
직업
축구선수(골키퍼 / 은퇴)
소속
선수
FC 레드불 잘츠부르크 (1984~1995 / 유스)
FC 레드불 잘츠부르크 (1995~1996)
SK 포어베르츠 슈타이어 (1995 / 임대)
그라츠 AK (1996~1997)
아스날 FC (1997~2002)
ACF 피오렌티나 (2001~2002 / 임대)
RCD 에스파뇰 (2002)
토리노 FC (2003)
볼로냐 FC (2003~2005)
로부르 시에나 SSD (2004~2005 / 임대)
FC 레드불 잘츠부르크 (2005~2006)
로부르 시에나 SSD (2006~2008)
우디네세 칼초 (2008)
유벤투스 FC (2008~2012)
FC 아우크스부르크 (2012~2016)
리버풀 FC (2016~2017)
국가대표
파일: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33경기 (오스트리아 / 1999~2009)

1. 개요
2. 클럽 경력
2.1. 자국 리그 시절
2.5. 세리에 시절, 잘츠부르크 2기
2.6. 다시 세리에로 리턴
3. 국가대표 경력




1. 개요[편집]


오스트리아의 前 축구선수. 그의 커리어는 이 한 문장으로 요약 가능하다. 저니맨계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2. 클럽 경력[편집]



2.1. 자국 리그 시절[편집]


잘츠부르크에서 축구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1995-96 시즌을 앞두고 1군으로 승격됐으며, 데뷔전을 가진 뒤 포어베르츠 슈타이어로 임대되었다. 임대 복귀 후 그라츠 AK로 팀을 옮겨 주전 골키퍼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덕분에 아스날로 이적하게 되었다.


2.2. 아스날 FC[편집]


1997-98 시즌, 데이비드 시먼의 백업으로 시작하였으나 시먼이 부상으로 전력을 이탈하게 되자 대신 선발로 나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었다. 서브 키퍼로서 시먼의 공백을 잘 매운 마닝거는 1998년 3월 이 달의 선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시먼이 부상에서 복귀하면서 다시 서브 키퍼로 내려갔고, 1997-98 시즌 리그 7경기에 출전했음에도 불구하고[2] 아스날의 우승에 상당한 공헌을 한 것으로 간주되어 특별히 메달을 수여받을 수 있었다. 또한 그는 FA컵 5경기를 출전했는데, 웨스트햄과의 8강전에서 승부차기까지 간 끝에 베르코비치의 슈팅을 막아내며 준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결승에서는 시먼이 선발로 나서면서 벤치를 지켰고, 아스널이 우승을 차지하면서 더블을 달성했다.

마닝거는 이후 3시즌동안 시먼의 백업 키퍼였지만 나오는 경기마다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며 든든한 백업 키퍼로 활약했다. 그리고 4시즌동안 64경기를 뛰었다.

그러다 2001년, 아스날이 당시 잉글랜드 유망주 골키퍼였던 리처드 라이트를 영입하면서 서드 키퍼로 내려가자 ACF 피오렌티나로 임대를 떠났다.


2.3. ACF 피오렌티나[편집]


2001년 여름, 피렌체로 임대된 마닝거는 리그 24경기 포함 총 29경기를 뛰었다.


2.4. RCD 에스파뇰[편집]


2002년 7월, 임대에서 복귀한 마닝거는 스페인 라 리가팀인 에스파뇰과 96만 유로의 이적료에 4년 계약을 맺고 입단했다. 그러나 계약 위반 이슈로 인해 두 달만에 팀에서 방출되었다.


2.5. 세리에 시절, 잘츠부르크 2기[편집]


2003년 1월, 토리노 FC로 이적하면서 1년 반만에 세리에 무대로 복귀했다. 이후 볼로냐 FC, 로부르 시에나 SSD 등을 거치면서 서브 키퍼로 활약했다.

2005년 7월에는 친정팀 잘츠부르크로 이적하여 16경기를 출전했다.


2.6. 다시 세리에로 리턴[편집]


2006-07 시즌을 앞두고 시에나로 복귀한 마닝거는 주전 골키퍼로 시작했으나 부상으로 잠시 디미트리오스 엘레프테로풀로스에게 내주었다. 그러나 부상에서 돌아온 뒤에는 주전 자리를 되찾았고, 2시즌 동안 시에나에서 64경기를 출전했다.

2008년 7월, 레드불 잘츠부르크로 이적했지만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우디네세 칼초로 이적하였다. 그러다 얼마 안가 다시 유벤투스 FC로 이적하게 되었다.

유벤투스에서 지안루이지 부폰의 백업으로 지내다가 부폰이 장기부상을 당하면서 2008년 10월 초부터 2009년 2월 말까지 주전 골키퍼로 뛰었다. 비안코네리의 주전 키퍼로 뛰는 동안 부폰의 공백을 완벽히 매우며 많은 언론들의 찬사를 받았다.

2010년 여름, 부폰이 남아공 월드컵에서 등 부상을 당하고 복귀하자 구단은 또 다른 백업인 마르코 스토라리를 영입했다. 그리고 스토라리와의 경쟁에서 밀린 마닝거는 서드 키퍼로 내려갔고, 2011-12 시즌을 끝으로 팀을 떠났다.


2.7. FC 아우크스부르크[편집]


유벤투스에서 방출된 뒤 4개월 넘게 무직 상태였던 마닝거는 FC 아우크스부르크에 입단했다.

2012년 12월 18일, 그는 FC 바이에른 뮌헨과의 DFB-포칼 홈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4시즌간 서브 키퍼로 38경기에 출전한 후 2016년 6월에 계약이 종료되면서 방출되었다.


2.8. 리버풀 FC[편집]


클롭이 리버풀의 미래라 할 수 있는 유망주 골리 대니 워드를 자신과 도르트문트에서 함께 일했던 코치인 다비트 바그너가 감독으로 있는 허더즈필드 타운 FC로 임대 보낼 계획을 세우고 그로 인해 비는 제 3의 골리 옵션을 메우기 위해 데려온 골키퍼이다. 사실상 경기출전 보다는 시몽 미뇰레로리스 카리우스의 멘토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며 계약기간도 1년으로 그리 길지 않은 편이다.

그리고 2016-17 시즌 종료 후 프로 은퇴를 확정 지었다. 은퇴 후 코치가 아닌 고향에서 가구공[3]으로써의 삶으로 살 것이라고 한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1999년 8월, 스웨덴을 상대로 데뷔전을 치렀다. 그리고 자국에서 열린 UEFA 유로 2008 23인 최종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주전으로 뛸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위르겐 마초에게 밀리면서 본선 3경기 모두 벤치에서 지켜봐야했다. 팀은 1무 2패 조 3위로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했다.

2009년 8월,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1] 실제 발음은 '마닝어'에 가깝지만, 독일어 표기법에 따르면 ㄱ을 덧붙여야 한다.[2] 당시 우승 메달을 수여받으려면 리그 10경기를 나서야했다.[3] 집안 대대로 물려받은 가업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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