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란 가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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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데 라 리바 아구에로
베르나르도 데 타글레
호세 데 라 마르
아구스틴 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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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데 오르베고소
펠리페 살라베리
아구스틴 가마라
마누엘 메넨데스
제9대
제10대
제11대
제12대
후안 프란시스코 데 비달
마누엘 메넨데스
라몬 카스티야
호세 루피노 에체니케
제13대
제14대
제15대
제16대
라몬 카스티야
미겔 데 산 로만
후안 안토니오 페세트
마리아노 이그나시오 프라도
제17대
제18대
제19대
제20대
페드로 디에스 칸세코 코르바초
호세 발타
마리아노 에렌시아 세바요스
마누엘 파르도 이 라바예
제21대
제22대
제23대
제24대
마리아노 이그나시오 프라도
루이스 라 푸에르타
니콜라스 데 피에롤라
프란시스코 가르시아 칼데론
제25대
제26대
제27대
제28대
리사르도 몬테로
미겔 이글레시아스
안드레스 아벨리노 카세레스
레미히오 모랄레스 베르무데스
제29대
제30대
제31대
제32대
후스티니아노 보르고뇨
안드레스 아벨리노 카세레스
니콜라스 데 피에롤라
에두아르도 로페스 데 로마냐
제33대
제34대
제35대
제36대
마누엘 칸다모
세라피오 칼데론
호세 파르도 이 바레다
아우구스토 레귀아
제37대
제38대
제39대
제40대
길레르모 빌링허스트
오스카 베나비데스
호세 파르도 이 바레다
아우구스토 레귀아
제41대
제42대
제43대
제44대
루이스 미겔 산체스 세로
오스카 베나비데스
마누엘 프라도 우가르테체
호세 루이스 부스타만테 이 리베로
제45대
제46대
제47대
제48대
마누엘 오드리아
마누엘 프라도 우가르테체
리카르도 페레즈 고도이
니콜라스 린들리 로페스
제49대
제50대
제51대
제52대
페르난도 벨라운데 테리
후안 벨라스코 알바라도
프란시스코 모랄레스 베르무데스
페르난도 벨라운데 테리
제53대
제54대
제55대
제56대
알란 가르시아
알베르토 후지모리
발렌틴 파니아과
알레한드로 톨레도
제57대
제58대
제59대
제60대
알란 가르시아
오얀타 우말라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마르틴 비스카라
제61대
제62대
제63대
제64대
마누엘 메리노
프란시스코 사가스티
페드로 카스티요
디나 볼루아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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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 펼치기 · 접기 ]
상훈 연도
결정일
수여일
이름
직책
국적
비고
1949년

8월 15일
이승만
대통령
대한민국

1960년

8월 13일
윤보선
대통령
대한민국

1963년
12월 5일
12월 17일
박정희
대통령
대한민국

1967년
6월 23일

육영수
영부인
대한민국

1979년
12월 7일

최규하
대통령
대한민국
12.12 군사반란으로 하야
1979년
12월 7일

홍기
영부인
대한민국

1980년
8월 29일
8월 29일
전두환
대통령
대한민국
무궁화대훈장 이외의 모든 훈장 취소
1980년
8월 29일
8월 29일
이순자
영부인
대한민국

1988년
2월 24일
2월 25일
노태우
대통령
대한민국
무궁화대훈장 이외의 모든 훈장 취소
1988년
2월 24일
2월 25일
김옥숙
영부인
대한민국

1993년
2월 11일
2월 23일
김영삼
대통령
대한민국

1993년
2월 11일
2월 23일
손명순
영부인
대한민국

1998년
2월 17일
2월 25일
김대중
대통령
대한민국

1998년
2월 17일
2월 25일
이희호
영부인
대한민국

2008년
1월 28일

노무현
대통령
대한민국

2008년
1월 28일

권양숙
영부인
대한민국

2013년
2월 12일

이명박
대통령
대한민국

2013년
2월 12일

김윤옥
영부인
대한민국

2013년
2월 19일

박근혜
대통령
대한민국


외국인 [ 펼치기 · 접기 ]
상훈 연도
결정일
수여일
이름
직책
국적
비고
1964년
12월 3일
12월 8일
하인리히 뤼프케
대통령
독일
외국인 최초 상훈자
1964년
12월 3일
12월 8일
빌헬미네 뤼브케
영부인
독일
외국인 최초 상훈자
1966년
2월 1일
2월 7일
이스마일 나시루딘
국왕
말레이시아

1966년
2월 1일
2월 7일
틍쿠 인탄 자하라
왕비
말레이시아

1966년
2월 1일
2월 10일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
태국

1966년
2월 1일
2월 10일
시리낏 끼띠야콘
왕비
태국

1966년
2월 1일
2월 15일
장제스
총통
중화민국

1968년
5월 10일
5월 18일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
에티오피아

1969년
5월 23일
5월 27일
응우옌반티에우
총통
남베트남

1969년
5월 23일
5월 27일
응우옌티마이아인
제1부인
남베트남

1969년
10월 28일
10월 28일
하마니 디오리
대통령
니제르

1969년
10월 28일
10월 28일
아이샤 디오리
영부인
니제르

1970년
9월 25일
9월 28일
피델 산체스 에르난데스
대통령
엘살바도르

1970년
9월 25일
9월 28일
마리나데 산체스 에르난데스
영부인
엘살바도르

1975년
6월 27일
7월 5일
오마르 봉고
대통령
가봉

1975년
6월 27일
7월 5일
조세핀 봉고
영부인
가봉

1979년
4월 17일
4월 23일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
대통령
세네갈

1979년
4월 17일
4월 23일
콜레테 위베르트 상고르
영부인
세네갈

1980년

5월 11일
할리드 빈 압둘아지즈 알사드
국왕
사우디아라비아

1980년

5월 14일
자베르 알아흐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국왕
쿠웨이트

1981년

6월 25일
수하르토
대통령
인도네시아

1981년

6월 25일
시티 하티나
영부인
인도네시아

1981년

6월 29일
아마드 샤 이브니 아부 바카르
국왕
말레이시아

1981년

6월 29일
틍쿠 아프잔
왕비
말레이시아

1981년

7월 6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필리핀

1981년

7월 6일
이멜다 마르코스
영부인
필리핀

1981년

10월 13일
로드리고 카라소
대통령
코스타리카

1981년

10월 13일
에스트레야 셀레돈 리사노
영부인
코스타리카

1982년

5월 10일
사무엘 도
국가원수
라이베리아

1982년

6월 7일
모부투 세세 세코
대통령
자이르

1982년

6월 7일
보비 라다와
영부인
자이르

1982년

8월 25일
압두 디우프
대통령
세네갈

1982년

12월 21일
케난 에브렌
대통령
터키

1983년
3월 10일
3월 15일
자파르 모하메드 니메이리
대통령
수단

1983년
3월 10일
3월 15일
부띠나 칼릴 압불핫산
영부인
수단

1983년

9월 10일
후세인 1세
국왕
요르단

1983년

9월 10일
누르
왕비
요르단

1984년

4월 9일
하사날 볼키아
국왕
브루나이

1984년

4월 21일
할리파 빈 하마드 알타니
국왕
카타르

1984년
8월 30일
9월 13일
다우다 자와라
대통령
감비아

1984년
8월 30일
9월 13일
치렐 자와라
영부인
감비아

1985년

5월 17일
무함마드 지아울하크
대통령
파키스탄

1985년

5월 20일
루이스 알베르토 몽헤
대통령
코스타리카

1986년
9월 4일
4월 10일
엘리자베스 2세
국왕
영국

1986년
9월 4일
4월 16일
보두앵
국왕
벨기에

1987년

4월 7일
아메드 압달라
대통령
코모로

1988년

11월 3일
이스칸다르
국왕
말레이시아

1988년

11월 3일
자나리아
왕비
말레이시아

1989년
11월 3일
11월 20일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대통령
서독

1989년
11월 3일
11월 30일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프랑스

1989년
11월 3일
11월 30일
다니엘 미테랑
영부인
프랑스

1990년

6월 21일
안드레스 로드리게스
대통령
파라과이

1990년

11월 5일
괸츠 아르파드
대통령
헝가리

1991년

9월 13일
아즐란 샤
국왕
말레이시아

1991년

9월 13일
투안쿠 바이눈
왕비
말레이시아

1991년

9월 25일
카를로스 살리나스 데 고르타리
대통령
멕시코

1992년

8월 13일
호르헤 안토니오 세라노 엘리아스
대통령
과테말라

1993년
5월 20일
5월 25일
피델 발데즈 라모스
대통령
필리핀

1993년
5월 20일
5월 25일
이멜리타 마르띠네즈 라모스
영부인
필리핀

1994년
11월 7일
11월 21일
에두아르도 프레이 루이스 타글레
대통령
칠레

1994년
12월 5일
12월 9일
레흐 바웬사
대통령
폴란드

1995년
2월 7일
2월 16일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
우즈베키스탄

1995년
2월 21일
3월 6일
로만 헤어초크
대통령
독일

1995년
3월 28일
4월 3일
젤류 미테프 젤레프
대통령
불가리아

1995년
6월 26일
7월 7일
넬슨 만델라
대통령
남아프리카 공화국

1995년
9월 26일
9월 29일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
아르헨티나

1996년
7월 23일
9월 4일
알바로 아르수
대통령
과테말라

1996년
7월 23일

페르난두 엔히크 카르도주
대통령
브라질

1996년
10월 8일
10월 20일
후안 카를로스 1세
국왕
스페인

1996년
10월 8일
10월 20일
소피아 마르가리타 빅토리아 프리데리키
왕비
스페인

1996년

11월 26일
자파 이브니 압둘 라만
국왕
말레이시아

1996년
12월 10일
12월 15일
레오니드 쿠치마
대통령
우크라이나

2000년
2월 22일
3월 3일
카를로 아첼리오 참피
대통령
이탈리아

2000년
2월 22일
3월 6일
자크 시라크
대통령
프랑스

2006년

3월 12일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
대통령
알제리

2007년

3월 26일
사마 알아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국왕
쿠웨이트

2007년

3월 28일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
국왕
카타르

2009년

5월 13일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카자흐스탄

2009년

11월 12일
알란 가르시아
대통령
페루

2012년

5월 30일
칼 16세 구스타프
국왕
스웨덴

2012년

11월 21일
할리파 빈 자이드 나하얀
대통령
아랍에미리트
2018년
10월 8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프랑스

2019년


하랄 5세
국왕
노르웨이

2021년

6월 14일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대통령
오스트리아
2021년

6월 16일
펠리페 6세
국왕
스페인

2021년

6월 16일
레티시아 오르티스 로카솔라노
왕비
스페인
2021년

8월 25일
이반 두케
대통령
콜롬비아

2021년

9월 21일
보루트 파호르
대통령
슬로베니아





페루 공화국 제53·57대 대통령
알란 가브리엘 루드위그 가르시아 페레스
Alan Gabriel Ludwig García Pérez


출생
1949년 5월 23일
페루 리마
사망
2019년 4월 17일 (향년 69세)
페루 리마
국적
페루 파일:페루 국기.svg
재임기간
제53대 대통령
1985년 7월 28일 ~ 1990년 7월 28일
제57대 대통령
2006년 7월 28일 ~ 2011년 7월 28일
정당
아메리카 혁명인민동맹
서명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페루의 53대, 57대 대통령으로 정치역경 자체는 매우 파란만장한 인물이다.


2. 생애[편집]


알란 가르시아는 페루의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지만 집안 자체가 정치인 집안인지라 1960년대와 70년대 당시의 페루 정국이 혼돈과 독재를 겪고 있던 참이라서 부침이 있었다. 청소년 시절부터 아메리카 혁명인민동맹의 당원이 되었고 파리에서 몇 년간 유학을 다녀왔다가 1978년 군부가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며 총선을 재개했고 페루 의회선거에서 당선되어 국회의원이 되었다. 1982년에 아메리카 혁명인민동맹의 사무총장이 되었다. 티토주의펠리페 곤살레스 스페인 총리에게 영감을 얻은 정책들을 선보였는데 당시 페루는 민주화 이후로도 외채난으로 인한 극심한 물가 상승과 치안 공백으로 인한 치안 불안에 허덕이고 있었고 민주화 직후에 집권한 벨라운데 테리가 이에 대해 무능한 대처로 일관하면서[1] 이를 강력하게 비판했고, 잘생긴 얼굴과 뛰어난 연설실력을 발군 삼아서 지지율을 급속히 끌어 올렸다. 이익고 1985년 대선에서 53%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재임 초기에는 외환보유고의 감소를 막기위해 외채동결 조치를 취하고 동시에 환율 안정화 및 물가통제와 임금인상 정책 등을 폈는데 이러한 조치는 초기에는 큰 효과를 내서 1986년에 경제성장률은 9%대까지 치솟았다. 또한 당시 페루군이 반군을 척결하겠다면서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광범휘한 인권침해를 저지르는 문제도 있었는데 초기에는 인권침해를 저지른 군인이나 부패한 경찰관을 해고시키는 개혁정치를 펼쳤다. 지지율 최고치가 무려 96%에 달해서 페루의 케네디라고 불릴 정도였다. 여기서 끝났다면 페루를 안정화 시킨 인기있고 유능한 대통령으로 남았을것이다.

허나 이러한 경제정책은 든든한 빽 없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오래 지나지 않아 삐그덕거리기 시작했고,[2] 1987년도부터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잡힐듯 보였던 물가상승률도 다시금 오를기미를 보이자 경제를 부양하려고 은행국유화 법안을 통과시켰다가 우익진영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은행국유화 법안은 논란끝에 의회에서 부결되며 이후로 알란 가르시아는 급속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은행국유화 법안 파동 이후로 기업들의 투자는 급속히 위축되고, 물가상승률은 1987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다시 급속히 치솟기 시작하여 1988년에 1722% 1989년에 2775%까지 치솟았고, 국가경제는 마비상태에 접어들게 되었다. 이 틈을 타서 지방에서 빛나는 길이 페루 전역에 위세를 떨치며 리마 근교지역까지 진출했고, 이들은 페루의 인프라 시설에 테러를 가하며 치안은 다시금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더군다나 빛나는 길도 빛나는 길이지만 인권을 중시했던 초기행보와는 다르게 반군을 진압할 대책으로 강경책을 쓰면서 페루군이 일반 민간인을 임의적으로 살해하는 등의 인권침해적인 작전을 벌여도 이를 방조하거나 조장하기 시작했고, 이때 페루 교도소 학살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또한 경제가 나빠지던 상황속에서 가르시아의 측근들이 부패스캔들에 연루되면서 지지율은 10% 아래로 추락, 이미지는 만신창이가 되기에 이른다. 1989년 지방선거에서는 쌓아놓은 조직력을 통해 세를 확보해나갔지만 그럼에도 당세의 쇠락은 막을수 없었고, 1990년 대통령 선거에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당선될것으로 예측되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알란 가르시아는 여기서 머리를 잘 써서 TV방송 진행자이자 농업전문가 정도로 알려졌던 알베르토 후지모리의 지지율이 올라가며 결선에 진출하자 적극적으로 밀어주었고, 일본이 한창 경제적으로 호경기를 누렸던 시절인지라 일본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이 될것이라는 예측이 난무했었던 점을 이용한것인데 작전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아 알베르토 후지모리와의 관계는 나빠졌고,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페루 의회를 해산하고 알란 가르시아의 비리를 조사하려고 하자, 알란 가르시아는 콜롬비아로 망명을 갔고, 반 후지모리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2001년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추문끝에 탄핵되고, 페루 대법원에서 알란 가르시아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며 페루로 귀국했다. 당초 대통령 선거에서 알베르토 후지모리에게 적극적으로 맞서던 톨레도가 대통령에 당선될것이 확실시 되었던 상황이었고 알란 가르시아는 이전의 반군이 판치고 물가상승률은 극도로 높아졌던 악몽같던 시절을 대표하던 대통령으로 잡룡으로 취급되었지만 뛰어난 선거운동 능력을 선보이면서 결선투표에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켰고 2001년 대선에서 석패했지만 그럼에도 46%라는 무시할수 없는 득표율을 확보하며 선전했다는 평을 들었다. 이후로 톨레도가 지지율에서 지속적으로 죽을 쓰면서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가 되었다.

하지만 알란 가르시아가 약점이 적지 않은 인물이었는데 이 와중에 오얀타 우말라가 경제성장에도 빈부격차는 여전히 컸던 페루의 상황을 비판하며 급속히 치고 올라오자, 보수파의 표를 얻기 위해 골몰했고, 이를 위해 노선을 온건화했다. 2006년 대선에서 우고 차베스와 오얀타 우말라를 연계해 실컷 까대면서 언론사들의 지원을 얻었고 우파의 표를 획득해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기 집권기 때는 페루의 경제는 보수적인 재정운영을 하며 우려를 불식시키고, 미국과도 어느 정도 친해졌으며 매년 연 7~8%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금융위기에 휘말린 2009년도를 제외하면 평온하게 경제관리를 잘했다는 평을 들었지만 사회운동에 대해서 보수적인 태도를 취했고 그렇다고 복지를 획기적으로 늘린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집권기간 동안 사회정책에 대한 평은 영 꽝이었고 그 때문에 지지율은 낮았다. 1기 집권기보다는 성과가 낫다는 평을 듣기는 했지만 퇴임 이후로는 퇴물로 전락했고 2016년 대선에서 6%의 득표를 확보하는데 그쳤다. 이후로 오데브레시 뇌물수수 사건에 연루되었고, 이 와중에 우루과이망명을 가려고 했지만 우루과이 정부에서 거부하면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후 2019년 4월 17일에 뇌물 혐의를 조사하던 경찰이 가르시아 전 대통령의 집에 들어오자 총을 들고 스스로 총을 쐈고,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마침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가 건강이 썩 좋지 않은데다가 한때의 정적이었지만 동병상련의 처지인 톨레도와 우얀타 우말라도 알란 가르시아의 죽음에 대해서 애도했다. 사실 알란 가르시아의 자살이 가져올 파장이 페루 정치권에서 만만한 것이기 아니기 때문에 페루 정부에서 3일간의 애도기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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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미 1기 집권기 때에도 토재개혁을 제대호 수행하지 못하고 미국기업과 이면합의를 했다며 군부에게 쫓겨났던 경력이 있었다.[2] 특히 국제통화기금의 큰 빽이 미국이었는데 미국과의 관계가 급속히 나빠지면서 페루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