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비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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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 Biruni / البیرونی
알 비루니
이름
아부 라이한 무함마드 빈 아흐마드 알 비루니
영어
Abu Rayhan Muhammad ibn Ahmad al-Biruni
아랍어
أَبُو الرَّيْحَانِ مُحَمَّدٌ بْنُ أَحْمَدَ البِيرُونِيّ
우즈베크어
Abu Rayhon Beruniy
출생
973년 호라즘 베이루니
사망
1050년 가즈니

1. 개요
2. 키탑 알 힌드 : 인도의 책
2.1. 자연선택설
3. 고대국가들의 연표
4. 어록
5. 여담



1. 개요[편집]


호라즘 출신 무슬림 지리학자과학자, 역사학자. 특히 역법연대기 작성에 능했다.

2. 키탑 알 힌드 : 인도의 책[편집]


역사학자/인류학자 입장에서 알 비루니는 인도를 여행하면서 인도의 역사와 문화, 종교에 대해 광범위한 기록을 담은 명저 <키탑 알-힌드(인도의 책)>를 저술했다. 이전 아랍인들이 쓴 인도 견문록들은 인도인들에 대한 간략하고 피상적인 기록으로서 힌두교나 힌두철학 및 인도 역사 자체에 대한 설명이 부실했다면 알 비루니의 키탑 알 힌드는 인도의 종교와 철학, 과학과 역사 전반에 대해 상당히 폭넓은 기록을 담는데 성공하였다.

이 책에서 알 비루니는 힌두교 경전이나 철학서 이외에도 불교 관련한 기록도 상세히 남겼다. 물론 무슬림인 알 비루니 입장에서 불교 신도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려웠고 대신 비루니는 석가모니 부처를 칭송하는 기록을 남겼다. 알 비루니는 인도의 석조 수조를 보면서 아직 무슬림들의 기술 수준은 아직 이 정도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기록을 남겼다가 비판을 받았을 정도로, 자문화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인도 문명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데 상당한 노력과 성과를 보여준 인물이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 문화와 역사에도 정통했던 알 비루니는 고대 그리스의 다신교와 인도의 힌두교가 상당부분 유사하다는 점을 확인하고 기록에 담았다. 다른 한편으로 알 비루니는 인도를 여행하는 와중에 방문한 각 도시의 위도와 경도를 파악하여 기록에 남겼으며, 지질층리와 화석도 관찰했는데 이를 통해 그는 인도가 한 때는 대부분 바다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인도인 힌두교도들은 자체적으로 연대기나 역사를 남기는데 무관심했고, 이 때문에 인도사를 연구할 때는 참고할 만한 문헌자료는 고대에는 그리스인들이 남긴 기록이나 초창기 불교나 자이나교 종교 경전을, 고대 말에는 중국인이나 한국인 불교 승려들의 인도 기행문을, 그리고 중세 초 기준으로는 알 비루니의 키탑 알 힌드를 주로 봐야 한다. 즉 그의 연구 성과는 인도 중세 초창기의 사회, 문화를 참고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귀중한 자료이다.

2.1. 자연선택설[편집]


알 비루니는 신이 마치 농부가 곡물 종자를 선택하듯 종합적인 계획에 따라 미리 결정한 기준에 근거해 어떤 사람과 어떤 종이 번성하고 자손을 낳을지를 결정한다고 생각했다. 인도인들이 환생을 믿는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덧붙였다.

인류의 생명은 뿌리고 번식하는 데 달려 있다. 두 과정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증폭되고 이 세상은 유한한 반면 증식은 그 끝이 없다.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에서는 환생을 인정하지 않지만 인도의 종교들은 환생을 인정한다. 이를 분석하고 반박하는 과정에서 그는 인간의 번식과 개체 수 증가를 다루고 이후 진화론이 떠오를만한 문장도 집어넣었다.

농부는 곡물을 선택해 자신이 원하는 만큼만 자라게 놓아두고 나머지는 모두 솎아낸다. 수목 관리원도 튼튼한 가지들만 남겨놓고 다른 것은 모두 잘라버린다. 벌들은 벌집에서 먹기만 할 뿐 일하지 않는 동족을 죽인다.


알 비루니는 인도인의 환생관을 분석한 글과 자연선택설 관련한 글을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끝을 맺었다.

만약 대지가 너무 많은 수의 서식자로 인해 황폐해지거나 혹은 거의 그 일보 직전이라면 대지의 지배자 - 대지의 지배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모두를 보듬는 그의 자비가 티끌 하나하나에까지 미치는 것이다 - 는 그 수를 줄이고 유해한 모든 것을 잘라내기 위해 전령을 보내신다.


3. 고대국가들의 연표[편집]


알 비루니는 언어학[1]이나 비교종교학 같은 인문학 분야 이외에도 역법에 뛰어났다.

그는 구약성경에 나온 연대기와 조로아스터교 신화에 나오는 연대기를 달력과 비교해보면서 서로 날짜가 다 틀리다고 한탄한 후에 "어느 곳에서나 사람들은 자신들의 편견에 맞춰 시간을 단축하거나 늘려 역사와 내력을 조작하는 경향이 있다."라는 말을 남긴다. 그는 역사는 추론에 기반해야 하며, 여기에는 천문학 역법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수라고 주장했다. 시간을 계산하는 합리적인 체계가 없다면 제대로 된 연대표는 존재할 수 없으며, 연대표가 없다면 과거에 대한 합리적인 이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알 비루니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연대기가 전혀 과학적이지 못하다고 신랄하게 비판한 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기하학과 천문학에 깊이 심취해 있었고 또한 매우 능숙했으며 논리적 주장을 철저하게 고수하였고, 그 결과 그들은 유대인들과 다르게 연대표를 만들 때 다른 민족들처럼 결코 신화나 종교적인 영감에 의존하지 않았다.

알 비루니가 저술한 고대국가들의 연표가 등장하기 전에는 세계사가 없었고 쓰일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종교와 문명을 가로질러 이어지는 시간을 측정하기 위한 통합된 기반이 없었기 때문이다. 알 비루니는 세계적인 역법 체계를 정리하였고, 그 결과 통합된 세계사 구축을 위한 필수적인 도구도 마련되었다.

4. 어록[편집]


꽃의 특성 중 매우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잎이 벌어지기 시작했을 무렵 원을 만들기 시작하는 상단부, 즉 대부분의 경우 잎의 수가 기하학 법칙에 상응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대부분 원뿔 곡선이 아니라 기하학 법칙에 의해 발견된 현과 일치한다. 일곱 개 또는 아홉 개이 꽃잎을 가진 꽃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한데, 왜냐하면 이등변삼각형처럼 기하학 법칙에 따라 그것을 원형으로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지구의 자전 이론은 결코 천문학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천문학적 성격의 모든 징후가 다른 이론(즉 지구는 움직이지 않는다)만큼이나 이 이론에 부합해서도 잘 설명되기 때문이다.


사물이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는 수직으로 하강하지 않고 약간 기울어져 떨어진다. 떨어지는 물체는 두 가지 운동을 한다. 하나는 지구의 자전에서 기인한 원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지구 중심을 '향해' 곧바로 떨어질 때 발생하는 직선운동이다.


5. 여담[편집]


생애 말년에는 가즈니 왕조술탄 마흐무드 밑에서 일하게 되었다. 한번은 마흐무드가 알 비루니에게 자신이 곧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를 비롯해 미래를 예측하라고 주문했다. 그런데 비루니가 한 예측이 들어맞은 것을 이유로 비루니는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 했다. 술탄 마흐무드는 과학을 일종의 마법으로 생각했고 비루니가 자신에게 마법을 걸었다고 의심했기 때문이었다. 술탄 마흐무드가 특별히 무식한 사람은 아니었고,[2] 기적이 당연시되던 당시 분위기에서 일반 대중들은 대개 천문학자를 역술인(...)으로 그리고 과학자들을 마법사로 생각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중세 이슬람권에서는 하나님의 힘으로 무언가를 대신하려는 행동은 "기도", 정령의 힘을 빌어 특별한 일을 하려는 행동은 "주술", 인간의 마력으로 영험한 일을 하려는 행동을 "마법"으로 규정했는데(참고자료 : 이븐 할둔의 역사서설) 중세인들 입장에서 인간 스스로 이성의 힘으로 특별한 일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마법사로 보였던 것이다.

알 비루니 살아생전에는 아직 신대륙의 존재가 알려지기 한참 전이었다. 위도와 경도를 정확하게 계산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알 비루니는 지구본을 분석하면서 아프리카 서해안과 중국 동쪽 바다 사이가 지나치게 넓다는 점을 파악하고 지구 둘레의 3/5 이상이 전부 다 바다라기보다는 알려지지 않은 대륙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논리적인 단계를 밟아나가던 비루니에게 이번에는 미지의 이 대륙은 황무지일까 아니면 인간이 살고 있을까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그러한 가운데 인간이 오늘날 러시아에 해당하는 지역에서부터 인도 남부와 아프리카 중앙까지 뻗어 있는 남-북 광대역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 대역이 지구의 거주 가능 지역을 의미한다고 추정한 그는 미지의 대륙 또는 대륙들도 이 대역의 남단과 북단 사이에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그가 의거할 수 있는 현장 관측 자료는 더 이상 없었지만 그에게는 논리라는 수단이 남아 있었다. 그는 미지의 대륙이 대략 띠 모양을 한 채 지구 위에 펼쳐져 있고 남북 광역대에 걸쳐 있다고 생각했다. 유라시아 및 아프리카와의 비교를 통한 추론과정에서 그는 이 미지의 땅덩어리들은 거주가 가능한 곳이며, 그리고 실제 사람이 살고 있다고 결론내렸다. 그가 마수드 정전에서 서술했듯이 "동쪽과 서쪽 지역 사람이 사는 대륙이 존재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폭염과 혹한도 장애가 되지 않는다. ... 따라서 추정되는 몇몇 지역이 사방에 물러 둘러싸인 세계의 '알려진' 지역 저 너머에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잃어버린 계몽의 시대 / 프레더릭 스타


그의 추정은 4~500년 이후에 사실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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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신의 모국어인 중세 호라즘어나 당시 지식인의 기초 교양언어였던 페르시아어, 아랍어 이외에도 산스크리트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아람어에도 모두 능통한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2] 장교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 중세 투르크어 외에도 페르시아어와 아랍어 모두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