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콘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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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4 시즌 구단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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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콘테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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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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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벤투스 FC 역대 주장
잔루카 비알리
(1995~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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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콘테
(1996~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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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산드로 델피에로
(2001~2012)


안토니오 콘테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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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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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 · 2012-13 · 20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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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2017 FIFA 올해의 감독
수상
지네딘 지단
2위
안토니오 콘테
3위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



Tottenham Hotspur Football Club

이름
안토니오 콘테
Antonio Conte
출생
1969년 7월 31일 (54세) /
이탈리아 풀리아 주 레체 도 레체 시
국적
이탈리아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신체
176cm[1] | 체중 77kg
직업
축구선수 (중앙 미드필더 / 은퇴)
축구감독
경력
선수
US 레체 (1985~1991)
유벤투스 FC (1991~2004)
감독
AC 시에나 (2005~2006 / 수석 코치)
AC 아레초 (2006~2007)
AC 바리 (2007~2009)
아탈란타 BC (2009~2010)
AC 시에나 (2010~2011)
유벤투스 FC (2011~2014)
이탈리아 대표팀 (2014~2016)
첼시 FC (2016~2018)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19~2021)
토트넘 홋스퍼 FC (2021~ )
국가대표
20경기 2골 (이탈리아 / 1994~2000)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2. 국가대표 경력
4. 전술 스타일
4.1. 장점
4.2. 단점
4.3. 3백 성애자?
5. 기록
5.1. 대회 기록
5.1.1. 선수
5.1.2. 감독
5.2. 개인 수상
5.2.1. 선수
5.2.2. 감독
5.3. 서훈
6. 가족
7. 여담



1. 개요[편집]


파일:88g.jpg
이탈리아축구선수 출신 감독. 선수 시절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였다. 현재 토트넘 홋스퍼 FC 감독을 맡고 있다.

유벤투스첼시, 인테르에서 모두 리그 우승을 달성했으며, 현대 축구에 3백이라는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명장으로 평가받는다.

2. 선수 경력[편집]



2.1. 클럽 경력[편집]


파일:external/i.dailymail.co.uk/32D6CA1D00000578-0-image-m-56_1459779269136.jpg
고향팀 US 레체 시절

콘테는 고향 팀 US 레체의 유소년 팀에서 축구를 시작하였고 불과 16살의 나이에 1986년 4월 6일 세리에 A 데뷔전을 치른다. 당시 레체의 감독이었던 카를로 마조네의 지도 하에서 콘테는 팀에서 중요한 선수가 되었다. 1987년에는 정강이뼈 골절로 인하여 선수 생활이 끝날 뻔 한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재활 훈련에 몰두하여 1년이 채 안되어 필드에 복귀하였다. 1989년 11월 11일에는 SSC 나폴리와의 경기에서 본인의 세리에 A 데뷔골을 뽑아내기도 했다. 레체에서 총 99경기를 뛰었고 1골을 득점했다.

파일:conte1.jpg
유벤투스 시절 - 02/03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당시

콘테의 성실함과 중원 장악 능력을 유심히 살펴 본 당대 최고의 명장 지오반니 트라파토니가 1991년에 레체로부터 그를 영입했다. 당시 유벤투스 FC의 지역 라이벌 토리노 FC도 콘테의 영입을 시도하였으나, 콘테는 우승 트로피를 획득하고자 유벤투스행을 선택했다. 콘테의 꾸준한 경기력, 프로 의식, 리더쉽, 그리고 강한 정신력은 곧 유벤투스에서도 두각을 내기 시작했고, 1996년에는 역시 세계적인 명장인 마르셀로 리피잔루카 비알리가 떠난 이후 유벤투스의 주장으로 낙점하여 직접 그를 임명하였다. 이후 팀의 아이돌로 떠오른 알레산드로 델피에로에게 주장직을 물려줬으나 1998-99 시즌, 델피에로의 부상으로 인해 주장으로 복귀, 2001-02 시즌까지 역할을 맡았다. 유벤투스에서 뛰며 콘테는 5회의 스쿠데토 우승, 각각 1회의 코파 이탈리아, UEFA 컵,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달성하며 유벤투스의 황금기에 큰 기여를 한다. 2002-03 시즌 은퇴를 앞둔 34세의 베테랑으로서 유벤투스를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으로 이끈 활약이 백미였다. 유벤투스 FC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명예의 거리 헌정 50인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사실 콘테는 당대 이탈리아 중원 자원들 중 중요한 자원으로 분류되었는데, 그의 투쟁심과 넘치는 에너지, 그리고 전술적 다양성이 그 이유가 되었다. 콘테는 중원의 어떠한 자리에서도 뛸 수 있었으나 주로 중앙 미드필더, 박스 투 박스, 혹은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되었고, 가끔 우측 측면에 서기도 했는데 이는 그의 뛰어난 크로스 능력 때문이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당시 명성에 비해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려웠으나,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근면함과 꾸준함, 그리고 빼어난 축구 지능이 콘테가 가진 무기였다. 또한 경기의 흐름을 읽고 선수들에게 직접 고함을 치며 지시를 내리는 타고난 '리더형' 선수였으므로 많은 위대한 감독들이 그를 주장으로 임명한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여기에 중거리 슈팅 능력과 전진성을 보유함으로써 간간히 원더골 및 쐐기골을 득점하였는데, 특히 발리 슈팅과 페널티 박스 바깥에서의 슈팅으로 인한 득점은 콘테의 숨겨진 장기 중 하나였다. 탄탄한 피지컬과 크다고는 볼 수 없는 키에도 불구 헤딩 능력까지 갖추고 있어 상대 팀 선수와의 공중볼 경합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다만 그의 투쟁심과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는 선수 생활 내내 콘테가 잔부상에 시달리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2.2. 국가대표 경력[편집]


파일:external/i.dailymail.co.uk/002AB94000000258-3461998-image-a-49_1456319548266.jpg

콘테는 1994년 5월 27일 2-0 완승으로 끝난 핀란드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친선경기에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혁명가 아리고 사키는 당시 24살이었던 콘테를 처음으로 발탁하였다. 이후 콘테는 1994 FIFA 월드컵유로 2000에서도 조국을 위해 뛰었고[2], 두 대회 모두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거두는 데 일조했다. 다만 유로 1996은 불참하였는데, 이는 1996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당한 부상으로 인한 것이었다. 1994년에서 2000년까지 아주리 군단의 유니폼을 입고 20번의 경기에 나섰으며 2골을 득점하였다.

3. 지도자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안토니오 콘테/지도자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전술 스타일[편집]


3백 장인이자 카테나치오 이탈리아식 수비형 축구를 현대에 부활시킨 장본인 중 하나이다.[3] 유벤투스 감독 부임 이전에는 4-2-4 포메이션을 썼을 정도로 매우 공격적인 스타일의 감독이었으나 부임 이후로는 3-5-2 포메이션을 주로 썼고 무패 우승세리에 한 시즌 최다 승점 및 최초로 승점 100점 돌파라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리그 3연패를 이끌어냈다. 첼시 감독 부임 이후에도 4-1-4-1에서 3-4-3으로 포메이션을 바꾸더니 맨유를 4-0으로 격파하는 등 경기력이 향상되면서 6경기 연속 무실점 승리를 기록했다. 결국 토트넘에게 2-1 패하며 무실점 기록은 6경기에서 멈췄지만 토트넘전 승리에 이어 맨시티 등을 연파하며 연승을 이어갔고 1월 5일 토트넘 원정에서 2-0으로 패배할때까지 총 13연승을 기록했다. 이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아스날이 세웠던 14연승에 이어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며 단일시즌 연승기록으로는 최다 기록이다.

특이한 점은 쓰리백을 쓸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쓰리백이 아닌, 콘테의 초창기 전술인 4-2-2-2에서 비대칭스러운 형태를 사용한다.[4] 실제로 키엘리니세사르 아스필리쿠에타는 중앙수비수였지만 풀백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여줬고, 수비상황에서도 슈테판 리히슈타이너마르코스 알론소쪽은 단독으로 수비위치로 들어가는 상황이 많았지만 반대편 윙백인 콰드오 아사모아빅터 모지스쪽은 키엘리니와 아스필리쿠에타가 협력수비를 하는 장면이 빈번하다.

선수 신체적, 정신적인 부분을 모두 탁월하게 지배하는 감독이다. 콘테 입성 이후 비노보의 저주[5]라 불릴 정도로 부상이 잦았던 유베의 부상 빈도가 정상화되었다. 77을 찍었던 당시 선수들에게 한 일갈은 피를로의 자서전에도 적혀있고, 피를로는 콘테를 상당히 칭찬하였다. 멘탈에 문제가 있다는 평을 듣고 있는 비달, 포그바[6]에 끝판왕 소리까지 들은 테베즈, 오스발도를 큰 문제없이 관리하기도 하였다.

강력한 전방압박과 높은 점유율을 기반으로 하여 90분 내내 상대팀을 압도하려 하는 소위 빌드업 축구를 선호한다. 본인이 선호하는 특정한 포메이션에 집착하는 편은 아니며, 팀 상황에 맞는 포메이션을 잡아 정착시키는 데에 집중한다. 예를 들어 3백 위주라고 해도 팀에 맞춰서 약간씩 변화를 주는데, 윙 자원이 부족하고 중앙 미드필더가 넘치던 유벤투스에서는 3-5-2가 주 포지션이었으나 중앙 미드필더가 부족한 대신, 윙어진이 탄탄하던 16/17 시즌 첼시에서는 3-4-3으로 전술을 바꾸기도 했으며 17/18 시즌에는 아예 두 전술을 병행하고 있다. 공격수도 전진 압박 및 수비에 가담하게 하여 공격수들이 득점력에서 희생당한다.[7] 거꾸로 미드필더와 수비수의 공격 가담 역시 중요하게 여겨 시즌마다 미드필더들이 두 자리 수에 가까운 득점을 해내기도 하였다.[8] 또한 위르겐 클롭과 마찬가지로 윙백[9] 만들기에서도 은근 재주가 있는데 그가 윙백으로 만든 선수로 콰드오 아사모아[10], 안토니오 칸드레바[11], 빅터 모지스가 있다.

그러나 3-5-2 전환 후 포메이션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공격 전개가 매우 느려졌으며, 공격수들이 수비에 매우 가담하는 점과 겹쳐 공격력이 답답하다는 평을 듣게 만들기도 하였다. 측면 공격에 대한 윙백의 의존도가 상당히 강한 전술이기도 한데 당시 윙백들의 공격력이 뮌헨의 필립 람 급이었던것도 아니었다. 특이한 점은 윙백들에게 크로스를 주문하기보다는 볼운반과 직접적인 공격침투를 주문했다는 점. 실제로 유벤투스와 첼시시절 주전 윙백이었던 아사모아,리히슈타이너,모지스는 모두 크로스가 약점이었고, 마르코스 알론소는 러닝크로스가 안좋아 실제 온더볼 상황에서 크로스를 올리는 장면을 보기 힘들었다. 알바로 모라타가 시즌 초반 헤더골로 좋은 평가를 받던 시기에도 크로스를 올리는 인물은 다름아닌 아스필리쿠에타였고. 드리블 좋은 한명이 볼운반을 담당하고 나머지 한명은 직접 페널티박스로 들어가 득점이나 득점상황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로테이션을 잘 안 돌리는 편이라고 알려졌지만, 그렇다고 답도 없는 베스트 11 성애자는 아니다. 코파 이탈리아에서 아예 서브급 선수들에게 기회를 준 편이었다. 무패 더블이 가능했던 11-12 시즌 결승전에서마저도 서브를 기용하였을 정도이다.13-14 시즌 레알 마드리드 전에서 깜짝 선수비-후역습 4-3-3 카드를 쓰는 등 시즌 내내 한 전술만 고집하는 감독은 또 아니고, 선수들이나 동료 감독들에게 전술적으로 많은 칭찬을 받는 편이기도 하다.

선수를 영입함에 있어 소통을 많이 하는 감독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에게 항명하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가차없이 쳐내는 감독이기도 하다. 유벤투스 시절에도 초보 감독이라고 무시하며 콘테의 지시에 불응 및 항명하는 선수들 여럿이 잘려나간 게 그 예. 다만, 레토 지글러의 경우는 아직도 미스터리이다.[12] 첼시 시절 이바노비치, 오스카, 미켈 등 성실한 플레이를 보이지 않는 유명 선수들도 콘테의 눈밖에 나버렸다.[13] 콘테는 기량이나 이름값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열심히 뛰려는 에마누엘레 자케리니, 빅터 모제스, 마르코스 알론소 같은 선수를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화를 낼 때는 모든 스탭들이 긴장한다고 할 정도로 호랑이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다만 단점이 있다면 경기 중 위기에 처했을 때 대처하는 모습이 아쉽다. 선수, 전술 교체 타이밍 모두 아쉬운 편이라 전술 변화나 선수 교체로 역전승을 이끌어내는 경기가 많지 않다. 특히 유럽 대회에서 만족스럽지 않았던 성적과 겹쳐 많은 비판을 받았던 부분이다. 그래도 첼시 부임 이후부터는 용병술이 나름 성공하기도 해서 이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 발전을 이루었다. 사실 이 부분은 유벤투스 시절에 지고 있는 상황이 거의 없어서 경험을 쌓을 기회가 부족해서라 카더라... 그러나 이것도 첼시 시절 얘기지, 인테르에서는 계속 고집스러운 전술을 꺼내들며 2020년 12월 10일 기준으로 최근 챔피언스 리그 15경기 중에서 고작 3승에 그치고 있다 .

그럼에도 현재 유럽에서 비슷한 나이대의 감독들 중 손꼽히는 성과를 거둔 것은 분명하다. 특히 구세대 전술로 취급되던 3백의 부활에 마르셀로 비엘사 등과 함께 상당히 큰 공헌을 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든 사실.

여담으로 경기 내내 터치라인 부근에서 선수들을 굉장히 열성적으로 독려한다. 선수들 한명 한명 이름을 불러가며 가서 붙으라고 주문을 하거나 위치를 조정한다. 골을 넣었을 때 관중석으로 달려가서 하이파이브를 한다거나, 찬스를 놓쳤을 때 얼굴을 감싸면서 소리를 지르는 등, 심지어 유로 2016에선 득점 이후 세레모니하다 코피를 흘리는 일까지 있었을 정도로 리액션도 굉장히 크고 열성적이라서 중계진들의 좋은 화면 공급원이기도 하다. 반면 골먹은 상대팀은 좋아 죽는 콘테의 행동에 부들부들...

경기 개입이 굉장히 심해서 몇몇 감독이나 선수들은 콘테의 수비 조율 등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다비드 루이스 같은 선수들은 콘테의 지시를 계속 보면서, 혹은 콘테의 호통을 들으면서 수비로 돌아가는 등 거의 그라운드에서 뛰는 것과 다름 없는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리고 선수들을 굉장히 빡세게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으로 선수들의 사생활과 식단을 아주 빡빡하게 신경쓴다.

4.1. 장점[편집]


  • 선수 기량 극대화
선수 개개인의 기량을 극대화 시키는 쪽에 매우 큰 장점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유벤투스 재임 시절 유망주에 불과했던 포그바를 데려와 리그 최고의 미드필더로 성장시켰다.[14] 그리고 유벤투스는 콘테 재임 시절에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첼시에 부임하고 나서는 직전 시즌 슬럼프를 겪었던 에덴 아자르가 콘테의 밑에서 다시금 리그 최정상 공격수로 부활했다. 게다가 레스터 시티에서 은골로 캉테를 영입하여 진정한 월드 클래스로 개조해냈고, 아예 2016-17 시즌 PFA 올해의 선수상까지 차지했다. 리그 최고의 미드필더를 넘어 리그 최고의 선수가 된 것.

인테르에 부임하자마자 루카쿠를 영입했다. 맨유에서의 루카쿠는 수준 이하의 볼터치 + 에버튼 시절에 비해 현저히 낮아진 득점력 등 많은 비판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콘테는 루카쿠를 철저하게 발전시켰고, 유벤투스의 호날두와 치열한 득점왕 경쟁을 펼칠 뿐 아니라 완전히 괴물로 만들었다. 몸싸움을 지양하던 플레이 스타일을 반대로 바꾸어 적극적으로 경합을 시도하게 되었고, 뛰어난 주력과 드리블 센스가 합쳐지자 완성형 공격수로 거듭난 것.[15] 그리고 단점이었던 퍼스트 터치도 상당부분 개선되었다. 덕분에 세리에를 뛰어넘어 월드클래스 스트라이커로서 이름을 떨치고 있다.[16] 아예 인테르 시절의 호나우두와 비교하는 기사도 간간히 찾아볼 수 있다.[17]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니콜로 바렐라 역시 콘테의 부임 이후 각성한 미드필더이다. 바렐라 역시 세리에A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콘테는 선수 개개인의 기량을 극대화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칭할 수 있는 사람이다. 상술한 선수들 이외에도 수많은 선수들이 콘테의 밑에서 전성기를 맞이했으며[18], 콘테가 가는 팀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기에 선수를 사주면 결과를 내는 감독 이미지가 자리잡혔다.

  • 우승 청부사
본인이 맡은 클럽에서는 높은 확률로 트로피를 선사해준다. 특히 리그 우승 트로피. 유벤투스에서는 2년 연속으로 7위를 기록한 팀에 부임하자마자 아예 무패 우승까지 해낸 전적이 있다. 단적으로 빅 4리그의 A팀을 맡은 7년동안 리그 우승 횟수가 5회이다. 또한 경쟁이 치열한 PL에서 부임하자마자 리그 우승을 해낸 것은 우승에 재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2020-21 시즌 그가 인테르에서의 2번째 시즌에 세리에A에서 우승하며 자신이 열었던 유벤투스 장기집권 시대를 끝냈다.

  • 몰락 클럽 부활
공교롭게도 콘테가 부임한 세 클럽 모두 직전 팀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다. 7위를 기록하고 부상병동이었던 유벤투스, 선수단 태업 논란이 일었던 첼시 시절이 대표적이다. 콘테의 부임 이후 두 클럽 모두 정상 궤도를 찾고 리그 우승 트로피를 얻었다. 인테르는 콘테 부임 이전에 2년 연속 챔스 진출에 성공했기에 몰락한 클럽을 살려냈다기엔 어폐가 있다. 그래도 인테르 2년차에 무리뉴의 트레블 이후 처음으로 스쿠데토를 안기며 팀 성적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그리고 무리뉴 이후 쭉 분위기가 좋지 못한 토트넘의 새 감독으로 현재 부임했다.

4.2. 단점[편집]


  • 유럽 대항전에서의 부진
콘테는 현재 유럽 축구계의 명장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리그에서의 막강한 모습과는 다르게 유럽대항전만 나가면 죽을 쑤는 경우가 굉장히 많은데, 이는 콘테에게 가장 큰 저평가의 요인이 된다.[19] 유벤투스 부임 시절에는 무패 우승 등 리그내 절대강자로 군림하며 유럽대항전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줬으나, 유럽대항전 최고 성적은 챔스 8강에 그쳤고, 2013-14 시즌에는 아예 유로파리그로 굴러떨어지는 굴욕을 맛보기도 했다.

물론 유벤투스 부임 기간만을 가지고 그가 유럽대항전의 약체라는 평가는 좀 섣부르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콘테가 이후 맡았던 첼시, 인테르에서의 유럽대항전 성적을 살펴보면 콘테의 유럽대항전 경쟁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게 된다.

첼시 시절을 고찰해보면, 부임 첫 시즌인 2016-17 시즌에는 아예 유럽대항전 자체를 나가지 못했다. 그러므로 책임 소재를 물을 수 있는 시즌은 2017-18 시즌으로, 이 시즌에 16강에서 바르셀로나를 만나 탈락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재수없는 대진운에 걸려 미끄러졌다고 할 수 있으나, 이후 바르샤가 로마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것을 생각하면 첼시라고 바르샤를 잡지 못했을 것이라는 법도 없었다.인테르 시절은 굳이 말 안해도... [20]

다만 이는 클럽팀 감독 한정으로서,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으로 치른 유로 2016에서는 주전들의 줄부상에도 난적 벨기에, 스웨덴과 디펜딩 챔피언 스페인을 격파한 데 이어 8강에서 월드컵 챔피언 독일을 상대로 승부차기까지 끌고 가는 선전을 보였다. 그리고 콘테가 물러난 이후 이탈리아가 스웨덴에 밀려 월드컵 예선 탈락을 당하면서 콘테의 역량이 더욱 호평받고 있다.

  • 비타협적인 성격으로 인한 불협화음
단기전인 유럽대항전에서 기를 못쓰는 것과는 달리, 긴 호흡을 가지고 장기적인 운영을 해야하는 리그에서는 지금껏 거쳐갔던 굵직한 팀에서 전부 우승을 경험하는 등 검증된 능력의 명장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그러한 실적과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거쳐간 빅클럽인 유벤투스, 첼시, 인테르 모든 곳에서 3년 이상을 집권한 적이 없는데, 이것은 감독으로서의 역량의 문제가 아니고 그가 가진 특유의 불같은 성격과 비타협적인 성향에서 비롯된다.

그의 부임 전까지 리그에서 6,7위나 전전하던 몰락한 명문 유벤투스를 맡아 3년 연속 스쿠데토의 놀라운 성적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챔스에서의 성적에 만족을 못하는 팬들뿐만 아니라 영입 관련 문제 등으로 인해 아넬리 가문과의 충돌까지 나오면서 돌연 사임을 하게 되었고,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이후에 부임한 첼시에서도 2번째 시즌부터 보드진과의 대립각을 날카롭게 세우더니 시즌 막바지엔 감독 스스로가 반쯤 내려놓고 경기를 치루는 등 막장 운영을 하다가 경질되었다. 여기에 그 이후에 위약금 문제로 첼시와 법적 다툼까지 하면서 두 구단과는 모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을 정도. 인테르에서는 첫시즌의 시행착오를 겪고 두번째 시즌에서는 압도적인 리그 성적을 거두며 유벤투스의 독주에 마침표를 찍고 스쿠테토를 차지하지만 이후 이어진 이적시장에서 모기업인 쑤닝 그룹이 핵심선수인 아슈라프 하키미를 이적시키는 등 수상한 행보를 보이자 바로 상호해지로 팀을 떠났다.[21]

자신이 한번 꽂힌 선수가 있으면 실현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구단에 영입을 요청하며[22] 이게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내부적으로 해결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언론에다 대놓고 불만을 표출하는 등, 구단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행동하는 성향이 크다. 두 번이나 레알 마드리드와 접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결렬된 원인에는 이것이 크게 작용했을 거라는 견해도 많다.

4.3. 3백 성애자?[편집]


이런 별명을 얻게 만든 유벤투스 시절을 처음부터 살펴보자. 콘테 감독의 데뷔 경기는 2011-12 시즌 파르마와의 홈경기였다. 이 시즌은 현 경기장인 알리안츠 스타디움[23]이 개장한 시즌이었기 때문에 콘테의 데뷔 경기가 곧 시즌 개막전이기도 하면서 개장 첫 경기이기도 했다. 즉, 기대감이 상당했다는 것. 이 경기에서 유벤투스의 라인업은 4-2-4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부폰, 데 첼리에, 키엘리니, 바르잘리, 리히슈타이너; 마르키시오, 피를로; 지아케리니, 마트리, 델피에로, 시모네 페페로 구성되었는데, 후반전에는 델피에로가 비달과 교체되고 세 명의 미드필더가 중원에 서는 4-3-3 같은 포메이션으로 바뀐다. 경기는 홈팀 유베가 4-1로 완승하며 끝났으나, 후반 막판 왼쪽 수비수인 데 첼리에가 같은 유베 유스 출신 지오빈코에게 몸싸움을 털리면서 파울을 하였고 이것이 페널티킥이 되어 실점한 것이 아쉬운 경기였다.

이후 네 번째 경기까지는 데 첼리에와 그로소가 번갈아 왼쪽 수비수로 출전하였는데, 디펜딩 챔피언 AC밀란과의 다섯 번째 경기에서는 왼쪽 수비수로 키엘리니가 출전하고 바르잘리와 보누치가 센터백으로 출전하는 BBC 라인이 처음 데뷔를 하게 된다. 포메이션은 4-3-3으로 미드필더에 MVP 라인, 공격진에 페페, 부치니치, 크라시치가 서는 라인업이었다. 당시 국내 유베팬들은 바르잘리와 보누치가 동시에 서는 수비진을 바보라인이라 불렀었다. 그만큼 바르잘리와 보누치가 불안불안 했다는 건데, 콘테 감독은 이 경기를 2:0으로 잡으면서 유벤투스 수비가 달라졌다는 것을 대대적으로 보여주기 시작한다. 다소 불안한 왼쪽을 키엘리니가 맡고 센터백의 보누치와 바르잘리가 잘 해주면서 유벤투스의 전반기 대부분의 경기는 키엘리니-보누치-바르잘리-리히슈타이너가 수비진으로 활약했다.

그런데 전반기 경기 중에 콘테 감독이 유일하게 3백으로 시작한 경기가 있었는데 그건 열 번째 경기인 나폴리와의 원정 경기였다. 당시 세리에에는 3백 전술에 일가견이 있다고 평가받는 감독 두 명이 있었다. 하나는 나폴리의 발테르 마차리, 또 하나는 우디네세의 프란체스코 귀돌린이었다. 나폴리는 이 때 삼각 편대로 유명한 카바니, 함식, 라베찌와 함께 리그 강팀으로 거듭나는 중이었고 우디네세는 디 나탈레산체스의 활약으로 소도시 셀링클럽임에도 불구하고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던 때였다.[24] 나폴리의 경우 파올로 칸나바로, 살바토레 아로니카, 우고 캄파냐로가 3백에 서고 안드레아 도세나, 크리스티안 마지오가 측면에 서는 경우가 많았으며, 우디네세는 메드히 베나티아, 마우리시오 도미찌, 다닐루, 두샨 바스타, 파블로 아르메로 등의 선수들이 5백을 형성했다. 면면을 보면 전부 만만치 않은 선수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콘테 감독이 유럽대항전이나 이탈리아 대표팀, 그리고 첼시에서 보여준 3백 트렌드는 이 두 팀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시즌 전반기에 콘테는 이 두 팀과의 경기에서 모두 비겼고 또 두 경기에서 3백 요소를 도입하는 등 굉장히 색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그리고 후반기부터는 3백과 4백을 아예 병행하기 시작한다. 3백의 경우 밀란과의 경기에서 가능성이 나타났던 BBC 라인을 주축으로 오른쪽 윙백은 리히슈타이너가 붙박이로 나오며 왼쪽 윙백에 데 첼리에, 지아케리니, 에스티가리비아(말도나도 임대)가 나오는 3-5-2 형태가 주류였고, 4백의 경우 부치니치, 마트리, 페페가 공격진이 되는 4-3-3 포메이션이 주류였다.

콘테 감독이 3백이 그저 유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실제로 나폴리와 우디네세가 이를 바탕으로 성적을 거두고 있었기 때문에 유벤투스에서 3백을 사용했다고 볼 수는 없다. 크게 보자면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은 2011-12 시즌 개막전에서도 보였던 것처럼 부실한 왼쪽 풀백 자원이 첫째 이유이다. 전 시즌인 2010-11 시즌에는 왼쪽 풀백 자원으로 데 첼리에를 비롯해 그로소, 아르망 트라오레 등이 있었으나 모두 별로였다. 오른쪽은 더 심해서 주전이던 마르코 모타는 헬모따로 불리기도 하여 2011-12 시즌에 라치오에서 슈테판 리히슈타이너를 데려왔고, 왼쪽 자원도 레토 지글러가 왔던 것인데 콘테 감독이 지글러를 한 번도 안 쓰고 내치면서 이야기가 달라지게 된다. 3백을 사용하면 왼쪽 수비수 경험이 있는 키엘리니가 왼쪽 윙백의 공백을 커버하면서 동시에 공격적 재능이 있는 윙어나 미드필더들을 윙백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 결과 지아케리니, 시모네 파도인, 에스티가리비아등이 왼쪽 미드필더나 윙백 비슷하게 출전했다.[25] 물론 이것으로는 전문 윙백을 대체하기가 어려웠고 유럽대항전을 병행하게 된 2012-13 시즌에는 콘테 감독도 겨울 이적시장에서 아탈란타로부터 페데리코 펠루소를 데려오기도 했고 중앙 미드필더이던 아사모아를 아예 왼쪽 미드필더로 컨버젼시켜버렸다.[26]

두 번째 이유는 BBC를 다 쓰기 위해서(또는 그럴 수 밖에 없어서)이다. 사실 콘테 시절 유벤투스에서 센터백 자원으로 쓸 선수는 키엘리니, 보누치, 바르잘리에 만능 서브1 카세레스 + 만능 서브2 비달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 셋이 신기할 정도로 철강왕들이었고 이 셋 모두 엄청난 활약을 보이면서 BBC를 다 쓰지 않고서는 재능낭비인 상황이 와 버린 것이었다. 이 셋은 스타일도 전부 다 달라서, 키엘리니가 간혹 2선 라인까지 올라와 공격을 전개한다면 보누치는 수비 라인에서의 빌드업을 시작하는 꼭지점 역할을 하고, 바르잘리는 후방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다 보누치의 빌드업 능력을 높게 평가한 콘테 감독이 보누치를 3백의 가운데에 박아놓으면서 보누치의 단점인 느린 발과 가끔가다 터지는 수비 실수를 보완할 필요가 생겼는데 4백 라인보다 3백 라인에서는 다른 센터백이 그 구멍을 메워주기가 매우 적합하다. 이 당시 보누치는 그 앞선에 서는 피를로에게 가중되는 빌드업 부담 + 상대의 전담마크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선수이기도 했고. 이후 콘테 유벤투스 말기에는 굳이 BBC가 가동되지 않더라도 3백을 쓰는 등 전술 자체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모습이 나타난다.

5. 기록[편집]



5.1. 대회 기록[편집]



5.1.1. 선수[편집]




5.1.2. 감독[편집]







5.2. 개인 수상[편집]



5.2.1. 선수[편집]


  • 유벤투스 명예의 거리 50인

5.2.2. 감독[편집]


  • FIFA 올해의 감독 2위: 2017
  • 세리에 A 올해의 감독: 2011-12, 2012-13, 2013-14
  • 판키나도르: 2011-12, 2012-13, 2013-14
  •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감독: 2016-17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감독: 2016년 10월ㆍ11월ㆍ12월
  • 가제타 스포츠 어워드 올해의 감독: 2015
  • 런던 풋볼 어워드 올해의 감독: 2016-17
  • 글로브 사커 어워드 올해의 감독: 2013
  • 팔로네 디 아르젠토: 2008-09
  • LMA 올해의 감독: 2016-17

5.3. 서훈[편집]


  •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5등급: 2000

6. 가족[편집]


파일:Antonio Conte-Juve.jpg
사진 왼쪽이 아내인 엘리자베타. 2013년 5월 사진으로 이당시 딸은 5세였다.

동생인 지안루카 콘테와는 3살 차이가 난다. 청소년 시절에는 동생이 형보다 실력이 좋았는지 한날한시에 프로에 데뷔했으나 1시즌만에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고향 근처에 있는 포자 대학교 (Università degli Studi di Foggia)에서 스포츠과학 학사학위를 받은 뒤 형의 도움으로 감독 라이센스를 취득하고 형의 수석코치로 일하고 있다 낙하산

배우자는 엘리자베타 머스카렐인데 토리노 출신이고 생일은 1975년 12월 3일이다. 2004년부터 연애하기 시작해서 2013년에 결혼했다. 딸 비토리아는 2007년 11월 9일생이다.


파일:daughter_pays_tribute_to_father_with 'The Confather'.jpg
[27]
딸바보이다. 외동딸인데다가 사진을 보면 알다시피 무척 귀엽기도 하다. 콘테가 수염을 길렀을 때 딸이 아버지가 나이들어보이는게 싫다 고 말하자 곧바로 면도를 했다. 본인은 이에대해 아내가 수염을 꽤 마음에 들어했던 것 같은데 자신한테는 딸의 평가가 더 중요하다고 인터뷰했었다.

2021년 토트넘 부임 당시 그 이유에 대해 커리어 외적으로 인테르와의 계약서에 이탈리아 바깥의 클럽에 이임할경우 이직 보너스로 2백만 유로를 더 지급한다는 조항을 넣었기 때문이 아니겠냐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본인 인터뷰에 따르면 부임시점을 기준으로 만 13세인 딸의 교육 문제가 더 큰 유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7. 여담[편집]


  • 2012년 5월 세리에 B 승부조작 사건 당시 가담했던 한 선수의 주장에 따라 "승부조작 사실을 보고하지 않은 혐의"로 4개월 간 감독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28] 이와 관련해 유벤투스 팬들은 "불 같은 성격으로 미루어 보아 승부조작 사실을 알았으면 가담한 선수한테 주먹부터 휘둘렀을 것"이라 반응했다. 2015년 7월 같은 건에 대한 형사재판을 위한 검찰 소환이 시작됐고, 재판으로 인해 유로 2016 일정에 영향이 있을 것을 우려한 콘테 감독은 신속처리절차(fast track)를 신청, 2016년 5월 16일 무혐의로 판결되었다.

  • 파일:external/i.dailymail.co.uk/318E41F800000578-0-image-m-197_145641995044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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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발의 헤어스타일 때문에 유베팬이나 세리에 팬들 외에는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었지만... 사실 탈모인이다. 과거 선수 시절부터 정수리가 휑한 심각한 탈모로 나중에 머리를 심고 가발까지 착용한게 지금의 헤어스타일이다. 구글에 "Conte Arezzo"를 검색해 보면 예전의 머리스타일을 찾아볼 수 있다.

  • 첼시 부임 이후, 줄곧 자국 리그에 있었고 영어를 잘 하는 편이 아니라 잉글랜드 적응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는데 인터뷰들을 보면 본격적으로 영어 공부를 시작한지 두세달 밖에 안 된 사람치고는 꽤 잘한다. 여담으로 해외 축구 기사나 인터뷰를 번역하는 사람들이 꽤나 좋아하는 감독이기도 한데, 그가 영어로 말할 때 쉬운 단어들을 선택하고,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료하게 전달되기 때문에 번역하기가 상당히 쉽다고 한다.


  • 16-17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리그 홈경기에서 무리뉴에게 한 소리 들었다. 콘테 감독이 이끄는 첼시가 첼시에서 경질되어 이를 갈던 무리뉴의 맨유를 4-0으로 격파했기 때문.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무리뉴 감독이 콘테 감독의 격렬한 세레모니를 보고 분을 참지 못한 듯 하다. 콘테 감독은 둘의 관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으나...


  • 토트넘의 회장인 다니엘 레비가 프리미어 리그의 클럽들이 무분별하게 높은 이적료를 사용하는 것에 관한 비판을 하였는데 이에 세비야가 프리메라리가에서 우승을 하지 못하면 비극이 아니듯이, 토트넘 또한 엘리트 클럽이 아니니깐 우승 못해도 비극이 아니라며 조롱했으며# 자신이 영입하고자 하는 드림 스트라이커는 케인이라며 도발했다.#그리고 몇년 후, 그는 토트넘 감독이 되었다.

  • 무리뉴에 대해서도 비판을 했는데, 2년 전 첼시가 겪은 리그 10위는 다시 일어나면 안되는 일이라며 이른바 '무리뉴 시즌'이라고 까지 칭하면서 인터뷰했다. #

  • 첼시에서 끊임없는 요렌테 사랑에, 앤디 캐롤, 피터 크라우치, 크리스티안 벤테케까지 이적시장에 이름이 나오게하며 베테랑 장신 스트라이커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않으며 도가 지나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 싸줄에서 분석한 2016 유로의 빌드업 분석글을 보면 어느정도 이해가 되기도 하는 상황. 결국 마리나의 능력으로 올리비에 지루를 영입하며 만주키치, 지루, 제코, 요렌테 중 30세 이상의 장신 공격수 중 PL 적응까지 감안하면 톱티어의 선수들 중 현실적으로 제일 저렴한 가격에 구해오며 콘테의 걱정을 한 시름 덜어주었다. 인터밀란 감독이 된 후에도 지루 링크가 계속 나오는 등 여전히 장신 스트라이커에 대한 애정을 보이고 있다.[29]

  • 천적까지는 아니어도 이상하게 기를 못 펴는 상대는 바로 벵거의 아스날과 클롭의 리버풀. 아스날과는 부임 후 두 시즌동안 리그뿐만 아니라 FA컵, FA 커뮤니티 실드 그리고 리그컵에서 유독 자주 만났는데 8경기 1승에 그치고 있다.기사 첫 대결은 16/17 시즌 아스날 리그 원정이었는데 외질산체스를 막지 못해 0대3으로 패했다. 이는 직전 라운드였던 리버풀 전 패배에 이은 뼈아픈 패배였으며 이 경기 이후 3백 카드를 꺼내들었고 결국 성공을 거둔다. 홈에서 치른 리그 2차전은 이겼으나 현재까지 유일한 승리가 바로 이때 거둔 것. 16/17 시즌 FA컵 결승전은 대부분 리그우승팀 첼시의 우세를 점쳤으나 유로파로 밀려 FA컵 우승으로 명예회복을 하려는 아스날의 절박함에 또 한번 패배. 17/18 시즌 커뮤니티 실드는 승부차기 끝에 패배했고 리그 2경기는 사이좋게 비겼다. 그리고 리그컵 4강 1차전에서는 비겼으나 2차전 아스날 원정에서는 2골을 불운하게 실점해 1:2로 역전패당해 탈락하고 말았다. 17/18 시즌은 리그경기가 모두 끝났고 아스날이 FA컵을 조기탈락하고 양팀은 유럽대회도 챔스와 유로파로 다르기 때문에 더이상 만날일이 없다. 그 외에 리버풀과는 4전 1승 2무 1패이지만 경기력에서는 좋지 못한 결과를 보여줬었다.

  • 첼시 레이디스에서 뛰고 있는 지소연이 슛포러브와의 인터뷰 밝힌 바로는 남자 선수들만 쓰던 첼시 FC의 좋은 시설들을 여자 선수들도 쓸 수 있게 해준 사람이 콘테라고 한다. 첼시 레이디스 선수들의 운동하는 모습도 보러 오기도 하고 격려도 해준다고 한다.

  • 첼시와 결별 후 첼시가 위약금 지급을 거부하여 콘테는 첼시를 국제 스포츠 중재재판소 CAS에 첼시를 고소했다. 첼시의 위약금 지급 거부사유가 매우 추한데 디에고 코스타 문자 방출 사건, 구단 행사 불참, 코밤 훈련장 주차 위반이 그 이유다. 결국에는 첼시가 위약금을 지급해준 듯.

  • 사진들을 보면 알겠지만 입이 꽤 크다.

  • 인테르 골수팬으로 유명한 박찬우 해설위원이 2020-21 시즌 초에 '유베첩자'라 부르며 싫어하던 사람이었으나 유벤투스 천하를 끝내고 팀에게 11년만의 스쿠데토를 안겨주자 언제 그랬냐는듯이 콘버지라 불리며 찬양을 받았다.그리고 인테르를 떠났다.

  • 20/21 시즌 코파 이탈리아 4강전 2차전에서 유벤투스의 회장 아넬리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는 등 전 소속팀 회장과의 사이가 안 좋음을 보여주었다. 아넬리와는 특히 유벤투스에서 콘테를 언론으로부터 보호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사이가 좋을리가 없긴 하다.

  • 무리뉴와 겹치는 클럽이 3개가 있다. 첼시,[30] 인터밀란,[31] 토트넘[32]이 있다.

  • 토트넘 홋스퍼 감독으로는 최초로 이탈리아 국적을 가진 감독이 되었다.

  • 선수단을 굉장히 타이트하게 관리하는 걸로 유명하다. 최근 토트넘 감독으로 부임한 콘테는 키르스토프 테루어에 의하면 콘테가 5년 전 첼시에서 그랬던 거와 같이 토트넘 선수들에게 소스류 금지했다고 한다. 피자, 케찹, 브라운 소스, 탄산 음료, 스카이 소스를 금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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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수시절이던 2003년 메디컬체크에서 맨발로 정확히 측정, 착화신장은 178cm.[2] 특히 유로 2000 당시에는 첫 경기인 터키전에서 오버헤드킥 선제골을 기록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비록 터키에게 동점골을 얻어맞는 등 고전하며 2-1로 신승하긴 했지만 콘테의 존재감은 강렬했다.[3] 다른 감독들은 후술[4] 보통 쓰리백은 양 윙백이 사실상의 풀백을 맡고, 중앙 수비수중 두명은 일반적인 수비수처럼 플레이하는 대신 한명이 최후방 레지스타처럼 볼을 전개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콘테의 전술도 이와 비슷하지만 정확히 따지자면 비대칭 4-2-2-2로 운영하며 풀백 두명중 한명은 윙백으로, 한명은 중앙수비수로 옮기는 형식을 사용하는 편. 펩 과르디올라의 3-3-3-1 전술에서 에릭 아비달카일 워커의 자리가 어딘지, 다니엘 알베스파비안 델프의 자리가 어디였는지를 떠오르면 이해하기 쉽다.[5] 유벤투스 트레이닝센터 이름이 비노보이다.[6] 맨유에서 유벤투스로 넘어올 때도 약간의 잡음이 있긴 했으나 콘테 체제에서는 큰 문제 없이 착실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시 맨유로 이적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문제를 일으키며 유벤투스 팬들에게 찍힌 것으로 모자라 17/18 시즌에는 우리도 중요 선수들이 많이 다쳐봤으니 맨시티의 중요 선수들도 다쳤으면 좋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발언까지 하며 축구 팬들에게 까이고 있다. 맨유가서도 태업 논란이 끊임없이 나오고 이적설이 수도 없이 나도는 걸 보면 콘테가 포그바를 잘 통제했던 것이 맞다.[7] 미르코 부치니치, 파비오 콸리아렐라, 세바스티안 지오빈코, 알레산드로 마트리 등이 있다. 하지만 이후의 카를로스 테베스, 요렌테, 디에고 코스타, 알바로 모라타, 라우타로 마르티네스, 로멜루 루카쿠가 꽤 좋은 득점력을 보인 것을 보면 전자의 선수들이 못한 것도 컸다.[8] 아르투로 비달이 대표적인 케이스.[9] 차두리에게 윙백으로 포지션 변경을 처음 제안한 감독이 클롭이다.[10] 중앙 미드필더에서 좌측 윙백으로 변경. 알레그리 체제에서는 4백의 레프트 풀백도 뛰고 있다.[11] 본 포지션은 모지스와 마찬가지로 윙어이고 지금도 윙어가 주 포지션이지만 콘테가 이탈리아 감독을 하던 시절 그를 주전 윙백으로 기용했었고 이는 성공적이었다. 이 때문에 3백을 쓰는 첼시 이적설이 뜨기도 했었다.[12] 이런 경우는 보통 본인이 원하던 선수가 아닌 보드진이 영입한 선수일 수 있다. 지글러의 포지션은 레프트백으로 콘테의 3-5-2 포지션에서는 레프트 윙백에 기용할 수 있는데 콘테는 지글러를 보내고 다른 영입 없이 보내더니 12/13 시즌, 본래 중앙 미드필더인 콰드오 아사모아를 기용하였고 백업은 기존의 파올로 데 첼리에를 기용했었다. 이로 인해 지글러가 필요없던 자원이라 생각한 것일 수 있다. 콘테의 전임 감독인 루이지 델 네리가 원했던 선수인데 델 네리가 경질되고 콘테가 감독이 되면서 위상이 애매해진 것이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13] 다만 이들은 전술 상의 문제, 기량 저하 때문에 기용되지 않은 것이라고 보는게 더 타당하다.[14] 이외에도 보누치, 마르키시오, 비달 등의 선수들이 콘테 밑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비달과는 인테르에서 재회했다.[15] 득점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공격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한데, 득점력까지 좋다.[16] 레반도프스키, 해리케인과 비슷한 급 아니냐는 평가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맨유 시절이였다면 있을 수 없는 평가다.[17] 실제로 호나우두가 인테르에서 50골을 달성하기까지 77경기 걸렸는데, 루카쿠는 70경기 걸렸다. 즉, 인테르에서의 득점 페이스만 놓고 보면 호나우두 이상이다.[18] 특히 라우타로 마르티네스는 19-20시즌 몸값이 1500억까지 치솟았다. 물론 요즘은 다시 수직낙하하긴 했으나, 그만큼 콘테 덕에 전성기를 맞은 것.사기꾼 될 뻔 산체스 역시 콘테 밑에서 다시 부활했다. 맨유에서 77ㅓ억 이라는 불명예를 안은 산체스가 전성기 기량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름 인테르의 주요 선수로 활약하는 것은 콘테의 지도 덕분이다.[19] 이와 비슷한 케이스를 겪은 이탈리아 감독으로 로베르토 만치니가 있다. 만치니 역시 인터 밀란 감독을 하면서 오랫동안 세리에 A를 제패하고 맨체스터 시티에 부임하면서 구단 최초의 리그 우승까지 이뤄내는 등 팀이 리그 최정상 수준으로 끌어올려도 유독 챔피언스리그에서 약한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20] 이쯤되면 리그만 집중하고 나머지 대회들은 덤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다르게 말하면 실질적으로 리그 우승을 해보는게 목표인 클럽이라면 콘테는 딱 맞지만 챔스를 우승하고 유럽 최고의 팀을 목표로 하는 클럽 입장에서는 콘테가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유망주를 기르고 장기적으로 팀을 맡길 수 있는 타입은 아니며 빠른 기간내에 리그 우승을 달성하기 위한 감독이다. 링크가 났었던 레알, 맨유, 토트넘 모두 실패한 것도 물론 콘테의 불같은 성격 문제도 있지만 유망주보단 베테랑 위주로 운영해서 결과를 내도 콘테가 나가면 악성 재고가 쌓이는 스쿼드 또한 분명히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물론 이들 중 발등에 불이 떨어진 토트넘은 결국 이전에 거부했던 콘테의 조건들을 수락하며 데려왔다.[21] 콘테가 떠난 이후 인테르는 팀의 핵심 중의 핵심인 로멜루 루카쿠까지 이적시키는 등 사실상 구단 매각 절차를 밟는 수순을 보여주면서 결과적으로 콘테의 선택은 옳은 선택이 되었다.[22] 대표적인 예로는 첼시 FC 시절부터 영입을 원했으나 최종적으로는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시절에서야 함께할 수 있었던 로멜루 루카쿠가 있다. 캉테의 경우 콘테 본인도 만족스러워하면서 잘 써먹었지만, 콘테의 요청이 들어오기 이전에도 당시 첼시 FC의 기술이사로 있었던 마이클 에메날로가 레스터 시티 FC에서의 활약을 본 뒤에 영입 작업을 어느 정도는 해 뒀었던 선수였다고 한다.[23] 그 때는 알리안츠가 스폰서가 아니었기 때문에 유벤투스 스타디움으로 불렸다.[24] 정확히는 진출권은 따냈으나 2011-12 시즌 본선에 올라가진 못했으며, 같은 시즌에 산체스는 스페인으로 가버렸다.[25] 이런 포지션 파괴의 성공은 지아케리니가 대표팀 시절 유로 2016에서 보여준 활약으로 정리된다.[26] 그래서 볼프스부르크에서 뛰던 리카르도 로드리게스 루머가 진하게 나기도 했었다. 그 이상의 자원을 데려오기엔 돈도 없었던 때였고.[27] 사진은 딸 비토리아가 2017년 5월 9일 있었던 프리미어리그 첼시 vs 미들즈브러 FC전에서 아버지를 응원하려고 대부 (The Godfather) 를 패러디한 그림을 들고 나온 사진이다.[28] 콘테는 당초 혐의를 부인했으나 리그 진행에 차질을 우려한 유벤투스 구단의 조언에 따라 혐의를 인정하고 3개월 정지로 처분을 감면하는 사법거래(plea bargain)을 제안했다. 징계위원회는 이를 거부하고 10개월 자격정지 처분을 내렸다가 일부 혐의를 벗어 4개월로 경감됐다. 일단 크게 징계를 때리고 아닌 게 밝혀지면 감면하는 유죄 추정의 원칙 적용 사례.[29] 역시 첼시 시절 어떻게든 영입하고 싶어했던 로멜루 루카쿠를 드디어 인터밀란에서 만났지만 루카쿠는 상술한 스트라이커의 주특기인 포스트 플레이를 할 줄 아는데 매우 안 하기 때문에 이런 플레이는 루카쿠가 아닌 단신의 공격수인 라우타로가 맡고 있다. 이런 이유로 지루 링크가 계속 뜨는 듯 하다.[30] 무리뉴 2004~2007, 2013~2015 콘테[31] 무리뉴 2008~2010 콘테 2019~2021[32] 무리뉴 2019~2021 콘테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