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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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모
출생
1967년 12월 26일 (56세)
인천광역시[1]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학력
인천고등학교 (상과 / 졸업[2])
인천대학교 (중퇴[3])
병역
대한민국 육군 이병[4] 소집해제
데뷔
1987년 티삼스
가족
부인 정현이[5]
소속사
스쿨뮤직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1. 개요
2. 활동
2.1. 데뷔 이전
2.2. 티삼스 시절
3. 이후
4. 경력
5. 앨범
6. 수상
7. 방송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가수, 기업인.

스쿨뮤직 대표. 인천 밴드 음악 1세대로 알려져 있고, 1980년대 인하공대 건축과의 음악동아리로 시작한 그룹 '티삼스'의 키보디스트로 활동했으며, 대표곡으로 <매일 매일 기다려>가 있다.


2. 활동[편집]



2.1. 데뷔 이전[편집]


인천고등학교 상과에서 음악만 하다가 막판 한 달 공부해서 인천대학교에 입학했는데, 입학하자마자 음악을 할려고 때려치웠다고 한다.

1983~4년, 인천의 대학 서클을 모아서 공연을 하고 싶어 인천시민회관에 갔더니 집회허가서를 받아오라고 하면서 까였다고 한다. 결국 1985년 10월 18일, 나병환자돕기 공연으로 인천그룹사운드연협회를 결성했다.


2.2. 티삼스 시절[편집]


이후 티삼스에 키보디스트로 합류했지만 돈이 되지 않아 짜장면 배달도 하고, 나이트클럽 알바도 뛰고, 6개월 방위 복무 후 제대해서 이 또한 잘 되지 않아 1989년 말에 해체됐다고 한다. 본인 말로는 전속계약으로 3년 동안 묶여있었다고 한다.#

당시 티삼스가 대학가요제에서 수상을 한 뒤, 아세아레코드[6]와 3년 전속계약을 맺었는데, 1집 내고 쫄딱 망하는 바람에 매니지먼트가 있던 시절도 아닌지라 소속사가 뭘 해줄수는 없었다고 한다.

어찌 됐든 인천그룹사운드연합회를 만든 초대 멤버로서, 인천 밴드 1세대로 기억되고 있다.[7]

티삼스의 공백기간 동안 KBS 뉴스 9 음악감독으로 일했던 왕준기 작곡가의 작업실에서 방송이나 녹음일도 했었다.


3. 이후[편집]


티삼스 해체 이후 1990년부터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1994년부터는 인천시민회관이 없어지던 1996년까지 학원을 운영하면서 고등학생 밴드들이 인천시민회관에서 공연하게 도와줬다고 한다.[8] 2002년부터 악기 판매업을 하는 스쿨뮤직의 대표, 2010년대부터는 인천그룹사운드연합회를 계승한 인천밴드협회의 협회장으로 재직중이다.

2017년부터는 엔터테인먼트 사업에도 진출해, 당시 무명이던 가수 연아를 오디션을 통해 발탁하여, 전속계약을 맺고, 요요미로 재데뷔시켰고, 요요미의 첫 앨범 <첫번째 이야기 (First Story)>를 발매했다. 요요미의 노래 중 대부분의 곡을 작사, 작곡, 편곡했으며 앨범 사진 촬영도 가끔 하는 편이다. 부인인 작곡가 정현이도 요요미의 곡에 참여한다.


4. 경력[편집]


  • 그룹 '티삼스' 멤버, 키보디스트
  • 인천밴드협회 회장
  • 2010.08~ 인천시하키협회 회장
  • 2000~ 스쿨뮤직 대표이사


5. 앨범[편집]




6. 수상[편집]


  • 1987년 제8회 강변가요제 동상


7. 방송[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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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1974년 고교 평준화로 폐지된 뒤, 1992년부터 1996년까지 잠시 부활된 적 있었다.[3] 입학하자마자 자퇴했다고 한다.[4] 6개월 방위병으로 복무했다.[5] 작곡가.[6] 남인수가 설립했던 아세아레코드가 한동안 그로기 상태에 있다가 전후 복구되는 과정에서 연예기획사 사업을 하면서 극적으로 부활한 회사. 나훈아가 아세아레코드 소속이였다.[7] 1978년 데뷔한 사랑과 평화가 인천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애초 사랑과 평화 멤버들은 인천 출신도 아니거니와 기반이랄 게 없었기 때문에 1세대로 분류되지 않는다.[8] 이 때 헤비메탈 밴드 사하라도 불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