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서도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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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부속 관할
3.1. 안서사진(安西四鎭)
3.2. 도독부(都督府)
3.3. 주(州)


1. 개요[편집]


안서대도호부(西) 또는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라고 지칭한다. 안서도호부는 당나라가 현지에서 서역을 경략하기 위한 기관으로서 640년 고창국(高昌國)을 무너뜨리고 서주에 도호부를 세웠다가 658년에 구차로 옮겼다. 안서도호부는 타림 분지에서 서투르키스탄의 지역을 관장하다가 790년에 토번(吐蕃)에게 빼앗겼다.


2. 역사[편집]


640년, 당태종이 고창국을 멸망시키고 그 자리에 서주도호부를 설치하였다. 그러나 서돌궐과 튀르기시의 침입을 방어하기에 유리한 거점이었던 교하성으로 옮겼고 이름도 안서도호부로 개칭하였다. 안서도호부는 단순히 서역을 지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슬람 제국, 오아시스 제국(諸國)과 무역하기 위한 실크로드를 보호하는 등 경제적인 이권까지 쥐락펴락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초대 도호는 교사망(喬師望)이 부임했고, 후임으로는 곽효각(郭孝恪)이 계임했다. 648년, 곽효각이 구차국을 멸망시키자 안서도호부의 치소를 쿠차(龟兹)로 옮겼다. 그런데 서돌궐의 공세로 도호부의 치소가 잠시 서주로 다시 이전되었다. 결국 657년 전군 총관 소정방이 서돌궐 정벌에 출전하여 사발라가한을 생포하고 서돌궐이 와해되자 이듬해에 도호부를 구차로 다시 옮겼다. 이후 안서도호부의 관할 구역은 더욱 방대해졌고, 이에 안서도호부는 군사적 기구인 안서사진을 따로 상설해 90여 속주를 통치하였다.

747년, 고선지가 연운보에서 토번군을 격파하고 소발률[1]을 점령함으로써 서역의 72개 소국이 당에 항복한다. 그러나, 고선지가 이끄는 서역 원정군이 제2차 석국 정벌에서 패하여 확장이 저지되고 755년, 안사의 난이 발발하여 안서사진의 군대가 경군을 돕기위해 관내로 차출되자 서역은 자연스레 무방비로 노출되었고 이후 토번위구르 제국이 서역을 연이어 침입해 안서도호부의 실크로드 관할은 크게 위축되었다.

781년, 토번의 재상 상치싱얼이 월아천에서 회흘의 군대와 사주자사의 당군을 격파하고 돈황을 점령했다. 돈황은 당나라 본토와 서역 중간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로서 여기가 끊기자 지원도 불가능해졌고 자연스레 안서도호부 전역은 토번의 영향력하에 놓여지게될 위기에 처했다. 실질적으로 서역 일부를 토번이 점유하자 실크로드는 그 존재 의미가 퇴색하였고, 당나라는 위구르제국과의 화친 및 관계 개선을 이행함으로서 당의 장안과 안서도호부는 위구르 제국에 의존해 연락 및 지원을 취했다. 그리고 마침내 790년, 위구르의 군대가 북정을 공격하나 토번의 명장 줘치수에게 대패하고 서역 전역을 토번에 빼앗김으로써 안서도호부는 폐지되었다.[2]

3. 부속 관할[편집]



3.1. 안서사진(安西四鎭)[편집]


귀자도독부(亀茲都督府), 비사도독부(毗沙都督府), 소륵도독부(疏勒都督府), 언기도독부(焉耆都督府)


3.2. 도독부(都督府)[편집]


월지도독부(月氏都督府), 태한도독부(太汗都督府), 조지도독부(條枝都督府), 대마도독부(大馬都督府), 고부도독부(高附都督府), 수선도독부(修鮮都督府), 사봉도독부(寫鳳都督府), 열반도독부(悦般都督府), 파사도독부(波斯都督府)


3.3. 주(州)[편집]


기사주(奇沙州), 화묵주(和默州), 여수오주(挔手敖州), 곤허주(崑墟州), 지거주(至秬州), 조비주(鳥飛州), 왕정주(王庭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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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날 파키스탄의 길기트 지역.[2] 그러나 10년 뒤, 위구르는 포기하지 않고 지금의 윈난성 지역에 위치한 남조국과 함께 토번의 영토에 남-북쪽으로 서로 협공을 가함으로서 승승장구하던 토번에 패배를 안겨 줬고, 서서히 기울어 가던 토번은 9세기 후반부터 내분이 일어나면서 여러 소국들로 갈라져 멸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