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원(야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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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원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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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B66 [[태평양 돌핀스|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59번}}}
노민승
(1989~1990)

안병원
(1992~1995)


강해룡
(1996~1998)
{{{#fab93d [[현대 유니콘스|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29번}}}
서정민
(1992~1995)

안병원
(1996~1998)


김억만
(1999)
LG 트윈스 등번호 19번
민원기
(1992~1998)

안병원
(1999~2002)


박용진
(2003)
LG 트윈스 등번호 20번
박용진
(2001~2002)

안병원
(2003)


양현석
(2004)
{{{#ffffff [[키움 히어로즈|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70번}}}
윤학길
(2009)

안병원
(2012~2014)


박철영
(2015~2016)



파일:LG병원.png
현역 말기 때의 LG 트윈스 투수 시절
안병원
安丙元 | An Byeong Won

출생
1973년 10월 4일 (50세)
강원도 원주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원주명륜초 - 원주중 - 원주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2년 고졸 연고구단 자유계약 (태평양)
소속팀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 (1992~1998)
LG 트윈스 (1999~2003)
지도자
홍익대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2004)
원주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2005~2011)
넥센 히어로즈 2군 재활코치 (2012~2013)
넥센 히어로즈 2군 투수코치 (2014)
선린인터넷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2015)
원주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2016~2019)
북일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2021~)

1. 개요
2. 선수 경력
3. 지도자 경력
4. 연도별 성적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전직 프로야구 선수.

고교 지도자를 거쳐 2021년부터 넥센 히어로즈 2군 재활코치를 맡다가 2014년에는 2군 투수코치를 맡았다. 2023년 현재 북일고등학교 코치이다. 원주고등학교 감독 경력으로는 2000년부터 2011년까지 7년간 몸담았고, 또 선린인터넷고에서 2018년에 한하여 투수코치로 지낸 바 있다.


2. 선수 경력[편집]


보기 드문 강원도 태백시 출신 야구선수다. 원주고 시절 유망주로 주목받은 그를 태평양이 영입하면서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데뷔 첫 해인 1992년에 역대 최연소 완봉승 기록을 세우면서 잘 나가던 선수였다. 이해 92 동문들인 염종석, 정민철 등 워낙 엄청난 신인들이 많아서 그렇지, 10승을 거두면서 고졸 신인치고 준수한 성적을 냈다. 이듬해에는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해서 170이닝에 3.02의 평균자책점으로 고작 4승밖에 거두지 못하는[1] 불운도 맛보았지만, 성장이 기대되던 선수였다.

1994년 태평양이 한국시리즈에 올라갈 당시, 10승 투수가 되면서[2] 맹활약했다.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도 선발로 나와 호투하다가 송구 실책을 저지르면서 무너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 뒤로는 쭉 하향세를 그렸다. 본인이 반농담 반진담조로 이름이 병원이라서 자주 다치는 건가 했는데, 정말 부상 때문에 그 뒤에는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3] 그래도 1998년 현대 소속으로 우승을 경험[4]하였다.

1999년 임선동LG를 떠나 현대로 옮길 때, 현금 8억 원[5]과 함께 교환된 선수가 안병원이었다. 하지만, LG에서도 이렇다 할 활약은 보여주지 못하고 조용히 은퇴하게 되었다.[6]


3. 지도자 경력[편집]


은퇴 후에는 홍익대학교 코치를 거쳐, 모교인 원주고등학교 감독으로 오래 재직[7]하다가 2012년부터 넥센 히어로즈의 코치를 맡았다.

2014시즌 후, 계약이 종료되어 팀을 떠나 2015년부터 선린인터넷고등학교의 투수 코치를 맡았다.(윤석환 감독이 부임하기 전까지는 임시 감독 역할을 했다.) 2016년부터 다시 원주고등학교 감독으로 재직했다. 2019년 WBSC U-18 야구 월드컵 대표팀에는 투수코치로 이성열 감독을 보좌했다.

2019년을 끝으로 원주고 감독직에서 사임했다.

이후 2020년 말, 이상군 감독의 부름을 받아 북일고등학교 코치로 부임했다.


4. 연도별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WHIP
1992
태평양
25
126⅔
10
8
2
0
4.26
124
12
60
88
1.39
1993
22
170
4
10
0
0
3.02
164
8
64
100
1.32
1994
25
145⅔
11
10
0
0
3.40
148
9
53
66
1.34
1995
19
117⅓
4
8
0
0
4.45
125
10
44
77
1.40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WHIP
1996
현대
20
52⅓
4
5
0
0
4.47
47
5
20
31
1.19
1997
37
123
4
9
1
0
4.76
122
15
65
97
1.46
1998
20
36⅓
2
0
1
0
4.21
35
4
19
23
1.40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WHIP
1999
LG
7
28
0
3
0
0
12.54
51
9
13
17
2.21
2000
17
68
6
3
0
0
5.29
77
10
24
40
1.46
2001
23
80⅓
1
8
0
0
7.39
102
9
53
38
1.86
2002
8
25⅓
0
3
0
0
4.62
26
4
16
15
1.42
2003
1
0⅔
0
0
0
0
0.00
2
0
0
0
3.00
KBO 통산
(12시즌)
224
973⅔
46
67
4
0
4.58
1023
95
431
592
1.44


5. 관련 문서[편집]




[1] 93년 태평양 돌핀스는 KBO 1시즌 최악의 타격팀으로 분류되곤 했다. 82년 전신인 삼미 슈퍼스타즈랑 맞먹는 수준 거기다가 팀은 최하위를 기록했고 해태/삼성/LG에게 그야말로 조공을 했다[2] 로테이션 상으로 4선발이며. 에이스 이자 승률왕인 좌완투수 김홍집/2선발이자 그해 신인상 투표 4위까지한 최상덕/3선발 좌완 최창호/5선발 3년차 정민태 였으며 김홍집은 저해에 방위병 으로 홈경기에만 주로 출전을 했었다.[3] 이 때문에 LG로 이적한 뒤 안성룡으로 개명을 시도했으나 대법에서 기각되었다고 한다. 2005년 이전에는 개명이 법적으로 쉽지가 않은 시대였다. 지금은 개명 절차가 쉽긴 하나, 범죄자들 같은 경우에는 거의 해주지 않는 편이다.[4] 정규시즌 한정이지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는 하차했다. 아무것도 활약없던 OB에서 방출되어 건너온 좌완 김익재가 대신 들어간게 어이가 없을지경[5] 삼성 라이온즈가 데려간다는 썰을 듣고 삼성보다 더 많은 1억원을 지불하여 데려온거다. 근데 삼성은 데려오라는 투수가 아닌 타자를 데려온다. 현대가 쓴 중에서 박경완을 쌍방울에서 주고 온 돈이 당시 9억원 이였는데 이 당시 삼성과 머니 대결에서 양대 지분을 사서 팬들에게 엄청 욕을 먹는다. 어찌되었든 현대는 그 돈으로 98년과 2000년 우승을 했긴 했다.[6] 그래도 2000년 시즌에는 방어율은 5.29로 다소 높았지만 6승 3패를 기록하면서 그럭저럭 해낸 편이었고 그 해 두산과의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는 단 1안타만 내주고 승리투수가 되었다.[7] 원주고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모교 감독을 맡았다. 이 때 원주고에서 인연을 맺은 제자가 이후 김병현과의 트레이드로 넥센 유니폼을 입게 되는 좌완투수 김영광이다. 두산 베어스함덕주 역시 안병원의 지도를 받았고 강원지역 고교 선수로서 유일하게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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