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슈피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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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슈피겔만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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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ngouleme-logo.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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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슈피겔만

장 클로드 데니스






아트 슈피겔만[1]
Art Spiegelman

파일:180203_Art_Spiegelman_Portraits_009.jpg

본명
이츠하크 아브라함 벤제브 슈피겔만[2]
Itzhak Avraham ben Zeev Spiegelman
출생
1948년 2월 15일 (76세)
스웨덴 스톡홀름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직업
만화가, 편집자
장르
역사, 회고록
활동
1960년대 중반 – 현재
학력
하퍼 칼리지 (졸업, 1965–68)
뉴욕 주립대학교 빙엄턴 교대학원 (명예박사)
부모
아버지 브와디스와프 슈피겔만
어머니 아냐 슈피겔만
배우자
프랑소와즈 몰리 (1955년생 / 1977년 결혼)
자녀
딸 나자 슈피겔만 (1987년생)
아들 대시엘 슈피겔만 (1992년생)
종교
유대교
서명
파일:Spiegelman.jpg
1. 개요
2. 상세
3. 작품
3.1. 의 등장인물
4. 기타



1. 개요[편집]


미국만화가.


2. 상세[편집]


1948년 2월 15일생.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홀로코스트 생존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3살때 바로 미국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그냥 유대계 미국인이라 보는게 더 적합하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폴란드계 미국인에 가깝다. 폴란드어에 유창하진 않지만 대충 어느 정도는 알아들었는데, 메타마우스에 따르면 슈피겔만 부부가 아트 슈피겔만이 뭔가 하기 싫은 일을 계획할 때는 못알아듣게 하려고 폴란드어로 말했고, 아트는 대충은 알아들었지만 모르는 척 했는데, 만약 알아듣는 티를 냈다간 부모님이 아예 못알아듣는 이디쉬어로 바꿀게 분명했다고. 미국에서는 펜실베니아 노리스타운에 정착했다가 뉴욕 퀸스 레고 파크에 이사해 살았다.

60년대 후반 뉴욕 주립 빙엄턴 대학교를 중퇴한 뒤 언더그라운드 만화계에서 활동해 인지도를 높였다. 언더그라운드 만화계에서 활동하자 부모는 만화가를 정상적인 직업이 아니라고 여겼기에 치과 의사 같은 다른 직업을 가지라고 설득하려 했던 적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만화가 활동을 이어갔고 70년대 중반에 프랑스 출신의 건축학도 프랑수아즈 몰리를 만나 결혼해 슬하에 두 아이를 두었다.[3] 홀로코스트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로 1992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파일:external/marfisiquotidiani.ilcannocchiale.it/Spiegelman-cover.jpg

만화가 외적인 활동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지만 더 뉴요커 지의 편집자로도 활동했다. 9.11 테러 때 디자인한 커버가 특히 유명하다. 이 커버는 후일 9.11 테러 사태 전후로 자신의 가족들이 겪었던 일들을 만화화한 《사라진 건물의 그림자 속에서(In the Shadow of No Towers)》 표지로 재활용되었다.

이후에도 정력적으로 활동을 지속 중이다. 작품이 유명해지면서 한 인터뷰를 보면 만화로 안 그린 이야기들도 꽤 있다고 한다. 만화 쥐에선 아내가 대놓고 나치와 차이가 뭐냐고 아버지의 인종차별 성향을 비난하자 아들인 작가는 묵묵히 담배를 피우며 아내 편도 아버지 편도 들지 않고 그저 둘을 말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그나마 두 사람을 위해서 중립을 지켰던 거라고 한다. 사실, 아내도 부모가 백인우월주의자라서 절연해버렸는데, 시아버지도 이런 말이나 하니 아내가 더 울컥할만했다.

사실 아트야말로 결혼 전에는 아버지에게 아내보다 더 맹렬하게 대놓고[4] "(인종차별하는) 당신이 나치 비난할 자격 있어?"라든지 "나치도 유대인 죽이면서 당신과 같은 말 했겠죠? 위대한 게르만 민족과 하등한 유대인은 다르다라는 그들의 논리가 하등한 비유대인과 위대한 유대인을 구분짓자는 당신의 말과 차이가 뭐죠?"라는 말을 정면에서 맞대응하여 아버지가 폭발하게 만든 적도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부모를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지옥같은 수용소 생활을 겪은 걸 생각하자면서도 아버지와 갈등을 빚으면서 그도 참다참다 폭발했다고 한다. 이런 과거 때문인지 꽤 진보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탄압에 대하여 비판하는 태도를 보여서 이스라엘 극우에게 증오를 받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쥐》가 퓰리처상을 받은 것을 두고 이스라엘 극우 여론에서는 오로지 홀로코스트에 대한 것으로 언급할 뿐, 나머지에 대한 걸 언급을 피하는 것을 보면 우경화 된 이스라엘 정치판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셈이다.[5]

쥐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본인이 태어나기 전 형 리슈가 있었으나 나치들에게 끌려갈 위기에 처한 이모 토샤가 '가스실엔 갈 수 없다'는 이유로 자살 직전 독약을 먹여 죽였다.

2022년 전미도서상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3. 작품[편집]




3.1. 의 등장인물[편집]



파일:external/1.bp.blogspot.com/spiegelman_writing%25281%2529.jpg

1권 뒷표지에 실린 오너캐
의 등장인물이자 작가이자 화자. 애칭 아티. 아트 슈피겔만과 동일인이며 그의 과거사를 보여준다.

전쟁이 끝나고 수용소에서 나온 블라덱 슈피겔만아냐 슈피겔만이 재회한 후 낳은 아들. 두 사람이 수용소에서 고생한 탓인지 난산이어서 제왕절개로 출산해야 했다고 한다. 그래도 쉽지 않아서 의사가 한쪽 팔을 부러뜨리고 꺼내야 했는데 그래서 어린 시절에 오른팔을 들면 마치 나치식 경례처럼 팔이 올라가서 블라덱과 아냐는 아티를 보고 농담으로 "하일, 히틀러!"라고 했다고 한다. 홀로코스트아우슈비츠니 하는 것들은 아티가 태어나기 전이니 그와는 상관없어야 할 터지만 어째 그렇지가 않다.

신경질적인 아버지와 예민한 우울증 환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다. 아버지의 일상화되다시피 한 생존본능 및 모순 등 때문에 많이 고생을 한다. 부모에게 시달리는 아이들이 늘 그렇듯이 지은 죄 없이 죄책감에 시달린다. 어릴 때는 부모는 고생했는데 혼자 편히 살고 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껴, 스스로도 터무니없는 생각인 줄 알면서도 수용소 생활을 겪어보길 바랐다고 한다. 그리고 리슈 슈피겔만에 비해 자신은 부모님에게 좋은 아들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낀다. 사진 속의 죽은 형과 경쟁하는 기분이었다고.

이후 그 나이 또래 젊은이가 그랬듯이 히피가 됐고 아버지의 히스테리적 증세와 같이 '돈도 안되는 그림이나 그려대고 깜둥이니 뭐니 그런 거 상관 안 하는' 아티는 아버지와 허구헌날 충돌했다. 덕분에 나이 스물도 안 돼 정신병원에 가서 치료까지 받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시달렸는데, 이 시기에 어머니가 자살. 그가 옛날에 그린 지옥 혹성의 죄수라는 단편에서도 나타나듯이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차갑게 대했고, '아티가 속썩여서 아냐가 자살했다'고 친척들이나 아버지의 친구들이 직접적으로 쏘아붙이기도 했고, 별 말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때문에 어머니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낀다.

아냐가 벙커 생활(안네의 일기처럼 숨어 지내는 생활) 당시 할 일이 없어 무작정 끼적인 노트[6]가 있었는데, 블라덱이 이걸 불태웠다고 하자 아티가 "이 빌어먹을 양반! 이, 이 살인자! 도대체 감히 어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냐구!!"라고 일갈한다. 어머니를 묘사할 자료가 필요했는데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과 어머니를 냉대한 것에 대한 분노(아티는 어머니의 죽음에 일부 책임이 있었다)가 뒤섞인 듯하다. 더군다나 아티가 "한 번이라도 읽어 보셨어요? 어머니가 쓰신 내용을 기억하시냐고요?"라고 묻자 블라덱은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냐가 "내 아들이 자라 이것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던게 생각나는구나!"고 하였으니 이 또한 분노를 더했을 것이다.

그래도 나중에 자기가 지나쳤다고 블라덱에게 사과하고 웃으며 헤어지지만 돌아가면서 "...살인자."라고 중얼거리는 걸로 보아 완전히 풀리지 않았던 듯 하다. 사실 어머니의 노트(일기)가 그의 작업에 직접적으로 큰 도움이 될 만한 것이었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어머니가 자신에게 남겨주려 했던, 그리고 그를 통해 자식에게 이해받고 싶어했던 소중한 노트들을 없애버린 아버지의 행동이 쉽게 용서될 만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점에 대해서는 아버지 블라덱의 행동 역시 제 3자인 독자의 기준에서 보자면 완전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위 서술에서는 아트는 아버지 블라덱이 어머니인 아냐를 냉대했다고 보고 있고, 실제로 작중 묘사를 보더라도 전쟁 이후 블라덱과 아냐의 관계가 썩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블라덱은 전쟁 중 가혹한 포로 수용소 생활에서도 어렵게 구한 빵을 생명의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아냐에게 보내줄 정도로 아냐를 아꼈다. 더군다나 블라덱은 아냐가 죽은 이후에는 한동안 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할 정도였으며, 아냐의 사후 한참이 지나고서도 '진짜 눈으로도, 유리 눈으로도, 눈을 뜨고 있을 때도, 감고 있을 때도' 아냐가 보인다고 아티에게 말할 정도로 지극히 아냐를 사랑한 인물이었다. 이 점을 감안하면 아우슈비츠 이후 안 그래도 불안한 정신적 상황에서 아내까지 잃은 후 더욱 극도로 불안한 정신상태에 빠진 블라덱이 보인 비정상적인 행동이라고 참작할 여지는 있는 셈.

편찮으신 아버지가 자신과 같이 살고 싶어하는 걸 알면서도 아버지와 같이 사는 걸 견딜 수가 없어서 늘 외면하고 있고, 또 그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2부 2장, "아우슈비츠: 시간은 흐른다"에서는 자신이 (아우슈비츠에 있는 것과 똑같은) 시체 더미들 위에서 작업하는 모습으로 묘사하고, 1권의 성공으로 몰려온 취재진과 사업가들에게 시달린 후 정신과 주치의에게 면담을 받으러 가는 장면이 나온다.[7]

프랑소와즈랑 만나기 전에 산드라라는 유대인 여자를 사귀었다고 한다. 이는 유대인 여성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딱히 유대인 여성에게 악감정이 있는 게 아니었지만, 연애 대상이라기 보단 주변 친족이 떠올라서 골치였다고 한다. 이후 산드라 대신 프랑소와즈를 선택했다.


4. 기타[편집]


  • 심슨 가족》에도 찬조출연했다. 시즌 19 "Husbands and Knives"라는 제목의 에피소드에서 앨런 무어, 대니얼 클로즈[8]와 함께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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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슈피겔만은 독일계 성씨이기 때문에 독일어 표기법을 따른 표기이다. 영어 발음은 '/ˈspiːɡəlmən/(스피걸먼)'에 가깝다. 관련 영상 1, 관련 영상 2. Siegelman이라는 인명을 /ˈsiːɡəlmən/(시걸먼)'으로 발음하는 것과 유사하다.[2] 미들네임인 아브라함 벤 제브는 부친인 블라덱 슈피겔만히브리어 이름이다. 이후 미국에 넘어올때 '아서 이저도어(Arthur Isadore)'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최종적으로 '아트(Art)'로 정착했다.[3] 딸인 나쟈 슈피겔만은 만화 작가로 일하고 있다.[4] 아트 슈피겔만 본인은 베이비부머 히피68운동 같은 진보 운동의 영향을 제대로 받은 사람이다. 그리고 《쥐》에서도 직·간접적으로 나오지만 (부모의 영향인지) 작가 본인도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다고 묘사된다.[5] 여담으로 아트 슈피겔만은 아랍권과 이란 지역에서 현대까지 벌어지고 있는 반유대주의를 에둘러 비판한 적도 있다. 무조건적인 팔레스타인 편을 드는 21세기 입진보SNS 진보주의자마냥 진영논리에 따라 어느 한 쪽 편만 드는 묘사를 한 것이 아닌데도 이런 비난을 받는다.[6] 일종의 일기로, 전쟁 중에 소실되었지만 전후에 다시 썼다고 한다.[7] 이 때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음을 표현하는 방법이 특이한데, 기자들의 질문공세에 응할 때마다 몸이 점점 작아지면서 마지막엔 어린아이처럼 울어버리고, 반면 상담을 받고 난 후 진정이 되었는지 몸이 다시 커진다.[8] 판타스틱 소녀백서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