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와미 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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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자티요 상샤드의 원내 구성
জাতীয় সংস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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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립 여당
아와미 연맹
(298석)

노동자당
(4석)

자티야당(만주)
(1석)

비칼파 다라
방글라데시
(2석)

방글라데시
타리 캇 연맹
(1석)

야당
자티야당(에르샤드)
(26석)

민족주의당
(7석)

민족사회당
(2석)

인민포럼
(2석)

무소속
(3석)

재적

350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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বাংলাদেশ আওয়ামী লীগ
약칭
AL
한글명칭
아와미 연맹
상징색
초록색
슬로건
벵골 승리
(জয় বাংলা)
대표
셰이크 하시나
창당일
1949년 6월 23일
당사
23 Bangabandhu Ave, 다카
이념
방글라데시 내셔널리즘
세속주의
사회민주주의[1]
정치적 스펙트럼
중도 ~ 중도좌파
청년 조직
주보 연맹
노동 조직
국가 노동자 연맹
정책 연구소
정보 수집 센터
정당 연합
대연정
기관지
Uttaran
자티요 상샤드 의석 수

302석 / 350석

당가
파괴의 황홀
(প্রলয়োল্লাস)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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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성향



1. 개요[편집]


방글라데시의 주요 정당 중 하나로 현재 집권 여당이다.

당대표는 현직 방글라데시 총리 셰이크 하시나이며 압둘 하미드 대통령 또한 아와미 연맹 소속이다.


2. 역사[편집]


동파키스탄벵골 민족주의자들이 자신들을 차별하는 파키스탄의 이슬람 연맹에서 탈당하고 전 파키스탄 아와미 무슬림 연맹(All Pakistan Awami Muslim League)을 창당한 것이 시초이다. 1952년에 서파키스탄(파키스탄 본국)이 벵골어 탄압을 하자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면서 벵골어 지정을 통해 민족주의를 지키고자 했고, 이슬람 교인들이 많던 동파키스탄이었지만 해당 정당은 세속주의 성향이므로 온건주의를 내세워 당명에서 무슬림을 뺐다. 1955년 연방제를 통해 자치권을 보장하면서 연립 정부에도 참여한다. 1957년에 현재의 당명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1958년 아유브 칸의 쿠데타로 약속들이 뒤집어지면서 동파키스탄이 파키스탄의 식민지처럼 취급받자, 기존의 정책 개선 대신 동파키스탄 자치를 요구하며 투쟁에 나서게 된다. 나중에 아유브 칸이 대통령 직에서 물러나고 셰이크 하시나의 아버지로 알려진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이 당을 이끌면서 1970년 자치의회 총선에서 승리를 거둔다.

1970년 사이클론 피해와 부정선거 의혹이 나오자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을 벌이면서 인도의 도움으로 승리하고 독립한다.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이 대통령이 되었다. 1973년 총선에서도 승리를 거두지만 파키스탄의 지령을 받은 야당이 폭동과 사보타주를 일으키며 사회 혼란을 일으키자 1975년 대통령중심제민주집중제 형태의 개헌을 하였다. 다만 현재의 아와미 연맹과 달리 당시의 아와미 연맹은 독립 세력의 연합체 형태의 정당이고 야당이라고 존재하는 정당은 사실상 파키스탄 간첩이거나 과거 독립전쟁 당시에 밀정을 했던 사람들이 모인 집합체였으므로 단순 일당제라고 보긴 어려운 측면도 있었다.

그러다 1975년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이 자택에서 살해당했지만, 당은 독립운동 세력의 연합체로서 국민들에게 큰 영향력과 존경심을 받고 있었으므로 해체하지는 못했다.

1990년 민주화가 되자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과 경쟁했지만 부정선거 논란이 이어졌다. 1996년에는 총선을 2차례 치렀는데, 아와미 연맹은 2월 총선은 보이콧 했고, 6월 총선에 참여해 승리했다. 2001년 총선에서는 다시 야당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2006년 유혈사태로 인해 2년 동안 과도정부를 거친 뒤[2] 2008년 총선에서 크게 승리하면서 현재까지 집권하고 있다.


3. 성향[편집]


민주주의, 사회주의, 세속주의, 민족주의를 당의 4대 원칙으로 삼고 있다. 2008년에는 '비전 2021(디지털 방글라데시)'라는 정치 선언문을 발표해서 빈곤에서 벗어난 중위소득 국가로 발전하자는 목표를 제시했다.

외교적으로는 친서방, 친인도, 친러 성향을 보이고 있다.[3] 이는 방글라데시 독립과정과, 독립 후 지아울 라만 주도의 쿠데타를 통해 드러난 방글라데시내 극단주의 이슬람(지아울 라만의 서파키스탄 주의+친중[4])과 온건주의 이슬람(일명 봉고본두 벵골 민족주의+친인도, 친러, 친서방)의 대립을 드러내며, 아와미 연맹은 온건주의 이슬람, 독립을 도운 친인도 외교를 천명하며 서방에 대해서도 호의적인 편이다. 부수적으로 한국에 대해서도 호의적인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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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Jahan, Rounaq (1 August 2014). "Political Parties in Bangladesh" (PDF). www.cmi.no. Retrieved 10 June 2022. "The Awami League which led the struggle for national liberation, self-describes itself as the ‘proliberation force’ in Bangladesh politics committed to promoting secular and social democratic values associated with the nation’s foundational principles: nationalism, democracy, secularism and socialism."[2] 선거 치르기 전 임시정부 구성은 방글라데시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로, 서로 집권만 했다하면 여당이 부정선거하니어쩌니 음모론과 반발이 심해 서로를 믿질 못하다보니 그럼 정부는 중립적인 인사들에게 맡겨놓고 진짜 선거 제대로 치러보자는 목적도 있다. 이게 가능했던건 외국에서 그렇게 서로 부정선거 타령만 하고 싸우기만 할거면 해외 원조 중단한다고 일종의 협박과 회유도 했기 때문.[3] 즉, 인도 외교노선의 궤를 비슷하게 따른다.[4] 실제로 이들은 방글라데시의 일대일로 동참을 요구하고 있었다. 다만 아와미 연맹의 셰이크 하시나 정부도 경제 성장을 위한 친중 노선은 있다. 좀 더 정확하겐 파키스탄을 제외한 두루두루 잘 지내기와 인도vs중국 사이를 이용한 일종의 줄타기로 실익 뜯어내기. 그래도 지리적 특성상 아무래도 인도와 더 엮일거리가 많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