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키 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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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아오키 신야
(青木 真也(あおき しんや)

국적
[[일본|

일본
display: none; display: 일본"
행정구
]]

출생지
시즈오카현 시즈오카시
생년월일
1983년 5월 9일 (40세)
종합격투기 전적
59전 47승 11패 1무효

4KO, 30SUB, 11판정, 2실격

9KO, 2판정
신체
181cm / 70kg / 183cm
학력
와세다대학 인간과학부 학사
링네임
Tobikan Judan[1]
baka suvior[2]
주요 타이틀
Shooto 8대 미들급 챔피언
WAMMA 라이트급 챔피언
DREAM 2대 라이트급 챔피언
ONE FC 2대 라이트급 챔피언
기타
Shooto 미들급 타이틀 방어 1회
DREAM 2008 라이트급 그랑프리 준우승
DREAM 라이트급 타이틀 방어 2회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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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곡
Ulfuls-Baka suvior

1. 개요
2. 전적
3. 커리어
3.1. Shooto, PRIDE
3.2. DREAM
3.3. 벨트 사냥
3.4. 다시 DREAM
4. 프로레슬러로 활동
5. 파이팅 스타일
6. 기타



1. 개요[편집]


일본종합격투기 선수.


2. 전적[편집]






3. 커리어[편집]



3.1. Shooto, PRIDE[편집]


원래 대학에서 유도 선수로 활동하고 있었지만[3] 아오키 신야는 대학 재학 중에 유도를 그만 두고 브라질리안 주짓수[4]로 전향했다. 이후 삼보[5] 등 각종 그래플링을 두루 섭렵한 후 종합격투기 무대에 데뷔했다.

2003년 11월 Deep을 통해 데뷔, 오키무라 다이를 암바로 잡아낸 것을 시작으로 Deep에서 3연승을 거뒀다. 하지만 초기에는 미숙한 점도 많아서 나카오 쥬타로에게 다운을 빼앗은 후 펀치 러쉬를 들어가다 카운터에 맞아 나가떨어지거나, "마하" 사쿠라이 하야토에게 근소한 차로 판정패하기도 했다.

2005년 11월 만만치 않은 상대인 히로나카 쿠니요시를 마운트에서의 파운딩으로 잡아냈고, 2006년 2월에는 키쿠치 아키라에게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두면서 Shooto 미들급 챔피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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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에는 Pride 무사도에 출전하여 제이슨 블랙에게 암바승을 거뒀다. 2006년 10월 Shooto에서는 훗날 UFC 라이트급에서 활약할 조지 소티로폴로스와 대결했는데, 아오키 선수가 그라운드에서 주도권을 쥐고 게임을 풀어가던 중 스탠딩에서 고간에 강렬한 로블로를 맞고 실신하고 만다. 결국 이 시합은 DQ로 인한 아오키 선수의 승리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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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에는 PRIDE 남제에 출전하여 요아킴 한센이라는 거물을 낚았다. 상위에서 암바를 걸다가 스윕을 허용했으나 하위에서 전매특허인 러버가드로 한센의 오른팔을 노렸고, 이에 한센이 대응하자 고고플라타로 변형시켜 탭을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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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에는 키쿠치 아키라를 상대로 Shooto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고, 4월에는 PRIDE에서 승수를 추가하며 무적의 행진을 이어갔다.


3.2. DREAM[편집]


PRIDE가 도산하자 아오키는 FEG 산하로 무대를 옮겼다.

2007년 12월 야렌노카에서 정부경[6]에게 승리를 거둔 후, 2008년 3월 DREAM 초대 대회에서 K-1 HERO's 미들급 챔피언이었던 JZ 칼반과 대결했다. 아오키는 어떻게든 그라운드로 끌고 들어가려 했고 칼반은 이를 막아내려는 공방이 벌어지던 중 칼반이 팔꿈치로 아오키의 후두부를 강타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아오키가 경기속행이 불가능할 정도의 대미지를 입었기 때문에 경기는 무효 처리되고 승부는 4월의 DREAM 2로 미뤄졌다.[7] 2008년 4월 재개된 2차전에서는 칼반의 타격을 봉쇄하며 그라운드에서 어느 정도 우위를 보인 아오키의 판정승이 선언되었다.

이후 DREAM 초대 라이트급 챔피언 결정 토너먼트인 DREAM 2008 라이트급 그랑프리에 참가했다. 6월의 1차전에서 나카타 카츠히코에게 고고플라타로 간단히 승리. 7월의 준결승에서는 일본 경량급 최강자 중 한명인 우노 카오루를 맞아 그라운드에서 압도하며 판정승을 거두었다. 우노는 시종 수세에 몰리며 판정패했으나 아오키의 치명적인 서브미션을 수차례 파훼하며[8] 선전했다.

결승에서 격돌한 상대는 PRIDE에서 한번 꺾은 경험이 있는 요아킴 한센이었다. 아오키는 셀프가드를 잡으며 이번에도 적극적으로 그라운드 게임을 유도했으나 한센이 톱에서 날린 파운딩이 제대로 작렬하며 실신 KO패를 당하고 말았다. 반면 한센은 리저브로 출전한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며 DREAM 초대 챔피언에 등극했다.

정상의 문턱에서 주저앉은 아오키였으나 9월의 DREAM 6에서 토드 무어에게 1분만에 넥 크랭크로 탭을 받으며 부활했다. 11월에는 전 Bodog Fight 챔피언인 에디 알바레즈와 WAMMA 라이트급 타이틀을 두고 대결하였다. 초반 테이크다운을 당해 하위에 깔렸으나 곧바로 알바레즈의 다리를 붙잡아 인버티드 힐훅을 성공시키며 승리했다. 2009년 3월 DREAM 7에서 데이비드 가드너를 초크로 잡아내며 3연승을 달렸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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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에는 사쿠라이 하야토와 재대결을 벌였으나 27초만에 그라운드 니킥으로 실신하고 말았다. 다만 이 경기는 꽤나 미스매치였기 때문에 아오키로서도 어느 정도는 변명거리가 있었다. 1차전의 분전으로 간과하고 있던 팬들이 많았지만 마하는 한때 -83kg급에서도 뛰었던 선수인 반면, 당시 아오키는 평체가 80kg에도 훨씬 못미쳤기 때문이다.[10] 7월에는 특급 주짓때로인 비토 히베이로와 대결했으나, 지루한 짤짤이로 수준 높은 그라운드 공방을 기대했던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어쨌든 결과는 아오키의 판정승.[11]

2009년 11월 DREAM 11에서 드디어 요아킴 한센과의 트릴로지를 완성시켰다. DREAM 라이트급 타이틀이 걸려있기도 했던 이 시합은 시종 그라운드를 지배했던 아오키의 2라운드 암바승으로 끝났다. 한센 역시 놀랄만한 그라운드 실력을 보이며 이것저것 시도했으나 아오키에게 대항하기에는 모자랐고, 결국 2라운드 막판 마운트를 내주더니 암바를 잡혀 라운드 종료를 5초 남기고 탭을 치고 말았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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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벨트 사냥[편집]


DREAM의 정상에 오른 아오키는 이제 밖으로 눈을 돌려 타단체와의 챔피언 대항전을 치르기 시작했다.

첫 상대는 DREAM의 라이벌 단체인 SRC의 히로타 미즈토였다. 당시 SRC는 PRIDE를 계승한 센고쿠의 후신으로, 고미 타카노리를 흥행에 내세운 단체였다. 하지만 고미는 키타오카 사토루에게 패하고, 사토루는 다시 히로타에게 패하는 등 물고 물리는 혼전의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아오키는 자신의 라이벌로 선언했던 고미와의 대결을 원했겠지만 고미는 UFC 진출을 선언한 상태였다.

2009년 12월 뭔가 껄적지근한 분위기의 K-1 다이나마이트에서 벌어진 히로타 미즈토와의 대결은 아오키의 완승으로 끝났다. 히로타의 타격을 원천봉쇄하며 테이크다운에 성공, 그라운드에서 해머락으로 히로타를 옴짝달싹 못하게 얽어맨 것이다. 하지만 히로타는 그립이 완전히 들어갔음에도 탭을 치지 않았고 여기서 초대형 사고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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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키가 히로타의 팔을 부러뜨린 것이다. 물론 여기까지는 경기 중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탭을 안 친 히로타의 잘못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오키는 쓰러진 히로타를 향해 혀를 내밀고 중지를 치켜 올리며 조롱을 퍼부었다. 그러더니 팔이 부러진 시늉을 하며 히로타를 조롱하는 세레머리를 계속했다. 세컨드가 "그만둬라. 그래선 안된다."며 제지하는 와중에도 아오키의 도발적인 행동은 일본 MMA계에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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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안티가 폭발했고 아오키를 질책하는 목소리가 날로 커져갔다. 결국 아오키는 팬들과 히로타에게 사과를 했다. 내용은 '시합 중에 너무 흥분해서 그랬다'는 것이 요지였는데 어쨌든 들고 나서 사과까지 한 끝에 사건은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13] 하지만 이때를 전후하여 생성된 폭넓은 안티층은 두고두고 아오키를 따라다니게 되었다.

그래도 칼반, 알바레즈, 한센, 히로타 등 굵직한 단체의 챔피언들을 연파하며 자신의 실력을 증명한 것은 사실이기에 MMA 라이트급 판도에서의 영향력이 크게 치솟았다. 셔독에서 매기는 mma 랭킹에서는 BJ 펜의 바로 아래인 2위까지 뛰어올랐고, 심지어 mma 위클리에서 매기는 mma랭킹에서는 아오키를 1위에 랭크하기도 했다. 아오키 본인도 BJ 펜을 거론하며 직접 맞붙어보자고 도발을 하기도 했다.

폭풍과도 같은 히로타전의 여파가 잦아든 2010년 4월, 아오키는 미국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Strikeforce와의 챔피언 대항전이 잡힌 것이다. UFC에 대항하기 위해 DREAM과 손잡은 Strikeforce는 선수교류 이외에도 챔피언 대항전을 계획했는데, 그 첫 타자로 라이트급의 아오키가 선봉에 서게 된 것이다. 아오키의 상대는 세자르 그레이시 휘하의 라이트급 돌아이인 길버트 멜렌데즈였다.

그러나 내슈빌에서 열린 길버트 멜렌데즈와의 경기는 아오키의 참패로 끝났다. 멜렌데즈는 진흙탕 싸움의 달인답게 처음부터 아오키를 압박해 들어갔다. 타격에서 밀린 아오키는 셀프가드로 전환해 그라운드 싸움을 노렸으나 오히려 케이지 구석으로 밀려 파운딩만 실컷 얻어맞았다. 아오키는 스탠딩 타격전 뿐 아니라 그라운드에서도 파운딩에 밀리며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나중에는 이노키 알리 포지션으로 캔디춤을 추면서까지 그라운드 전환을 노렸으나 돌아오는 것은 발길질 뿐이었다. 만장일치 판정패. 더불어 2위권까지 상승했던 랭킹도 급추락했다.


3.4. 다시 DREAM[편집]


Strikeforce에서 관광을 당하고 돌아온 아오키는 2010년 7월 DREAM 15에서 "분쇄기" 카와지리 타츠야와 대결했다. 멜렌데즈가 어느 정도 아오키 파훼법을 제시한 상태였고 카와지리 역시 G&P가 강한 선수였기 때문에 아오키의 고전이 예상되는 시합이었다. 하지만 아오키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완승을 거두었다. 시작하자마자 싱글렉을 잡고 그라운드에 돌입, 급하게 빠져나가려는 카와지리의 왼쪽 다리를 잡고 아킬레스락을 성공시키며 서브미션승을 거둔 것이었다. 이 승리로 인해 패배의 분위기를 일신함과 동시에 더이상 일본 라이트급 내에서는 적이 없음을 확실히 했다.

2010년 9월에는 DREAM 16에서 마커스 아우렐리오를 맞아 개비기로 판정승을 거두었고, 한달 후인 10월에는 오랫만에 돌아온 Deep에서 태국 낙무아이 욕타이 시스오를 상대로 초살 키락 승리를 거두며 승수를 추가했다.

2010년 12월 K-1 다이나마이트에서 나가시마☆지엔오츠☆유이치로를 상대로 K-1/DREAM 믹스 룰 시합을 가졌다. 1라운드 3분 k-1룰, 2라운드 5분 DREAM룰로 치러진 시합에서 1라운드를 온갖 꼼수로 넘긴[14] 아오키는 2라운드가 시작되자마자 태클을 걸었는데 이걸 지엔오츠가 만화에나 나올법한 니킥 카운터로 날려버렸다. 결과는 나가시마의 실신 KO승. 덕분에 안티들은 신이 났다. 다만 믹스룰이었기에 MMA 전적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또한 이 패배가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아오키가 경기 도중에 바지에 X을 쌌다!는 괴담이 돌아 아오키가 똥으로 점철된 내 인생이라는 트윗을 마지막으로 트위터를 닫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2011년 4월 Strikeforce에서 신성 라일 비어봄을 잡았다. 클린치에서 언더훅을 내주고 케이지로 밀렸으나 옆으로 빠지면서 바깥다리식 TD에 성공, 백을 잡고는 넥크랭크를 작렬시키며 1분만에 서브미션승을 거두었다. 5월에는 Dream Fight for Japan에서 리치 클레멘티를 맞아 그라운드에서 압도하며 페이스락으로 서브미션승을 추가했다. 9월의 Dream 17 대회에서도 전 WEC 챔피언인 롭 맥컬로를 넥크랭크로 가볍게 꺾었다. 12월 31일의 겡끼데스카 오미소카에서는 동문인 키타오카 사토루를 상대로 5라운드 내내 압도하며 Dream 타이틀 방어에도 성공했다.

2012년 4월, 벨라토르에서 에디 알바레즈와 2차전을 가지게 되었다. 알바레즈는 바로 이전 파이트에서 마이클 챈들러에게 패배해 챔피언 밸트를 뺏긴 상태였고, 1차전의 양상으로 보아 아오키의 우세를 점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알바레즈는 1차전의 패배를 의식한 듯 그라운드를 절대적으로 피하며 스탠딩 타격 위주의 경기를 펼쳤고, 결국 1라운드 중반 엘보우를 날리다가 알바레즈의 카운터 펀치를 허용하며 다운을 당하고, 이어진 알바레즈의 폭풍 파운딩을 맞으며 TKO패를 당하게 되었다.잘했어 알바레즈


3.5. One Championship[편집]


이후 DREAM과의 계약이 끝난 아오키는 UFC와 ONE FC 두 곳에서 오퍼를 받았고, DREAM 벨트를 반납한 뒤 ONE FC로 이적하였다.

ONE FC로 이적한 아오키는 2012년 10월 아너드 레퐁을 트라이앵글 초크로 잡아내며 1승을 추가했다

이후 2012년 12월 31일 펼쳐진 DREAM 18에 ONE FC 소속으로 참가하여[15] 미국의 레슬러 안토니오 맥키와 대결하였다. 1라운드는 서로 탑을 뺏고 뺏는 치열한 양상으로 흐르다 마무리 되었고, 2라운드 초반 클린치를 하면서 휘두른 라이트 펀치가 맥키의 눈가에 맞으면서 눈에 이상이 생긴 맥키가 기권을 선언, 타격으로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2013년 4월 5일 ONE FC의 라이트급 챔피언인 박광철과 타이틀전을 펼쳤다. 1라운드 초반 테이크다운을 뺏은 뒤 RNC, 다스초크, 암바 등을 시도하며 그라운드에서 완전히 압도했고, 2라운드에 RNC로 승리를 따내며 챔피언이 되었다.

이 경기를 갖기 얼마 전 페더급 하향을 발표했었고, 페더급으로 하향했다.

2013년 10월 18일 ONE FC에서 코디 스티븐스를 상대로 페더급 데뷔전을 가졌고, 무난한 판정승을 거뒀다.

그러나 이후 다시 라이트급으로 복귀했다.

2015년 12월 29일 Rizin FF에서 사쿠라바 카즈시와 붙어서 그냥 일방적으로 경기를 펼쳐서 생애 두번째 KO 승리를 거두었다. 그런데 그동안에 사쿠라바 측 세컨이 타올 던지지도 않고 심판도 제지를 안 해 사쿠라바는 피떡이 되어버린 채 그대로 병원에 실려가버렸다. 오죽하면 아오키가 사쿠라바 끌어안고 울면서 타올 던지라 말했을 정도였다.

2016년 11월 11일 ONE FC 45에서 에두아르드 폴라양에게 TKO패를 당해 라이트급 타이틀을 상실했다.

2017년 11월, 한체급위인 벤 아스크렌에게 경기시작 1분여만에 TKO패를 당했다. 그라운드로 끌고 가려 했으나 웰터급인 벤 아스크렌의 완력에 실패하고 수차례 파운딩에 레프리스톱.

그래도 이후 2연승을 달렸다.

2019년 03월 31일 일본에서 열린 One Championship 93에서 에두아르드 폴라양을 상대로 라이트급 타이틀에 도전하였고 이전보다 발전된 기량을 보여주며 1R 암 트라이앵글로 승리하며 리벤지에 성공하고 라이트급 벨트를 되찾았다.

그러나 동년 5월 17일, 싱가포르인 격투가이자 One의 여성 아톰급 챔피언 안젤라 리의 남매로 알려진 크리스천 리를 상대로 한 방어전에서 저돌적인 타격을 공략하지 못하고 2라운드에 KO 당하며 다시 벨트를 빼앗겼다.

10월 13일 호노리오 바나리오를 상대로 다스 초크를 걸어 승리했다.

그리고 2022년 3월 26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메인이벤트급 경기로 본인이 그토록 원하던 추성훈과 대결을 하게 된다. 원래부터 추성훈을 향해 자주 도발과 욕을 했으며 추성훈은 항상 경기를 피했다. 경기를 시작할려고 하면 부상으로 빠졌으니 서로 감정의 골만 심해졌다. 이렇게 10년 동안 계속 앙숙관계를 유지했으니 원챔피언쉽 섹시야마 특집에서 허스키한 목소리로 추성훈을 향해 수위 높은 욕을 하며 서로 체급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붙자고 도발했다. 추성훈은 침착하게 대응을 했지만 본인은 다소 흥분하면서 도발을 하였다. 추성훈과 폴라양의 시합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추성훈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대체자로 아오키 신야가 들어가 폴라양을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이로써 어느 정도 추성훈과의 대결 명분이 생긴 셈이다. 서로 체급이 다르기 때문에 추성훈은 중간 쯤으로 맞춰서 경기하자고 제의했지만 거절하였다. 결국 추성훈이 약 13kg을 감량하여 두 체급을 낮춰서 서로 대결하게 되었다.

1라운드에서는 체중을 감량해온 추성훈을 압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2라운드에서는 수세에 몰려 2라운드 1분 50초에 펀치로 TKO패하였다.

ONE 163에서 사이기드 이자각마예프에게 1라운드에 KO패를 당하였다.


4. 프로레슬러로 활동[편집]


그리고 2018년 상반기부터 갑자기 DDT 프로레슬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프로레슬링 무대에 데뷔하게 되었다. UWF 출신이 아닌 그로써는 좀 뜬금없는 선택이었는데, 그럼에도 순수 격투가 출신 선수치고는 상당한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평가가 좋은 편이다.

특히 타케시타 코우노스케와 펼쳤던 D王 클라이맥스 2018에서의 경기는 상당한 명경기로써 프로레슬링의 순수한 의미로써의 경기라는 평가가 지배적일 정도로 빠른 시간에 적응을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42대 DDT 익스트림급 챔피언에 올라 첫 방어를 성공해냈다.


5. 파이팅 스타일[편집]


원래 유도계에 몸담고 있었는데, 국대 상비군으로 훈련을 받은 후 한계를 느꼈는지 유도를 그만두고 나카이 유키[16]에게 주짓수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삼보까지 익히면서 다양한 그래플링을 접했다. 주짓수 블랙벨트 보유자.[17]

MMA에서는 극단적으로 서브미션을 노리는 스타일이다. 어떻게든 상대를 그라운드로 몰고가 관절기를 노리는데, 테이크다운 능력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기 때문인지 상당히 변칙적인 TD를 사용한다. 셀프가드는 예사고 별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상대의 다리를 잡고 늘어져 어떻게든 누운 자세로 게임을 끌고 간다.

그라운드에서도 포지션에 관계없이 기술을 거는데 사지가 길고 몸이 매우 유연해서 별의별 기술을 다 쓴다. 하위에서의 러버가드로 특히 유명하며 러버가드를 위력적으로 쓸 수 있는 몇 안되는 선수 중 하나이다. 어떤 상황이건 그라운드에서라면 일발역전의 서브미션을 노릴 수 있고, 그만큼 위험한 선수라고 할 수 있겠다.

가장 큰 약점은 답이 안나오는 스탠딩 타격. 그나마 긴 팔다리로 어떻게 중간은 해먹고 있지만, 역시 타격이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이것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 경기가 바로 멜렌데즈전의 패배다. 웰라운더인 멜렌데즈는 일단 스탠딩을 먹고 들어가며 레슬링과 체력의 우위를 살려 그라운드에서도 아오키를 몰아붙이며 시합을 지배했다. 반면 아오키는 장기인 서브미션이 죄다 막히면서 손도 써보지 못하고 완패했다. 아오키 본인도 시합 후 '미국 선수들은 복싱이 뛰어나다'며 이를 인정했다.

레슬링 스킬이 부족한 것도 불안요인. 아오키의 전략은 하위에 깔리더라도 서브미션으로 한방에 결정짓는 것인데, 요즘 경기에서 이런 전략은 점점 사장되고 있는 추세다. 전체적으로 서브미션 TKO가 잘 나오지 않고, 선수들도 하위포지션에 깔렸으면 서브미션을 시도하기 보다는 탈출이나 스윕등을 시도하는데, 그만큼 서브미션 성공율이 적고 파운딩을 맞고 점수를 더 빼앗기게 된다.

개중 레슬링 베이스의 선수들이 주짓수를 수련하면서 이런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데, 압박이 좋으면서 주짓수까지 뛰어난 레슬러는 UFC에는 넘쳐날 정도로 많다. 심지어 레슬링과 타격이 받쳐주는 그라운드 스페셜리스트도 완패하는[18] 세계 무대에는 멜렌데즈같은 신체조건이 뛰어난 웰라운더들이 우글거리기 때문에 타격이나 레슬링이 약한 아오키는 계속 일본 최강으로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

문제는 2016년 기준 나이가 만 33세이고 현역으로 뛴 경력도 10년이 넘기 때문에 뚜렷한 기량 발전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시점이다.[19]

숙적 추성훈과의 경기에서도 1라운드에서 특유의 서브미션과 페이스 락을 시도하며 유리한 고지를 점했지만 추성훈이 체력으로 이를 버텨냈고 결국 2라운드에서는 고질적인 타격 능력의 부족으로 안면에 수차례 강타를 지속 허용한채로 결국 패하고 말았다.


6. 기타[편집]


2009년 M-1에서 특별 룰[20]에밀리아넨코 효도르와 붙은 적이 있는데 3분 만에 아킬레스 락에 걸려 탭아웃했다.

메타모리스에 참전해서 힉슨 그레이시의 아들이자 주짓수계의 왕자인 크론 그레이시를 상대하기도 했다. 약 6분 만에 길로틴 초크로 패배.

사쿠라이 하야토와 사이가 매우 나쁘다. 둘의 대립은 DREAM에서 싸울 때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났는데, 아오키는 "마하의 스타일은 낡았다"라며 마하가 하락세인 것을 꼬집었고 마하 역시 많은 팬들의 공감을 이끌어낸 "아오키는 지렁이 같다"는 발언으로 응수했다.

고미 타카노리와는 어째 일방적으로 아오키가 고미를 의식하고 있는 듯 하다. PRIDE 시절부터 "고미는 PRIDE의 비호를 받고 있다"라며 비난했고,[21] PRIDE 이후 각각 DREAM과 센고쿠로 갈라졌을 무렵에는 각 단체의 라이트급 에이스로서의 라이벌 의식내비치기도 했다. SRC의 히로타와 챔피언 대항전이 잡혔을 때도 "히로타가 누구임?"이라며 상대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며 "고미가 없는 센고쿠는 상대할 가치도 없다"라고 말했다.

추성훈하고는 사이가 안좋기로 유명하다. 이둘의 악연은 초창기부터 시작되었으며[22] 아오키 신야 쪽에서 겁쟁이, 비겁한 놈이라고 부르며 10년 동안 도발을 이어갔다.[23] 지속된 도발에도 부상이나 다른 단체로의 이적 등의 이유로 둘의 대결은 성사되지 않다가 2022년 3월 26일 원챔피언십에서 추성훈의 승리로 일단락된 상황이다. 또한 DREAM 초창기에도 추성훈을 자주 도발했지만 추성훈이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바람에 당시 대결 자체는 무산되었다. 참고로 이 둘이 유도 시절때 연습 대결을 한번 해 본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아오키가 도복도 못 잡고 발렸다고 한다. 경기를 앞두고 양감독TV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흥행을 위해 도발한 것이라고 한다.#

이후에도 최홍만이나 바다 하리를 도발하며 나서는 등 이러한 아오키의 광역 도발 행보는 계속 되었다.

사실 아오키는 처음부터 악역으로의 포지션을 잡고 있었고, 이런 대립들 역시 그러한 캐릭터 만들기의 일환이었다...라고 많은 팬들이 생각했지만 히로타전의 세리머리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아보인다. 그만큼 이 사건은 파장이 컸다. 별다른 징계를 받지 않은 것이 놀라울 정도.

사실 히로타와 레프리의 잘못도 크다. 기술이 완전히 걸린 상태에서 탭을 치지 않고 버티는 것은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파이터로서 매우 미숙한 자세다.[24] 더불어 이런 상황에서 스탑을 선언하지 않은 것도 레프리로서의 자질이 뛰어나지 않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겠다. 근데 아오키의 돌아이짓이 너무 심해서 묻혔다.

덕분에 한미일을 막론하고 백만안티를 몰고 다니는 희대의 악역이 되었다. 특히나 한국에서는 거의 독보적인 수준. 마하나 우노 등이 인품과 실력이 일치하는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며 두터운 팬층을 확보한 것과 비교하면 꽤나 비교가 된다. 다만 경기 자체는 매우 재미있게 하기 때문에 팬들도 의외로 찾아보면 좀 된다. 순수 주짓수, 그래플링 팬들 사이에는 지지율이 비교적 높다. 특히 에디 브라보가 아오키 팬으로 유명하다.[25]

그러나 일부 그래플링 팬들은 다른 선수들은 사용하지 않는 위험한 기술[26]을 아무 거리낌없이 사용하는 등 동업자 정신이 너무 부족해보인다고 까이기도 한다. 실제 원래 아오키 신야의 주특기는 스탠딩 암록이었는데, 스탠딩 상태에서 거는 관절기인 이상 상대가 빠져나가기 쉽기 때문에 아예 대놓고 한방에 강하게 걸어서 팔을 부숴버리곤 했다. 이게 폭발한 것이 히로타 전이었다.

경기마다 무늬가 바뀌는 화려한 색상의 쫄쫄이 바지로도 유명하다. 다만 이런 종류의 의복은 땀을 흡수하고 마찰을 증폭시켜 서브미션을 거는 것이 수월해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단체에서 착용을 금지하고 있다. 유독 DREAM만이 제지하지 않고 있었는데 일단 DREAM 15부터는 아오키도 입지 않고 있다.

경찰 출신이다. 와세다대학 졸업 후 경찰 학교[27]에 입학해서 2개월 동안 활동하다가 그만두고 프로 격투가로 전향했다.

사실 평소 성격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 내한 세미나라던지 다큐멘터리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경기와는 다르게 굉장히 순박하고 친절하다. 파라에스트라 동문이자 일본 그래플링, 종합격투기의 레전드 중 하나인 이마나리 마사카즈와 절친한 사이. 악역은 어디까지나 링위 컨셉이고 캐릭터인데 승부욕이 강해서 이긴 뒤에 지나치게 흥분하는 것. 그리고 인버티드 힐훅은 걸리고 탭 제때 안 친 에디의 잘못이며 스탠딩 암락은 걸리는 게 잘못인 기술이다. 팔이 부러지는 것 때문에 임팩트가 커 보이긴 하지만 척골 골절이나 팔꿈치 인대 늘어나는 건 서브미션에 의해 일어나는 부상 중에선 그나마 경상이다. 오히려 힐훅 마구 걸어대는 하체괴물들을 욕하면 욕한다.

시력이 좋지 않은지 평상시엔 안경을 착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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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跳関十段, 도약 관절기 10단[2] 프로레슬링 활동시 쓰는 별명이다[3] 와세다대학 1학년 때 전일본 주니어 강화 선수(일본 주니어 국가대표 상비군)로 선발된 적도 있다.#[4] 유도 선수 시절부터 네와자(그라운드) 위주로 플레이했기 때문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5] 2004년에 전일본 삼보 선수권 대회 82kg급에서 우승하기도 했다.[6] 올림픽 유도 은메달리스트인 정부경에게 두 차례나 암바 그립을 허용하였으나 버텨냈고, 경기 내내 치열한 그라운드 공방을 벌인 끝에 판정으로 승리했다.[7] 사실 칼반은 이때 십자인대에 부상이 있었다.[8] 특히 1라운드 막판의 트라이앵글은 거의 90% 이상 들어간 상태였다.[9] 그러나 경기 도중 가드너가 글러브 체크를 요구하는 사이 초크를 걸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10] 다만 시합 전부터 엄청나게 이빨질을 해댔기 때문에 쪽팔리긴 했을 듯 하다.[11] 근데 아오키에게 타격에서 밀렸으니 샤오린도 꽤나 심각하다.[12] 다만 레프리였던 시마다 유지의 불공정한 경기 운영과 이걸 이용하려는듯한 아오키의 반칙 어필 등은 경기 이후 논란이 되었다.[13] 그러나 이후의 인터뷰에서 이를 부정하기도 했다.[14] 1라운드 내내 클린치와 킥 시도 후 고의로 넘어지기, 양발 드롭킥, 등 보이고 도망치기 등 무척 추한 모습으로 일관해서 관객석에서 야유가 쏟아졌다.[15] DREAM 18은 ONE FC vs DREAM 대항전으로 펼쳐진 대회였다.[16] 과거에 발리투도 재팬 토너먼트에서 힉슨 그레이시를 상대로 준우승 한 작은 체구의 일본 유술가로, 예선에서 UFC1 준우승자인 공수가 제라드 고르도를 상대하다가 고의적인 써밍에 한 쪽 눈을 실명당한 일화는 나름 유명. 당시 일본에는 종합격투기가 갓 수입되는 단계였기 때문에 종합격투기가 정착되기도 전에 대중들이 위험성을 먼저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아 실명을 숨긴 채 토너먼트를 진행했다고 한다. 종합격투기의 보급에 애정이 깊었던 셈. 작은 체구에 실명의 부상을 안고도 준우승을 했다는건 상당히 대단한 커리어이다. 현재는 도쿄에서 주짓수, 삼보, 슛복싱을 가르치는 주짓수 네트워크인 파라에스트라의 수장이며 한국에도 청주에 한국본관, 서울과 대구에 지부가 있다.[17] 아오키 신야는 단순한 주짓수 블랙벨트 수준이 아니라 블랙벨트 중에서도 최상급의 실력자이다.[18] 예컨데 자카레와 루크락홀드 경기 때처럼[19] 그래도 폴라양과의 2차전에서는 가라테 스탠스와 킥 견제, 오펜시브 태클 등을 보여주며 타격과 레슬링이 상당히 보완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스스로 주짓수 원베이스의 부족함을 느낀 모양.[20] 말이 특별 룰이지 사실상 연습 경기이다.[21] 하지만 훗날 DREAM에서는 아오키가 고미처럼 단체의 비호를 받게 된다.[22] 아오키 신야는 Dream 추성훈은 K-1[23] 사실 앙숙관계도 10년 동안 유지하는 건 엄청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의 파이터들이라면 몇달에서 1~2년인데 잊지않고 계속 도발하는 건 대단한 집중력과 정신력을 가졌다고 무방하다.[24] 근데 일본팬들은 전부 그렇지는 않지만 이러면 근성있다고 칭찬하는 층이 있다. 다만 이 부분은 이론의 여지가 있는 것이, 아마추어도 아닌 프로경기에서 심판이 기술이 들어갔다는 판단만으로 탭 없이 경기를 말리는 것은 무리이며, 그렇다고 히로타를 비판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도 기술이 걸린 상태에서 탭을 치지 않고 롤링을 하며 스윕을 시도하다 부상이 커졌지만 파이터로서 미숙하다고 비판하는 사람은 없었다.[25] 조 로건과의 토크쇼에선 "GSP조차 아오키와 그라운드 게임을 하려하진 않을 것이다."라며 엄청나게 치켜올려주었다[26] 슈토 시절 키스 위즈뉴스키의 팔을 박살내버린 기술이나 알바레즈 전에서 나온 인버티드 힐훅 같은 기술들. 알바레즈의 경우에는 부상이 심해서 다음 달에 예정되었던 경기도 취소하고 약 1년간 경기를 가지지 못하기도 했다.[27] 일본의 경찰 학교는 경찰 조직 내 교양 시설이다. 따라서 경찰 학교 학생도 당연히 경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