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아랍에미리트 관계

덤프버전 :





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중세
2.2. 근세
2.3. 19세기
2.4. 20세기
2.5. 21세기
3. 문화 교류
4. 여담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아랍에미리트시리아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양국은 아랍 연맹, 이슬람 협력기구의 회원국들이지만, 정치적으로 갈등이 존재한다.


2. 역사적 관계[편집]



2.1. 중세[편집]


아라비아 반도에서 7세기부터 이슬람교가 발흥한 이후, 이슬람 제국이 세력을 확장했다. 동로마 제국의 영토였던 시리아 일대는 제2대 칼리파 우마르 시대 정복되었다. 정통 칼리파 시대가 지나고 우마이야 왕조 시대 접어들면서 대부분의 주민들이 아랍어를 사용하게 되었으며, 아바스 왕조 시대 서기 11세기가 지나며 상당수의 주민들이 무슬림이 됐다.

우마이야 제국의 중심지는 아라비아 반도가 아니라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 일대였다. 벌써 우마이야 제국 시대 들어서 아라비아 반도는 메카와 메디나 및 항구도시들을 제외한 지역은 변방 지역으로 전락하다시피 했다. 물론 아랍에미리트 지역은 중세 당시 유명한 항구 도시가 있던 지역은 아니었다. 우마이야 제국이 멸망한 뒤에는 아바스 왕조가 들어서면서 아라비아 반도의 소외 현상은 가속화되었다.


2.2. 근세[편집]


오스만 제국이 시리아 일대와 아라비아 반도를 정복하면서 오스만 제국은 유럽, 북아프리카, 서아시아에 걸친 영토를 뒀다. 시리아 일대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서 여러 문물들이 들어왔지만, 아라비아 반도 동부는 포르투갈의 침략을 받았다.

근세 오스만 제국 입장에서는 이미 메카와 메디나, 그리고 예멘 유지에 세입 손실이 워낙 막심했던 상황이었고, 아라비아 동부 지역은 정복할 가치가 없었다.

포르투갈의 침략으로 기존 중세시대 무슬림들의 인도양 해상 무역 루트가 타격을 입자, 아라비아 반도 동부 해안지대 주민들은 어업 및 해적질로 근근히 생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2.3. 19세기[편집]


19세기부터 오스만 제국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아랍인들 사이에서 반 오스만 독립 운동 여론이 강해졌다. 아라비아 반도에선 와하브파 신학이 유행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아랍에미리트 일대에도 와라비프가 주류 종파로 자리잡는다. 다른 한편으로 시리아에서는 이슬람 모더니즘을 기반으로 와하브파 신학의 영향을 받은 살라프파가 대두하였다.

2.4. 20세기[편집]


시리아 일대는 프랑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프랑스가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던 지역을 지배해 시리아-레바논이 됐다. 이후에 프랑스의 지배하에서 마론파가 다수였던 지역이 레바논이 됐다.

시리아-레바논은 프랑스의 지배를 1940년대까지 받았다. 아라비아 반도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영국의 보호령이 됐다. 시리아-레바논은 1940년대에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나 시리아와 레바논으로 각각 독립했다. 영국의 보호국이 되면서 해적 사업이 불가능해진 이후 트루셜 스테이트(아랍에미리트의 전신)에서는 진주 양식으로 근근히 먹고살다가, 60년대 석유가 개발되면서 경제적으로 급성장하게 되었다. 아라비아 반도의 각 보호령들이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각각의 독립국이 됐다. 아랍에미리트는 1971년 12월부로 독립 이후 시리아와 공식수교했다.


2.5. 21세기[편집]


양국은 아랍 연맹, 이슬람 협력기구의 회원국들이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갈등이 존재한다. 시리아와 레바논은 아랍권에 속해 있고 무슬림들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시리아가 알라위파가 실세를 차지하고 아랍에미리트는 와하브파가 중심을 이루고 있어서 종파갈등이 존재한다. 그리고 시리아가 바트당 정권 하에서 세속정책을 추진하고 아랍에미리트는 대외적으로는 세속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자국 국민[1]을 대상으로는 샤리아에 근거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2011년에 시리아 내전이 일어나자 아랍에미리트는 시리아와 단교했다. 단교 이후 아랍에미리트의 관민 측은 알누스라 전선순니파 이슬람주의 계열 반군을 지원하였다. 그러나 시리아에서 2014~2015년 다에시가 발흥하면서, 아랍에미리트 측이 시리아 내전에 간접 개입하는 것이 국제 사회의 비난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시리아 2018년에 양국은 다시 재수교하면서 양국간 관계가 개선됐다.#

시리아 내전유럽 난민 사태 당시 아랍에미리트 측은 사실상 시리아인 난민을 단 한 명도 받지 않았다.#1#2

2022년 3월 18일에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했다.#

2023년 3월 19일에 알 아사드는 또 다시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했다. 이로 인해 시리아의 아랍연맹 복귀 속도도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3. 문화 교류[편집]


양국 모두 아랍권 국가이기 때문에 이슬람교의 비중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시리아는 국민 대다수가 순니파이지만 실세는 알라위파, 아랍에미리트는 지도층이나 일반 국민 절대다수가 반시아 성향 와하브파이기 때문에, 시리아의 반정부 세력(이를테면 무슬림 형제단이슬람주의 세력 등)들이 아랍에미리트 관민의 지원에 기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물론 무슬림 형제단이 몰락한 이후 이것도 옛말이 되었다.

양국은 아랍어가 공용어이지만, 아랍어 구어체의 경우 각자 서로 다른 아랍어 방언이 사용된다. 시리아의 아랍어 방언은 샴 방언에 속해 있고 아랍에미리트의 아랍어 방언은 걸프 방언에 속해 있다. 시리아인과 걸프 아랍인들은 서로 고전 아랍어 문어체로 소통한다.

같은 아랍권이라지만, 시리아는 전통적으로 지중해 문화권에 속해 있는 반면 아랍에미리트의 경우 베두인 문화를 기반으로 하되, 영국의 보호령 시절 인접한 인도와의 교류, 그리고 석유 개발 이후 대거 유입된 남아시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의 영향으로 일상생활에서는 남아시아 문화의 영향이 강한 편이다.

4. 여담[편집]


아랍에미리트 관련한 시리아인들의 국민 감정은 결코 좋다고 보기 힘들다. 이집트와 시리아, 이라크 국민들은 대개 쿠웨이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를 "못 살던 촌동네가 석유로 벼락부자 돼서 졸부짓한다"고 아니꼽게 보는 경우가 없지 않다. 더욱이 시리아와 이라크가 반서방 성향 국가이다보니 아랍에미리트와 쿠웨이트를 "영국이 중동의 석유를 수탈하기 위해 만든 근본도 없는 괴뢰정권"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5.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5 10:20:24에 나무위키 시리아-아랍에미리트 관계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이주노동자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