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키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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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경력
3. 특징
4. 인맥
5. 작품 목록
6. 작화 샘플


1. 개요[편집]



작화 모음

荒木伸吾
1939년 1월 1일 ~ 2011년 12월 1일[1] (향년 72세)
일본의 애니메이터, 캐릭터 디자이너. 아이치현 나고야시 출신.


2. 경력[편집]


중학교 졸업 후 자동차 공장에서 일했으나 만화가의 꿈이 있어서 일하면서 계속 만화를 그렸다. 그러다 극화체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는 만화가로서 데뷔했으나 [2] 그걸로는 도저히 벌이가 안 되어서 데즈카 오사무무시 프로덕션에 들어가 애니메이터로 직업을 바꾸었다. [3] 원래 연출 지망이었으나 그림을 너무 잘 그려서 원화 담당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무시 프로덕션이 파산한 뒤에는 독립해 작화 스튜디오 '아라키 프로'를 설립해 활동했다.

바벨2세 때부터 캐릭터 디자이너로 활동을 시작, 큐티하니마법소녀 메구짱, UFO로보 그렌다이저 등등의 작품에 캐릭터 디자인과 작화감독으로 참여하며 이름을 날렸다. 이 작품들을 보면 따로 스탭롤을 볼 필요도 없이 각 화 그림만 조금 봐도 아라키 신고가 그린 건지 아닌지 알 정도로 캐릭터 생김새에 차이가 나며, 차이 나게 캐릭터들이 잘 나왔다 싶으면 두말 없이 아라키 신고가 스탭롤에 붙어 나온다. 참고로 그렌다이저 때 그가 참여한 시나리오의 단역 캐릭터들은 전부 슈퍼로봇대전 시리즈에 등장한 경력이 있다.

베르사이유의 장미에선 원작자인 이케다 리요코의 의향으로 캐릭터 디자인을 맡음과 함께 히메노 미치와 공동으로 전 화의 작화감독을 해내며 엄청난 활약을 했다. 데자키 오사무가 감독으로 참여한 이후 데자키 오사무의 의향대로 자신의 본래 캐릭터 디자인을 수정해야 하긴 했으나, 그럼에도 여전히 작화감독으로서 화사하면서도 깊이 있게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그려낸다. 데자키 말로는 "아라키가 자신을 죽이고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순정만화처럼 그리는 게 안타까웠다. 내가 만화가 시절 알고 있던 아라키는 더 뜨거운 그림을 그리던 사람이었다. 더 뜨겁게 그려보라고 요구했고 그가 수정한 디자인은 완벽했다." 라고 한다.

그리고 세인트 세이야에 캐릭터 디자이너 겸 작화감독으로 참여, 원작보다도 미형이 된 캐릭터들로 애니메이션이 대성공을 거두는 발판을 만들었다.[4] 특히 세인트 세이야 극장판에서는 작화감독으로서 미형 캐릭터만이 아니라 티비판을 뛰어넘는 근성물스런 액션을 선보였다.

그렌다이저, 베르사이유의 장미, 세인트 세이야가 모두 인기를 끈 프랑스에선 국빈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프랑스 갔다오면 동료들에게 자랑하고 다녔다고. 일본까지 찾아오는 프랑스 팬과 교류를 가지기도 했다.

바벨 2세 때문에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삼국지 같은 요코야마 미츠테루 작품의 캐릭터 디자인을 담당한 적이 많으며, 세인트 세이야 덕에 쿠루마다 마사미 만화도 대부분 아라키 신고가 캐릭터 디자인을 담당했다.

말년엔 나이도 있고 건강에도 문제가 있어서 작화감독이나 원화 일을 줄이고 주로 캐릭터 디자인으로 활동했다. 다만 세이야 시리즈만은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이 맡았을 때 다른 사람은 내 작화를 소화 못하는구나 하는 불만을 느꼈으며 자신의 인생작이란 생각이 있어 계속 작화를 했다고 한다.

2011년 12월 1일 사망했다.


3. 특징[편집]


미소년 미소녀의 수려한 도안 (그림체)로 인기를 끌었으나 사실 그쪽은 히메노 미치의 능력에 가깝고 아라키 신고는 오히려 애니메이팅의 재능이 뛰어나서 주목 받은 인물이다. 전혀 다른 두 컷을 자연스럽게 이어버리거나, 레이아웃도 시청자가 알기쉽게 잡는 능력자였다. 그가 만든 작품은 그림체 이전에 캐릭터가 입체물처럼 보이고 화면이 자유롭게 회전하고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여준다. 표현의 한계가 없다는 게 장점이다. 인간, 거대로봇, 자동차, 동물까지 다 그렸다.

손도 빨라서 매우 다작을 하였다. 아들 말로는 아버지는 자기 할 일을 끝내면 항상 집으로 빨리 귀가해서 항상 집에 있었기 때문에 정말로 일하는게 맞는지 의심한 시절도 있다고 한다.

아라키 신고가 작업할 때는 제자인 여성 애니메이터인 히메노 미치가 같이 작업을 하며, 이 둘 간에 그림상 차이를 찾가는 힘들다. 사실 아라키 신고의 그림체는 익히 알려진 그림체보단 훨씬 거친 느낌이고 [5] 주로 히메노 미치가 이를 수정해서 미형 캐릭터로 만드는 작업을 하였기 때문에 아라키 신고의 그림체는 히메노 미치의 그림체라고 볼 수도 있다. 그의 작품에선 주로 작화감독 아라키 신고, 원화 히메노 미치로 표기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실제로는 아라키 신고가 원화 및 작화감독, 히메노 미치가 총작화감독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히메노 미치는 그림체에만 특화된 애니메이터이며 아라키 신고 특유의 움직임 표현과 감정 표현법까지는 이어받지 못했다.

파일:아라키퍼스.jpg
거인의 별 83화에서 호시 휴마가 던진 대리그볼 1호 하나가타 미츠루가 쳐내는 장면을 극단적인 원근법으로 그려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원근법을 가지고 노는 연출을 '아라키 파스' [6] 라고 한다. 카나다 요시노리는 자신의 비현실적인 원근법은 아라키 신고에게 배운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이렇게 과장된 연출을 좋아해 연출가를 무시하고 이런 연출을 하기도 했는데 사람들은 과장됐으나 오버하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면서 그의 작화를 극찬했다.

작화로 유명하지만 콘티도 그렸다고 한다. 전직이 만화가였으니 연출력은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다만 명탐정 홈즈 정도를 제외하면 크레딧 된 작품이 거의 없다. 1970년대만 해도 콘티를 못 그리는 연극, 영화 연출가들이 애니를 만들고 있었고 콘티 담당은 그들이 시키는대로 그리는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크레딧되지 않은 것이다.[7] 마법소녀 메구짱 1화는 아라키 신고가 콘티를 그렸다고 한다. # 코바야시 오사무 말로는 퍼맨도 아라키 신고 콘티 편이 있다고 한다. # 사랑해 나이트(愛してナイト) 23화도 크레딧은 없지만 아라키 신고 콘티이다.

격자 무늬를 배경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격자무늬는 조금이라도 자세를 바꾸면 연결해서 그리기가 극도로 힘들어져서 애니메이션 계에서는 금기시되는 디자인이다. 나는 이런 걸 그려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과시하는 작화라고 볼 수 있다.

타이틀이 뜰 때 글씨만 뜨게 하지 않고 배경을 그려넣을 때가 있는데 구도를 비슷하게 그린다. #


4. 인맥[편집]


낯가림이 심해서 인간 관계를 거의 가지지 않았다고 한다. 아라키의 제자가 되지 않는 이상은 아라키를 만나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생활에 대해선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심지어 제자 이치카와 케이이치도 그와 사적인 교류를 거의 가지지 못했다고 한다. 일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간다고 한다. 그래서 제자가 되어도 그의 그림을 보면서 눈동냥으로 배우는 수 밖에 없다고.

제자로는 나카무라 카즈오, 히메노 미치, 카나다 요시노리, 모토하시 히데유키, 사다미츠 신야, 이치카와 케이이치가 있다.

아라키 신고를 존경하며 그의 스타일을 이어받은 애니메이터로는 키쿠치 조지(菊池城二), 카가미 타카히로, 우마코시 요시히코, 요코타 마모루, 하세가와 신야, 카바시마 요스케, 와타나베 마사하루, 니시이 테루미, 이노 마리에, 하야시 아케미, 치바 미치노리, 이치카와 케이이치, 야나기사와 테츠야[8]가 있다.

아들 아라키 신지는 영화감독이다.

세리카와 유고, 카츠마타 토모하루, 야마우치 시게야스 감독과 작업한 작품이 많다.


5. 작품 목록[편집]


굵은 글씨는 참여비중이 높은 대표작. ★은 캐릭터 디자인. [9]



6. 작화 샘플[편집]


과장된 원근법과 자연스러운 회전 작화에 주목.


큐티 하니 OP
연출 카사이 오사무(葛西 治) / 작화 아라키 신고


UFO로보 그렌다이저 OP2
연출 코미나토 요이치(小湊洋市) / 작화감독 아라키 신고


마법소녀 메구짱 OP
연출 카사이 오사무(葛西 治)/ 작화 아라키 신고


베르사이유의 장미 OP
연출 요시카와 소지[12]/ 작화 아라키 신고


유리가면 OP
연출 스기이 기사부로 / 작화감독 아라키 신고 [13] / 원화 히메노 미치


은하열풍 박싱거 OP
연출 야마요시 야스오(山吉康夫)
2인 작화 아라키 신고, 히메노 미치


세인트 세이야 OP1
연출 모리시타 코조 / 작화 아라키 신고

세인트 세이야 OP2 Ver 2
연출 키쿠치 카즈히토(菊池一仁) / 작화 아라키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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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표작 세인트 세이야의 주인공 페가수스 세이야의 생일과 같아서 팬들은 세이야 생일에 아라키 신고의 추모도 같이 한다.[2] 당시는 출판 만화가 활성화가 안 돼서 데즈카 오사무급이 아닌 안 팔리는 만화가들은 대여점용 만화를 그렸다. 그때 동료였던 사람으로는 미즈키 시게루, 데자키 오사무가 있다.[3] 당시엔 애니메이션 기술자가 적어서 애니메이터의 몸 값이 높았고 만화가보다 수익이 높았다.[4] 세인트 세이야는 원작자인 쿠루마다 마사미도 패배를 인정(?)했을 정도로 명작으로 손꼽힌다.[5] 실제 아라키 신고의 그림은 바벨 2세큐티 하니에 가깝다고 한다.[6] 퍼스라고 해야되겠지만 한국에서도 일본어 발음 그대로 건너와서 업계용어로 파스라고 한다.[7] 그러다 콘티의 중요성이 올라가면서 1980년대부터 완전히 반대가 되었다. 콘티가 시키는대로 연출이 하게 되었다.[8] 야나기사와는 아라키 신고는 신의 경지에 이르른 애니메이터이며, 그림에서 소우주가 뿜어져 나오는 경지라고 평한다.[9] 원작 만화가 있는 작품이 많은데 무슨 캐릭터 디자인이냐 싶으나 원작 만화의 그림체를 애니메이션으로 그리기 편하게 단순화해서 디자인하고 색상을 정하는 것도 캐릭터 디자인의 범주에 들어간다. 아라키 신고는 이런 걸 전문으로 하던 사람이다.[10] 첫 작품에선 데빌맨같은 히어로를 그리는데 익숙하지 않아서 고생했고 많이 참여하진 않았지만 본인의 애니메이터 인생에 큰 경험이었던 것 같아서 뒤이어 나온 후속 리메이크작에서는 비중있게 참여했다.[11] 듀얼리스트 킹덤 편 ~ 배틀 시티 결선 편까지.[12] # [13] 춤을 추면서 얼굴이 하나도 안 변해서 기괴한데 작화붕괴가 아니고 그게 유리가면이라는 연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