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KBO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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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비선수 출신 심판
2. 역사
2.1. 2000경기 출장 심판
2.2. 3000경기 출장 심판
3. 구성
3.1. 역대 KBO 심판위원장
3.2. KBO 심판위원 명단
3.2.1. 1군
3.2.2. 2군
3.2.3. 은퇴 심판위원
4. 문제점
4.1. 대우 및 근무환경
4.2. 오심 논란
4.3. 태도 문제
5. 국내 영상판독 도입



1. 개요[편집]


2023년을 기준으로 KBO 리그의 심판위원회에는 52명[1]의 심판이 있다. 대부분 프로선수 출신으로, 프로선수 출신이 아니더라도 중/고교야구 선수 출신[2]으로 구성되었다. 미국의 경우 오히려 프로선수 출신이 드물고 그나마 선수 출신이라고 해봤자 아마추어 선수 출신이며 일본의 경우는 베테랑 심판들은 KBO와 거의 동일하나[3], 젊은 심판들은 아예 야구부 활동조차 안 한 경우도 꽤 있다.[4]
KBO심판들의 스트라이크 존은 심판마다 워낙 다르고 심판마음대로 정하는 때가 많아 심판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KBO는 투수나 타자 그 누구에게도 손해인 리그다.

심판이 되길 원하는 일반인이나 비선수 출신 아마야구 심판을 채용하지 않기에 프로야구 심판계가 폐쇄적인 집단이라는 말도 있지만, 후술할 심판들의 근무환경상 일반인이나 부업 겸으로 하는 아마야구 심판이 프로야구 심판으로 적응하는 데는 어려움이 크다.

또, KBO의 심판들은 각기 다른 삼진콜을 가지고 있어 삼진콜만 보고도 어떤 심판이 주심을 보는지 알 수 있다.KBO 심판들의 삼진콜1삼진콜22021년 버전 삼진콜

또 심판들마다 스트라이크콜이 미묘하게 다르기도 하다.KBO 심판들의 스트라이크콜


1.1. 비선수 출신 심판[편집]


영화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의 주인공 김범수(임창정 역)는 비선수 출신임에도 자신의 꿈을 좇아 마침내 야구 심판이 되어 한국시리즈에도 출장한다. 하지만 영화와 달리 아직 한국에서는 심판 육성 시스템이 완전하지가 않아 비선수 출신 일반인이 선수 출신을 따라잡기는 상당히 어렵다. 한국에서 비선수 출신이 프로야구 1군 심판으로 나온 적은 아직까지 없다. 영화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과 같은 일이 일어날 확률은 정말 해가 서쪽에서 뜰 확률과 같다고 봐도 될 정도다.

일반인이 심판이 될 수 있는 길은 KBO와 대한야구협회 등이 공동주관하는 야구심판 양성과정의 10주간의 일반과정 강좌[5]를 수강해야 하는데, 성적 우수자에 한해 아마야구 심판들이 수강하는 고급과정을 수강할 수 있다[6][7]. 여기에서 이야기 하는 전문과정은 KBO심판학교의 전문과정[8]이 아닌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지원자들을 위한 고급과정으로 지원자들은 3주동안 남부지방으로 내려가서 고등학교 전지훈련 팀들간 심판 판정을 바탕으로한 실전연수, 저녁에는 룰북필사[9]로 연수 종료후 심판학교 교수진들이 판단하여 대한야구협회 소속 심판으로 위촉이 된다. 그리고 대한야구협회 소속 심판으로 1년 이상 활동해야 KBO 심판에 도전할 수 있게 했었다. 다만 지금은 일반과정 수료자중에 뽑기 때문에 대한 소속이더라도 일반과정에 와서 10주 수업을 받아야 한다. 물론 4심 포메이션은 생각보다 까다롭고 대한은 몇 안되는 정식 포메이션을 (나름) 하는 곳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볼 수 있긴 하다. 야구심판 양성과정이 비교적 짧고, 복잡한 룰[10]을 숙지하기엔 일반인으로서는 무리가 있다. 그리고 심판 포메이션은 타구에 따라 주자의 위치에 따라 2심, 3심, 4심이 각각 위치해야 하는 위치가 다 정해져 있고 그것들을 숙지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즉 비선수 출신을 안 뽑는 게 아니라 못 뽑는 거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비 선수 출신 일반인이 프로야구 심판이 된 사례가 아예 없는 건 아니고, 2001년에 입사한 엄재국이 있다. 엄재국은 대학교 동아리에서 야구를 시작해, 대한야구협회에서 주관하는 야구심판학교를 통해 프로야구 심판이 되었다. 그러나 2군에서만 3년 있다가 결국 사표를 쓰고 현재는 사회인 야구 심판을 보고 있다.

2017년 제9기 KBO 심판학교에서 일반과정 우수자는 KBO 심판 및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심판이 될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최근에 최규순 심판으로 인한 비리 문제가 현재 KBO심판 출신들이 선수출신들이 전부들이고 선후배간 유착 가능성이라는 여론이 많아 이를 해소하기 위하여 2017년 시즌 종료후 명지전문대학 평생교육원에서 시행하는 KBO 심판학교 9기서부터는 교육커리큘럼을 변경하고 비선수 출신과 선수 출신의 1대1 비율 채용을 한다고 명시를 해놓았다. KBO 심판 통합관리시스템 및 비선수출신 심판의 길 열어

선술했듯이 메이저리그일본프로야구 심판은 선출이어도 프로를 아예 못 간 사람이나 아예 학창시절에 야구를 하지도 않은 비선출도 꽤 있다. 오히려 미국은 주류가 비선출.

2. 역사[편집]


한국실업야구 시절 심판들은 부업 삼아 심판을 봤다. 그러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프로심판을 따로 뽑았다. 총 15명을 뽑아 전임심판 9명과 지방 주재 6명[11]으로 나눴고, 다시 전임심판은 3명씩 3개조로 각 지방주재 심판 1명과 경기에 나섰다. 하지만 당시 KBO에서는 심판들만 뽑았지 이후 별다른 지원을 안 했기에 심판들이 자비를 들여 스스로 유니폼도 맞추고 장비도 샀다고 한다.

1986년에는 심판 전임제가 시행되어 심판 18명을 3개조로 나누어 주심을 볼 수 있는 전임 심판 10명을 선정하여 이 전임심판들만 주심을 볼 수 있게 하였다. 위의 전임심판들을 각조에 3명씩 3개조(C조 제외)로 배치하여 돌아가면서 주심을 보게 하였다. 참조

원래는 KBO 총재 직속기구였으나, 1996년 한국시리즈 때의 판정시비로 인해[12][13] KBO 사무총장 관할의 심판부로 격하되기도 했다. 1999년 심판위원회로 다시 이름이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KBO 사무총장 관할기구다. 또한 같은 연유로 1997년부터 경기감독관 제도가 신설되어 심판의 경기 진행을 감시하게 되었다.[14]

한편 1987년부터 공식적으로 공채 시험을 실시해 심판을 뽑고 있다. 하지만 심판위원회가 KBO의 하위기구이다 보니, KBO의 예산에 따라 좌우지되는 경우가 많아 예산 부족으로 신규 심판을 뽑지 않은 해도 있었다.

2010년대부터는 전직 심판위원들이 맡는 퓨처스 심판 육성위원을 신설해 좀 더 전문적인 심판위원들을 양성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2.1. 2000경기 출장 심판[편집]


이름
일자
경기
활동 기간
이규석[15]
1999년 8월 18일
잠실, 한화-LG전
1982~2001
오석환
2009년 9월 1일
잠실, 한화-두산전
1990~2013
임채섭
2010년 5월 16일
목동, 삼성-넥센전
1990~2015
나광남
2012년 8월 29일
군산, 삼성-KIA전
1992~현재
문승훈
2014년 5월 5일
문학, 롯데-SK전
1993~현재
김풍기
2015년 5월 2일
대구, 두산-삼성전
1994~현재[16]
김병주
2015년 6월 25일
수원, LG-kt전
1993~현재
최수원
2016년 5월 6일
대구, SK-삼성전
1994~현재
강광회
2018년 5월 23일
문학, 넥센-SK전
1995~현재[17]
이영재
2018년 5월 31일
대전, NC-한화전
1996~현재
박기택
2019년 5월 22일
잠실, LG-SK전
1997~현재
전일수
2019년 10월 25일
고척, 두산-키움전[18]
1996~현재
이민호
2021년 6월 23일
대구, 삼성-한화전[19]
1997~현재
우효동
2021년 9월 5일
대구, 두산-삼성전
1997~현재


2.2. 3000경기 출장 심판[편집]


이름
일자
경기
활동 기간
나광남
2022년 10월 11일
잠실, kt-LG전
1992~현재

3. 구성[편집]


심판위원회는 KBO 산하에 있다. 1, 2군 총괄은 위원장과 차장이 담당하고, 1군에는 6개 팀을 두고 있다. 팀장의 인사권은 위원장에게 있다. 각 팀장은 4명의 팀원과 함께 움직이고 경기마다 주심, 1루심, 2루심, 3루심, 대기심을 정한다[20]. 1개 조씩 순번대로 돌아가며 2군으로 내려가거나 비디오 판독실 심판을 맡으며 휴식 기간을 갖는다.

정규시즌 심판 로테이션은 3루심→1루심→2루심→주심→대기심→3루심의 순서대로 돌아간다. 즉, 당일 2루심이 누군지를 파악하면 다음날 주심을 예측할 수 있다.[21][22] 다만, 심판의 아들이 속한 팀 경기에서 그 심판이 속한 팀이 배정되었을 경우, 그 심판은 주심을 볼 수 없으므로 로테이션이 조정된다.

KBO 포스트시즌, KBO 올스타전 등 특별한 경기에는 6심제로 운영되며[23], 특히 한국시리즈의 경우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24] 1군 심판팀장 6명과 1명의 평심판위원으로 심판진이 구성되어 운영된다.

심판 공채시험에 합격해 2군에서 대략 5년 정도 활동해야 1군으로 승격될 수 있다. 1군에 속한 심판이 오심 등으로 인해 제재를 받아 2군으로 강등당하면 2군 소속 심판이 승격되기도 한다. 한편 퓨처스리그에서는 심판 수 부족으로 3심제로 운영될 때도 있다. 심지어 2021년부터는 사실상 심판을 은퇴한 퓨처스 심판 육성위원들이 심판을 본 경기가 나오고 있다.

2022시즌 현재도 2군에서 하루 5경기가 진행되는 날이면 3심을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다. 적으면 하루 2~3경기만 하는 날도 있기 때문에 5경기 기준으로 심판을 뽑아두면 심판별 경기배정 등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퇴사한 심판이 발생함에도 코로나의 여파로 인해 신규심판의 수급도 용이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나마, KBO가 퓨처스 심팍 육성위원들이나 1군에서 한 턴 거르는 로테이션에 해당하는 심판조들 소속의 심판위원들을 2군 경기에 배정해 3심제는 최대한 피하려고 하는 모습을 계속 보이곤 있기는 하다.

3.1. 역대 KBO 심판위원장[편집]


역대
이름
임기
기타 사항
1
이기역[25]
1983년

2
박현식
1984년~1989년
삼미 슈퍼스타즈 초대 감독
3
김광철
1990년~1996년
KBO 리그 원년 개막전 구심, 최초 프로심판 출신 심판위원장[26], 전 야구심판학교 교장[27]
4
황석중
1997년~1998년[28]
전 한국리틀야구연맹 심판(장)이사, 전 대한야구협회 심판(장)이사, 전 야구심판학교 교수[29][30]
5
김찬익
1999년~2005년
1982~1998년 KBO 심판
6
김호인
2006년~2007년 7월
최초 프로선수 출신 심판위원장[31], 2007년 7월 파벌싸움으로 퇴출.[32]현 야구심판학교 교장.[33] 현 KBO 비디오 판독센터장.
대행
황석중
2007년 7월~2007년 12월

7
조종규
2008년~2014년 2월
1987~2008년 KBO 심판
8
도상훈
2014년~2016년 12월
1990~2003년 KBO 심판, 현 퓨처스심판육성위원
9
김풍기
2016년 12월~2020년 2월
1994~2021년 KBO 심판[34], 현 퓨처스심판육성위원
10
허운
2020년 2월~
1987~2007년 KBO 심판


3.2. KBO 심판위원 명단[편집]


2023 시즌 기준.

1군은 5~6명, 2군은 3~4명으로 심판조를 구성하며, 경력이 오래된 심판이 조장을 맡는다.[35]

심판의 번호는 유니폼 소매에 표시되어 있으며 매년 나오는 KBO 가이드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3.2.1. 1군 [편집]


번호
이름
직책
입사년도
프로 활동
3
최수원[36]
1군 팀장
1994
없음
22
박근영
심판위원
1999
포수 / 삼성(1996~1997)
9
이기중
심판위원
2003
외야수 / LG(1998~2001)
35
윤태수
심판위원
2007
외야수 / 두산(2001~2004)
52
송수근
심판위원
2009
외야수 / SK(2003~2007)[37]

번호
이름
직책
입사년도
프로 활동
2
전일수
1군 팀장
1996
투수 / 태평양-LG(1991~1994)
37
김병주
심판위원
1993
내야수 / 태평양(1991~1992)[38]
6
권영철[39]
심판위원
2003
내야수 / 삼성(1996~2001)
54
김준희
심판위원
2006
없음
14
차정구[40]
심판위원
2012
외야수 / 삼성(2006)

번호
이름
직책
입사년도
프로 활동
25
박기택
1군 팀장
1997
외야수 / 쌍방울-해태(1991~1995)
43
김성철
심판위원
2002
외야수 / 롯데(1991)
41
배병두
심판위원
2007
없음
59
정종수
심판위원
2010
포수 / 두산-현대-히어로즈(2003~2008)
47
최영주
심판위원
2014
없음

번호
이름
직책
입사년도
프로 활동
12
이영재
1군 팀장
1996
포수 / 삼성(1991~1994)
50
김정국
심판위원
2004
없음
36
김익수[41]
심판위원
2006
투수 / 현대(1999~2001)
27
장준영
심판위원
2011
내야수 / KIA(2002~2009)
44
유덕형
심판위원
2012
내야수 / 현대(2005~2007)

번호
이름
직책
입사년도
프로 활동
11
박종철
1군 팀장
1999
투수 / 쌍방울-삼성(1990~1996)
10
나광남
심판위원
1992
외야수 / 삼성(1989~1991)
17
오훈규
심판위원
2002
없음
51
문동균
심판위원
2005
없음
39
구명환
심판위원
2011
외야수 / 두산(2004~2007)

번호
이름
직책
입사년도
프로 활동
31
이민호[42]
1군 팀장
1997
내야수 / 해태(1993~1996)
7
문승훈[43]
심판위원
1993
내야수 / 해태(1989~1992)
8
추평호
심판위원
2002
외야수 / 해태(1995~1997)
21
이계성
심판위원
2006
외야수 / 삼성-쌍방울-삼성-롯데(1996~2005)
30
이용혁
심판위원
2010
없음

  • 퓨처스리그 선임 심판. 1군과 2군을 오가는 심판으로, 매 시리즈마다 조를 옮겨 다닌다.
번호
이름
직책
입사년도
프로 활동
14
차정구[44]
심판위원
2012
외야수 / 삼성(2006)
15
함지웅
심판위원
2012
외야수 / KIA(2007)
45
김선수
심판위원
2013
없음
47
최영주
심판위원
2014
없음
33
김태완
심판위원
2014
없음
23
김갑수
심판위원
2014
없음

  • 휴직 중인 심판
번호
이름
직책
입사년도
프로 활동
18
윤상원[45]
심판위원
2001
외야수/현대(1999)

3.2.2. 2군[편집]


번호
이름
직책
입사년도
프로 활동
38
김풍기[46]
심판위원
1994
내야수 / 태평양-쌍방울 (1989~1992)
20
강광회[47][48]
심판위원
1995
외야수 / 태평양-쌍방울 (1990~1992)
34
우효동
심판위원
1997
외야수 / 쌍방울(1992~1994)
26
원현식
심판위원
1999
포수 / 빙그레-한화 (1993~1995)
55
황인태[49]
심판위원
2006
없음
57
정은재
심판위원
2014
내야수 / KIA(2009)
16
김정
심판위원
2014
없음

최현종
심판위원
2015
외야수 / 현대-넥센-LG(2004~2013)
24
이호성
심판위원
2015
외야수 / 두산-NC(2005~2013)
19
황인권
심판위원
2015
외야수 / 두산(2011)
42
이민호[50][51]
심판위원
2016
없음
28
장호석
심판위원
2016
없음
67
박지민
심판위원
2017
없음
46
송원호[52]
심판위원
2017
투수 / KIA(2013)
61
전준영
심판위원
2018
없음
13
허정수
심판위원
2018
내야수 / 삼성(2015)
58
방건우[53]
심판위원
2023
투수 / 두산(2015~2018)


3.2.3. 은퇴 심판위원[편집]


이름
출장 경기[54]
활동 기간
프로 활동
박명훈
41
1982
없음
우성제
39
1982
없음
오춘삼[55]
140
1982~1983
없음
김옥경[56]
486
1982~1986
없음
박호성
456
1982~1986
없음
박민규
620/138
1982~1993
없음
김광철
928
1982~1990[57]
없음
남창희
751/209
1982~1996
없음
오광소[58]
1777
1982~1996
없음
김동앙
1607/20
1982~1997
없음
황석중[59]
1830
1982~1998[60]
없음
백대삼[61]
1803
1982~1998
없음
이규석[62]
2214
1982~2001
없음
박찬황
1928/81
1982~2002
없음
김찬익
1627
1982~2005[63]
없음
이일복
1513/118
1982~2005[64]
없음
김양경
1427
1983~1996
없음
김영일
678/335
1983~1998
없음
이근우
527/74
1985~1991
없음
배동원
575/139
1985~1993
없음
최화용
703/239
1985~1998
없음
이주환
320/260
1987~1997
없음
김호인
1848
1987~2007[65]
외야수 / 삼미(1982~1983)-빙그레(1985)
허운
1955/89
1987~2007[66]
내야수 / 삼미-청보(1982~1985)
조종규
1916/58
1987~2013[67]
포수 / 해태-OB(1983~1985)
원영권
491/55
1990~1994
없음
오덕환
109/101
1990~1992
내야수 / 청보-태평양(1986~1989)
구경현
0/291
1990~1997[A]
없음
김준표[68]
789/58
1990~1998
없음
지관구
703/296
1990~2001
없음
장진범
1141/228
1990~2005
내야수 / 해태(1983~1987)
오석환[69]
2372/135
1990~2013
없음
임채섭[70]
2540/131
1990~2015
투수 / OB(1986~1989)
도상훈[71]
153/524[72]
1990~2003
없음
최계훈
197/40
1991~1993
투수 / 삼미-청보-태평양(1984~1990)
박진규
1266/112
1991~2005
없음
최규순
1941/238
1991~2013
투수 / OB(1988~1990)
이병주
62/351
1992~1999
없음
안성수
0/35
1993[A]
투수 / 빙그레(1987~1988)
김석용
42/402
1993~2002[73]
없음
이창원
347/555
1994~2005
외야수 / 롯데-삼성-쌍방울(1986~1993)
김락기
779/390
1994~2007
투수 / 빙그레(1989~1993)
정기창
0/114
1999~2001[A]
외야수 / 쌍방울-한화(1993~1998)
윤치원[74]
0/123
1999~2000[A]
없음
박대영
2/241
1999~2002[75]
없음
엄재국
0/197
2001~2003[A]
없음[76]
민영기
58/580
2003~2010
없음
김귀한
296/666
2004~2014
없음
심재범
0/395
2005~2009[A]
없음
김한상
59/796
2013~2022[77]
외야수 / 넥센(2010)
최주용
0/144
2020~2022[A]
없음


4. 문제점[편집]



4.1. 대우 및 근무환경[편집]


기자가 한국프로야구 심판협회에 접촉했을 때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아시겠지만 한국프로야구 심판협회는 KBO 산하기구[78]

입니다. 그렇다보니 예산 문제는 고사하고 심판들의 복지도 늘 KBO의 눈치를 봐야 하고 그들의 허락이 있어야만 집행이 가능합니다."

그 관계자는 이어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한 지 32년이나 됐지만 아직도 심판들이 현장에서 부상을 당해도 단순치료비 외에는 그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한다고 했다. 공에 맞아 치아가 깨져도 깨진 치아에 대한 치료비만 지원받을 뿐 그로 인해 야기되는 다른 치아의 부상에 대해서는 전혀 지원이 없다고 했다. 실제로 공에 맞아 깨진 치아로 인해 다른 치아의 임플란트 시술을 한 심판이 여럿 있지만 모두 사비로 해결했다고 한다. 한국프로야구는 지난해 사상 첫 700만 관중을 돌파하며 명실상부한 국민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산재해 있었다. - 기사 출처


1년마다 계약하는 계약직으로 정년은 없는데다가 4대 보험과 퇴직금도 없다. 1999년 김광철 전 심판위원장이 사임한 후 KBO에 퇴직금 지급을 요청하며 법정소송을 벌이면서 법원으로부터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허나 2000년대 심판 관련 기사에서는 심판들에게 퇴직금이 없다고 나온다. 아무래도 반노동정서가 강한 우리나라 법상 심판은 자유직업 소득자로 분류되기에, 법정 소송 후 계약서를 수정해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는 모양이다. 물론 퇴직금이 나오지 않는 것은 비단 심판 뿐만 아닌 선수들도 마찬가지지만.

2000년대까지는 특별한 기준 없이 큰 잘못만 안 한다면 재계약은 보장되었지만 2007년부터 3진 아웃제가 시행되었다. 1군에서 3번의 명백한 오심으로 제재를 받으면 2군으로 강등되고, 이후 2년간 1군 승격이 되지 않으면 면직된다. 또한, 2군에서도 3년 단위로 최하위 고과를 받는 심판은 자동 면직된다.

경기운영위원(경기 감독관)[79][80]이 심판 판정에 대해 고과측정을 해, 고과에 반영한다. 초임심판의 연봉은 3천만원 정도고, 1군에서 활동하는 심판들의 평균 연봉은 6천만원 정도. 여기에 각종 수당이 지급되기에, 20년 가까이 활동한 심판은 총 수령액이 1억원을 넘기도 한다. 그렇긴 해도 평균적으로 비교하면 미국이나 일본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미국의 경우 메이저리그 심판의 연봉은 2021년 기준으로 최저 연봉이 11만 달러고, 최고 연봉이 현 시점에서 43만 2800달러 수준이다.# 일본의 경우 1군 심판 평균 연봉이 1천만엔이고 출전 수당도 구심은 3만 5천엔, 누심은 2만 4천엔을 받고 있고 출장비나 용품비[81]도 별개로 나온다.

선수들과 달리 3경기마다 이동을 하기에 시즌 당 이동거리는 선수들에 비해 더 길다. 또 특급호텔에서 묵는 선수들과 달리 여관에서 머무는 일이 많다. 유영구 KBO 총재 시절에 관광호텔에서 머무르라고 숙박비가 더 올랐지만, 관광호텔은 경기장과 거리가 멀어 여전히 여관을 이용한다고.

주심의 경우 보호대 때문에 여름엔 한 경기를 치르고 나면 2kg이나 빠진다고 한다. 그만큼 땀을 엄청나게 흘린다는 뜻인데, 예전에는 심판들을 위한 샤워실은 없었지만 최근 들어선 늘고 있고 리모델링도 하고 있다고 한다.

또 주심에 대한 얘기를 또 한 가지 덧붙이자면, 최규순의 피셜로 여름철에 심판들이 주심을 볼때 중간에 화장실에 갈 시간이 없어 기저귀를 차고 출전한 후 설사를 하면서 경기에 임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여름의 더운 날씨 때문에 찬 음식을 찾게 되어 그런 경우가 생긴다는데 선수들과는 달리 화장실에 갈 수가 없어 안고 가야할 문제라 밝힌 바 있다.

심판 수도 그리 많지 않다 보니 휴식일 없이 매경기 참가해야 한다[82] 아이러니하게도 빡빡한 일정 탓에 피로 누적과 부상이나 질병, 오심에 대한 징계 등으로 전 경기 개근하는 심판은 드물다. 심판을 많이 뽑으면 되지 않느냐는 말도 나오겠지만, 2008년에는 예산 문제로 아예 신규 심판 채용조차 하지 않은 일도 있다. 그나마 2010년부터는 심판을 2명 이상 뽑고 있지만 경험 문제로 최근에 충원된 심판들이 1군으로 승격되기까지는 많은 시일이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심판노조가 1999년에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해 파업을 했는데 57명의 심판이 해고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파업을 이어나갔었다. 또한 미국내 여러 스포츠들 중 비디오 판독을 제일 늦게 도입했고 메이저리그 심판들에 대한 처우를 계속 개선해 오고 있지만, 일부분은 적당히 타협하는 아쉬운 점이 있다. 일본에서는 1990년 가네다 마사이치 당시 롯데 오리온즈 감독이 판정에 불만을 품고 타카기 토시아키 심판을 폭행해 30일 출장정지와 벌금 100만엔 처분을 받고 폭행당한 타카기 심판은 사표를 제출하고 심판직을 그만두는 사건이 일어나자, 심판을 경시하는 풍조에 대항하기 위해 심판노조를 결성해 마찬가지로 처우 개선에 힘쓰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는 미국이나 일본처럼 심판노조가 없기에 이러한 낮은 처우가 개선되기에는 더 많은 시일이 걸릴 듯하다.

4.2. 오심 논란[편집]


요즘은 모든 경기가 TV로 중계되고 인터넷의 활성화로 심판의 판정을 즉각 확인할 수 있기에 오심에 대한 논란이 늘어난 것이지, 비단 오심 논란은 오늘날만의 문제가 아니라 프로야구 출범 후부터 계속되어 왔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오심 관련 논란은 똑같이 벌어진다. 다만 미국에서는 심판이 규칙대로 경기를 진행하고 있는지 여부에 초점을 맞추지만, 한국에서는 심판이 하나하나 판정을 정확하게 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기에 오심 논란이 크게 불거진다는 관측도 있다. 오심이 나오면 TV에서는 계속 그 장면이 반복되어 나오고, 때로는 심판의 얼굴을 클로즈업해 비춰주기도 한다. 팬들은 KBO 홈페이지 등에 오심에 대한 성토와 함께 오심을 저지른 심판의 자질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심지어 일부 악성팬들은 오심을 저지른 심판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들의 신상정보까지 털어 인신공격을 하기에 심판들은 오심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크다. 스트레스 때문에 심판 출신들은 대부분 60대 초반에 단명한다는 말도 있다.

역대 KBO 심판 중 최고 심판으로 손꼽히는 이규석도 완벽하게 심판을 본 시합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오심으로부터 자유로운 심판은 없다.참조[83] 선수들이 실책을 하거나 각종 플레이 실수를 저지르면 그것에 대해 실드를 쳐주는 팬이라도 있지만, 심판들은 팬이 없기 때문에 실수하면 항상 비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다만 애초에 선수가 플레이 상으로 실수를 저지르는 것과, 심판이 경기를 공정하게 판정하지 않고 오심을 범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이므로 이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순 없다. 오심은 스포츠 자체의 근간을 뒤흔들어 버리기 때문.

심판들의 자체적인 노력만으로는 오심을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기에, 오심을 줄이기 위한 대안 중 하나로 비디오 판독이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오심의 완벽한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현행 기술의 한계상 접전 타이밍이라면 심판의 원심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뿐더러 정규이닝동안 최대 2번[84]의 판독 요청만 가능하기 때문에 심판진의 수준 자체가 떨어진다면 경기 초반에 2번의 기회를 다 써버려 이후에는 어떤 판정이 나오더라도 코칭스태프는 뜬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다. 또한 모든 판정이 비디오판독 대상은 아니기 때문에 판독 대상이 아닌 플레이에서 논란이 발생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2023년 5월 20일 한화vsLG전 9회말 무사 1루에서 정주현의 수비방해[85]를 최재훈의 타격방해로 4심합의를 통해 선언했다. 한화 코칭스태프는 당연히 크게 반발했지만 타격방해 여부는 비디오판독 대상이 아니어서 판독 신청을 하지도 못했다. 중립을 지키는게 원칙인 해설진조차 타격방해 판정에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고 한 해설진은 아예 심판진들 스스로 비디오를 보자는 발상을 왜 안하는 것이냐며 애둘러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심판이 내리는 판정 중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일관성이 없는 스트라이크존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대다수의 야구팬들이 사람이 하는 일이고,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라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실수가 일어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존에 애매하게 걸친공이나, 누가 봐도 볼인 공을 스트라이크로 만들어서 수많은 '○○존'을 만들어내고 있다. 더욱 심한 경우에는, 짧은 한 이닝동안, 동일한 투수가 동일한 구속으로, 동일한 구종을, 동일한 코스에 던지는 것에도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이 그때마다 달라진다. 팬들이 원성을 높이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일관성 없는 판정이지만 그것에 항의한 선수들은 징계를 받는데 심판들은 눈에 보이는 징계가 없고 징계가 나와도 선수보다 약한 징계이고 이 오심을 고칠 생각보다는 오히려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

비디오 판독 외에 다른 종목처럼 외국인 심판 도입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실질적으로 KBO에서는 전혀 생각한 적이 없다. 이 말이 나온 게 2007년 김호인-허운 파벌 싸움 때 심판들이 보이콧을 선언하자 하일성 당시 사무총장이 심판 충원을 위해 외국인 심판 도입도 고려한다는 인터뷰에서 나온 것인데, 사실 KBO와는 사전 협의 없이 스스로의 생각을 언론과의 인터뷰 중에 말한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리그의 연봉 차이 때문에 메이저리그 심판을 데려오기는 힘들고, 그나마 데려온다고 해도 마이너리그 심판 정도 밖에 데려오지 못한다. 설령 외국인 심판을 도입한다고 해도, 한국에서는 세세한 부분까지 규정을 정해놨지만 미국에서는 심판의 재량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어 상황에 대한 판정이 심판마다 다를 수도 있다.

한편 2008년 이광환 당시 우리 히어로즈 감독은 심판들의 능력이 떨어진다며 실력향상을 위해 2군에서 적어도 1000경기는 심판을 보고 1군으로 올려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럴려면 최소 10년간 2군에 있어야 하는데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에서는 5년간 2군에서 심판을 봐야 1군 경기에 출장할 수 있고, 일본도 1군 승격까지 3년에서 5년 사이로 한국보다 조금 더 짧은 편이다. 아무래도 이광환 감독이 이러한 이야기를 한 것은 미국의 사례를 든 듯하다. 미국에서는 심판들이 10년에서 12년 정도 마이너리그에서 심판을 봐야 메이저리그로 승격되기 때문이다. 마이너리그 심판은 마이너리그 선수들보다 더 열악한 환경과 고달픈 생활을 해야하기에 많은 심판들이 중도에 포기하기에 거르고 걸러진 심판들만이 메이저리그로 승격된다. 물론 그런 메이저리그 심판들도 오심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리그 환경상의 이유도 있지만 선수 권익이 상대적으로 훨씬 세다는 점 때문에 볼 판정 관련으로 선수나 코칭스태프가 심판과 트러블이 나서 그 선수나 코칭스태프가 퇴장까지 당하는 일은 상당히 자주 볼 수 있어도 KBO의 심판들처럼 권위적으로 선수들을 깔아뭉개는 일은 거의 없는 편이다.

오심 빈도가 높은 심판들의 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심판의 판정 역량(과 후술할 태도)이 전체적으로 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2023년 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장이 <언더스탠딩 풋볼> 드립을 치자 KBO리그에서도 언더스탠딩 야구처럼 오심을 이해해 주자는 식의 비아냥이 늘고 있다.

4.3. 태도 문제[편집]


파일:o48Jxv2.gif
파일:attachment/심판/KBO 리그/인사.jpg
카림 가르시아의 항의를 무시하는 임채섭 심판
사과하는 카림 가르시아

팬들은 오심 문제와 함께 심판들의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태도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고, 나아가 심판들의 자질과 수준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현재 KBO리그 심판들의 경우 대다수는 아마추어에서 야구를 그만두거나 프로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은퇴한 무명선수 출신이다. 일반적인 선후배 관계와는 차이가 있지만 어쨌튼 넓게 보면 야구계 선배이면서 연장자이기 때문에 판정에 항의하는 선수들에게 말로 타이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강압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미 팬들 사이에서는 과도한 항의는 도리어 차후 불리한 판정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파다하게 퍼진 지경이다. 반대로 감독들, 특히 연배가 많은 노장 감독에게는 자신들이 야구계 후배이기에 저자세로 대한다.

하지만 이는 같은 야구인이라도 외국인에게는 예외다. 제리 로이스터롯데 자이언츠 감독은 부임 초기부터 심판 판정에 대해 항의를 많이 했다. 이때 로이스터 감독과 동행한 통역에 따르면, 로이스터 감독이 한국어를 못 알아듣는다고 심판들이 반말로 답했다고 한다. 로이스터 감독을 무시하는 강광회 주심의 행동 2010년 카림 가르시아는 임채섭 심판 판정에 항의를 했다가 징계를 받았는데, 임채섭 심판이 대놓고 무시하며 조롱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카림 가르시아는 징계가 부당하다며 이에 대해 비난을 했다가 결국 심판실에까지 찾아가 머리 숙여 사죄했다. 카림 가르시아의 사례 뿐만 아니라 외국인 투수가 등판할 때는 '선수 길들이기'라고 스트라이크 존도 평소와 달리 짜다는 얘기도 있다.

또한 한국 심판들에게는 오심을 인정하는 모습이 거의 없다. 위의 가르시아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뒷짐을 지고 무슨 대단한 배려를 해주는 것 같은 거만한 태도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와 반대되는 일례로 2010년 6월 3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경기에서 9회 2사 후 1루 땅볼을 세이프로 선언해, 아르만도 갈라라가의 퍼펙트 게임을 날려버린 역대급 오심을 저지른 짐 조이스가 있다. 경기 후 조이스는 자신의 판정이 잘못된 것을 인정하며 갈라라가에게 사과했고 피해 당사자인 투수 본인도 유쾌하게 받아주며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짐 조이스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꼽은 공정한 심판으로 선정되었다. 물론 조이스가 평소 공정한 판정을 하는 심판이라고 평판이 좋았던 탓도 있었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사과한 영향이 없지 않았다. 물론 KBO리그에서도 이런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영상 이는 가뭄에 콩 나듯 드문 경우이다.

하지만 한국 심판들은 오심을 범하면 '오심도 경기의 일부', '우리나라 심판은 한 번의 실수에도 과도한 비난을 받는다'라며 변명만 일삼고 있다. 진정한 프로야구 심판이라면 본인의 실수를 부끄럽게 여기고, 그에 따르는 책임을 져야한다. 팬들은 오심을 범한 것에 대한 인정과 그에 맞는 조치를 통한 재발방지를 바라지만 KBO와 심판위원회의 대처는 아직 팬들의 기대와는 요원해보인다.

이러한 심판의 역량이나 태도와 관련된 문제는 1차적으로는 해당 심판 자체의 문제가 가장 크겠지만, 이러한 문제에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KBO 역시 문제가 있다. KBO는 선수들이나 코칭스태프가 심판의 판정에 대해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중재해 심판진에 대한 불신·불만을 줄이는 한편, 심판들의 역량강화를 위한 지속적인 교육을 해야하고 무엇보다 오심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로 평가해 확실한 제재를 내림으로써 심판에 대한 팬들의 신뢰도 회복시킬 필요가 있다. 하지만 KBO도 지금처럼 오심에 대해 어쩔 수 없다는, 심판위원회와 똑같은 입장을 반복하는 제 식구 감싸기로 일관하는 이상 심판들에 대한 불신이 풀릴 리 없다.

비단 KBO 뿐만 아니라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는 해설위원들의 자세도 문제가 있다. 심판의 오심에 대해 침묵하거나 감싸는 미온적인 반응은 도리어 팬들의 분노만 산다. 다만 때때로 방송에서 오심에 대해 과도하게 비출 경우, KBO나 심판들이 이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때문에 방송사도 오심에 대해 묵인할 때가 종종 있다.[86]

2021년 6월 23일에 한화 이글스호세 로사도 투수코치가 퇴장당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민호 심판은 포수와의 대화 후 스페인어를 사용하며(?) 비신사적인 발언을 한 것이 이유라고 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자 크게 빈축을 샀다. 실제 퇴장 사유 자체는 출처에 언급되었듯이 당시 호세 로사도 투수코치가 그 이닝에 두 번째로 마운드를 방문하는, 즉 반드시 심판에게 투수 교체 통보를 해야하는 상황이라서 이 교체 통보가 먼저 이행되고 그 이후에 포수와의 대화가 이루어져야 했었는데, 3회를 요청했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퇴장 조치를 한 것이라고 밝혀지긴 했다. 그런데 해당기사를 보면 이민호 주심의 상황설명과 당시 중계영상과 일부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특히 통역부분 관련에서 당시 코치 옆에있는 통역에게 통역을 요구했지만 로사도는 아무런 이야기도 안 했고 이에 통역이 팔을 붙잡자 노터치라며 이야기 했다는데 중계영상을 보면 1분 1초대에 로사도 팔을 향해 통역가가 손 뻗은 것은 보이지만 잡지 않았고 통역을 향해 노터치라고 하는 장면도 안 보였으며 일단 교체는 해야하지만 일단 볼배합과 코스 파악을 위해 포수와 이야기하던 상황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민호 주심은 심판 판정과 권위에 도전한다고 판단했는지 결국 이 상황은 심판이 코칭스태프와 소통을 원활하게 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 드러났다고 볼 수 있는 데다가 퇴장 조치가 이뤄지는 과정조차도 매끄럽지 못했기에 나온 불상사였다고 봐도 무방한 씁쓸한 사건이 되고 말았다.

2021년 10월 2일 한화 이글스의 감독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이 1회만에 퇴장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은 평소에도 심판에게 스트라이크 존 판정으로 어필하는 경우가 많던 감독이었다. 초반에는 이전부터 타팀에서 논란이 된 매너 문제와 판정에 과하게 어필하는 경우가 많아 수베로에게 비판이 많았으나 다음날 수베로 감독 측에서 한국 심판능력은 실력적으로 매우 뛰어나다는 말과 함께 어제 흥분한 이유로 어필과정 중 이영재 심판이 자신을 밀쳤으며 선수와 감독 및 코치진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감정적이다라는 소감을 남기면서 쌍방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기사

2023년 들어서 전체적으로 심판진의 오만한 태도가 오히려 더 심해졌다는 의견이 많아졌다. 안 그래도 스트라이크 존 판정 문제에 대한 비판도 심한 마당에 뻔뻔한 태도로 일관하는 모습에 질려하는 야구팬들이 한 두명이 아니다. 이게 지금 한국야구위원회 소속인지 게임물관리위원회 소속인지 헷갈릴 지경으로 이상한 판정들이 너무 많아지고 있다. 한술 더 떠서 후반기가 시작하자마자 5명의 감독이 줄줄이 퇴장했고 그 중 7월 23일 키움과 롯데 경기에서 롯데 래리 서튼 감독이 스트라이크존 항의로 퇴장하였고 키움 이용규는 스윙 판정 관련 항의로 한 경기에 두명이 퇴장하는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또한 8월 2일 SSG와 kt 경기에서 kt 김상수의 체크스윙의 볼 판정에 불만을 품은 SSG 김원형 감독이 항의 과정에서 퇴장하였고 KBO 측은 김원형 감독에게 '경고'조치를 내리며 향후 비슷한 일이 재발시에는 엄중 처벌을 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김원형 감독의 항의가 격앙되며 반말을 하는 등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었다지만 심판에 대한 조치는 일절 없으면서 코칭스태프만 휘어잡을려는 KBO의 태도에 팬들의 수많은 비판이 이어졌다. 블루아카이브 청불 판정으로 2023년에도 욕 먹는 게임물관리위원회와 마찬가지로 문제의식 부재 및 적반하장, 제 식구 감싸주기에만 급급한 KB0와 심판위원회, 그 정점의 자리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는 허구연 총재에 대한 비판이 많아지고 있다.

SNS와 같은 미디어와 중계방송의 발달, 비디오판독의 도입으로 인해 찰나의 장면이라도 두고두고 회자되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선수와 심판이 나누는 대화라도 중계카메라에 음성까지 모두 잡히고영상 미디어 매체로 빠르게 퍼져나가기 때문에 심판들이 이전처럼 선수들에게 고압적으로 나오지는 않는 편이다. 2024시즌부터는 심판 고유의 영역이라고 인식되었던 스트라이크 존에 대해서도 AI의 판정에 따르기로 했기 때문에 이전보다는 심판과 선수의 마찰은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하지만 여전히 논란이 많은 체크스윙[87]이나 3피트 라인 판정[88]은 무조건 심판의 주관적인 재량과 기준에 의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심판 개개인의 역량 강화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5. 국내 영상판독 도입[편집]


2014년 전반기에 오심논란이 심화되자 결국 7월 하반기부터 심판의 판정에 대한 영상판독이 도입되었다. 이로 인해 심판의 오심이 의심될 경우 영상판독을 요청할 수 있으며, 오심으로 결정되면 판정이 번복되게 된다. 영상판독은 중계화면을 보고 해당판정이 있은후 30초 이내에 제기해야 한다. 즉, 30초가 지나면 그 판정에 대해서는 영상판독을 제기할 수 없다. 이닝이 종료되는 경우는 10초 이내에 제기해야 한다. 8월 4일까지 영상판독 요청은 총 19회 제기되었으며 이 중 8건의 판정이 번복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심판 합의 판정제 항목 참고. 2017년부터는 비디오 판독 제도로 개선되었다.

김병주 심판팀장과의 인터뷰[89]에 따르면 팬들이나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영상판독 도입으로 인해) 심판이 편해졌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번복이 되면 마음적으로 엄청나게 압박이 온다고 하며 (판정 번복이 될 경우) 인사고과에 반영된다고 한다.일을 못하면 욕먹고 고과 반영되는 게 당연한거 아닌가? 언론에서 욕은 안 먹는데 그것 하나는 좋고 나머지는 다 똑같다고 한다. 팬들이 예전에는 심판에 대한 불신이 있었는데 (영상판독 도입 후) 불신이 많이 없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해태 타이거즈 출신 선수이자 KBO 심판으로 활동했던 장진범도 같은 고충을 토로했다.


6. 사건 사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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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BO 가이드북에 따른 것인데, 이 가이드북은 매년 3월쯤에 제작된다. 그런데 KBO 심판은 매년 4월 초에 정식 채용되기에 KBO 가이드북과 달리 신규 심판이 더 있을 수도 있다.[2] 이 경우 KBO 심판학교 이수후 아마야구 심판을 하다가 채용된 경우가 많다.[3] 2021년 기준 25%가 NPB 팀에 입단했던 선수 출신인데 이들 전부 20년 이상 심판을 해온 베테랑들이다.[4] 이것 때문에 한국 심판들이 사석에서 메이저리그나 일본 심판들을 비선출이라고 무시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메이저리그는 몰라도 NPB 심판들은 까여도 할 말 없는 놈들이다[5] KBO 심판학교 교수진들은 전부다 KBO 1군심판들 및 대한야구협회 심판위원들(KBO 1군심판 출신의 은퇴 심판위원들)이고 KBO 2군심판 및 대한야구협회 소속 심판들도 조교로서 앞에서 교수들의 강의를 하면 이 심판들이 어떻게 판정내리는가를 몸소 보여준다.[6] 단 일반과정을 수료해도 수료증은 나온다.[7] 일반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비디오머그에서 영상으로 취재한 바가 있다.[8] 여기에 전문과정은 KBO 심판학교 출신이 아닌 일반 사설 아카데미에서 맨 처음 교육을 받거나 앞서 말한 일반과정 수료자 들이 듣는 포메이션 전문과정으로 사설 아카데미나 일반과정자들은 심판 포메이션에 대해서 정확하게 숙지를 못하여(사설 아카데미는 포메이션 교육을 안하고 심판학교 일반과정자들은 10주 교육기간동안 2심, 3심, 4심 교육을 받는다. 그러나 사회인리그에서 많이 하는게 2심으로 학교 졸업하고 2심만 보면 3심이나 4심 포메이션 다 까먹는다.) 포메이션 과정을 수료 및 숙달을 위한 과정이다. 지원자들도 일반과정 수료자들 아니면 5년 이상의 사회인 야구 심판 경력이 있어야 한다.[9] 참고로 전기수에서 미리 룰북 필사를 해서 8기수 부터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도장을 찍은 빈 공책에 룰북필사를 하는걸로 바뀌었다. 지못미...[10] 미국의 경우엔 심판에에 많은 재량을 부여해 룰북이 50페이지 정도로 얇지만, 한국은 플레이 하나하나 세세하게 정한 일본의 규칙을 많이 참조해 룰북 자체가 두껍다.[11] 이 6명은 지역협회 소속 심판들로 KBO에 소속된 심판이 아니었으며 이듬해인 1983년부터 지방주재심판이 폐지되면서 전임 심판제로 변경되어 KBO 소속 심판들만 프로심판을 보게 되었다.참조[12] 해태 타이거즈 김응용 감독이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현대 유니콘스노히트 노런 패배를 당한 직후 당시의 심판진 구성이 불공평하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김 감독은 당시 심판진 중에 상대팀 연고지인 인천광역시 출신 심판(허운, 김호인 등)이 유독 많았고 이 때문에 해태가 판정에 대해 불이익을 당했다고 불만을 표했다. 결국 이 판정시비는 6차전 도중 최해식이 스트라이크존 시비로 퇴장을 당하면서 극에 다다르게 된다.[13] 이 때문에 당시 심판위원장이었던 김광철이 책임지고 심판위원장직을 사퇴했다.[14] 감독관은 경기운영위원회의 일원으로, 주로 프로팀 감독에서 물러난 원로 야구인들이 맡는데 현재는 김용희(전 롯데, 삼성, SK 감독)이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박종훈(전 LG 감독, 한화 단장), 김시진(전 넥센, 롯데 감독), 한용덕(전 한화 감독), 임채섭(전 심판팀장)이 소속되어 있다.[15] 한국야구 최고 명심판이라고 불리는 심판. KBO리그 출범시 재직 심판 및 최초 2000경기 출장 심판[16] 단 2017년부터 2019년까지는 심판위원장 재직. 2021년부터 퓨처스 심판 육성위원에 선임되면서 일선에서 물러났으나 심판 수 부족으로 여전히 2군 경기에 투입되고 있다.[17] 2021년부터 퓨처스 심판 육성위원에 선임되었으나 심판 수 부족으로 여전히 2군 경기 심판으로 출장하고 있다.[18] 한국시리즈 3차전[19] 논란이 되었던 한화 호세 로사도 코치를 퇴장시킨 사건 당일이 2000번째 경기였다. 문서 참고.[20] 원칙적으로 2루심은 그 다음 경기 주심을 보고, 주심은 그 다음 경기에는 대기심으로 빠진다.[21] 단 시즌 중후반 1군심판들이 휴식기간을 갖는 동안 퓨쳐스 선임심판들이 합류하여 심판조가 6명이 되는 경우,로테이션이 3루심→1루심→대기심→2루심→주심→대기심으로 변경된다.[22] 포스트시즌에는 당일 우선심이 누군지를 파악하면 다음날 주심을 예측할 수 있다.[23] 다만, 80~90년대의 경우에는 정규시즌의 몇몇 경기에도 6심제를 운영했다.[24] 예를 들어 2021년부터는 규약 개정으로 심판아들속한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경우 그 심판은 포스트시즌 한정으로 심판진에서 아예 배제된다. 실제로 2020년에 이 팀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자 평심판위원 2명이 한국시리즈 심판을 봤다.[25] 1983년 김진영삼미 슈퍼스타즈 감독의 이른바 '잠실 이단옆차기 사건'과 연관돼 있다. 김진영 감독은 당시 삼미 주자의 득점 상황에서 심판 판정 시비가 벌어지자 불만을 호소하며 그물망 밖에 있던 이기역 위원장을 향해 냅다 이단옆차기를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경기가 MBC를 통해 전국으로 생중계됐고 더구나 이 분으로 추정되는 높으신 분(대부분의 매체에서 사실로 단정짓고 있으나 아직까지도 그 실체는 분명하지 않다.)이 이 경기를 집관한 바람에 김진영 감독이 구속되는(...) 흑역사가 생겨났다.[26] 김광철 위원장 이후 심판위원장은 모두 프로심판 출신이다.[27] KBO 명지전문대학교 야구심판학교 1~6기.[28] 이 때만 직함이 심판실장이었다.[29] 룰북을 토대로 강의를 하는데 KBO 1군심판 교수한명하고 나눠서 룰 강의를 진행한다.[30] 아들인 황인태도 KBO 리그 심판위원이다.[31] 삼미 슈퍼스타즈 선수였다.[32] 허운과의 파벌 싸움으로 퇴출되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2020년부터는 둘다 복귀했다.[33] KBO 명지전문대학교 야구심판학교 7기 이후 교장수행중.[34] 역대 심판위원장중 최초로 임기후 평심판위원으로 복귀했다.[35] 단, 경력이 많은 심판이라도 조장직을 오래 맡으면 조장직을 다른 경력이 많은 후배 심판에게 넘겨주고 평심판으로 내려가기도 한다. 나광남과 문승훈, 김병주가 이런 케이스.[36] 최동원의 동생.[37] 고교 졸업 당시 LG에 지명받았으나 지명을 거부하고 대학으로 진학했다.[38] 1991~1992년에 태평양에 몸 담았던 김병주(마산상고 출신)로 알고 있는데 동명이인이다. 2018년 1월에 본인이 밝힌 내용으로 태평양에서 뛴 그 김병주가 맞다고 했다.[39] 권명철 두산 코치의 동생이라는 헛소문이 계속 돌고 있는데 권명철은 인천고, 권영철은 대구상고(현 상원고) 출신으로 전혀 관련이 없다. 그냥 이름이 비슷할 뿐.[40] 차영화 전 KIA 코치의 아들.[41] 김준표 전 심판의 아들[42] 1970년생[43] 문선재-문진제의 작은아버지[44] 차영화 전 KIA 코치의 아들.[45] 8월 26일 LG와 NC의 경기에서 논란의 판정을 하여 이에 분노한 일부 팬들에게 테러 협박을 받았다. 이로 인해 본인이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 시즌 중 휴직하였다.[46]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심판위원장으로 재직하다가 2020년부터 평심판위원으로 복귀했다. 2021년부터 퓨처스 심판 육성위원을 맡음으로 사실상 은퇴했으나, 심판 수 부족으로 인해 심판위원 직도 겸임하고 있다.[47] SSG 랜더스 외야수 강진성의 아버지[48] 2021년부터 퓨처스 심판 육성위원 보직을 맡으면서 심판을 사실상 은퇴했으나 심판 수 부족으로 심판위원 직을 겸임하고 있다.[49] 황석중 전 심판위원장의 아들[50] 1989년생, 위의 이민호 심판(1970년생)과 동명이인[51] KBO 연감과 퓨처스 리그 기록지에서는 이민호65(심판 번호 변경 전), 이민호42로 기재된다.[52] 송유석의 아들.[53] 최해식의 외조카[54] 1군 출장경기/2군 출장경기[55] 심판을 그만둔후 1984년부터 1985년까지 삼미 슈퍼스타즈 코치를 역임했다. 1982년 KBO 원년 개막전 3루심[56] KBO 리그 원년에 심판번호 1번을 달았던 심판이다. 1번 심판의 영예를 안고 1982년 3월 27일 원년 개막전의 구심을 맡을 예정이었지만 역사적인 개막전을 며칠 앞두고 야구인들과 저녁 술자리를 갖던 중 "내가 개막전에 구심을 맡기로 했는데 대통령 각하께서 개막전 시구를 하신다고 그러네"라고 말했던 것이 화근이 돼 개막전 구심 자격을 박탈당했고 기관원들로부터 잡혀갔다는 이야기가 매우 유명하다. 1급 경호 비밀에 해당하는 대통령의 동선을 스스럼없이 흘린 것이 죄목이었다. 결국 개막전 구심은 아래 명단에 있는 김광철 심판이 봤다. 참고로 김광철 심판의 심판 번호는 2번.[57] 심판위원장으로 재직중인 1990년에 심판을 1경기 본 기록이 있다.[58] KBO 심판중 최초로 1500경기 출장을 한 심판, 1982년 KBO 원년 개막전 1루심[59] 황인태 심판의 아버지[60] 1997~1998년 심판실장으로 재직중에 심판을 1997년 20경기, 1998년 7경기 본 기록이 있다.[61] 실업야구 타격왕 출신으로, 심판 경력 이전에 대구상업고등학교 야구부대광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참고로, 장효조가 그의 처남이다.[62] 역대 최고의 KBO 심판위원이라는 평을 듣는 심판으로 심판 경력 이전인 1971년부터 1974년까지는 경기상업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1979년부터 1981년까지는 한양대학교 야구부 코치를 역임했다.[63] 단, 1999년~2005년은 심판위원장.[64] 1998년에는 출장경기가 전무하다.[65] 단, 2006년~2007년은 심판위원장[66] 2020년부터 심판위원장을 맡고 있다.[67] 2008년부터 2013년은 심판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심판위원장 재직 도중인 2010년 1군 1경기 출장 기록이 있다.[A] A B C D E F G 1군 출장 경기 없음.[68] 김익수 심판의 아버지[69] 현 KBO 퓨처스 심판 육성위원[70] 현 KBO 경기감독관[71] 현 KBO 퓨쳐스 심판 육성위원[72] 심판 은퇴후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심판위원장을 역임했다.[73] 1999~2000년에는 출장 기록이 전무하다.[74] 윤상원 현 KBO 심판위원의 친형. 현재는 다른 직렬로 이동했는데, KBO 기록위원회 소속으로 1군 기록팀장을 맡고 있다. 동생인 윤상원이 현대 유니콘스 선수 출신인데 비해 이 쪽은 프로 출신이 아니다.[75] 2002년을 제외하고 1군 출장 경기가 없다.[76] 최초이자 유일한 비 선수 출신 심판위원으로 프로는 물론 고교야구 등 앨리트 야구 경험이 없다.[77] 2022년에는 출장 기록이 전무하다.[78] 메이저리그일본프로야구의 경우 심판협회가 산하기구가 아닌 독립적인 기관이다. 한국 심판협회도 KBO로부터 독립 시도를 여러 차례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고 한다.[79] 경기운영위원의 업무 중 경기 감독 부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심판의 관리와 감독이다.[80] 경기운영위원의 절반은 심판 출신이다.[81] 참고로 한국에서 심판 장비는 수요가 적다보니 수입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BMC에서 장비가 나오면서 사회인야구에서는 BMC장비를 차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엘리트야구급 이상에서는 사실상 수입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과 일본의 장비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선호하는 스타일에 따라 장비를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는 장비를 돌려 사용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처음 심판을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장비를 빌려 차는 경우는 많지 않다. 프로텍터나 렉가드의 끈을 타이트하게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몸 사이즈가 비슷하지 않다면 빌려주는 것도 쉽지 않다. [82] 다만 2014 시즌에 한정하여 휴식일이 생겼다. 2015시즌부터는 kt wiz의 리그 참여에 따라 매일 5경기가 열리므로 심판도 5개조가 필요하게 되는데, 이에 대비해 한 시즌 앞서 5개조로 미리 만들었기 때문이다. 2014 시즌에 심판 자질 문제가 유독 이슈가 되고 있는 이유 중에는, 심판조가 늘면서 경험이 부족한 심판이 한꺼번에 1군으로 올라왔다는 것에도 이유를 찾을 수 있다.[83] 일례로 1991년 한국시리즈 당시 3차전 8회 2아웃 정회열 타석의 2-2에서 투수 송진우의 바깥쪽 직구에 대한 볼 판정은 지금도 논란거리이다. 송진우 본인은 아직도 그 공을 스트라이크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당시 경기를 본 기자들은 그 공은 스트라이크를 줘도 할 말이 없는 공이었다고 인정한다. 반대로 당시 주심인 이규석은 아직도 그 공은 볼이라고 확신하고 있고, 이후 당시 포수였던 유승안의 동의를 받았다고 주장했으나, 유승안의 인터뷰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아무튼 이 판정 하나로 송진우는 흔들려 무너졌고, 결국 빙그레는 해태에 또 패배했다. 이 판정에 뒤집힌 대전아재들이 심판실을 점거하고 난동을 피웠다.[84] 2번 모두 원심 번복시 1회 추가[85] 판정 1시간만에 KBO에서 직접 '타격방해가 아닌 수비방해'였음을 인정하며 정정하였다. LG의 후속타 불발로 정주현이 득점하지 못했기에 망정이지 만약에 끝내기라도 나왔으면 더 큰 문제가 될뻔한 상황이었다.[86] 사실 이건 야구에만 한정된 문제는 아니고, 어느 종목이나 심판 판정에 대해선 말을 아낀다. 그나마 이순철이 모두까기 스타일로 심판 판정에 있어서도 자기의 목소리를 내는 편이다. 이순철은 지금 심판들보다 선배이기도 하거니와 예전 감독시절에 심판판정에 배트도 집어던지고 불같이 항의하는 스타일이었다. 다만 이순철의 발언과 같은 소신발언은 팬들 입장에서나 시원하다고 느끼는 것이고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쉽게 입을 떼기가 어려울 것이다. 동종업계 종사자이면서 지나치면서라도 만날 수 있는 사람에게 쓴소리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87] 비디오판독 대상이 아니다.[88] 비디오판독 대상이지만 명백한 경우가 아니면 원심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89] 현재 비공개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