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진

최근 편집일시 :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신의진
申宜眞 | Shin Yeejin


파일:신의진교수.jpg

출생
1964년 4월 10일 (60세)
부산광역시
학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 / 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 (정신의학 / 박사)
가족
배우자 홍수종[1], 슬하 2남
소속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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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선수
1
의원 대수
19
현직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교수
경력
연세대학교 정신의학교실 교수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과장
제19대 국회의원(비례대표)
새누리당 원내대변인
새누리당 아동학대근절특별위원회 간사
국회 메르스대책특위 위원
윤석열 국민캠프 아동청소년특별위원장
링크
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
2. 정치 활동
3. 논란
3.2. 20대 총선 홍보에 피해자 이용 논란
3.3. 윤석열 캠프 합류 논란
4. 선거 이력
5.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사다. 전 19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이다.

1964년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났다. 부산 혜화여자고등학교,[2]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다. 이후 세브란스 병원에서 정신과 의사로 근무하였다. 2009년 2월부터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인 나영이의 심리치료 주치의를 맡으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3]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국회의원 비례대표 7번으로 당선되어 국회의원이 되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양천구 갑 지역구에 새누리당 예비 후보로 등록했으나 이기재 후보에 밀려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2. 정치 활동[편집]


새누리당의 비례대표로 19대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게임과 관련된 법안으로 초선의원임에도 불구하고 좋지 않은 의미로 유명세를 탔는데, 중독 예방 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의 대표발의자이자 손인춘법 발의 동참자였으며 이 법안의 상징격인 인물이 되었다. 이로 인해 게임산업 종사자 및 게이머들과는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이 되었다.

또한 20대 총선에서 서울 양천구 갑 지역에서 출마를 준비하였는데, 공천 과정에서 아동 성폭력 피해자의 주치의였다는 것을 대문짝만하게 홍보하여 큰 비난을 받았으며 결국 공천을 받지 못했다.

19대 국회에서 새누리당의 대변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20대 국회에 입성하지 못해서 당분간 대변인으로 볼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4년간 국회의원직을 하면서 이래저래 좋지 않은 평을 받다가 퇴장했는데, 정치 감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 어설프게 국회에 들어와서 아마추어 같은 모습만 보여주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촛불시위가 한참이던 2016년 12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깎아놓은 국격을 시민의 힘으로 올려놨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

이후에는 다시 본업인 정신의학과 교수로 돌아갔다.

2021년 박형준 부산시장 당선인 인수위원으로 선임되었다.


3. 논란[편집]



3.1. 중독 예방 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 대표 발의 논란[편집]


서병수와 함께 게이머들의 불구대천의 원수로 꼽히며 반게임 인사로 분류되고 있다. 이 법안의 막장성에 대해서는 중독 예방 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 문서을 참고하기 바란다. 쉽게 비유하자면 교통사고로 사람이 많이 죽는다고 자동차 산업을 억제하자는 수준의 법안으로, 이 분이 무려 이 법안의 대표 발의자였다. 정신과 의사로서 나름의 전문성을 활용해서 중독자들의 발생을 막고 관리를 철자하게 하자는 취지 자체는 의미가 있겠지만, 문제는 이 취지 하나로 게임 산업을 제대로 말아먹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 법안은 게임을 무슨 마약이나 도박처럼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애들 공부를 방해하는 유해한 매체로 취급하고 있다. 과거 군사정권에서 만화에 저질 딱지를 붙여서 만화산업을 고사지경에 빠뜨렸던 것의 데자뷰다.

그리고 이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어처구니 없는 주장이나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하여 더욱 공분을 샀다. 그나마 이 법안 통과가 무산돼서 망정이지 통과가 강행됐다면 역사에 길이 남을 뻔했다.

지스타 2015에서 자신이 발의한 게임 중독법이 게임산업 탄압의 목적이 아니었다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마치 밥상 엎어놓고, 밥을 먹지 말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과 같은 논리다.

물론, 그 자리에 있던 대다수의 게이머들의 반응이야 뭐 말이 필요없다. 당장 지스타에서 서병수와 신의진이 올라오자마자 무슨 야구장 프차 스타가 타 팀으로 건너가서 타 팀 소속으로 그 해당 경기장에 온 것 마냥 "우~~" 하는 소리가 엄청나다. 본인 입으로 '아이들이 공부는 안 하고 게임만 한다는 것 때문에 굉장히 속을 끓였던 엄마의 시각으로 많이 살았던 것 같습니다'라고 밝힌 점을 보았을 때 사회적 쟁점을 객관적, 사회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일을 처리해야 하는 국회의원으로서 적절치 않은 자세를 갖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공부를 한다고 성공한다는 법은 없다.

게다가 축사 전체적으로 보면 건강, 교육, 기능성 게임이라는 단어를 굉장히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놀이는 무조건 유익해야만 한다!"라는 식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게임이 뭔지, 산업이 뭔지, 문화가 어떻게 형성되고 발현하는지에 대한 어떠한 이해도 없고 자신의 의사 경력, 아집과 편견만을 강요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여전히 꼰대스러운 시선을 지우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모 경제 신문에서 '공공의 적에서 잔 다르크로'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자, 네티즌들의 반응은 '그럼 화형시키면 되겠네'라는 반응을 보였다. 네티즌의 여론이 얼마나 안 좋은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 게임중독에 관한 법률로 세계보건기구에서 게임중독이 등록되었고, 이걸 적극적으로 이용한 게 신의진이 소속된 한국중독정신의학회가 주체인 중독 포럼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다시금 비난을 받고 있다. 참고로 차라리 마약을 빼라고 개소리하던 사람도 중독 포럼 소속이고,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소속이다.


3.2. 20대 총선 홍보에 피해자 이용 논란[편집]


파일:external/img.hani.co.kr/145611967433_20160223.jpg

새누리당의 20대 총선 공천 경선 과정에서 선거 홍보 현수막에 '나영이 주치의' 라는 문구를 적어 놓아 물의를 일으켰다. 2016년 1월 28일 서울 양천구 목동트라팰리스 선거사무실에 걸어놓은 현수막에 "새누리당 대표 똑순이 양천구에 왔습니다”라며 볼드체로 나영이 주치의, 새누리당 대변인, 아이심리백과저자라고 적어놨다. #

현수막 사진은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이는 본인이 조두순 사건 피해자의 주치의를 맡았던 것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이다. 법률상으론 문제 없지만, 정신상담 측면에선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진료자는 환자의 정보를 철저히 보호해야 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인데, 최소한 보호자의 동의 없이 대외적으로 환자의 사생활 및 정보를 이용하는 것은 금기시되고 있다. 신의진 의원이 정치인이기 이전에 의사인 만큼, 보호자의 동의 없이 이런 행동을 벌였다면 그 행위는 분명 무책임하다 볼 수 있다.

파장이 커지자 신의진 의원은 피해자의 아버지에게 친서를 받아 양해를 구했다며 해명했지만, 이 친서는 논란이 확산된 이후인 2016년 2월 22일 오후 작성되어 이 날 저녁 공개된 것으로 신의진 의원의 요청을 받아 작성되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4]

설령 피해자의 아버지가 처음부터 동의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받았을 크나큰 고통을 생각하면 '나영이 주치의' 문구를 이용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비난도 쏟아지고 있다. 그리고 '환자를 위해 치료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업적을 남기는 게 아니라 업적을 남기기 위해 환자를 치료한 게 아니냐'는 비판여론이 쏟아지고 있는 것은 당연지사.

2016년 3월 4일 뉴스토마토의 단독보도에 의하면 나영이와 나영이 부모의 허락을 받지 않은 채 독단적으로 나영이의 상반신 노출 사진이 삽입된 '신의진의 약속'이라는 홍보 영상을 제작, 지난 1월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지지자들 앞에서 상영했다.[5] 썰전에서 전원책은 이에 대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대놓고 위반하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일련의 행보에 역시나 반응은 정치판에 들어가더니 추해지고 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논란 때문인지 이기재 후보와의 양천 갑 경선에서 패배하여 공천을 받는 것에 실패하고 낙천되고 말았다. 사실, 서울특별시는 새누리당에게 있어서 고질적인 험지[6]라 반드시 당선될 사람을 밀어줘야 되는 지역구로 평가받고 있는데, 이럴 경우 스타급 인물을 전략 공천하거나 지역 현안에 능한 관료 출신 혹은 토호 출신을 공천하게 된다. 헌데 신의진은 관료 출신도 아니고, 토호 출신도 아니고, 그렇다고 양천구에 대해서 잘 아는 것도 아니라서, 낙마가 이미 예견되어 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비슷한 예로, 자기가 정신의학과 전문의라는 이유로 유아인에게 정신병력이 의심된다고 개소리를 했었던 김현철 정신의학과 전문의는 결국 학계에서 제명되고 나중에 성추문 의혹[7]으로 자살했다.

한편, 경선에서 승리한 이기재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황희 후보에게 패배하면서 무려 28년 만에 민주당계 정당 출신 정치인이 지역구를 다시 탈환했다.[8]

2021년 현재 젠더 이슈가 민감해진 상황에서 학부모 세대를 제외한[9] 여성층에서도 비토를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3.3. 윤석열 캠프 합류 논란[편집]


2021년 8월에 윤석열 후보의 캠프에 합류했으며, 12월부터 아동폭력예방특보로 발령되었다. # 이로 인해 20대 대선에서 야당 후보를 지지할 생각을 갖고 있던 20·30대 남성들에게 매우 큰 반윤 정서를 유발시키고 있다. 전술했듯 셧다운제의 크나큰 원흉이기 때문.[10] 이에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국회의원은 "게이머를, 2030의 생각을 무시하고 있다는 반증" 이라고 지적했다.#

논란에 대해 같은 국민의힘의 양준우 대변인도 윤캠의 신의진 영입에 대해서 게이머로서 참담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 하태경 의원은 "과거 게임중독을 법으로 규제하려고 했던 시대착오적인 시도는 없을 것이다"라고 밝혔으나# 신의진 전 의원은 "게임 중독을 치료하고 지원하자는 법안을 냈을 뿐"이라며 자기합리화를 시전하고 변명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이후 "그 법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하며, 하태경의 말과 달리 여전히 게임산업을 탄압할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하고 있으며 그 사실을 숨길 생각조차 없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이에 대해 게임 유튜버 김성회가 마찬가지로 윤석열 국민캠프에 합류한 손인춘[11]과 묶어 함께 비판하는 영상을 올렸다.[12]



이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인벤과의 게임 정책에 관한 인터뷰에서 게임중독 질병코드화 이슈에 대해 "게임을 포함한 모든 문화콘텐츠들은 상품이기도 하지만 사용자들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진흥과 규제를 적절하게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라고 밝히면서 부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이에 대한 해결책도 예방, 치료 등 신의진 같은 정신의학계에서 군침흘리는 부분이기 때문에 신의진의 입김이 닿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다. 신의진은 지금껏 자신의 의사 경력만 고집하면서 게임 검열을 몰아붙여봤기 때문에 더더욱. 자세한 사항은 윤석열 인벤 인터뷰 논란 항목 참조.


4.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새누리당|
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타입.svg
]]

9,130,651 (42.80%)
당선 (7번)
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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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6 04:10:51에 나무위키 신의진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2] 지금의 동래구 혜화여자고등학교 시절이 아닌 부산 최대 번화가인 서면 쪽 범천동에 있던 시절에 졸업하였다.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은 신의진이 범천동 혜화여고 재학 당시(1980~1982년) 서면 일대에는 무허가 전자오락실들이 급속하게 난입하여 사회적 문제가 되었고,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필두로 팩맨, 갤러그 같은 히트작들이 연달아 도입된 시절이었다. 그 덕분에 서면 일대의 고등학교들은 주변의 유흥업소 문제 뿐만 아니라 남녀 불문하고 학생들의 오락실 출입 문제로 심하게 골치를 앓던 시기였는데 혜화여고도 그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고 한다.[3] 당시 인터뷰[4] 그도 그럴 것이 편지에 접힌 자국이 없고 마지막에 사인이 있다는 점을 어색하게 여기는 반응이 있다. 물론 대봉투에 넣으면 편지를 접지 않고 보낼 수 있지만 더 편리하게 보낼 수 있는 일반 편지봉투 놔 두고 굳이 대봉투에 넣어야 했는지 의문이며, 사인까지 같이 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문서였는가도 역시 의문.[5] # [6] 강남 3구용산구의 경우엔 그나마 사정이 나았으나 박근혜 정부 시기를 겪으면서 이 지역들도 보수색이 옅어졌다.[7] 그것도 보통 의혹이 아닌 게 바로 자신이 상담하는 여성을 그루밍 성폭력했다는 의혹이다.[8] 다만 이건 신의진의 문제는 당연히 아니고 이기재가 원희룡 쪽 사람인 게 문제가 된 케이스다. 양천구 갑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 지역구가 용산구나 송파구와 맞먹는 부촌인 것과는 상반되게 한나라당~새누리당에 대한 민심이 꽤나 험악한 지역인데 그 이유가 과거 이 지역구의 국회의원이던 원희룡이 목동 아파트 재건축이나 신정차량기지 이전, 9호선 유치 등 대부분의 지역현안을 사실상 방치하고 대선, 당대표 경선에만 골몰하는 등 지역 민심을 파토내버린 게 결정적이였다. 심지어 원희룡의 후임이자 당시 19대 현역의원이던 길정우 의원 역시 지역현안을 수습하기는 커녕 어버버 거리기만해서 안 그래도 불안불안하던 민심을 폭발시키는 바람에 당시 목동 쪽에는 원희룡과 길정우를 욕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는 등 지역 여론이 여당 쪽에 매우 험악했었고 20대 총선으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보수정당 특히 원희룡의 ㅇ자만 들어도 쌍욕을 날리는 사람이 대다수다. 물론 그와 별개로 이기재 대신 신의진이 올라갔다 해서 당선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9] 학부모 세대인 경우는 중독법 제정 때문에 지지를 할 가능성이 좀 있다. 이유는 바로 게임이 없다면 우리 애들 공부 더 시킬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10] 그렇다고 여성들 표심을 끌어오는 데 도움이 되냐면, 그것도 아닌 게 엄연히 성폭력 사건인 조두순 사건 피해자를 자신의 출세를 위해 팔아먹었기 때문이다. 결국 끌어모을 수 있는 표심은 게임을 무작정 금지시키면 자식들이 공부를 할 것이라고 믿는 학부모 표심 뿐이다.[11] 잘 알려져 있지만, 인터넷 게임중독 예방 및 치유지원에 관한 법률안, 소위 손인춘법게임업계에 매출기준 1%의 부담금을 책정 및 여성가족부에서 담당 하는 법안을 올려 게임산업을 탄압하려는 악적으로 신의진과 함께 낙인찍힌 전 국회의원이다.[12] 다만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편향성 시비가 붙을 것을 우려해 위에 양준우 대변인의 사례를 언급하며 모든 보수 정치인이 게임에 대해 부정적인 건 아니라는 전제를 붙였으나 아니나다를까 영상이 업로드 된 이후 이에 대해 진영논리로 해석하는 여론이 늘어나자 결국 김성회는 11일 밤 유튜브 라이브로 해명방송을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