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츠키 슈/다카라즈카 가극단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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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시오츠키 슈의 다카라즈카 가극단 활동 내용을 정리한 문서
2. 입단 전[편집]
- 2002년, 다카라즈카 음악학교 90기생 입학 수험에 합격해 음교에 입학, 2년간의 학교 생활을 마친 후 2004년 3월 1일 졸업 및 다카라즈카 가극단에 입단했다. 입단 당시 성적은 50명 중 41등.
3. 출연 작품[편집]
4. 여담[편집]
- 다카라즈카 가극단 입단 당시 성적은 동기(90기생) 50명 중 41등이었다.
- 예명은 가족 특히, 어머니가 주가 되어 작명해주었는데 본인이 이름을 붙일 경우 높은 확률로 흑역사로 남을 것이라 생각해서 부탁을 드렸다고 한다. 작명을 부탁드리며 일단 본인이 생각해둔 예명을 말했는데 역시나 단칼에 반려당했다고.
- 음악학교 시절부터 성적이 낮은 쪽에 속했는데, 여러 시험 과목 중에서 클래식 발레는 꾸준히 상위 5위 안에 속했지만 나머지가 하위권을 달리는 바람에 성적이 오르질 않았다고. 주로 일본 무용과 성악에 취약했다고 한다.
- 90기 동기생들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어린 쪽[3] 이기 때문에 여전히 동기들이 막내 동생처럼 대해준다고 한다.
- 다카라즈카 수험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만 5세경 부터 클래식 발레를 배웠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프로 발레리나는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고민하고 있었는데,[4] 때마침 어머니와 극단 사계의 공연을 보러 가면서 연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때마침 하카타좌 공연을 보고 다카라즈카의 매력에 빠져 중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때 수험을 결심했다.
- 키가 일본 여성 평균 키보다 훨씬 큰데, 극단 동기생들 중에서도 최장신에 속했다. 정확히는 50명 중 나오키 준(直樹じゅん)과 함께 공동 2위.[5]
- "군무의 무쌍"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댄스가 주력인 생도로 극과 쇼(레뷰)가 함께하는 다카라즈카 작품에서 극보다는 쇼에서 많이 활약하는 댄서였다.
- 특유의 아우라가 있는 개성파 이미지였다. 눈에 띄는 외모에 큰 키까지 더해져 "오페라 글라스 도둑"이라는 별명이 있기도 했다.[6]
- 다카라즈카를 좋아하기 전에 소극장 공연을 보는 것을 좋아했어서 입단 후에 바우홀 공연에 출연하는게 꿈이었다고 한다.
- 다카라즈카 오토메[7] 에서 해보고 싶은 역할로 '필살기는 내는 역할'이라고 작성한 적이 있다.
- 2010년 상연된 <로미오와 줄리엣>의 연습 과정에서 왼쪽 허벅지 앞 근육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다. 심한 부상으로 휴연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당시 여러 사정이 있어서 어떻게든 출연하고 싶어 끝내 휴연을 결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 2013년 상연된 쇼
의 쌍둥이자리 장면에서 검은 드레스를 입고 여장[10] 을 하며 팬을 포함해 주변에서 귀엽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도쿄 극장 공연 천추락 전 DVD를 받아 돌려보니 탄탄한 등 근육에 화나고 무서운 사람처럼 나와서 속은 기분이었다고 한다. # 이후 동년 대만 공연에서 상연되었을 때는 남역으로 같은 장면에 출연했다. #
- 입단 6년차인 연6에 퇴단을 한 번 고민했었다. 아름답고 빛아는 사람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사이 시골에서 온 자신이 끼어있는 듯한 열등감에 비롯된 고민이었다고. 그 시점에서 어머니께서 돌아가셨고, 극단을 그만두거나 남을 이유가 없어져 일종의 도피처로 극단을 선택해 조금 더 남아있었다고 한다.
- 최종적으로 퇴단을 의식했던 시기는 2013년 상연된
에 출연했을 때로 이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여담으로 동기들로부터는 “연3에 퇴단할 것 같았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 도쿄 다카라즈카 극장에서의 퇴단자 인사는 아래와 같다. 여담으로 도쿄 극장 천추락 커튼콜에서 퇴단자들이 한 마디씩 남길 때 관객들을 상대로 가위바위보를 한 에피소드가 있기도 하다.
退団を発表してから四ヶ月間、私の言葉の選び方が悪かったのか、私が宝塚を嫌いになって辛くて辞めるんじゃないかと心配してくださる方がたくさんいらっしゃったんですが、
私は宝塚の好きな作品を見る時は、部屋で一人でペラペラ喋りながら見るほど宝塚が大好きだし、辛かったこともたくさんあったけれど、嬉しかったことと全部まとめて、とっても幸せだったと思っています。ということが言いたかったです。
퇴단을 발표한 후 4개월간, 단어를 잘못 선택한 탓인지 제가 다카라즈카를 싫어하게 되어서 그만두는 것은 아닐지 걱정해주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좋아하는 다카라즈카 작품을 볼때 방에서 혼자 주절주절 말하면서 볼 정도로 다카라즈카를 정말 좋아하고, 힘들었던 일도 많이 있었지만 기뻤던 일들도 전부 합쳐서 정말로 행복했다고 생각합니다. 라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 퇴단을 하면서 재단 당시 착용했던 몬츠키 하카마나 이어커프를 후배에게 전해줬다. 앞으로 입지 못하는 옷은 가지고 있어 봤자 쓸모 없다고 생각해[11] 몬츠키 하카마를 키가 비슷한 후배에게 예비용으로 사용하라고 전해줬는데, 당시 주변에서는 "엥? 저걸 왜 전해주지?" 같은 놀란 반응이 대부분이었다고. 이에 음악학교 교복도 졸업 후에 버렸다고 말하자 더 놀랐다고 한다. 이어커프의 경우에는 깊은 추억이 남은 것 한 두개만 남겨두고 모두 전해줬다고.
- 한때 오로나민 C에 빠져서 병에 이름을 쓴 라벨을 붙여놓고 극단 공용 냉장고에 상비해둔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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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컨디션 난조로 인해 2011년 6월 18일부터 6월 24일까지 휴연[2] 주유의 일본식 발음이 '슈유'이다.[3] 중학교 졸업으로 음악학교에 입학했는데다가 중졸 입학자 중에서도 1월생으로 빠른생일에 속했다.[4] 아무래도 큰 키로 인해서 평균 키가 작은 편인 일본의 발레단에 속하기에는 신체 조건이 따르질 않았기 때문이었다고.[5] 여담으로 1위는 아사나기 마오(朝凪麻名)로 무려 178cm이다.[6] 극장이 크다보니 다카라즈카 팬이 자신이 응원하는 생도를 보기 위해 오페라 글라스를 지참하는데, 자꾸 시선을 끌어서 응원하는 생도가 아닌 본인을 보게 만든다는 의미이다.[7] 다카라즈카 가극단에서 매년 발행하는 생도의 프로필 책[8] 느긋한 잘생긴 남자들(ゆるいイケメン)이라는 의미로 토키 이리스, 시오츠키 슈, 마카제 스즈호, 토아 레이야, 사자나미 레이라의 5명으로 구성되어있었다. 당시 다섯명 모두 성조에서 가장 느긋한 성격의 소유자들이어서 만들어졌다고.[9] 일종의 퇴근길을 의미한다.[10] 다카라즈카에서는 쇼 등의 공연에서 남역이 여성의 역할을 할 경우 여장으로 표현한다.[11] 다카라즈카 가극단에서 각종 행사에 착용되는 초록색 몬츠키 하카마는 극단의 교복이기 때문에 극단 생도가 아닌 사람은 절대 착용할 수 없고 착용해서도 안되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