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튀르키예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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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근세~근대
2.2. 20세기
2.3. 21세기
2.3.1. 2000년대
2.3.2. 2010년대
2.3.3. 2020년대
3. 문화 교류
3.1. 스포츠
4. 대사관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스웨덴튀르키예의 관계에 대한 문서다. 양국은 스웨덴 제국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외교관계를 맺었고 21세기에도 교류, 협력을 하고 있다. 스웨덴에는 튀르키예계 스웨덴인 공동체가 존재한다.

튀르키예는 스웨덴으로 망명한 쿠르드족 분리주의 세력을 튀르키예로 넘겨줄 것을 요구하며 이를 스웨덴의 NATO 가입 문제와 연계하고 있어서 양국은 갈등을 빚고 있다.

2. 역사적 관계[편집]



2.1. 근세~근대[편집]


18세기에 스웨덴 왕국루스 차르국 사이의 대북방전쟁이 벌어지는 와중 폴타바 전투에서 패배한 칼 12세가 오스만 제국으로 망명하였다.# 해당 사건이 바로 양국 사이의 외교 관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칼 12세는 오스만 제국에 5년 가량 체류하였고, 오스만 제국 측에서는 칼 12세가 망명해 있는 동안 지출했던 돈을 스웨덴 측에 청구하기 위해서, 스웨덴으로 귀환하는 칼 12세에게 일군의 상인들과 통역사들을 달려보냈다. 이들은 대개 아르메니아인들이었는데, 오스만 제국은 이슬람 국가로서, 자국 내 무슬림 신민들이 기독교 국가 출신 상인들과 직접 교류하는 것을 제한하였기 때문이다. 이후 오스만 제국은 자국 내 아르메니아인들을 스웨덴 왕국에 대사로 파견하곤 했으며, 이스탄불에 소재한 스웨덴 왕국 대사관 역시 아르메니아인들을 고용하여 외교 업무를 맡기곤 했다. 물론 오스만 제국에서 아르메니아인 상인들에게 양국 외교를 전적으로 다 맡기다시피 한 것은 아니고, 오스만 제국의 대사나 군인들이 칼스크로나에 체류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오스만 제국에서 자국 내 무슬림 신민들이 기독교 국가에서 온 외국인과 접촉을 제한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스웨덴은 루터교회 신도가 아닌 타 종파 혹은 타 종교를 믿는 외국 사절들은 주로 칼스크로나에서 맞이하곤 했다.

양국은 서로 지리적으로 상당히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 러시아 제국을[1] 견제하는 목적에서 친교 관계를 다시게 되었다. 그러나 대북방전쟁 이후 러시아의 국력이 급격히 성장하고 이후 러시아-튀르크 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이 러시아 제국과의 전쟁에서 패배를 거듭하는 이유로 양국 사이의 교류가 러시아 견제에 그다지 도움은 되지 못하였다. 오스만 제국은 크림 전쟁에서는 승전을 거두었지만, 크림 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을 지원한 국가는 스웨덴이 아닌 영국과 프랑스였다.


2.2. 20세기[편집]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고 튀르키예가 들어서면서 스웨덴과 오스만 제국 사이의 외교 관계는 스웨덴과 튀르키예 사이의 외교 관계로 승계되었다. 튀르키예가 앙카라를 수도로 삼았고, 스웨덴은 1934년부로 앙카라에 주튀르키예 스웨덴 대사관을 세웠다.

1970년대부터 튀르키예 내 쿠르드인 상당수가 스웨덴으로 망명하기 시작하였다. 1984년부로 스웨덴에는 쿠르드어를 가르치는 학교가 들어섰으며, 1991~95년 사이에는 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 정권의 쿠르드인 학살과 이란의 쿠르드인 탄압 문제가 불거지면서 서아시아 각지의 쿠르드인 난민들이 튀르키예 출신 쿠르드인 난민들과 스웨덴에서 합류하기 시작하였고, 당시 튀르키예 정부는 스웨덴 내 쿠르드인 난민 단체들을 예의주시하기 시작했다.

다른 한편으로 1960년대 유고슬라비아 연방 등에서 발생한 튀르키예인 난민 상당수가 튀르키예 외에도 스웨덴으로 망명하였고, 유고슬라비아 연방 해체 이후에는 북마케도니아 내 튀르키예인 인구 상당수가 스웨덴으로 망명하였던 바 있다. 다양한 배경의 난민들이 스웨덴에 유입되는 과정에서 스웨덴 내에는 상당한 규모의 튀르키예인 이민자들과 쿠르드인 이민자들이 공존하게 되었다.

2.3. 21세기[편집]


양국은 교류와 협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인 갈등이 생겨나기도 하면서 갈등을 빚고 있다. 그리고 에르도안 정권을 독재를 피하기 위해 망명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유럽 난민 사태 이후 양국 사이의 관계가 조금 미묘해졌는데. 스웨덴은 20세기 중반 이래 유럽 내 대표적인 난민 수용 국가이고, 튀르키예는 유럽 난민 사태 이후 유럽연합 내로 중동 난민들이 무제한적으로 몰려오지 못하게 막아주는 댐 역할을 하는 국가이다. 이라크나 시리아, 이란, 아프가니스탄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들을 튀르키예 측에서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유럽연합에는 난민들이 수용 가능 수준 이상으로 유입될 수 밖에 없다.[2] 스칸디나비아 선진국들은 튀르키예의 독재나 인권 문제 관련하여 비판적인 목소리를 낼 때도 있으나, 튀르키예가 난민 문제로 이런저런 트집을 잡는 수가 있기 때문에 비판을 자제하는 편이다.

유럽 난민 사태 이래 북유럽 각국에서 난민 수용 관련 문제가 선거에서 주요 쟁점이 되면서, 유럽 난민 문제의 열쇄를 쥔 튀르키예가 갑 그리고 북유럽 노르딕 국가들이 을 입장이 된 셈이다.

2.3.1. 2000년대[편집]


2005년 10월 12일, 스웨덴 한림원이 오르한 파묵의 작품을 노벨문학상 후보로 올리는 건을 두고 터키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영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오르한 파묵은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은폐하지 않고 인정했던 이유로 튀르키예 내 극우 단체에게 협박을 받았던 바 있다.

2007년, 스웨덴의 칼 빌트 외무장관은 튀르키예 군부의 성명 발표 시기와 성격은 민주적 가치와 양립하기 어렵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5월 9일, 스웨덴 국회의사당앞에서 튀르키예 정부의 쿠르드 지도자 체포 항의 시위가 일어났다.#

2009년, EU의장국이 된 스웨덴은 튀르키예의 EU가입을 지지했다.#


2.3.2. 2010년대[편집]


2010년에 미국 연방하원 외교위원회와 스웨덴 의회가 오스만 제국에 의한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대량학살(genocide)로 규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자 튀르키예 정부가 항의했고 튀르키예-스웨덴 정상회담도 취소했다.#

2013년 3월 29일에 튀르키예 정부가 2023년까지 스웨덴의 도움을 받아 자체 제작한 전투기로 튀르키예 공군의 F-16 전투기를 대체한다고 밝혔다.#

2015년에 스웨덴의 칼 빌트 장관은 튀르키예 정부가 SNS에 대해 과도한 규제를 내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2016년에 오스트리아와 스웨덴에서 아동 성범죄자와 관련해 튀르키예 헌재의 결정이 힌달 뒤 뒤늦게 튀르키예가 아동 대상 성범죄를 폐지했다로 보도돼 튀르키예가 양국과 갈등을 빚었다.# 4월 18일에 튀르키예계 스웨덴인 장관이 이슬람 근본주의와 연계됐다는 논란이 일어나자 사임한다고 밝혔다.# 양국에서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에 의한 테러가 일어났다.#

2010년대 중반부터 시리아 내전이 일어나고 다에쉬에 의한 유럽 난민 사태가 일어나자 양국은 시리아 난민들을 수용하고 있다.#1#2 튀르키예인과 밀접한 관계인 시리아 투르코만인과 이라크 투르코만인 상당수가 스웨덴으로 망명하였다.

2017년에 그리스 코스섬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스웨덴인 관광객들과 튀르키예인 관광객들이 사망한 일이 발생했다.# 7월 10일에 스웨덴 의원들이 에르도안 대통령을 전쟁범죄로 고발했다.#

2018년에 튀르키예계 스웨덴인 축구선수 두르마즈가 SNS에서 인종차별을 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2019년에 튀르키예가 시리아 북부 지역에 대해 군사작전을 진행하자 튀르키예와 EU, 아랍권 국가들간에 갈등이 일어났고 프랑스, 독일, 헝가리, 스웨덴 등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스웨덴은 EU차원에서 튀르키예에 대한 무기 금수 조치를 모색했다.#


2.3.3. 2020년대[편집]


2021년 10월 23일에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국, 캐나다,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뉴질랜드 등 10개국 대사를 추방한다고 밝혔다.# 그러다가 대사 추방을 철회하기로 밝혔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일어나자 양국은 협력하고 있다. 스웨덴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보내고 튀르키예는 군함의 흑해 진출을 막고 있다.# 5월 13일에 에르도안 대통령은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에 대해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그러다가 5월 15일에 완강한 태도를 보이다가 튀르키예에서 다소 완화된 태도로 바뀌었다.#

스웨덴과 핀란드의 관리들이 나토 가입을 협의하기 위해 튀르키예를 방문했다.#

스웨덴의 한 TV채널이 방영한 방송에 대해 튀르키예가 항의했다.#

2022년 12월 19일, 스웨덴 대법원은 튀르키예 정부가 요청한 언론인 송환 요청을 기각했다.#

2023년 1월 13일, 스웨덴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을 본딴 인형을 거꾸로 매단 사건이 발생하자 튀르키예 측이 반발했다.#

1월 21일, 스웨덴에서 쿠란 소각 시위가 발생하자 튀르키예 측이 반발했다.#

3. 문화 교류[편집]


양국간의 문화 교류가 일부 존재한다. 2006년 10월 12일에 스웨덴 한림원은 오르한 파묵에게 노벨 문학상을 수여했다.#

2018년에 4월 28일에 스웨덴 정부 공식 계정이 미트볼의 기원은 스웨덴이 아니라 오스만 제국이라고 밝히자 튀르키예에서 감사의 뜻을 밝혔다.#


3.1. 스포츠[편집]


2000년 6월 16일 UEFA 유로 2000 조별리그 B조에서 튀르키예 축구팀과 스웨덴 축구팀간의 경기에서 무승부로 끝났다.#

2016년에 축구 국가대표 친선경기에서 튀르키예 축구팀이 스웨덴 축구팀을 이겼다.#

2018년에 축구 국가대표 친선경기에서 스웨덴 축구팀이 튀르키예 축구팀을 이겼다.#


4. 대사관[편집]


스톡홀름 시에 주 스웨덴 튀르키예 대사관, 앙카라 시에 주 튀르키예 스웨덴 대사관이 존재한다.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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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북방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국명이 루스 차르국에서 러시아 제국으로 변경되었다.[2] 대표적인 사례로 리비아에서 카다피 정권이 붕괴된 지 몇 년 안 가, 이탈리아로 유입되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난민들이 일으키는 문제가 누적되면서 결국 극우 조르자 멜로니가 총리로 당선된 케이스를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