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삼황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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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순(帝舜)
유우씨
有虞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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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호
시조(始祖)[1]

(姚), 규(嬀)

유우(有虞), 우(虞)

중화(重華)[2]
부친
고수(瞽叟)
생몰 기간
음력
? ~ ?
재위 기간
? ~ ? (39년)

1. 개요
2. 이상적인 인격자로서의 모습
3. 유가의 묘사와는 다른 모습
3.1. 선양은 실제로 있었던 일인가?
3.2. 이상적인 인격자인가?
3.3. 덕으로써 나라를 다스렸는가?
3.4. 의의
4.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중국 신화에서 최초의 세습 왕조인 하나라 이전 중국을 다스렸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군주이다. 삼황오제 중 오제의 한 명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2. 이상적인 인격자로서의 모습[편집]


유가의 기록에서 순은 성천자 에게서 왕위를 선양받은 이상적인 성인군자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가정에서는 부모와 형제들이 순을 죽이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효도를 다하고 우애를 잃지 않았으며, 사회적으로는 그 뛰어난 인격으로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교화했기 때문에 명망을 얻어 요에게서 선양을 받았다는 것이다.

십팔사략》에 따르면 가정에서 순을 죽이려는 음모를 주도한 사람은 계모였다. 아버지 고수는 기록에 따라서는 어머니와 한통속이었다고도 하고, 우매해서, 혹은 시각에 장애가 있어서 그런 음모를 알아차리지 못했다고도 한다. 어느 쪽이든 순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언젠가는 계모가 순을 죽이려고 우물을 파라고 한 뒤 순이 땅을 파는 동안 그 우물을 무너뜨려 생매장하려고 했다. 그러나 순은 이를 예상하고(!) 미리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두었기 때문에 살아났다고 한다.

이런 일을 겪었는데도 순은 우물을 파라는 말에 반항하지도 않고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고 항의하지도 않았으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효도를 다했다. 또한 어머니와 함께 자기를 죽이려고 한 동생 상에게도 우애를 잃지 않았다고 한다.[3] 이에 대해 다른 사람이

"당신처럼 똑똑한 사람이 왜 그런 계모 치하에서 참고 지내느냐?"

라고 묻자 순은

"아버지께는 어머니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요가 허유에게 양위하려다 거절당한 뒤, 순의 명성을 듣고 자신의 딸 두 명을 모두 순에게 시집보냈다. 순과 요의 두 딸은 흠잡을 데 없이 원만한 부부 생활을 했으며, 요는 이를 보고 마침내 순을 후계자로 낙점하고 왕위를 선양했다고 한다. 순은 선양을 받아 왕이 된 후에도 부모 앞에서는 항상 공손하였으며 동생은 제후에 봉했다고 한다. 나중에 순의 진심을 안 부모와 이복동생은 자신들이 저질러온 짓을 반성하고 순과 화해했다.

한비자》에서도 36편인 <논란>편에서 유가의 주장을 소개하였다.

여산의 농부들은 밭고랑을 서로 침범하고 있었다. 순이 가서 경작을 하니 1년 뒤에는 밭고랑이 바르게 되었다. 황하 강변의 어부들이 낚시터를 두고 다투었는데, 순이 가서 낚시질을 하니 1년 뒤에는 손윗사람에게 양보하게 되었다. 동이(東夷)의 도공이 만든 그릇은 품질이 나빴지만, 순이 가서 그릇을 만드니 1년 후에는 그릇이 훌륭해졌다.

공자는 이러한 일에 대하여 감격해서 말했다.

"농사나 어업이나 그릇 만드는 일은 순의 본업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이 가서 작업을 한 것은 백성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다. 순은 실로 어진 사람이다. 스스로 경작을 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니 백성이 그를 따르게 되었다. 성인의 덕에 의한 교화는 바로 이런 것이다."


  • 참고로 유명한 고사인 모순이 바로 36편인 <논란>편에 나온다. 한비자의 주장은 요가 성천자였다면 당연히 나라의 법률을 통해서 기강을 잡을 수 있었을 텐데 순이 쫓아다니면서 그런 '교화'를 할 필요가 없지 않았겠느냐는 것. 다시 말해서 순이 그런 교화를 실행해야 했다는 말과 요가 성천자라는 말은 모순이라고 창과 방패의 고사까지 동원하여 설명한 것이다.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순과 같은 비범한 인격자조차도 한번 교화하는 데 1년이 걸렸는데, 문제 하나 해결에 1년씩 걸린다면 언제 나라의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겠느냐면서, 반면 평범한 군주라도 법으로 다스린다면 수많은 문제를 훨씬 짧은 시간 내에, 그것도 동시에 해결할 수 있으니 유가의 방식은 잘못되었다고 비판한다. 평범한 사람도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놓고, 비범한 인물조차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방법을 권하는 자들과 국가의 대사를 의논해서는 안 된다는 것.

《서경》에 따르면 순은 왕위에 오른 후에도 성인으로서의 교화에 중점을 두고 덕으로 나라를 다스렸다고 한다. 《서경》의 <순전>(舜典)에서 순은 무위(無爲)로 나라를 다스렸으며, 법을 적용할 때도 귀양보내는 것으로 오형[4]을 용서해주었고 형벌의 적용에는 항상 신중을 기했다고 한다.


3. 유가의 묘사와는 다른 모습[편집]


유가가 성인군자로 묘사한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전승이 단편적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위에 묘사된 순의 모습이나 선양이 사실은 유가가 왜곡한 기록이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실존 인물인지부터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로 원래 전승되었던 모습이 유가에 의해서 왜곡되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3.1. 선양은 실제로 있었던 일인가?[편집]


요순의 고사는 권력을 장악한 신하가 왕위를 넘겨받을 때 흔히 동원되는 프로파간다가 되었지만, 사실은 요순의 선양 그 자체가 원래부터 프로파간다였을 가능성이 있다. 후대의 역사서에 기술된 바와는 달리 《죽서기년》에는 요가 감금되었다는 언급이 나온다.

《史記·五帝本紀》正義 引《竹書》云,「昔堯德衰,爲舜所囚也。

<사기 오제본기> 정의에서 <죽서>를 인용하며 일렀다. '옛날에 요의 덕이 쇠하였고, 순에게 갇히게 되었다.'

又引《竹書》云「舜囚堯,復偃塞丹朱,使不與父相見也。」

또 <죽서>를 인용하며 일렀다. '순은 요를 감금하고, 다시 단주[5]

를 막아서 아버지와 서로 만날 수 없게 하였다.'

급총기년존진(汲冢紀年存眞) 오제기(五帝紀)

 
또한 《상서》에도 요의 중신들을 추방하거나 처형한 기록이 있다.

流共工于幽洲,放驩兜于崇山,竄三苗于三危,殛鯀于羽山。四罪而天下咸服。

공공을 유주에 유배시키고, 환도를 숭산으로 쫓아냈으며, 삼묘는 삼위로 축출하고, 을 우산에서 죽였다. 네 명의 죄를 처벌하자 천하가 모두 복종했다.

상서(尙書) 순전(舜典)


이들 기록은 순이 무력으로 요를 감금하고 왕위를 넘겨받았으며 요의 신하들을 숙청한 연후에야 권력을 공고하게 할 수 있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요순의 선양은 후대의 창작이거나 혹은 순 자신이 퍼뜨린 프로파간다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역사서에서의 순의 행태는, 정치적인 공작이었다는 쪽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는 이야기다.

한편 맹자 만장편 상에는 맹자의 제자인 함구봉이 맹자에게 질문한 것으로, 순 임금이 천하를 얻어 요 임금마저 굴복했다는 기록을 가져와 맹자에게 묻는 부분이 나온다.

咸丘蒙問曰: “語云: ‘盛德之士, 君不得而臣, 父不得而子. 舜南面而立, 堯帥諸侯北面而朝之, 瞽瞍亦北面而朝之. 舜見瞽瞍, 其容有蹙.’ 孔子曰: ‘於斯時也, 天下殆哉, 岌岌乎!’ 不識此語誠然乎哉?” 孟子曰: “否. 此非君子之言, 齊東野人之語也. 堯老而舜攝也. 「堯典」曰: ‘二十有八載, 放勳乃徂落, 百姓如喪考妣, 三年, 四海遏密八音’. 孔子曰: ‘天無二日, 民無二王. 舜旣爲天子矣, 又帥天下諸侯以爲堯三年喪, 是二天子矣.’”

함구몽(咸丘蒙)이 여쭈었다.

“옛말에 ‘덕이 성대한 선비는 임금도 그를 신하로 삼지 못하고, 아버지도 그를 아들로 삼지 못한다. 순이 남면하여 서니[6]

요임금은 제후를 거느리고 북면하여 조회하였으며, 고수 또한 북면하여 조회하였다. 순이 그의 아버지인 고수를 뵈니 불안한 모습이 있었다.’라고 하였는데, 공자께서 ‘이때에 천하는 위태롭고도 불안했다.’라고 하셨습니다.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 말이 정말로 그렇습니까?”

맹자께서 대답하셨다.

“아니다. 이것은 군자의 말이 아니라, 제나라 동쪽 시골내기의 말이다. 요임금이 늙으셔서 순이 섭정을 한 것이다. 「요전」에 ‘28년에 요임금이 조락(徂落)[7]

하시자 백성들이 아버지와 어머님을 초상 치르는 것처럼 3년 동안 슬퍼했고, 사해가 8음[8] 연주하길 멈추었다.’라고 했으며, 공자께서는 ‘하늘에 두 해가 없고, 백성에게 두 임금이 없다.[9] 순이 이미 천자가 되었고 또한 천하의 제후를 거느리고 요임금의 3년 상을 하였다면, 이것은 두 명의 천자가 있는 것이다.’라 하셨다.”


그리고 맹자의 답은 "그거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다."였다. 제나라 땅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고 지어낸 뜬소문일 뿐이라는 것이다. 맹자는 요 임금이 만년에 나이를 먹어 더 이상 정치를 할 수 없게 되어 순 임금이 요 임금을 대신해 정치를 돌본 것은 맞지만, 요 임금이 버젓이 살아있는데 왕(천자)으로 즉위했고 요 임금이 그에게 굴복해 신하가 되었다는 말까지는 지나친 과장이라고 보았다. [10]

3.2. 이상적인 인격자인가?[편집]


《한비자》 36편에서 언급한 내용은 유가들의 주장을 소개한 것이며, 한비자 51편인 <충효>편에서 한비자가 직접 설명하는 순의 모습은 전혀 다르다.

고수는 순의 아버지지만 순은 그를 추방했다. 상은 순의 동생이지만 순은 그를 죽였다. 아버지를 추방하고 동생을 죽였으니 어질다고 말할 수 없다. 요의 두 딸을 아내로 삼았고 요의 천하를 탈취했으니 의롭다고 말할 수 없다. 어질지도 의롭지도 않으니 밝다고 말할 수 없다.


《한비자》의 글을 보았을 때 유가의 전승과 다른 전승에서 묘사하는 순의 모습은 그야말로 전혀 딴판인데, 《죽서기년》 등 다른 고서들을 참조한다면 유가에서 언급하고 있는 순의 모습은 실제 역사와 상당히 괴리가 크다고 유추할 수 있다.

평촌에서 일하던 한낱 농민이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왕의 두 딸을 얻고 중신이 되며, 섭정왕에 오르고 천자위를 차지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순이 단순한 인격자라고 보기엔 무언가 다른 쪽의 비범함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유가가 강조한 효행도 여러 면에서 의심스럽기 그지없다. 유가의 서술과 위의 다른 서수들이 모두 참이라 가정한다면 순은 타고난 효자라기보다 효행을 통해 명성을 높이려한 야심가일 수 있다. 태평성대에 자신의 평판을 세간에 알리며 왕이 되려면 극진한 효를 보여 요 임금이 손수 추천한 징벽 제도로 오르는 쪽이 더 수월했을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고, 순의 효행도 이 관점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를 추방하고 동생을 죽였다는 서술이 있기에 효행 자체가 사실이 아닐 가능성도 매우 높다.

등용된 순은 백성들의 모든 일을 1년이 걸리더라도 손수 해결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백성들의 총애를 얻게 되었다. 나중에 요 임금은 노쇠하여 단주 이외에 가장 총애하는 순에게 모든 일을 맡겼다. 이후 《죽서기년》에 언급된 요 임금 부자의 감금을 단행하고 나서도 어리석은 단주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멀찍이 남하로 내려가 보좌만 하겠다는 섭정 8년으로 이어졌는데, 사마천이 쓴 내용은 이러했다.

순이 단주에게 양보하고 남하 남쪽으로 갔다. 제후들이 배알할 때 단주에게 가지 않고 순에게 갔다. 소송을 하는 자들도 단주에게 가지 않고 순에게 갔다. 칭송하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도 단주를 노래하지 않고 순을 노래했다. 순은 말했다. " 하늘의 뜻이다. " 그러고는 천자의 자리에 올랐다.

 
이는 왕조가 바뀔 때마다 항상 반복되는 일로, 수백 년 뒤 왕망전한을 무너뜨릴 때에도 " 하늘의 뜻이다 " 라고 말하며 비슷한 행태를 연출했는데, 말 그대로 연출된 것임이 드러났고 왕망은 이로 인해 천하의 역적 취급을 당했다. 이미 요임금 부자를 감금해놓을 만큼 전권을 거머쥔 상황에서 이러한 연출을 했을 가능성은 상당하며, 그렇다면 이상적인 인격자라고 판단을 내리기에는 부적절한 가능성을 많이 내포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바로 다음 왕인 하나라의 창업자 우 임금 시절에도 이 같은 현상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요 임금 말기부터 이어져 온 홍수 문제는 매년 끊임없는 피해를 입혔기에 국가의 모든 관리보다 가장 우선시되었으며, 순 임금이 민심을 얻으려면 치수 관리가 시급했다. 치수 관리를 하던 곤이 9년이 지나도 수습을 하지 못하자 사형에 처했으나, 별 수 없이 나라에서 치수 관리를 가장 잘하는 자신이 살해한 곤의 아들인 우를 등용했다.

우가 등용되었을 때, 홍수는 모든 대업 중 가장 위에 위치한 최악의 위기로 번져 있었고, 그 또한 순 임금이 그랬던 것처럼 위기를 해결하여 민심을 얻고, 순 임금 말년에는 순의 아들 창균을 피하는 것을 빌미로 멀찍이 물러나는 척을 하며 섭정을 시작하자, 모든 제후의 일처리가 그쪽으로 갔으며, 나중에는 고스란히 천자의 자리에 올랐다.

마치 단주를 피하는 것을 빌미로 물러나는 척을 하며 섭정을 하다가 고스란히 천자의 자리에 오른 순 임금 때와도 똑같지 않은가?

이 둘의 선양이 역사에서 신격화되었고, 요순과 우가 이상적인 인격자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해석과 역사책의 행동에서 미루어봤을 때 의심스러운 대목이 한둘은 아니다.

3.3. 덕으로써 나라를 다스렸는가?[편집]


《서경》의 <순전>(舜典)에서는 순이 처벌을 신중하게 하고 과실로 인한 죄는 용서했다면서 인의로써 나라를 다스렸음을 강조하지만, 순이 건의를 올렸기 때문에 기본적인 형벌제도 또한 생긴 듯 보인다. 오형에 대한 가장 이른 시대에 대한 기록은 《상서》 <요전>인데, 여기서 순은 고도에게 중원을 침입하는 외족에 대해 오형을 시행하여 그들을 길들이자고 건의했다. 《상서》의 신뢰도에는 물론 의문이 있지만(《서경》 문서 참조) 《상서》는 최소한 동진 시대에 나온 서적이며, 이후 중국 문화권에서는 《상서》의 이 기록을 신뢰하여 순과 우의 시대에 집권한 고도가 오형을 만든 사람이라고 보고 있다. 참고 애초에 《서경》과 《상서》는 같은 책이고, 순의 덕치와 형벌에 대한 기록 역시 같은 책 안에서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감안하면 순은 형벌을 철폐한 쪽이 아니라 만들어낸 쪽이고, 순의 덕치라는 것도 형벌의 적용을 신중하게 덜 하는 정도라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순이 원래부터 형벌이 아닌 도덕적 교화에 중점을 두고 천하를 다스렸다는 이미지였다는 것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애초에 덕으로 다스리는 것을 표방한다고 해서 실제로 덕치를 한 임금이 아닐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 외에도 야사에 따르면 순 임금이 신하들에게 우물물을 길어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11] 그러자 대부분의 신하들은 일하는 척하다가 그냥 나간 반면 한 신하는 우물물이 마르도록 깨진 독에다 물을 부었는데 우물 밑에 금덩이가 있었다. 그 신하가 금덩이를 가지고 와서 순 임금에게 바쳤더니 그것은 충성스러운 신하에게 주는 상이라고 하면서 신하에게 금덩이를 하사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3.4. 의의[편집]


사실 위에서 보듯이, 흔히 인식되는 '순'과 역사상의 실존 인물 '순'이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지는 알 수 없고 왜곡되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애초에 실존인물인지부터가 의심스럽다. 그러나 '요순시대'는 유학에서 '이상적인 사회의 모델'로 간주되었다. 유학자들도 사실 왜곡되었거나 실존인물이 아니었을 가능성을 알고 있었다. 즉 유학자들이 요순시대나 주나라를 운운하는 것은 역사상의 실존했던 특정시대로 돌아가려는 과거 지향적인 움직임이라기보다는 '이상적인 사회 모습'을 제시하고 그것을 목표로 삼은 것에 가깝다. 특히 '요가 순에게 선양한 것'은 민본주의의 바탕이 되었다. 비록 '쿠데타의 구실로 악용되었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으나, 또한 '통치자의 권력은 백성으로부터 나온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었다. 맹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1. 왕의 권력은 하늘로부터 온다.

2. 그러나 하늘의 의지는 민심을 통해서 드러난다. 즉 실질적으로는 민심이 곧 천심이 되며, 권력의 근본은 백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3. 따라서 민심이 떠난 왕은 이미 왕이 아니며, 백성들의 지지를 받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왕이다. 이는 곧 역성혁명의 당위성이 된다.

맹자는 자신의 주장을 요와 순의 사례를 통하여 설명하였다. 요가 죽자 백성들은 요의 아들이 아니라, 순을 지지하였다. 즉 백성의 지지를 받는 순이야말로, 진정한 하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2,000년 전 백성들이 하루하루 세금과 군사력을 제공하는 도구로나 취급되던 시절에, 요와 순의 사례는 '백성은 권력의 근본'이라는 혁명적 주장의 근거가 되었다. 물론 '요순의 사례는 너도나도 천명(=백성의 뜻)을 운운하며 쿠데타를 일으키는 명분이 되었다.'는 악평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너도 나도 천명 드립을 쳐야 할 만큼 '백성은 권력의 근본'이라는 사상이 보급되었으므로, 요와 순에게는 단순한 '옛날 사람', '전설 속의 사람'이 아닌 그 이상의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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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성 전씨(嬀姓 田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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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권 「관안전(管晏傳)」
63권 「노자한비전(老子韓非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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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권 「중니제자전(仲尼弟子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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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漢書卷·九十九下》:九廟:一曰黃帝太初祖廟,'''二曰帝虞始祖昭廟"',三曰陳胡王統祖穆廟,四曰齊敬王世祖昭廟,五曰濟北愍王王祖穆廟,凡五廟不墮云;六曰濟南伯王尊禰昭廟,七曰元城孺王尊禰穆廟,八曰陽平頃王戚禰昭廟,九曰新都顯王戚禰穆廟。[2] 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순은 실제로 이런 이름을 쓴 적이 없고, 후세 학자들이 순을 추숭하며 붙인 이름이다. 말 그대로 요의 덕을 거듭(重, 중) 빛나게(華, 화) 했다는 뜻이다.[3] 설화 중에는 남동생 상뿐만 아니라 여동생도 하나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 여동생은 부모와 작은오빠만큼 인성이 글러먹진 않아 순에게 어머니, 아버지가 큰오빠를 죽이려 한다고 미리 알려주었고 덕분에 순이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었다고도 한다.(출처:민음사 《중국신화전설》)[4] 五刑. 중국 형벌의 기초가 되는 다섯 가지 처벌법이다. 이는 피부에 글자를 넣는 (墨), 코를 베는 (劓), 발뒤꿈치를 베는 (剕), 거세를 하는 (宮), 목을 베는 대벽(大辟)을 의미한다.[5] 요의 아들[6] 남면은 왕으로 즉위했다는 뜻이다.[7] 천자의 죽음을 가리킨다. 고대에는 사람의 영혼은 혼과 백으로 이루어져 있어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로, 백은 땅으로 간다고 믿었고, 조(徂)는 혼의 올라감을, 락(落)은 백의 내려감을 표현한 것이다.[8] 쇠(金), 돌(石), 실(絲), 대나무(竹), 조롱박(匏), 질그릇(土), 가죽(革), 나무(木)를 말하는데 모두 악기의 재료이다. 팔음이란 악기를 가리키는 다른 단어이다.[9] 중국의 고전인 예기(禮記) 증자문(曾子問)에 나오는 구절이다. 증자가 장례 지낼 때 그리고 사당에 모실 때 상주가 두 명, 신주를 두 위 두어도 되느냐고 물었을 때 공자가 이렇게 말하며 상주도 신주도 하나만 두어야 한다고 대답한 것이다. 제 환공이 군사를 일으킬 때 마침 제사 때라서 신주를 만들어 수레에 싣고 나갔다가 돌아와서 임시로 만든 신주를 같이 사당에 봉안한 것, 위 영공이 노에 갔다가 마침 노에서 계환자의 상이 생겨 조문할 일이 있었는데 노 애공이 상주를 맡은 장례에서 위 영공은 상주인 노 애공뿐 아니라 계환자의 아들인 계강자에게까지 상주 대하듯 조문을 했다. 공자는 이 두 가지 일을 "관리가 이걸 제대로 변별을 못했다(有司弗辯也)"고 지적하면서 '하늘에는 두 해가 없고 땅에는 두 임금이 없다'(天無二日 土無二王)고 비판한 것이다.[10] 그거나 그거나 대체 무슨 차이인가 싶기도 하지만, '명분'이 무엇보다 중시되었던 고대에 왕의 권한을 대행하되 어디까지나 신하의 입장에 머무르며 왕의 지위와 직함은 거부하는 것과 그 자신이 아예 왕의 지위에 앉아 왕의 직함을 사용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는 사실 현대에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11] 판본에 따라 망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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