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신
덤프버전 :
관련 문서: 만주 종족 계보
肅愼[1]
만주·연해주 등 고대 동아시아에 살았던 퉁구스계 민족이다.[2] 고대 읍루, 말갈족, 여진족, 만주족의 조상이기도 하다.
다만 현대의 연구결과 단순하게 숙신을 만주족과 동일한 집단으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는데, 이는 만주가 한반도와 달리 사면이 열려있는 개방적인 지형으로 외부와의 인적 교류가 활발했고 시대가 지나면서 여러 유목·수렵 부족들과 혼혈화되었기 때문이다.
원래 퉁구스족들은 시베리아 바이칼 호, 예니세이 강 상류 및 스타노보이 산맥과 오호츠크 해 연안 일부에서 살면서 순록을 방목했는데, 이들은 점차 남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연해주 등으로 이동한 시기는 3,000년 전으로 추정된다. 연해주와 만주로 이주한 퉁구스인들은 순록 방목 및 유목에서 여러 가축들을 목축하거나 소규모의 농업을 하는 것으로 생업을 바꾸기 시작했다.[3] 주나라 시기에는 숙신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신앙은 샤머니즘을 믿었다. 동예나 옥저처럼 부족국가였기 때문에 이렇다 할 중심지인 수도가 없었다.
남북조시대나 수, 당 시기에 읍루·물길이라고 불렸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시대에 따라 이렇게 불렸다고 이들의 혈통이 같았는지는 논란이 어느 정도 남아있다. 어쨌든 시대가 지나면서 말갈로 호칭되었고, 그중 끝까지 살아남은 흑수말갈은 여진족이 되었으며, 다시 그중 복속되지 않고 남은 생여진들은 완안부를 중심으로 금나라 및 동진국을 세웠고, 금과 동진의 멸망 이후에도 여진족 중 다른 민족에게 동화되지 않은 여진족들은 훗날 건주여진을 중심으로 만주족이 되어 청나라를 세웠다.
한국 역사에서는 고구려, 부여와 접한 외세 국가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고구려를 침략, 약탈했다가 번번히 나중에 고구려에게 역관광을 당했다고 한다. 광개토대왕 시기에 결국 숙신은 고구려에게 토벌당하여 복속하게 된다.
다만 이후에도 한동안 과도기를 거치며 말갈인을 숙신이라 부르는 용례가 종종 등장한다. 역사적 명칭은 한순간에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본서기》에 의하면 676년 신라에서 일본으로 사신 김청평을 보냈는데, 김청평은 숙신인 7명을 일본에 데려갔다고 되어있다. 이는 나당전쟁 와중에 고구려인들이 신라로 망명하면서 고구려에 섞여살던 말갈인도 같이 남하했고 이들은 그 일부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고대 일본에는 사도시마, 니가타현 일대에 미시하세(粛填)라는 집단이 살았다고 하는데, 숙신(粛慎)과 표기가 비슷한 탓에 그 연관성에 대한 논쟁이 있다. 정말로 숙신이 동해를 건너 일본으로 갔다는 설도 있는가 하면, 사실 니브흐족 등과 관련이 있는 별개의 민족이지만 숙신이란 한자가 그냥 이방인을 뜻하는 낱말로 차용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粛填은 일반적인 훈독이나 음독으로는 "미시하세"같은 발음이 나올 수 없으므로 더욱더 정체가 아리송해진다.
1. 개요[편집]
肅愼[1]
상고한어: siwk-(d)i(n)-s.
만주·연해주 등 고대 동아시아에 살았던 퉁구스계 민족이다.[2]
다만 숙신이라고 불리는 퉁구스계들은 일부 니브흐족들과 혼혈화되어 나나이, 우데게, 만주(연해주 등 외만주 포함) 지역의 퉁구스 제족들 중 일부는 의상이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니브흐족들과 비슷하다.
다만 현대의 연구결과 단순하게 숙신을 만주족과 동일한 집단으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는데, 이는 만주가 한반도와 달리 사면이 열려있는 개방적인 지형으로 외부와의 인적 교류가 활발했고 시대가 지나면서 여러 유목·수렵 부족들과 혼혈화되었기 때문이다.
원래 퉁구스족들은 시베리아 바이칼 호, 예니세이 강 상류 및 스타노보이 산맥과 오호츠크 해 연안 일부에서 살면서 순록을 방목했는데, 이들은 점차 남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연해주 등으로 이동한 시기는 3,000년 전으로 추정된다. 연해주와 만주로 이주한 퉁구스인들은 순록 방목 및 유목에서 여러 가축들을 목축하거나 소규모의 농업을 하는 것으로 생업을 바꾸기 시작했다.[3]
물론 여전히 순록을 목축하는 퉁구스 원주민도 있었다. 여진을 뜻하는 "주르첸" 역시 "순록을 기르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남북조시대나 수, 당 시기에 읍루·물길이라고 불렸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시대에 따라 이렇게 불렸다고 이들의 혈통이 같았는지는 논란이 어느 정도 남아있다. 어쨌든 시대가 지나면서 말갈로 호칭되었고, 그중 끝까지 살아남은 흑수말갈은 여진족이 되었으며, 다시 그중 복속되지 않고 남은 생여진들은 완안부를 중심으로 금나라 및 동진국을 세웠고, 금과 동진의 멸망 이후에도 여진족 중 다른 민족에게 동화되지 않은 여진족들은 훗날 건주여진을 중심으로 만주족이 되어 청나라를 세웠다.
2. 한국사의 국가들과 관계[편집]
한국 역사에서는 고구려, 부여와 접한 외세 국가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고구려를 침략, 약탈했다가 번번히 나중에 고구려에게 역관광을 당했다고 한다. 광개토대왕 시기에 결국 숙신은 고구려에게 토벌당하여 복속하게 된다.
다만 이후에도 한동안 과도기를 거치며 말갈인을 숙신이라 부르는 용례가 종종 등장한다. 역사적 명칭은 한순간에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본서기》에 의하면 676년 신라에서 일본으로 사신 김청평을 보냈는데, 김청평은 숙신인 7명을 일본에 데려갔다고 되어있다. 이는 나당전쟁 와중에 고구려인들이 신라로 망명하면서 고구려에 섞여살던 말갈인도 같이 남하했고 이들은 그 일부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3. 미시하세(粛填)[편집]
고대 일본에는 사도시마, 니가타현 일대에 미시하세(粛填)라는 집단이 살았다고 하는데, 숙신(粛慎)과 표기가 비슷한 탓에 그 연관성에 대한 논쟁이 있다. 정말로 숙신이 동해를 건너 일본으로 갔다는 설도 있는가 하면, 사실 니브흐족 등과 관련이 있는 별개의 민족이지만 숙신이란 한자가 그냥 이방인을 뜻하는 낱말로 차용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粛填은 일반적인 훈독이나 음독으로는 "미시하세"같은 발음이 나올 수 없으므로 더욱더 정체가 아리송해진다.
4. 둘러보기[편집]
퉁구스 |
|
만주의 역사 | ||||||||||||||||||||||||||||||||||||||||||||||||||||||||||||||||||||||||||||||||||||||||||||||||||||||||||||||||||||||||||||||||||||||||||||||||||||||||||||||||||||||||||||||||||||||||||||||||||||||||||||||||||||||||
|
진서(晉書) | ||||||||||||||||||||||||||||||||||||||||||||||||||||||||||||||||||||||||||||||||||||||||||||||||||||||||
||<-2><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width=33%> 1권 「선제기(宣帝紀)」 ||<-2><width=33%> 2권 「경제문제기(景帝文帝紀)」 ||<-2><width=33%> 3권 「무제기(武帝紀)」 || ||<-2><rowbgcolor=#fff,#191919> 사마의 ||<-2> 사마사 · 사마소(昭) ||<-2> 사마염 || ||<-2> 4권 「혜제기(惠帝紀)」 ||<-2> 5권 「회제민제기(懷帝愍帝紀)」 ||<-2> 6권 「원제명제기(元帝明帝紀)」 || ||<-2><rowbgcolor=#fff,#191919> 사마충(衷) ||<-2> 사마치 · 사마업 ||<-2> 사마예 · 사마소(紹) || ||<-3><width=50%> 7권 「성제강제기(成帝康帝紀)」 ||<-3><width=50%> 8권 「목제애재폐제기(穆帝哀帝廢帝紀)」 || ||<-3><rowbgcolor=#fff,#191919> 사마연(衍) · 사마악 ||<-3> 사마담 · 사마비 · 사마혁 || ||<-3> 9권 「간문제효무제기(簡文帝孝武帝紀)」 ||<-3> 10권 「안제공제기(安帝恭帝紀)」 || ||<-3><rowbgcolor=#fff,#191919> 사마욱 · 사마요 ||<-3> 사마덕종 · 사마덕문 || ||<-6><width=1000> || ※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4 11:27:54에 나무위키 숙신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상고한어: siwk-(d)i(n)-s.[2] 다만 숙신이라고 불리는 퉁구스계들은 일부 니브흐족들과 혼혈화되어 나나이, 우데게, 만주(연해주 등 외만주 포함) 지역의 퉁구스 제족들 중 일부는 의상이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니브흐족들과 비슷하다.[3] 물론 여전히 순록을 목축하는 퉁구스 원주민도 있었다. 여진을 뜻하는 "주르첸" 역시 "순록을 기르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