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홍래

덤프버전 :


파일:송홍래.jpg}}}
자 / 호
순익(順翊) / 회천(晦川)
본관
야성 송씨[1]
출생
1876년 5월 19일
경상도 성주목 초전방 문덕리
(현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문덕리 송천마을)
사망
1948년 2월 7일
묘소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어산리 어은마을
상훈
건국포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대한민국독립유공자.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1876년 5월 19일 경상도 성주목 초전방 문덕리(현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문덕리 송천마을)에서 아버지 송인주(宋寅鑄)와 어머니 죽산 박씨(竹山 朴氏) 박병순(朴秉淳)의 딸 사이의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족친 송준필·송회근·송규선·송인집 등과 성주 백세각(星州 百世閣)[2]에 모여 국내외의 정세와 대한독립운동의 상황을 협의한 뒤, 파리 강화 회의파리장서를 제출하고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 뒤 함께 서명했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인 송회근이 그해 4월 12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자, 그 또한 다른 족친들과 함께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 미결수로 구금되었으며, 1919년 7월 2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곧 출옥하였다.

출옥 후 고향에 충신당(忠信堂)을 세워 후진을 양성하다가, 1948년 2월 7일 별세하였다.

199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4 09:08:44에 나무위키 송홍래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부장공파(송천리)-만회정파 30세 홍(鴻) 항렬.[2] 초전면 고산리 야성 송씨 문중의 입향조인 충숙공 송희규(宋希奎)가 1551년 건립한 누각이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63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