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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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호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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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백상예술대상로고(1).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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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제17회
(1981년)


제18회
(1982년)


제19회
(1983년)

신구
(옛날 나 어릴 적에)
전운
(종점)

송재호
(새댁, 탈출)
이정길
(야상곡)


이영후
(거부실록)


파일:한국방송대상 심볼.svg 한국방송대상
탤런트상
이낙훈
(1979년)

송재호
(1980년)

최불암
이경진
(1981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수훈자
파일:문화보관.jpg
연도
2021년
이름
송재호 (宋在浩)
분야
배우
보관문화훈장(3등급)



송재호
宋在浩|Song Jae-ho


파일:송재호 배우.jpg

본명
송재언 (宋在彦)
본관
은진 송씨
출생
1937년 3월 10일
평안남도 평양부 (現 평양시)
사망
2020년 11월 7일 (향년 83세)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신체
165cm, 65kg
가족
아버지, 어머니, 배우자, 슬하 4남 1녀
학력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 / 학사)
종교
개신교[1]
데뷔
1959년 부산 KBS 성우
1967년 영화 '싸리골의 신화'

1. 개요
2. 생애
2.1. 사망
3. 출연 작품



1. 개요[편집]


대한민국성우 출신 배우.


2. 생애[편집]


1937년 3월 10일 평안남도 평양부(현 평양시)에서 태어났다. 한동안 39년 또는 42년생으로 잘못 알려졌었으며, 네이버에도 2020년 현재까지도 나이가 잘못 기재되어 있다. 본인이 인터뷰에서 37년생이라고 밝혔으며 해운대에서 같이 출연한 김지영(1938년생)보다 1살 더 많다. 동갑내기 유명 배우로는 신성일, 김영옥, 모건 프리먼, 안소니 홉킨스, 더스틴 호프먼, 잭 니콜슨 등이 동갑이다.

그리고 6.25 전쟁 때 월남하여 경상남도 부산시로 이주했다.

원래는 배우가 아닌 성우 출신으로 1959년 부산 KBS에서 성우로 데뷔했으며 이후 본격적으로 배우로 활동하였다.

사투리 연기에 능하여 현지인도 고향 사람으로 착각할 만큼 자연스러운 사투리를 구사하였다. 평소엔 완벽한 표준어를 구사하고, 또 부산에서 살았던지라 부산 사투리(동남 방언)를 어색하지 않게 잘 구사한다. 살인의 추억에서 맡았던 경찰 반장역은 원래 표준어를 구사하는 캐릭터였으나, 좀 더 인상적인 이미지를 위해 송재호가 봉준호에게 제의해 부산 사투리로 바꿨다고 한다.

대구경북 사투리도 잘 구사하였는데, 경남 사투리와 경북 사투리의 차이를 제대로 알고 구사하여 한동안은 고향이 대구인 것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또한 고향이 평양이라 평양 사투리(서북 방언)도 아주 자연스럽게 구사한다. 영화 용의자에서 이북 출신 기업 회장 박건호 역으로 등장하는데 여기서 보인 사투리 연기는 실제 평양 말이라고 탈북민도 인정할 정도다.

심지어 사극 톤에도 능한데, 영화 무사에 출연해 극히 적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무게감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이후 영화배우로도 성공하여 1975년 영자의 전성시대 의 주인공 창수 역을 시작으로 1981년 장미희와 함께한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까지 스크린의 주연급 배우로 활약했다.

늦은 나이에 데뷔해 나이가 꽤 많았음에도 어려보이는 외모 덕에 많은 영화 주연을 맡으며 1970년대 중후반엔 청춘스타로 큰 인기를 누렸다. 30대 후반 청춘스타

의외의 이력으로 연기자 생활과 사격선수 생활을 병행했다. 1985년 봉황기 사격대회에서 단체전 금메달을 땄다. 국제사격연맹 심판 자격증이 있으며 1988 서울 올림픽 때 클레이 부문 심판으로 참가했다. '피스톨 박' 박종규 전 경호실장과 의형제를 맺은 인연으로 사격에 취미를 갖게되었다고 한다. 박종규와는 인도네시아에서 진행된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처음 만나 인연을 맺게 됐다고 한다. 대한사격연맹 이사로도 활동한 바 있다.

개신교 장로회 신자이며 장로의 직책을 맡고 있다. 서울시 강동구 성내동에 있는 오륜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김은호 목사)의 장로이다.

4남 1녀의 자녀가 있었는데, 2000년 막내아들이 눈길에 차가 미끄러지는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그 충격으로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렸던 적이 있다. 장남 송영춘은 대학생 시절, 아버지가 주연으로 출연했던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1975년)의 속편(1982년) 주인공으로 배우 데뷔를 한 적 있다. 부자가 한 작품의 전편과 후편 주연을 맡은 이례적인 케이스였으나 이후 배우를 그만두고 용인아멘교회 목사로 활동했다. 예장합동 신자인 아버지와 달리 송영춘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소속이다.

보증을 잘못 섰다가 수십 년을 고생하고 늘그막에야 다 갚았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호실장 박종규와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박정희를 매우 존경했다. 10.26 사건 이후 박통이 나온 우표 앞에 향불을 피워놓고 홀로 추모할 정도였으며, 제18대 대통령 선거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대표적 연예인 중 한 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과 사는 확실해서, 10.26 사건을 블랙코미디로 풍자한 그때 그 사람들의 각하 역을 맡았다.[2] 장고 끝에 캐스팅 제의를 받아들였을 때는 자신은 키 말고는 말투와 생김새에서 박정희를 닮지 않았는데 괜찮겠냐고 임상수 감독에게 물어봤다고 한다. 또한 또한 사생활, 정치, 친일 면에서 왜곡이 있냐고 물어봤으며 임상수 감독 역시 '각하' 연기를 우아하면서도 나이스하게 보여달라, 마치 그래서 박정희가 천상의 인물이었던 것처럼 주문했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 열연해 영화의 흥행실패와는 별개로 영화평론가, 시네필들의 극찬을 받았다.

2.1. 사망[편집]


2020년 11월 7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1년 간 앓던 지병으로 투병 생활을 하던 중 상태가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다. 따스한 이미지의 배우였기에 사망 소식이 알려지고 난 뒤 많은 이들이 슬퍼하였다.

2020 KBS 연기대상에서 특별공로상을 수상하였다. 2021 대한민국 대중문화 예술상에서 보관문화 훈장을 추서 받았다.

3. 출연 작품[편집]



[1] 집안은 불경소리가 들릴 정도로 불교 집안이었는데, 꿈을 통해서 하나님이 문을 두드리시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꿈을 통해서 예수님의 그리스도의 기적의 체험을 해봤다고 하고, 금식원에 들어가서 자발적으로 술과 담배를 끊었다는 놀라운 일을 했다. 여려 교회를 섬기다가 오륜교회의 장로님이 되셨다고 한다.[2] 그런데 대다수 박정희 지지자들은 그의 여성편력과 친일 행적을 알고 있어도 묵인한다. 육영수 여사가 없으니 여자가 그리워서 그랬다던가, 친일 행적은 그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다며 합리화한다.[3] 특별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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