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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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1년 개벽에서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설문한 10개 부문별 위인의 선정자 및 차점자 명단이다.
사상
정치
군사
문학
미술
이황
이이
이순신
최치원
솔거
-
을파소
을지문덕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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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과학
산업
교육
사회개선
최제우
서경덕
문익점
최충
유길준
원효
정약용
흘간(屹干)
-
-
※ 응답수 100명 미만의 차점자는 공개하지 않음.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삼국사기(三國史紀)

[ 본기(本紀) ]
1권 「신라 1권 (新羅 一)」
2권 「신라 2권 (新羅 二)」
박혁거세 · 박남해 · 박유리 · 석탈해 · 박파사 · 박지마 · 박일성
박아달라 · 석벌휴 · 석내해 · 석조분 · 석첨해 · 김미추 · 석유례 · 석기림 · 석흘해
3권 「신라 3권 (新羅 三)」
4권 「신라 4권 (新羅 四)」
5권 「신라 5권 (新羅 五)」
김내물 · 김실성 · 김눌지 · 김자비 · 김소지
김지대로 · 김원종 · 김삼맥종 · 김사륜 · 김백정
김덕만 · 김승만 · 김춘추
6-7권 「신라 6-7권 (新羅 六-七)」
8권 「신라 8권 (新羅 八)」
9권 「신라 9권 (新羅 九)」
김법민
김정명 · 김이홍 · 김융기
김승경 · 김헌영 · 김건영 · 김양상
10권 「신라 10권 (新羅 十)」
11권 「신라 11권 (新羅 十一)」
김경신 · 김준옹 · 김청명 · 김언승 · 김수종 · 김제융 · 김명 · 김우징
김경응 · 김의정 · 김응렴 · 김정 · 김황 · 김만
12권 「신라 12권 (新羅 十二)」
13권 「고구려 1권 (高句麗 一)」
14권 「고구려 2권 (高句麗 二)」
김요 · 박경휘 · 박승영 · 박위응 · 김부
고주몽 · 고유리
고무휼 · 고색주 · 고해우
15권 「고구려 3권 (高句麗 三)」
16권 「고구려 4권 (高句麗 四)」
17권 「고구려 5권 (高句麗 五)」
고궁 · 고수성
고백고 · 고남무 · 고연우
고우위거 · 고연불 · 고약로 · 고상부 · 고을불
18권 「고구려 6권 (高句麗 六)」
19권 「고구려 7권 (高句麗 七)」
20권 「고구려 8권 (高句麗 八)」
고사유 · 고구부 · 고이련 · 고담덕 · 고거련
고나운 · 고흥안 · 고보연 · 고평성 · 고양성
고원 · 고건무
21-22권 「고구려 9-10권 (高句麗 九-十)」
23권 「백제 1권 (百濟 一)」
고장
부여온조 · 부여다루 · 부여기루 · 부여개루 · 부여초고
24권 「백제 2권 (百濟 二)」
부여구수 · 부여사반 · 부여고이 · 부여책계 · 부여분서 · 부여비류 · 부여계 · 부여구 · 부여수 · 부여침류
25권 「백제 3권 (百濟 三)」
부여진사 · 부여아신 · 부여전지 · 부여구이신 · 부여비유 · 부여경사
26권 「백제 4권 (百濟 四)」
27권 「백제 5권 (百濟 五)」
28권 「백제 6권 (百濟 六)」
부여문주 · 부여삼근 · 부여모대 · 부여사마 · 부여명농
부여창 · 부여계 · 부여선 · 부여장
부여의자
* 29~31권까지 연표
* 32~40권까지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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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41-43권 「열전 1-3권」
44권 「열전 4권」
김유신 ,김원술 · 김윤중 · 김윤문 · 김암,
을지문덕 · 거칠부 · 거도 · 이사부 · 김인문 ,김양도, · 김양 ,김흔, · 흑치상지 · 장보고 · 정년 · 사다함
45권 「열전 5권」
46권 「열전 6권」
을파소 · 김후직 · 녹진 · 밀우 · 유유 · 명림답부 · 석우로 · 박제상 · 귀산 · 온달
강수 · 최치원 · 설총 · 최승우 · 최원위 · 김대문
47권 「열전 7권」
해론 · 소나 · 취도 · 눌최 · 설계두 · 김영윤 · 관창 · 김흠운 · 열기 · 비녕자 · 죽죽 · 필부 · 계백
48권 「열전 8권」
향덕 · 성각 · 실혜 · 물계자 · 백결선생 · 검군 · 김생 · 솔거 · 지은 · 설씨 · 도미 · 필부
49권 「열전 9권」
50권 「열전 10권」
창조리 · 연개소문
궁예 · 견훤





1. 개요
2. 상세
3. 여담


1. 개요[편집]


率居 (생몰년대 미상)

신라시대의 화가로, 삼국사기 열전에 적혀 있다. 언제 태어나고 죽었는지는 기록에 없으므로 조상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미천한 출신이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현재 한국사 기록에 남은 화가들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사람.

2. 상세[편집]


그림 실력이 뛰어나 황룡사 벽에 그린 나무 그림이 너무 진짜 같아 새들이 날아가다가 진짜인 것으로 착각해서 앉아서 쉬고 가려다가 부딪힌 이야기가 있다. 그 이후 벽의 소나무 그림의 색상이 바래졌는데도 새들은 계속 부딪혔다. 그러다 어떤 승려가 다시 색을 칠했는데, 그 이후로는 새들이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 나무 그림은 아쉽게도 현존하지 않는다.

조선시대의 역사서 동국통감에는 진흥왕 27년(566)에 황룡사가 완성되자 솔거라는 자가 벽에 그림을 그렸다는 내용이 있으므로 진흥왕 시대의 사람으로 보인다.[1]

역사의 기록만으로 보면 솔거는 한참 뒤 서양에서 유행할 극사실주의 화풍을 스스로의 재능으로 터득한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기록도 없는 미천한 출신이라 따로 전문적인 미술 교육은 받지 못했거나 그에 준하는 수준이었을 것이니까.

사실 새들이 그림을 실제로 착각해 날아오다 부딪히는 이야기는 과장이 아니라 충분히 현실성이 있는 이야기이다. 당장 유튜브 등에서 동물들이 사진이나 TV의 영상을 보고서 진짜라고 착각하여 빠르게 움직이다 부딪히거나 하는 장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새들은 그림이나 유리창에 머리를 들이받아 스턴 상태에 걸려 날지 못하고 멍하게 떨어지는 일도 도시에서 생각보다 흔하다.[2] 새들의 판단력은 종마다 다르긴 하지만 마냥 좋지는 않아서, 다른 예를 들면 농촌에서 허수아비를 괜히 세워놓는 게 아니다.


3. 여담[편집]


  • 먼 훗날 조선신사임당의 이야기 중에서도 솔거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는데, 신사임당이 유년 시절 그림을 그렸는데, 그림은 꽈리나무에 앉은 메뚜기 그림이었다. 다 그리고 마루에 놨는데, 너무 잘 그린 나머지 그 집에서 기르던 이 그 메뚜기를 진짜 메뚜기로 착각하고 마구 쪼아서 망쳐버린 이야기이다.

  • 소설가 조정래의 작품 중에서는 '어떤 솔거의 죽음'이라는 제목이 붙은 작품이 있는데, 일단 주인공은 화가가 맞긴 하지만 이름은 딱히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화가를 상징하는 대명사 격으로 '솔거'를 제목으로 차용한 것 같다.

  • 90년대 한 평면TV 광고에서 이 일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듯한 장면이 나온다. TV 화면 속 하도 영상이 생생하여 동물이 그것에 접근하다 부딪히고 마는 내용.

  • 이후 세월이 너무 오래 되어서 색이 바래지자 어느 승려가 색을 덧칠한 이후로 더 이상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옛날에도 비전공자의 부적절한 방식의 복원으로 괜한 예술작품을 망친 사례는 꽤 있었던 듯 하다. 다만 천년 전과 지금의 미적 감각을 똑같이 놓고 보기는 어려우니 모를 일이다.

  • 한국의 민족종교 대종교에서 사용하는 단군의 진영(초상화)은 신라의 솔거가 그렸던 것을 입수해 모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4 06:52:50에 나무위키 솔거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엄밀하게는 그가 어느 시대 사람이었다고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기록은 없다. 동국통감은 어떤 사건이 일어난 정확한 연대를 모를 경우에는 그냥 그 사건이 일어난 왕대 마지막 재위년에 써붙여놓는 경우도 많았다. 또 삼국사기 솔거열전에서는 황룡사의 노송도 말고도 분황사관음보살상과 진주 단속사의 유마거사상도 그의 작품이라고 했는데, 두 절은 모두 진흥왕 사후 백 년, 2백 년이 지난 후대에 세워진 절이다. 물론 담징의 사례에서 보듯 분황사나 단속사 쪽이 후대에 와서 솔거의 이름을 가탁해서 지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2] 이를 방지하기 위해 벽이나 유리창에 독수리 등 맹금류 스티커를 붙여놓아 새들이 다가오지 않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효과는 전혀 없다는게 팩트.황조롱이 문서 2번문단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