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용녀

덤프버전 :


1. 개요
1.1. 호칭
1.2. 성격
2. 소용녀의 미모
3. 소용녀의 영상화
4. <신조협려>의 소용녀
4.1. 양과의 스승이 되다
4.2. 양과 곁을 떠나다
4.3. 영웅대연
4.4. 절정곡
4.5. 양양성
4.6. 고묘에서 중독당하다
4.7. 다시 절정곡으로 가다
4.8. 16년 후
4.9. 결말
5. 소용녀의 무공



1. 개요[편집]


파일:attachment/SoYong-YangG.jpg
소용녀와 양과. 대만에서 나온 신조협려 게임판 일러스트.[1]
小龍女

신조협려히로인.

아기 때 전진교의 본산에 버려졌다. 도관에서 아기를 기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출가한 자들은 자비를 베푸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모른 척할 수가 없어서 당황하고 있었다. 그때 고묘파의 2대 사부가 데려다가 키우게 된다.

거둬 키웠기 때문에 버려져서 본명은 알 수 없고, 그저 성이 '용' 씨라는 것만 알려져 있다.(이름 자체를 짓기도 전에 버린 것일 수도 있다). 소용녀는 이름이 아니라 작은 용녀, 즉 용씨성을 가진 어린 여자라는 의미다.[2] 소용녀의 정확한 출생 내력은 알기 어렵지만, 과거 문학작품이나 전설 등을 보면 절이나 산중에 버려진 아이의 경우에는 부모가 원수의 표적이 되어 아이만이라도 무사하게 크기 위해 갖다두거나 불의로 나온 사생아인 경우 등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녀는 무언가 비극적인 출생배경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3]

18세가 될 때까지 고묘파의 동굴 안에서 손노파와 중간에 쫓겨난 사저 이막수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세상 물정을 모른다. 인간관계의 예절이나 무림의 관례도 잘 몰라서 문제를 일으킨 적이 많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고묘파 전래의 심오한 무학을 기초부터 충실하게 익힌 데다가[4], 총기도 있어서 무공을 빠르게 익히고 사리 판단도 좋은 편이다. 금을 타고, 서예를 하고, 의복을 짓는 등 당시 사대부 여성의 기본적인 소양도 갖추고 있다.[5] 그 밖에도 고묘파 대대로 내려오는 기술인 양봉養蜂에 뛰어나서, 종류와 관계 없이 일단 꿀벌 몇 마리만 있으면 곧바로 길들여서 대량의 벌들을 모을 수 있다. 이쪽에 워낙 정통해서 무공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주백통도 소용녀에게 양봉을 배워 백화곡에서 영고와 살림을 차렸다. 그래서인지 독자들 사이에서 소용녀는 무공이 없이 양봉만 가지고 의식주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기도 한다.[6]

고묘파의 무공을 연마하면서 희로애락의 감정을 철저하게 절제하도록 명령받았기 때문에, 차갑고 냉정한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양과에겐 조금 엄한 스승이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핍박만 받으면서 자라온 양과는 단지 소용녀가 자신에게 진심으로 잘해준다는 것만으로 그녀를 좋아하게 된다. 소용녀는 처음에는 그를 냉대했으나, 점점 그의 따스한 인간미에 끌리게 되었고 그리고 어느 틈에 양과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만다.[7]

1.1. 호칭[편집]


특이하게도 양과는 소용녀를 사부라고 부르지 않고, 고고(姑姑)라고 부르는데, 이는 옛날 중국어로 고모라는 뜻이지만 진짜 고모를 부를 때 이외에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 여성을 친근감 있게 부를 때 쓰는 말이다. 진짜 고모였으면 시대를 앞서간 근친물 처음에 만났을 때는 양과는 14살이었고[8] 소용녀는 18살[9] 정도로 보이고 더 차이가 날 수도 있어 최소 4-5살 차이기에 누나라고 불러도 되겠지만 소용녀는 고묘파 장문이고 양과에게 있어서 스승이기 때문에 양과는 소용녀를 사부님이라고 불러야 했다. 그러나 양과는 전진교에 이미 사부가 있는 상태였으나 사부에게 온갖 괴롭힘을 받고 자라서 사부라는 단어를 싫어하기 때문에 소용녀를 고모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한 이유로 고려원 번역판에서는 이것을 "아가씨"라고 의역했는데 분위기를 살리는 좋은 번역으로 평가받으며 어비스 인터렉티브에서 유통한 신조협려 게임 한글판 번역에서도 그대로 차용했다. 평이 나쁜 김영사판에선 고모와 연애하는 것이 미풍양속을 해친다고 생각한건지 "선자(仙子)"라는 이도저도 아닌 명칭으로 번역했다. 쌍팔년도에 나온 고려원판보다 퇴보한 번역으로 하필 소용녀의 사저인 이막수의 악독한 행적에 따른 별칭인 적련선자와 비슷하다.

1.2. 성격[편집]


기본적으론 차갑고 냉정한 성격이지만, 양과에게 연정을 느낀 이후부터는 오히려 극단적으로 정열적인 캐릭터가 되어 버렸다. 양과에 대한 애정만이 그녀가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이고, 양과가 조금이라도 괴로워하면 보는 이가 안타까울 정도로 슬퍼한다. 다시 말해 양과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일에는 온 힘을 쏟지만, 그 외의 일에는 일체 '그래서 어쩌라고?' 식의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 조금 아이러니한 전개가 아닐 수 없지만, 납득이 될 수 있는데 소용녀는 어렸을 때부터 스승이나 사저인 이막수, 손노파 등 세 명 하고만 대화를 나누어왔고, 익힌 무공의 특성도 인간의 여러 감정을 통제해야만 하는지라 감정을 인위적으로 억제했다가 정인을 만나게 되어 성격이 바뀐 것은 그다지 이상할 것은 없다. 일체의 사회통념과 예규에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양과에게만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하는 모습은 도입부에 등장한 구양봉과 여러모로 비슷하다. 요컨대 구양봉이 조실부모한 양과에게 있어 아버지의 역할을 맡았다면, 소용녀는 반대로 어머니의 역할을 맡은 셈이다. 소용녀가 자신이 죽게 되자 양과와 함께 자진하려는 대목을 보면 그녀에게 있어 양과가 어떤 존재인지 어렴풋이 눈치챌 수 있다.[10]

이렇게 인간같지 않은 무감정에서 정을 깨닫고 열렬한 사랑을 하게되는 신비스러운 여인 소용녀는 무협문학 사상 손꼽힐 정도로 엄청난 로맨스를 자아낸다. 특히 소용녀가 양과를 부를 때마다 하는 "과아야"는 수많은 독자들의 가슴을 뛰게 한 명대사이기도 하다. 걸작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메텔테츠로(철이)를 부를 때 이상의 아련함마저 느끼게 한다.[11] 말 그대로 남성들의 연상녀에 대한 환상을 집대성한 여성이라 할 수 있다.

어릴 적부터 고묘에서만 살아온 탓에 속세를 떠나 조용한 걸 좋아하는 히키코모리 성격이라, 떠들썩한 걸 좋아하고 방랑벽이 있는 양과와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이로 인한 엇갈림도 여러 번 있었다.[12] 하지만 결국 두 사람 다 사랑으로 극복하고 16년 후 재회한 뒤에 고묘에 은거하여 여생을 마친다.


2. 소용녀의 미모[편집]


말이 필요없다. 고금제일 절세미녀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그녀의 티 없이 순수한 성품과 더불어 무협 소설사상 전체를 통틀어도 가장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소용녀의 외모는 홍루몽임대옥처럼 아주 정확하게 묘사가 된 것은 아니지만 그 분위기만으로도 절세가인이라는 것을 독자로 하여금 느끼게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13] 인간세상의 기준을 넘어 이미 선녀의 경지에 이른 미모의 소유자이다. 양과가 그녀를 처음 대했을 때 눈이 부시다 못해 한기가 느껴졌다는 표현으로 미루어 고대로부터 전해지던 선녀의 묘사와 정확히 일치한다.

중, 고등학교 때 영웅문 및 천룡팔부를 본 아이들 가운데 왕어언이 예쁘냐 소용녀가 예쁘냐로 많은 낚시가 일어난 바 있으며[14] 많은 사람들에게서 이상적인 여주인공으로 꼽히고 있다(...) 김용 소설에서 가장 좋아하는 여 캐릭터를 꼽으라면 거의 수위를 다툴 듯하다. 그야말로 현실에 존재할 수 없을 '선녀'의 미모라고 보면 된다. 그녀가 살던 때에 천하절색으로 손꼽히던 황용이 있었지만, 그 무렵의 황용은 나이를 먹어 다소 퇴색된 감이 있다고 생각하면[15] 신조협려 세계에서 독보적인 미녀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문인들도 소용녀를 가리켜 경국지색이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부분에서 사서에 나오는 절세미인의 용모를 방불케한다. 주백통도 "그녀 정도 외모면 황후라도 될수 있을텐데!"라고 절찬한다.

원작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으로는 따뜻함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서늘한 느낌을 주며, 눈썹과 눈매가 조금 날카롭다고 한다. 요즈음 말을 쓰면 냉미녀에 가까운 인상이다. 아마 감정을 제어함으로써 공력을 발하는 고묘파 무학의 특징, 마냥 순한 것이 아니라 감정이 격하면 상대가 선인이든 악인이든 물불을 안 가리는 독기 어린 면모를 생각하면 아주 적절한 외양이라고 생각된다. 양과의 표현에 따르면 "살짝 찡그릴 때"가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인다고 한다. 어딘지 전국시대의 절세미녀였던 서시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런 소용녀도 양과 앞에서는 화사하게 웃고 따뜻하게 대해주고 감정표현이 많았다고 자주 묘사되므로 남들 앞에서만 차가웠을 뿐이고 고묘파 무학에서 드러나는 감정의 제어도 양과 앞에서는 하지 않았다.


3. 소용녀의 영상화[편집]


김용이 직접 언급한 자기 소설 내에서 제일 예쁜 여자 4명인 황용(사조영웅전), 소용녀(신조협려), 왕어언(천룡팔부), 향향공주(서검은구록) 중 하나.[16] 그 때문인지 신조협려 드라마가 제작될 때마다 당대 최고의 미녀 배우들이 소용녀 배역을 맡기로 유명함과 동시에 그 배우들의 '한계'를 증명하는 독이 든 성배가 되기도 한다.[17] 당대 최고 여배우들도 한없이 작게 만드는 소용녀의 미모. 실제로 미모에 나름대로 자신있는 여배우들도 신조협려를 영상화할 때 소용녀 배역에 대해서는 적잖은 부담을 느껴 고사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곤 했다. 역으로 소용녀 배역을 맡아 잘 소화했다는 것은 여배우로서는 자랑스러운 커리어가 되기도 한다.[18]

파일:external/ss.textcube.com/XUBtaJSioO.jpg
파일:external/ss.textcube.com/Xd782owHqr.jpg
파일:external/ss.textcube.com/XH2Y5NxVuO.jpg

특히 2006년도 신조협려에서는 이미 천룡팔부에서 왕어언을 연기한 바가 있는 유역비가 맡아 지금까지 영상화된 모든 소용녀 중 최고의 미모를 보여준다.[19] 지금도 원작가 김용의 의견과는 별개로 대중들에게 원작의 소용녀와 가장 근접한 미모라고 평가되고 있다.[20] 다만 유역비가 모든 소용녀 중 최고의 미모를 보여주고 대중들은 원작의 소용녀와 가장 근접한 미모라고 평가하지만 원작가인 김용은 유역비의 소용녀를 가장 예쁘다고 했지만 제작된 모든 신조협려 드라마를 통틀어 소용녀라는 전반적인 인물의 재현이라는 점에서 범문방이 탁월하다고 평가했다.[21]

유역비의 경우에는 아예 작품의 포커스를 소용녀 중심으로 구성하여, 소용녀가 양과를 찾아 대승관으로 향하는 장면이나 그녀가 공손지에게 구해져서 절정곡에 들어오는 장면 등, 원작에서 비중도 없는 부분까지 만들어서 꾸역꾸역 집어넣는 등 소용녀의 출연 비중을 높였다. 사실 김용 노사는 유역비가 2003년판 천룡팔부에 왕어언을 맡았을 때 "역비 소저, 당신이 왕어언을 연기함으로써 비로소 독자들은 알게 될 것입니다. 김용이 사람들을 속이지 않았다고."라는 축사를 써주며, 신조협려 책을 보내 소용녀를 꼭 연기해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하기도 했을 정도로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파일:attachment/소용녀/soyong.jpg

영화, 드라마에서 소용녀 역을 맡은 배우들. 참고로 1982년 쇼브라더스에서 제작한 신조협려 영화에는 소용녀의 비중이 없다(...).

위 왼쪽부터 1960년 홍콩 영화의 남홍, 1976년 홍콩 CTV판의 이통명, 1983년 홍콩 영화 양과여소용녀(楊過與小龍女)[22]의 옹정정, 1983년 홍콩 TVB판의 진옥련, 1982년 대만산 영화 신조영웅(神鵰英雄)[23]의 양균균.

아래 왼쪽부터 1984년 대만 CTV의 반영자, 1995년 홍콩 TVB판의 이약동[24], 1998년 대만 TTV판의 오천련, 1998년 싱가포르 TCS판 범문방, 2005년 중국 CCTV판 유역비. 고금을 통틀어 최고의 미모라 꼽히는 유역비의 소용녀를 제외하면, 놀라운 연기력을 보여준 95년의 이약동의 소용녀가 높게 평가받고 있다. 범문방도 청초하고 가녀리게 보이지만 일견 차갑게 보이는 외모로 유역비를 제치고 원작에 가장 근접한 미모라는 좋은 평가를 김용에게서 받았다. 이약동은 유역비가 인터뷰에서 정말 예쁜데다가 훌륭한 연기를 했다고 칭찬하기도 했다.

파일:attachment/소용녀/2014soyong.jpg

그런 한편 2014년 신조협려에서는 배우 천옌시가 배역을 맡았는데, 놀라운 외모로 팬들을 충격에 빠트리고 있다(...) 배우 당사자도 이런 논란을 알고 있어서 연기력으로 대답하겠다고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다고. 사실 진연희는 청순하고 귀여운 외모에 연기 또한 능숙하여 대만에서 가장 사랑받는 여배우이다. 그러나 유독 볼이 커 보이는 저 사진이 워낙 유명하게 퍼지는 바람에...

파일:소용녀2014_1.jpg
파일:소용녀2014_2.jpg

사실 저 짤방급으로 잘못 나온 사진이 퍼지면서 절세미녀인 소용녀가 저럴 리 없다면서 논란이 된 거지, 실제 작중 모습이나 잘 나온 사진들을 보면 소용녀라는 캐릭터 정체성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심각한 외모(...)는 아니다. 하지만 역대 신조협려 드라마에서 소용녀 역을 맡는 배우는 대대로 한 미모 하기로 유명한 배우들로 유명했고, 이번작 소용녀 역의 천옌시는 일반인들이 고전 사극에 떠올리는 그런 고아하고 신비로운 미인상과는 조금 달라서 그런 말들이 나오는 듯. 문제는 2014년 드라마판에선 이막수 역의 장신위가 엄청난 존재감과 미모를 과시하면서 차라리 두 배우를 바꾸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심지어 윤지평이 불쌍하다고 드립을 치는 이들도 있다. 사실 장형여의 경우에는 2013년 뇌수청[25] 판 천룡팔부에서 마부인 강민을 맡아 주역 여배우들의 미모를 찍어눌렀던 전적이 있을 정도로 중국에서 가장 섹시하고 아름다운 여배우로 꼽히던 인물이다. 다만, 장형여는 특유의 날카롭고 요염한 인상 때문에 소용녀를 맡기에는 다소 안 어울리는 비쥬얼이기는 했다. 드라마를 자세히 본 이들은 장형여보다는 정영을 맡았던 조한앵자가 소용녀를 맡았으면 굉장히 어울렸을 것이라 평하기도 했다.

진효-진연희 커플은 실제 부부가 됐다. 사실 그 전에 1998년 싱가폴판 신조협려에서 범문방과 이명순이 부부가 된 적도 있다.[26] 그만큼 남녀가 합을 맞추며 정을 만들어가기 매우 좋은 낭만적인 작품이라는 반증이다.

2018년 버전에서는 모효혜라는 신인 배우가 소용녀 역을 맡았는데... 배우의 비주얼은 둘째 치고 관련 일러스트에서 코가 엄청 크게 나와서 문제가 됐다. 오죽하면 진연희 버전이 차라리 나았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

쿵푸허슬에서는 활사인묘가 아닌 돼지촌에서 양과와 함께 은둔하는 것으로 나왔고, 무공과 경공 실력만은 여전하여, 수많은 무협 팬들의 가슴을 울렸다. 하지만 상상하던 것과는 달리, 여러 가지로 후덕한 아주머니로 나와서 수많은 무협 팬들의 신비감을 깨버렸다.(물론 패러디된 인물이다.) 애초에 소용녀가 사자후를 쓸 리가 없잖아.

신조협려 웹툰판에서도 뛰어난 작화를 통해 우아하고 예쁘게 묘사되고 있으며 드라마 등에서와 마찬가지로 하얀 선녀복을 입고 있다. 특이한 점은 맨발로 다닌다는 점이다.[27]


4. <신조협려>의 소용녀[편집]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4.1. 양과의 스승이 되다[편집]


조지경에게 쫓겨 동굴까지 온 양과를 감싸다 죽은 손노파의 부탁으로 14세의 양과를 맡아 돌보게 된다. 그러면서 양과에 고묘파 무공 전반을 전수하고, 그가 기억하고 있는 전진교의 구결을 알게 되어 전진파 내공을 연마한다. 그리고 옥녀심경을 연마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내공 수행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양과와 꽃밭에서 반 나체로 벗고 옥녀심경의 내공을 연마하던 중에 조지경과 견지병이 나타나 내상을 입게 된다. 양과는 두 명을 제압하고 이 일을 제삼자에게 발설하지 않기로 맹세하게 한 후에 보내줬다.[28]

고묘에 돌아와서 자신이 죽을 거라 생각하여 양과를 죽이고 자신도 죽으려다가,[29] 사부가 알려준 치료법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내고 양과에게 약을 구해오도록 지시하고 고묘에 남게 된다. 최신 버전은 어떤지 모르지만, 예전에는 양과를 죽이고 자신도 죽으려 하자 양과가 그냥 도망쳤다가 이막수와 홍능파를 만나고는 소용녀가 신경 쓰여서 다시 되돌아왔다.

약을 찾으러 나갔다가 돌아온 양과를 따라 들어온 이막수와 홍능파에게 목숨을 위협당했지만, 침상의 기관장치를 움직여서 양과와 함께 밀실로 들어간다. 그리고 양과의 피를 마시고 운기조식을 하여 내상을 치료한다.

그리고 양과를 고묘 밖으로 내보내고 단용석을 떨어뜨려 이막수 일당과 함께 고묘에서 죽을 생각이었지만, 단용석이 떨어지기 직전에 양과가 도로 들어와 함께 죽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고묘 안에 만들어져 있던 석관에 들어갔다가, 왕중양이 남긴 글을 보고 관 아래의 비밀통로를 찾게 된다. 그리고 그 석실에서 왕중양이 남긴 구음진경의 일부와 단용석이 떨어져도 고묘를 빠져나갈 수 있는 또 다른 출구의 존재를 알게 된다. 이때 소용녀가 처음으로 양과에게 제대로 마음을 여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누는 대사도 그렇고 연출면에서도 엄청난 로맨스를 자아낸다. 항상 양과에게 겉으로 냉대하는 듯한 모습만 보인 소용녀가 양과에게 "과아야, 나를 정말로 좋아해?"라고 물어보면서, 마치 세상 물정 잘 모르는 묘령의 누나가 철 모르는 동생에게 자기만 사랑해달라고 조르는듯한 고백의 솔직한 모습에 무수한 젊은 남녀들이 심장이 녹는듯한 경험을 했다... 이후로는 완전히 양과바라기가 되어버리고 만다.

곧 따라 들어온 이막수에게 제압당하지만, 천장에 새겨진 구음진경을 통해 양과와 자신의 혈도를 풀고 이막수와 홍능파를 데리고 고묘를 빠져나온 다음 두 사람이 나가도록 내버려둔다.

그 후 양과와 함께 1년간 계곡에서 살면서 고묘를 수시로 들러 구음진경을 연마했다.

4.2. 양과 곁을 떠나다[편집]


그런데 이때 그동안 양과를 찾아다니고 있던 구양봉이 나타났다. 양과에게 무공을 가르쳐주기 위해 양과를 어디론가 데려가고, 자기 무공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기 싫어했던 구양봉은 소용녀를 점혈해서 쓰러뜨려 놓는다. 소용녀는 구양봉에게 혈도를 제압당해 쓰러져 있다가, 견지병(구판에서는 윤지평[30])에게 검열삭제를 당해 순결을 잃게 된다. 풋풋한 사랑을 하다가 갑자기 NTR이 튀어나오는 신필의 전개

두 눈이 묶인 데다가 갑자기 수치스러운 일을 당해 경황이 없어 양과가 자신에게 검열삭제를 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다음날, 애교를 부리며 양과에게 안기자 정작 열심히 무공 배우고 있던 양과는 왜 이래요 사부님? → 에이, 다 알면서? → 아니 자꾸 왜 그러시는데요? 아이고...결국 양과가 자신을 가지고는 모른척 한다고 생각해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여겨 울적한 마음에 어디론가 달아나버렸다. 사실 고묘 안으로 다시 들어간 것이었는데, 양과가 미처 그 생각을 못하고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며 소용녀를 찾아다녔다. 그리고 이 장면들은 신조협려 드라마가 새로 나와도 언제나 명장면이 나온다.

이렇게 기나긴 트러블의 여정이 시작되고 만다(...).

양과와 헤어져서 한 달 정도 지나고 나자, 허전한 마음을 견디지 못하고 양과를 찾아 나서게 된다. 원래 고묘 안에 들어가 있으면 양과가 알아서 찾아들어오겠지...라고 생각했던 듯. 소용녀에게 있어서 고묘는 집이었고, 양과에게 있어서는 고묘가 집과는 미묘하게 다른 포지션이었기에 생긴 엇갈림이 아니었을까. 결국 양과를 그리워하다 견디지 못하여 고묘 밖으로 나왔고,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는 탓에 산을 내려와 아무 사람이나 붙잡고 양과에 대해서 물어보고, 배가 고프면 아무 집에 들어가 아무것이나 집어 먹었다. 남의 것을 먹으려면 돈을 내야 한다는 것도 몰랐기 때문에 난처한 일을 많이 겪었지만, 미모와 천진난만함 때문에 해를 입지는 않았다. 예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 그래도 나중에는 이리저리 방랑을 많이 해서 경험치가 쌓였는지 식당에서 소면 주문하고 돈 낼 줄도 알게 된다.

4.3. 영웅대연[편집]


그러다가 곽정 부부가 영웅대연을 열게 되자 양과가 그곳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양과와 재회하게 된다. 이 때 구판에서는 별다른 대사 없이 양과에게 눈빛만으로도 정을 깊은 정을 내보이고, 개정판에서는 아예 양과 앞에서 "너 여기서도 못 만났으면 나 울어버렸을 것이야."애교를 부리기까지 한다.

양과가 곽도달이파를 쓰러뜨린 후, 양과의 사부로서 금륜법왕과 대결하게 된다. 무공으로는 금륜법왕에 미치지 못했지만 고묘파의 경공을 활용하여 피하여 한 번도 금륜법왕의 공격을 맞지 않았고, 양과의 도움을 받아 금륜법왕에게 승리를 거둔다. 이 장면에서 고묘파의 경공은 최고로 표현된다.

그리고 곽정이 곽부를 양과와 결혼시키고 싶다는 뜻을 밝히자,[31] 거의 정색을 하며 자신이 "내가 과아의 아내가 될 것이니, 곽소저가 그와 결혼하는 것을 허락할 수 없습니다."라고 양과와 결혼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고백하여 파란을 일으킨다. 소용녀는 마음에서 나오는 그대로 양과에 대한 진실한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되려 양과의 입장만 더욱 난처해졌다. 보다 못한 소용녀는 "이들의 만행이 너무하다"라고 하며 양과와 같이 그 자리를 떠나게 된다.

지금이야 선생과 제자가 결혼하는 일이 드물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해가는 한 범주에서의 일이지만, 당시의 사상은 말 그대로 "군사부일체". 즉, 스승이란 그 사람의 부모와 같은 레벨인 것이다. motherfucker 양과가 소용녀와 결혼하겠다고 하자 곽정이 차라리 자기 손으로 양과를 죽이겠다고 말하는 장면이나 훗날 무돈유&무수문 형제가 양과와 소용녀를 가리켜 금수만도 못한 사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이들의 관계가 당시 사상에 비추어 보면 얼마나 대파격인지 짐작 가능하다. 세속예규를 경멸하는 그 황약사조차도 깜짝 놀랐고, 양과가 세속의 예교에 사로잡히지 않았다고 좋아했다. 그래서 양과에게 너 사문 배반하는 게 특기인 거 같은데 고묘파를 생까고 내 제자가 돼라라는 권유를 날린다. 고묘파를 때려치우면 소용녀가 사부가 아닌 셈이니 결혼을 해도 떳떳하지 않겠냐는 논리. 하지만 양과는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핍박을 해대니 기필코 소용녀를 사부로 두고 결혼을 하고 말겠다고 선언하고, 황약사는 그 기상이 자신보다 한 수 위라고 칭찬해 주며 양과를 친구로 두게 된다.[32] 사실 처음에 양과가 제자는 못 되더라도 친구로 지내면 된다고 하자 황약사도 자기 딸보다 어린 양과와 친구 먹기는 껄끄러웠는지 내가 노완동 주백통도 아닌데 너 같은 애송이랑 무슨 친구를 하냐라고 벌컥 화를 냈지만, 그러면서도 주백통 이야기를 좔좔좔 들려주고 양과와 지내다보니 너무 마음에 들었는지 공식적으로 양과와 친구라고 인증을 해서 무림의 배분을 개차반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고 만다.

금륜법왕이 황용과 곽부를 납치하는 것을 보고도, 소용녀는 세상의 은원에 관심이 없어서 자리를 피하려 할 뿐이었지만 양과가 나서게 되자 함께 싸워 금륜법왕을 물리친다.

황용의 설득을 받고, 무씨 형제가 양과를 무시하는 발언을 듣자 자신과 양과가 결혼하면 양과가 불행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여 다시 양과를 떠나게 된다.

위에 썼듯이 세상 물정은 물론 무림 사정도 잘 모르기 때문에 사제지간의 연애에 대한 비난으로 마음 고생을 크게 하였다. 이 때문에 기껏 다시 만난 양과와 다시 헤어지고서 절정곡으로 흘러들어가는 등 작품 초반에서 중반까지는 그저 정처 없이 헤매고만 다녔다.

4.4. 절정곡[편집]


황용에게 설득되어 양과를 떠난 후, 산속에서 홀로 무공을 연마하다가 마음속에서 온갖 사념이 넘치는 것을 억제하지 못해 주화입마를 당하고 말았다. 마침 그때 지나가던 공손지에게 구조를 받고, 그녀의 미색을 탐낸 공손지에게 청혼을 받자 절정곡에서 살면 양과를 만날 일도 없어지니 인연이 끊어질 것이라 생각하여 선뜻 승낙. 이때 공손지에게는 양과의 양(楊)과 짝을 이루는 유(柳)를 성씨로 칭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주백통이 절정곡에서 소란을 피우고, 혼례를 하려는 날에 양과가 절정곡에 나타나자 자신의 감정을 억제할 수 없게 되었다. 끝까지 모른 척 하여 양과가 자신을 미워하고 떠나게 하려 했지만, 소용녀의 태도에 정화꽃에 찔려 중독된 양과가 고통스러워하며 피를 토하는 모습을 보자 자신도 피를 토해버린다. 이때 소용녀가 세상에서 만난 여러 남자들과 비교하면서 양과의 따뜻한 마음을 느낀다.

그리고 양과가 여전히 자신을 잊지 않고 사랑하는 모습에 결국 마음이 움직여 공손지를 떠나 양과를 따르기로 한다. 그러나 악독한 공손지는 두 사람을 결코 놓아주지 않았고, 결국 절정곡의 검방에서 숙녀검을 얻고, 양과와 힘을 합쳐 옥녀소심검법으로 공손지를 제압한다. 하지만 양과와 소용녀가 정화의 독이 발작한 틈을 타서 약속을 어긴 공손지가 양과를 정화독에 크게 중독시키고, 해독약을 받고 싶으면 자신과 결혼하라고 하자 양과와 고통을 함께하기 위해 자신도 정화 가시에 찔려 독을 얻게 된다. 홍콩 만화가 황옥랑이 그린 신조협려에서는 소용녀가 자신을 구하기위해 공손지와 혼인 삼배하는 장면을 보고 양과가 절규하는데 다행히 꿈이었던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고통받는 양과를 살리기 위해 공손지와 혼인을 하게 되었는데, 혼례식장에 양과가 나타나 절정단을 줘서 정화독을 해독받는다. 그리고 구천척이 나타나 공손지가 자신을 어떻게 대했는지 알리자 더욱 분노했다. 그리고 신부복에 숨겨두었던 군자검숙녀검을 꺼내 양과와 함께 공손지에 맞서 싸우게 된다. 하지만 구천척이 소용녀가 다치건 말건 신경쓰지 않고 조언을 한 탓에 부상을 입고 대결에서는 잠시 물러나게 된다.

4.5. 양양성[편집]


그리고 구천척의 제안을 받아들인 양과와 함께 양양성에 갔다. 처음에는 곽정과 황용을 도울 생각이 없고 그저 양과를 구할 생각 뿐이었지만, 양양성을 몽골 제국의 고수들로부터 지켜주면 자신의 목을 주겠다는 황용의 부탁을 받고 싸우게 된다. 그런데 황용이 곽양을 낳자 아이를 데리고 있다가 그만 이막수가 곽양을 소용녀와 양과의 아이로 오인하여 납치해버린다.

양과와 금륜법왕이 이막수를 쫓아가자 소용녀도 뒤쫓아 갔으나 그만 길을 잃어버리고 만다. 헤메다가 무삼통, 무씨 형제와 함께 있는 양과를 만났는데 하필 그때가 양과가 무씨 형제의 싸움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 자신이 곽부와 정혼하게 되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던 때였다. 양과는 이 무렵 무씨 형제가 곽부 때문에 무언가 이상한 기류가 흐른다는 것을 감지했지만, 소용녀는 이러한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없었고 곽부라면 두 사람 중 누굴 택할거냐는 양과의 질문에 대해 "그래도 너"라는 순진무구한 대답으로 양과에 대한 애정만 느끼고 있었을 뿐이었다.

워낙 세상 물정을 모르고 순진한 그녀는 양과의 거짓말에 완전히 속아넘어가 버렸고, 이미 양과와 곽부가 정이 깊어졌다고 오해하게 되고 슬픔에 빠진다. 이때 고묘에서 일단 양양성으로 돌아갔다가 주자류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곽부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양과에게 홍마를 줘서 곽양을 절정곡으로 보내야 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해버려서 곽부가 오해하게 된다.

주자류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몰랐지만 아무튼 개방 제자들을 소용녀가 말한 곳으로 보내서 부상을 입고 있던 무삼통과 양과 일행을 구하게 한다. 그리고 소용녀는 밤중에 곽부의 방에 들어가, 양과와 잘 지내라고 말하면서 숙녀검을 주게 된다. 곽부는 무슨 영문인지 몰랐지만….

이때 마침 양양성에는 곽정을 돕기 위해 조지경과 견지병이 와있었는데, 소용녀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자신을 범한 것이 양과가 아니라 견지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견지병은 소용녀를 보고 자신을 죽여달라고 했지만, 조지경은 견지병을 붙잡고 도망쳐버린다. 소용녀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일단 도망치는 조지경과 견지병을 뒤쫓게 된다.

조지경과 견지병이 몽골 군영에 머물자 그녀도 몽골 군영에 별 생각 없이 와있다가, 주백통이 금륜법왕의 음모에 걸려 독거미의 독에 중독당한 것을 보고 주백통을 돕게 된다. 주백통이 양과를 절정곡에 데려온 것 때문에 양과와 재회하고 양과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므로, 주백통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옥봉침을 써서 옥봉의 독과 상극인 채설주의 독을 해독해주고, 벌떼를 불러들여 채설주를 없애고 금륜법왕을 쫓아낸다. 또 동굴에서 주백통으로부터 쌍수호박을 전수받아, 옥녀소심검법을 혼자서 펼칠수 있게 되었다.[33]

계속해서 조지경과 견지병을 쫓아가 전진교까지 간 다음, 스스로 직접 조지경과 견지병을 죽이려다가 조지경이 이미 몽골군과 한패가 되어 성지를 받아 전진교의 장교가 되었으므로 금륜법왕과 윤극서, 소상자, 니마성 등과 대결하게 된다. 싸우던 중에 전진칠자칠성취회의 장력과 금륜법왕의 금륜에 맞아 중상을 입지만, 마침 당도한 양과에게 보호를 받게 된다.

4.6. 고묘에서 중독당하다[편집]


싸움이 끝난 후, 양과와 함께 왕중양의 초상 앞에서 혼례식을 올리고 고묘로 돌아가게 된다. 양과가 소용녀에게 치료하면 속세에 나가지 않고 고묘에서만 살자고 하고 소용녀는 이를 좋아하는데 그날 꿈을 꾸는데 소용녀와 고묘 생활을 한지 꽤 된 이후의 이야기로 양과가 조용한 고묘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소용녀를 두고 떠나고 소용녀가 울면서 과아 가지마렴 하며 절규하는 내용으로 소용녀는 울면서 깨어나게 되고 양과가 자신을 떠날까 불안해하며 빨리 내상을 치료하여 양과와 함께 세상을 돌아다니려고 양과에게 치료를 하자고 요구하여 그의 도움을 받아 내상을 치료하다가[34], 이막수가 쳐들어오자 양과가 기지를 발휘해 이막수의 장력을 역이용하여 내상은 치료되었지만, 골수에 적련신장의 독이 스며들게 되었다. 양과는 이막수를 석관에 가두고, 소용녀와 석관에 숨어 그녀의 독을 빼내려 했지만 곽부가 소용녀와 양과가 석관에 들어 있는 것을 보고 이막수로 지레짐작하고 빙백은침을 던져버려서 일이 틀어지게 된다.[35] 그리고 곽부 안티는 이 시점으로 계기로 폭발한다.

운기조식 중에 독침을 맞았기 때문에 혈맥의 깊은 곳까지 독이 스며들었고, 해약을 먹어도 치료할 방법이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몽골군이 지른 산불에 갇혀 위기에 빠진 곽부를 구하라고 양과에게 말하기도 했다.

4.7. 다시 절정곡으로 가다[편집]


양과와 함께 고묘에서 나와 사냥꾼의 집에 잠시 은거하고 있다가, 단지흥구천인을 만나 함께 절정곡으로 가게 된다. 도중에 구천인과 경공 대결을 벌이기도 했으며, 주백통의 도움을 받아 이겼다.

절정곡에서 공손지가 절정단을 빼앗아 단장애로 도망치자, 자신이 직접 나서서 옥녀소심검법으로 공손지를 제압하고 절정단을 가져온다. 하지만 양과는 소용녀가 죽게 되었는데 자신만 살아날 수 없다며 절정단을 계곡에 버리려 하지만 소용녀가 이를 만류해 버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양과가 자신이 죽게 되면 자신을 따라 자살할 것이라고 짐작하여, 양과가 죽지 않고 정화독을 치료하고 살아 남도록 하기 위해서 16년 후에 만나자는 글을 새겨놓고 절정곡의 단장애에 몸을 던진다. 황용은 소용녀가 양과를 살리기위해 목숨을 끊었음을 짐작하고 양과에게 아버지인 황약사와 친분이 있는 아버지 못지않게 괴팍한 남해신니의 이야기를 꾸며 16년 후에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하여 양과는 소용녀와의 재회를 위해 절정단을 먹고 정화독을 치료한다. 처음에는 소용녀가 죽으면 자기가 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안먹을 생각이었지만 황용의 남해신니 이야기를 듣고 16년 후에 기껏 고모[36]가 건강을 되찾았을 때 자신이 마중하기 위해 절정단을 먹었다

4.8. 16년 후[편집]


원래는 자살할 생각으로 16년으로 정한 것은 그 만한 시간이면 양과가 자신을 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적어둔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살아나게 된다.

계곡에 떨어진 소용녀는 물살에 밀려, 단장애 연못 아래에 있는 얼음 굴을 지나 작은 공간으로 나오게 된다. 며칠간은 독이 발작해서 죽을 뻔 했으나, 양과가 자신의 독을 빼주려 했던 것을 기억하고 연못 아래에 있는 만년빙을 한옥침상 대용으로 써서 조금씩 독을 빼낸다.

그리고 주백통이 잡아 데리고 놀다가 남긴 옥봉(벌)을 잡아 길렀고 물고기를 잡아 먹었는데, 옥봉의 꿀과 맑은 연못의 물고기가 약이 되어 독을 치료하게 된다.

나무껍질을 벗겨서 옷을 만들고, 초막을 지어서 그 안은 양과와 자신이 함께 살던 고묘와 같이 했다. 하지만 단장애의 절벽은 올라갈 도리가 없어서, 혹시 누군가가 발견해주지 않을까 생각하여 옥봉의 날개에 글씨를 새겨서 올려보냈다. 글씨의 내용은 我在絶情谷底(아재절정곡저. 나는 절정곡 아래에 있습니다).

양과를 위해 16년동안 양과 곁을 떠나기도 하는 무시무시하게 독한 여자이다. 그리고 김용이 언급한 바에 의히면 나이는 양과보다 최소 일곱 살 정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노화를 지연해준다는 고묘파 특유의 수행 덕분에 16년 동안의 잠적기 이후에도 16년전과 비교해서 노화가 없었고 오히려 그 동안 고생을 많이해서 머리카락이 반백이 된 양과보다 젊어보이게 되었다. 소용녀와 재회 한 양과가 자신에게 난 흰머리를 보고 늙어서 고모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탄식하기도 했다.

수행만이 아니라 소용녀의 외모가 타고난 동안이라서, 양과가 처음 소용녀를 찾으러 싸돌아 다니던 때에 누군가가 백의의 미모의 소녀가 자네보다 누님으로는 보이지 않던데? 라고 말하자, 양과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자신보다 어려보일것이라고 생각하는 장면이 있었다. 소용녀는 양과와 약 20살이 되는 해에 만났고, 헤어질 무렵은 거의 2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었다. 헤어지기 전 양과의 나이를 적게 잡아도 20세 이상이고, 16년 후는 최소 36세. 김용이 생전에 소용녀와 양과의 나이 차이는 최소 4-5살이라고 하였으니 그보다 더 많이 차이가 날 수도 있다. 한마디로 소용녀는 최소 40살에 양과와 제대로 함께 있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고묘파의 수행 및 타고난 동안의 힘으로 외모는 여전히 스무살 정도로 보이며 16년 뒤의 소용녀를 처음 본 이들은 40대를 넘어선 소용녀를 갓 스물을 넘긴 어린 여자로 볼 정도였다. 호칭부터 용씨 성을 가진 '어린 처자'이니 말다했다. 원작의 묘사에서도 이십대 초반으로 보였다고 한다.

약속한 16년이 지나도 소용녀가 나타날 기미를 보이지 않아 당황하던 양과는 우연히 만난 황약사에게 친구인 남해신니에 대해 묻고 자기 딸 활용이 양과를 살리고자 거짓말 한 것을 모르는 황약사가 난 그런 사람 모르는데?라는 말에 황용이 자신을 살리기 위해서라지만 자신을 속인 것을 알고 좌절하여 살아갈 희망을 잃고 소용녀를 따라 죽기위해 깊은 절벽에서 뛰어내린다. 하지만 다행히 죽지는 않고 뛰어내린 절벽 아래에서 마침내 소용녀와 해후하는 장면은 신조협려에서 수위를 다투는 명장면이다. "용아, 나는 늙었는데 당신은 그대로군요(龍兒, 你容貌一點也沒變, 我卻老了)."라고 말하는 양과에게 소용녀는 "네가 늙은 것이 아니야. 나의 과아가 장성한 거야(不是老了, 是我的過兒長大了)."라는 희대의 명대사를 남겼다.

4.9. 결말[편집]


이후 양과와 함께 단장애를 올라가 양양성에 가서 함께 싸워 곽양을 구해내고 몽고군을 물리친 다음, 제3차 화산논검에도 참석하고, 모든 일이 끝난 다음에는 양과와 함께 고묘에서 은거한다. 곽양을 마음에 들어했으며, 그녀에게 옥녀심경의 검법을 약간 전수해주기도 했다.

양과와 함께 은거한 후의 행방은 묘연한데, 3년 후에 곽양이 고묘를 방문했을때 하인을 만난 것으로 보아 고묘를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닌 듯 하지만 무림 어디를 돌아다녀도 소식을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이후 의천도룡기 중반 부분에서 양과와 그녀의 후손으로 짐작되는 황삼미녀가 잠깐 나와서, 둘이 무림을 완전히 떠났음을 암시하는 노래를 하고 사라진다.

아무튼 소용녀는 김용 무협지 주인공들 중에서 가장 행복한 결말을 맞은 캐릭터들 중 하나이다. 작중 20년에 걸쳐 고생을 한 커플이니 이 정도의 엔딩은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5. 소용녀의 무공[편집]


속도로 상대를 제압하는 고묘파 무학의 정수에 도달한 검법의 최고수 중 하나.
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

첫 등장 시점에서는 전진칠자 중 학대통을 금사장갑빨로 제압했지만 구처기에게는 템빨로도 꺼릴 정도의 수준이었다. 물론 나이에 비하면 초월적인 무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37] 영웅문 3부작에서 전진칠자는 대표적인 전투력 측정기이다(...). 단 자질이 천부적인데다 감정을 억제하는 고묘파 무공의 수양이 깊어서 빠른 속도로 발전한다. 양과와 더불어 수련한 옥녀심경으로 큰 진전을 보기도 했고, 옥녀소심검법을 양과와 함께 구사하면서는 천하의 금륜법왕조차 물러나게 할 정도의 무위를 선보일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천하오절급의 대고수들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결정적인 파워 업은 주백통쌍수호박을 전수받은 것. 덕분에 쌍검을 들고 두 사람이 같이 펼치는 옥녀소심검법을 혼자서 펼쳐낸다! 이 때의 실전 능력은 공손지를 능가하고 금륜법왕을 상대로도 우세할 정도. 임조영보다 센 거 아니냐[38] 다만 소용녀는 고묘파의 장문인으로서 고묘파 무공이 추구하는 극단의 상태에 치우쳐 있음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 즉 소용녀의 무공은 강한 진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공을 쏟을수록 더욱 빠르게 움직여 초식의 변화와 속도로 승리를 쟁취하는 고묘파 무공의 묘리에 치우쳐 있는 것이다.[39] 작중에서는 금륜국사가 금륜을 들고 덤비는데도 소용녀의 옥녀소심검법에 여러 군데 가벼운 상처를 입으며 방어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지만, 금륜국사가 소용녀의 검법을 두려워하지 않고 힘으로 밀어붙이면 열세를 만회할 수 있으리라는 묘사가 있다. 즉 이미 초식의 빠르기와 변화로는 천하 제일이겠지만, 아무래도 무학에서 가장 중요한 내공은 그에 미치지 못하여 그녀가 한창 무림에서 활동할 당시의 전반적인 무공 수준을 놓고 보면 구음진경을 익힌 동시대의 최고의 여협 황용보다 확실히 못하며, 그 다음 가는 여자 고수인 이막수에게도 순수한 공력만으로는 처지는 편이다. 물론 검을 들고 옥녀소심검법을 펼치면 두 사람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천부적 자질과 기연을 통해 어린 나이에 최고의 경지에 오른 무공 고수 중 하나. 단 16년간 양과와 헤어져 있던 동안은 진전이 없었다고 한다. 어차피 작중 묘사로는 16년 전 시점에서 이미 인간을 초월한(...) 속도의 검술을 펼쳐보이긴 했으나, 양과와 금륜법왕이 양양성 앞 망루에서 장력을 한 차례 겨루고 '그새 이놈 무공 수준이 또 달라졌구나'하고 서로에게 놀라는 것을 보면 더이상 무공수련을 할 필요 없어 더 늘지는 않았다는 소용녀로서는 그만큼 최고수 경쟁에서 반 발짝쯤 물러난 셈이 된다. 소용녀도 굳이 천하제일에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양과가 자기보다 무공이 강해졌다는 사실에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양과가 자신을 키워주고 가르친 제자인데다가 정인인데 당연하다면 당연한 입장이다.

참고로 진옥련이 맡은 83년도판 신조협려 드라마의 소용녀는 16년간 발전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금상심검이라는 (양과의 암연소혼장과 비슷한) 검술을 창안해내 무공이 더 세진 걸로 나온다. 그리고 그 검술로 양과와 함께 금륜법왕을 협공했다.

실력에 비해 암수에 걸리거나 고전하는 경우가 잦은데, 무정무욕의 상태를 추구한다는 고묘파답지 않게 멘탈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단 저러한 무심의 경지는 애초에 양과를 제자로 받고 나서부터는 내내 파탄이 난데다 온갖 악재가 겹쳐셔 순수한 마음이 평정을 유지하지 못한 일이 많았다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 절정곡 아래에 은거하면서부터는 오히려 무심의 경지를 되찾아 정화독의 해로움조차 비껴갈 정도로 평안했다고. 물론 소용녀도 정이 엄청나게 깊은 사람이라서 병이 나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양과를 그리워하며 찾았다.[40]

잠을 잘 때 밧줄 하나 걸쳐 놓고 그 위에서 자거나(몸을 뒤척이기도 한다...),[41] 옥봉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신기한 술수를 쓴다. 임조영이 가지고 있던 백금사(白金絲)로 짠 장갑을 물려받았는데, 연위갑 급의 방어력을 자랑하는 물건으로 매우 요긴하게 사용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4 04:29:18에 나무위키 소용녀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싱가폴 TCS에서 제작한 1998년 이명순(양과), 범문방(소용녀)을 주연으로 한 신조협려를 바탕으로 한 게임 일러스트다. 범문방은 2006년 신조협려에서 소용녀를 연기한 유역비가 등장하기 전 가장 아름다운 소용녀를 연기한 배우로 유명하다. 싱가폴에서 제작했지만 단순히 범문방의 미모가 우월해서 대만, 중국까지 역수출 할 정도였기에 그 인기를 바탕으로 이명순과 범문방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게임이 제작되고 일러스트도 제작되었다. 그래서인지 게임 자체도 싱가폴에서 제작한 1998년도 신조협려의 스토리와 유사한 면이 있다. 다만 양과에 대해서 고천락이 연기한 95년판 양과를 닮았다는 이야기도 있다.[2] 여담으로 용녀/소용녀는 용왕의 딸을 의미하는 일반명사이기도 하다. 어느 정도는 불교적 모티브도 갖고 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3] 버려진 아이는 사서와 고전소설에서 자주 보이는 대목 중 하나이다. 특히 난생설화의 경우에는 불의의 사생아를 신비적으로 윤색하여 기록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동양의 성현 공자조차도 불의에 의해 태어난 출생이라는 사가들의 주장도 있을 정도이다. 이런 비극적인 출생의 배경이 역설적으로 인물의 파란만장한 삶과 더불어 이전의 질서를 깨뜨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과정을 더욱 더 극적으로 돋보이게 만든다. 소용녀가 사생아라 하더라도 소용녀의 예술적 가치가 퇴색되지 않을 뿐 아니라, 똑같은 사생아인 양과의 인생과도 통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원작자도 깊게 고려하고 정하지 않은 설정이니 독자가 상상하면 될 것이다.[4] 무협소설에서 수련자가 무학을 익히는 것은 단순히 신체단련만이 아니다. 내공심법을 비롯한 사상적 요체를 제대로 이해하는 능력을 키우지 않으면 심도 있는 연공 자체가 불가능하다. 무공 비급은 핵심적인 내용을 담은 짧고 함축적인 구결로 이루어져있고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음양오행 등 무학의 기본원리를 알아야한다. 더욱이 고묘파 무학은 당시 도가의 대표였던 전진교와도 연관된 정통 도가문파이기 때문에 그 바탕이 굉장히 깊고 넓은 편이다.[5] 과거에는 서예, 음악, 직금은 규방의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소양으로 생각하여, 이것을 통해 여성의 격을 평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의 조선시대 규방문학 중 하나였던 박씨전에서도 주인공 박씨 부인이 지극히 추한 몰골임에도 옷을 짓는 솜씨를 통해 그녀가 대단히 품격이 높은 여인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여성에게 교양은 미 기준의 하나의 중요한 잣대였다.[6] 빈말이 아니라 고묘에서 기르는 옥봉의 꿀은 맛이 좋을 뿐 아니라 약효까지 뛰어나서 오랫동안 섭취하면 수명연장이 가능한 최상품이다. 소용녀가 심한 상처에 중독까지 당해 사실상 죽은 것이나 다름 없는 상태에서도 벽수한담의 물고기와 옥봉의 꿀을 복용하여 완치시켰다.[7] 이는 소용녀의 본질이 차갑지 않은 정이 가득한 성품이라는 것을 뜻하며, 일정 부분 사저인 이막수와 통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막수가 감정을 주로 광기어린 분노로 표현한다면, 소용녀는 죽을 정도로 슬퍼하는 감정으로 드러나는 점인데, 소용녀는 내면의 강렬한 감정을 자신도 모르게 억제하고 있다가 양과를 통해 되살아났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실재로 김용 노사도 소용녀는 감정이 아예 없었기 보다는, 잘 몰랐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양과와 결혼하기 전까지 보여주었던 소용녀의 마구 요동치는 극단적인 감정들이 소용녀의 진정한 내면의 발현이었다고 할 수 있다.[8] 양과가 적련선자 이막수를 처음 만났을 때 무작정 안겨 이막수가 당황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양과의 나이가 막 13살이된 겨울이었고 이후 도화도에 갔다가 전진교로 가는 시기가 약 반년으로 가을쯤에 활사인묘로 가게되었기에 소용녀를 처음 만나는 양과는 최신판본 기준으로 14살이다.[9] 소용녀의 나이는 정확히 언급된 바 없다. 다만 18살 생일을 맞아 곽도 일행이 종남산에 갔다는 내용으로 미루어 20세가 되지 않은 10세 후반 나이로 보인다.[10] 소용녀는 양과에게 사부이자, 연인, 아내이지만, 한편으로는 어머니이기도 하다. 양과를 어린아이를 어머니가 부르는 듯 과아過兒라고 부르는 것부터 시작해서, 절정곡에서 16년간 기다리는 동안 나무껍질로 양과의 어린 시절 옷을 지어 놓았다는 구절도 등장한다. 더욱이 양과가 소용녀를 다시 만났을 때 소용녀는 외모가 변하지 않았는데 자신에게 난 흰머리를 보고 늙어서 고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탄식하자, 소용녀가 "네가 늙은 것이 아니야, 내 과아가 장성한 거야."라고 대답한다. 소용녀는 양과를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다시만난 양과가 늙었던 불구가 되었던 여전히 사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양과와 소용녀의 관계는 단순히 사제지간의 예를 파괴하는 것을 넘어서, 상징적으로 모자간의 난륜의 성격도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양과가 이런 소용녀와의 위태로운 사랑을 결과적으로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옳은 길을 가도록 지도해준 도덕을 갖춘 이상적인 아버지상인 곽정과 한평생 무학에 대한 깨달음에 헌신한 독고구패의 삶을 함께 한 신조의 존재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11] 메텔과 테츠로는 나이 차이가 심하게 나는데다 메텔의 원본이 철이의 엄마라서 모자지간을 느끼게하지만, 양과와 소용녀는 나이 차이 좀 나는 누나와 남동생 정도의 차이에 불과하다.[12] 대표적으로 양과와 소용녀가 어렵게 재회한 후 소용녀가 당한 독을 치료하기 위해 양과와 고묘로 돌아간 적이 있는데 양과가 소용녀에게 치료하면 속세에 나가지 않고 고묘에서만 살자고 하고 소용녀는 이를 좋아하는데 그날 꿈을 꾸는데 소용녀와 고묘 생활을 한지 꽤 된 이후의 이야기로 양과가 조용한 고묘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소용녀를 두고 떠나고 소용녀가 울면서 과아 가지마렴 하며 절규하는 내용으로 소용녀는 울면서 깨어나게 되고 양과가 자신을 떠날까 불안해한다. 실은 이는 소용녀의 기우로 양과는 자기 때문에 소용녀가 속세에 나가 고생했다고 자책해서 소용녀와 고묘에서 평생 지낼 생각이었는데 혹시라도 자기가 또 뭔가 실수해서 소용녀가 자신을 두고 떠날까 걱정하고 있었다. 결론은 둘이 서로를 너무 사랑한다는 것.[13] 다만 여기에 대해 사조영웅전 1판과 신조협려 1판에 등장한 양과의 엄마 진남금에 비교하면 그에 못하다는 독자들도 있다. 진남금 항목을 보면 나오듯이 사조영웅전의 악당이자 양과의 생부인 양강은 야심이 커서 여자들의 미색에 크게 동요하지 않은 인물로 이후 개정판인 2판에서 진남금이 삭제되고 양강이 진심으로 좋아하다고 묘사되던 목염자는 1판에서는 단순히 희롱만 했을 뿐 별 관심 없이 버린 여자였다. 애초에 김용 월드 내에서도 미모가 열손가락에 드는 황용을 보고서도 별 관심이 없던 양강이 꾸미지 않아 산골 소녀를 보고 목염자는 그냥 잡초고 황용도 예쁜 꽃인데 반해 진남금은 꽂중의 왕이라는 모란으로 생각하고 단순히 미모만 보고 반하게 된다.[14] 실재로 소용녀 배역은 내로라하는 여배우들이 출연을 주저할 정도로 외모의 부담이 큰 인물이다. 왕어언도 이와 비슷해서 두 인물은 캐스팅이 겹치는 경우가 많았다.[15] 물론 전성기 시절의 황용은 결코 소용녀에 뒤지지 않는다. 소용녀가 선녀 같은 청초한 미인이라면, 황용은 영기발랄하고 풍채 좋은 귀족 규수 같은 이미지로 좋은 대비가 된다. 사조영웅전과 신조협려의 1판 기준으로 양강이 묘사하기로 황용은 예쁘긴해도 전혀 꾸미지 않았던 산골 소녀 진남금 보다 외모가 많이 떨어진다고 묘사되지만 소용녀를 만나기 전까지 배경이 되는 중원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알려졌고 사조영웅전과 신조협려가 2판으로 개정된 이후로도 소용녀 다음에 해당했다.[16] 사조영웅전과 신조협려가 2판에서 개정되면서 진남금 캐릭터가 삭제되면서 4명으로 줄었는데 개정되기 전에는 진남금도 최고의 미인 중 하나에 들어갔으나,진남금이 삭제되고 진남금의 일정 부분이 목염자에게 통합되면서 왕어언과 소용녀, 향향공주 이렇게 셋을 보통 꼽게 됐다. 황용이 들어간 것은 그녀의 재기발랄함이 가히 압도적으로 충분히 최고 절세가인의 기준에 들기 때문이다. 사실 황용이야말로 김용 노사가 가장 잘 만드는 사랑스러운 요녀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17] 한국 드라마에서 장희빈 역할과 유사하다. 당대 최고의 인기 미녀 배우만이 이 역할을 맡고 여배우에 대한 대중들의 기대치도 매우 높으며 때때로는 배우의 한계를 보여주는 독이 든 성배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18] 95년 드라마에서 소용녀를 연기한 이약동은 데뷔한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단숨에 인기스타로 부상했고, 지금도 연기력 논란이 있는 유역비는 언론에 나오면 지금도 소용녀 얘기가 반드시 나올 정도이다.[19] 유역비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1998년에 싱가폴에서 제작한 신조협려에서 소용녀를 맡은 범문방이 최고의 미모로 알려졌다.[20] 그것도 현실적인 수준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원작에서의 인간을 초월한 미모까지 일치시킨 것은 아니다. 소용녀는 여러모로 중국 당대 최고의 미녀 배우들도 좌절시키는 그야말로 독이 든 성배인 배역일 듯하다.[21] 이는 원작에서 두드러지는 소용녀의 특징이 따뜻함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서늘한 느낌을 주며, 눈썹과 눈매가 조금 날카로운 차가워 보이는 미녀인데 범문방이 여기에 딱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범문방 또한 유역비가 등장하기 전까지 외모로서는 다른 소용녀를 제치고 최고로 평가 받았고 2006년도 신조협려에서 유역비가 등장한 뒤에도 원작가인 김용에게서 원작에 가장 근접한 소용녀는 범문방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니 범문방 입장에서는 소용녀가 최고의 배역이었을 것이다. 연기력만 보면 범문방이 유역비와 비교 불가능할정도로 잘하는 편이다. 범문방 소용녀와 유역비 소용녀의 차이는 비유하자면 주해미의 주지약과 고원원의 주지약을 비교하는 것과 비슷하다 할 수 있다. 주해미가 주지약이라는 캐릭터의 재현을 이뤄냈고, 고원원이 지금까지 비쥬얼적으로는 가장 아름다운 주지약으로 꼽히는 것과 같다.[22] 국내 개봉 시의 이름은 영웅문. 이후 삼원프로덕션에서 용곡협영이란 이름으로 VHS 출시.[23] 사진에서는 쇼브라더스 제작에 1984년으로 오기되어 있다.[24] 항공사 승무원 출신의 배우로 90년대 홍콩영화 전성기 때부터 활동했다.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특히 신조협려 드라마로 호평이 자자했다. 뛰어난 배우들이 즐비했던 90년대 홍콩배우답게 연기력이 훌륭하며, 외모도 그 전성기의 왕조현과 나란히 놔도 안꿀리는 수준이었다.[25] 1994년판 의천도룡기 감독이며 장나라가 출연한 최고 흥행작 띠아오만 공주의 감독이기도 하다.[26] 차이점은 범문방, 이명순은 신조협려 촬영에서 서로에게 감정이 없이 처음만나 호흡을 맞춰 친해졌고 이후 여러 작품에서 만나면서 인연을 쌓아 연애를 해서 결혼에 이른 것이라면 진효와 진연희는 진효가 신조협려 촬영 이전부터 대만의 국민 첫사랑인 진연희에 대한 호감이 있었다고 한다.[27] 등장 초반에는 고무신을 신고 있었는데 양과랑 활묘인산을 나온 이후로는 줄곧 맨발로 다닌다. 또한 같은 고묘파인 이막수도 맨발로 등장하지만 이막수의 복장은 가슴도 패여있고 전체적으로 복장이 서양 마녀 같은 느낌을 주는게 차이점 웹툰판에서는 맨발로 다니는게 고묘파 전통인듯싶다[28] 하지만 이후에 조지경은 제삼자가 아니라 제사자, 제오자가 넘는 사람에게 발설했으니 괜찮다는 개드립(..)을 펼쳤다.[29] 사실 소용녀는 자신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여 죽거나 없을 때, 천성이 착하지만 어린애 같은 양과가 세상에 혼자 남겨졌을 경우를 상당히 우려했다.[30] 원래 윤지평이 실존인물이라 후손들의 항의로 인해 가상인물인 견지병이 한 일로 바뀌었다. 애시당초 실존인물인데다 구처기의 뒤를 이어 전진파의 조사까지 지냈던 인물한테 이딴 역할을 맡겼으니 고인능욕을 당한 셈이다..[31] 이때 곽부가 자신이 양과와 결혼한다고 하자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할 정도로 내심 기뻐한 모양이다.[32] 다만 세속의 예교와 허례허식을 극히 경멸하는 황약사조차도 사제지간의 명분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자신의 도화도 문하들에게는 배분과 호칭을 칼같이 지키도록 하고 있다. 즉 소용녀와 양과의 행동을 정말 잘했다고 격려한 것이 아니라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하지는 않겠지만 옳은 일도 아니다. 그러니 내 도움을 받아 명분을 만들어라" 정도의 의미로 권유했다가 "됐고 저 그냥 꼴리는대로 살겠음"이라는 대답을 듣자 "나도 평생 나 꼴리는 대로 살았지만 넌 나보다 한술 더 뜨는구나!" 정도의 의미로 경탄한 것이라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33] 다만 남녀가 함께 펼쳐햐 하는 옥녀소심검법 특성상 위력은 떨어진다고 언급되지만 이것만으로도 금륜법왕과 일대일 대결에서 금륜법왕이 대경실색해 도망칠 정도였다.[34] 오히려 양과는 갑자기 내상을 빨리 치료하고 세상을 돌아다니자는 소용녀의 모습을 보고 자기가 고모에게 무슨 잘못을 해서 자신을 떠날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불안해한다. 실은 양과도 바깥에서의 풍파를 겪으며 소용녀와 함께한 고묘에서의 생활이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알고 평생 소용녀와 함께 고묘에서만 살 생각이었다. 한마디로 양과나 소용녀 둘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신을 떠날까봐 불안해 했던 것.[35] 곽부가 양과와 소용녀라고 알고 한 것은 아니고 주위에 빙백은침이 있기에 이막수로 생각해서 한 행동이라서 고의성은 없었지만 그 피해가 소용녀를 죽게 만들 정도의 큰 잘못이었다.[36] 이때는 이미 둘은 고묘에서 혼인을 한 뒤로 소용녀는 아내지만 양과는 여전히 고모라고 부른다.[37] 실제로 학대통은 이 패배에 상당히 멘붕에 빠졌다.[38] 왕중양과 다른 사절들의 실력 차가 단번에 드러날 만큼 크지 않았음을 감안한다면, 왕중양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임조영의 경지를 저때의 소용녀가 넘겨다봤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단 어디까지나 검법에 국한해서라고 봐야하고, 권각술을 비롯한 전반적인 공력은 임조영에게 확실히 뒤쳐진다.[39] 양과의 경우 고묘파 무공을 남김없이 전수받았지만, 천하오절들의 여러 무공들을 두루 배워 순수함이 떨어지고 장년의 나이가 되어서는 오히려 강한 진력으로 천변만화하는 초식을 제압하는 고묘파의 정 반대 경지를 바라보게 된다. 이에 비하면 소용녀는 옥녀심경을 수련하기 위해 전진파 내공과 검법을 익혔을 뿐 순수하게 고묘파 무공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40] 이런 점에서 양과와 비슷하다. 소용녀가 양과와 함께할때 무정무욕의 경지를 포기하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처럼 양과는 소용녀와 함께하면 기쁨이 앞서서 슬플 때 강해지는 암연소혼장의 진정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다만 소용녀는 양과처럼 무공 자체에 직접적인 너프를 먹는 듯한 묘사는 없다.[41] 밧줄 위에서 잘 때는 신발을 벗고 맨발로 잤는데 이때 아직 어렸던 양과가 소용녀의 새하얀 맨발을 보면서 저 귀엽고 작은 맨발을 평생 보기 위해서라도 그녀의 곁을 결코 따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다가 나비를 잡는 꿈을 꾸다가 깼는데 어느새 저도 모르게 소용녀의 맨발을 손으로 붙잡고 있었다. 양과는 바로 소용녀에게 사과했고 소용녀는 일부러 그러지 않은걸 안다면서 용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