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냐(메멘토 모리)

제가 자란 곳은 아주 평화로운 마을이었어요.
먼 옛날 이곳에 뿌리를 내린 게
우리의 선조님이신 바이킹들이라고 해요.

아직 어렸던 저는
바이킹에 대해선 전혀 몰라서.
자기 전에 아빠에게 부탁해서, 매일 밤 선조님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어요.

가슴 뛰는 모험, 용맹스러운 싸움,
그리고 왁자지껄한 연회!
강하고 멋진 바다의 전사들!

그때 저는 결심했습니다.
언젠가 꼭 바이킹이 될 거라고!

성장한 저는
어엿한 바이킹이 되기 위해
노 젓는 법이라든지, 손도끼 쓰는 법이라든지,
필요한 것들을 척척 배워나갔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저주가 내린 건.

아름다운 호숫가도, 푸른 산도,
익숙한 풍경든 모두 다
해정(骸晶)에 뭉개져 버렸어요.
...우리 가족마저도.

한순간에 모든 걸 잃었다는 걸 알고도...
저는 울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바이킹은, 강하니까...!

살아남은 사람들을 피난시키기 위해,
다 같이 배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어요.
저주의 짐승이 갑자기 나타나
우리들을 덮쳐왔어요.

모두를 지켜야 해...!
저는 망설이지 않고 짐승에게 맞섰습니다.

...알고 있었어요.
저는 진짜 바이킹처럼
강하지 않다는 것을요.
금방 만신창이가 되어
헌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게 되어서....
그래도 어떻게든
모두가 도망칠 시간 정도는
벌 수 있었어요.

마지막에 조금은
멋졌으려나....

흐릿해지는 의식을 때우는 날카로운 검 소리.
두 동강이 나서 움직이지 않게 된 꺼림칙한 빛,
해정의 잔해 속에 서 있던 건
검은 망토의 검사.

그게 저와 암렛님의
만남이었습니다!

암렛님은 저를 구해주시더니,
감사의 인사도 받지 않으시고 망토를 휘날리며
떠나셨어요.

처음 보는 여왕님의 모습은
아름답고 멋지고...

바로 제가 동경하던
바이킹의 모습 그 자체였어요...!

나도 저렇게 강했다면....

모든 걸 잃고 나서 줄곧 공허했던 마음에
흘러들어온 뜨거운 무언가.
그건 동경심이었습니다.

깊은 절망으로 시커멓던 마음을
그 감정이 꽉 채웠을 때
제 안에 불이 붙었어요.

떨어져 있던 너덜너덜한 외투를 걸치고,
암렛님처럼 당당하게 일어서서.
치밀어 오르는 충동 그대로
있는 힘껏 달렸어요.

어느덧 상처도 아물고,
기운이 불끈불끈 샘솟고

가벼워, 가벼워요!
몸이 깃털처럼!

이거라면 분명
암렛님처럼 될 수 있어...!

맞아요.
저는 그때 마녀가 되었어요.
마녀 바이킹이!

마녀가 된 저는
곧장 저주로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아직 한참 바이킹의
힘이 부족한 저로선,
암렛님처럼 잘 싸울 수 없었어요.

끝없이 나타나는 짐승들과의 싸움에서,
저는 해정의 빛에 점점 침식되어 갔습니다.

자꾸만 꿈에 나오는 그때의 광경.
구하지 못한 사람들의 비명.

그러다가 이번에야말로 제가
절망에 삼켜질 뻔했을 때

저를 구해준 사람이 두 번재 영웅.
에헤헤, 바로 영주님이세요

암렛님과 영주님.

싸울 계기를 준 사람과
내 손을 잡아준 사람.
두 사람은 제 동경의 대상이자 목표에요.

이상적인 바이킹이 되기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한 걸음씩 나아갈 거에요.

왜냐하면 제 뒤엔
이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앞만 보고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언젠가 모든 게 끝나면,
내 모험담도 누군가가 잠들 건에 듣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