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자 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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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의 사적 제444호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
星州 世宗大王子 胎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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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산 8
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조선시대
면적
5,950㎡
지정연도
2003년 3월 6일
제작시기
1438~1442년
위치



1. 개요
2. 역사
3. 기타
4. 외부 링크
5. 문화재청 소개글


1. 개요[편집]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선석산 아래의 태봉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태실이다.[1] 세종의 왕자들 중에서 문종을 제외한 18명의 왕자와 원손 단종의 태실 등 19기의 태실이 군집을 이루고 있다.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은 1975년 12월 30일에 경상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88호로 지정됐다가 2003년 3월 6일에 사적 제444호로 승격지정됐다.


2. 역사[편집]


1438년(세종 20년)에서 1442년(세종 24년)에 조성되었다. 19기의 태실 중 5기는 훼손되어 있는데 이는 수양대군이 왕위에 올랐을 때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반대한 다섯 명의 왕자들[2]의 태실이며 수양대군이 즉위하면서 다섯 명의 태실을 파괴하라 명했기 때문에 훼손되어 있다. 즉위 후 세조 태실에는 별도의 가봉비를 태실비 앞에 세웠다.


3. 기타[편집]


매년 5월 중순 성주생명문화축제가 열릴 때 쯤 성주군에서는 세종대왕자 태실을 테마로 경복궁에서 태봉안 의식 재현과 광화문광장을 돌고 성주로 오는 태봉안 봉송 행렬을 재현한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왕족의 태실이 군집을 이루고 있고, 조선시대 태실의 초기 형태 연구에 중요한 자료인데다가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왕조 교체와 함께 왕실의 태실 조성 방식의 변화 양상을 볼 수 있다는 점과 한국의 생명 존중 문화를 잘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이러한 점으로 성주군에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성주는 세종대왕자 태실 외에도 용암면에 태종태실과 가천면에 단종태실[3]이 있어 태실의 고장이라 평가받을 정도의 명당이었다.

세종대왕은 아들이 18명이고 막내아들인 담양군이 1439년생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 태실 군집에는 19번째 아들인 '이당'의 태실이 있다. 태실에 기록되기로는 1442년 7월 24일(음력)생으로 기록되었으며, 1446년 이전에 요절하여 봉군되지 못해 기록에도 누락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문제는 조선왕조실록에는 1442년 7월 24일자에는 기사가 없으며, 왕실 족보인 선원보에도 이당에 대한 기록이 없다. 학계의 추가 연구가 필요한 부분.#

4. 외부 링크[편집]




5. 문화재청 소개글[편집]



세종대왕자태실은 성주군 월항면 선석산 아래 태봉(胎峰) 정상에 있으며, 세종의 적서(嫡庶) 18왕자와 세손 단종의 태실 등 19기가 군집을 이루고 있다. 태실은 왕실에 왕자나 공주 등이 태어났을 때 그 태를 넣어두던 곳을 말한다.

전체 19기중 14기는 조성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한 다섯 왕자의 태실의 경우 방형의 연꽃잎이 새겨진 대석을 제외한 석물이 파괴되어 남아 있지 않으며, 세조 태실의 경우에는 즉위한 이후 특별히 귀부를 마련하여 가봉비(加封碑)를 태실비 앞에 세워두었다.

조선 세종 20년(1438)에서 24년(1442)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태봉은 당초 성주이씨의 중시조(中始祖) 이장경(李長庚)의 묘가 있었는데 왕실에서 이곳에 태실을 쓰면서 그의 묘를 옮기고 태를 안치하였다고 한다. 한편 1977년 태실에 대한 보수시 분청인화문대접·뚜껑, 평저호 및 지석(誌石)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세종대왕자태실은 조선초기 태실형태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며 우리나라에서 왕자태실이 완전하게 군집을 이룬 유일한 예라는 점, 그리고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왕조교체와 함께 왕실 태실 조성방식의 변화 양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성주세종대왕자태실 →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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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왕실에서 왕자나 공주가 태어났을 때 를 넣어 두는 곳을 말한다.[2] 안평대군, 금성대군, 한남군, 영풍군, 화의군.[3] 본래 세종대왕자 태실에 같이 봉안되어 있었다가 문종 대에 가야산 뒤쪽의 법림산으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