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베리노 바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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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everino Varela.jpg
이름
세베리노 바렐라 푸엔테
(Severino Varela Puente)
생년월일
1913년 9월 14일
사망년월일
1995년 7월 29일 (향년 81세)
국적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우루과이
출신지
몬테비데오
포지션
센터 포워드
신체조건
175cm | 70kg
소속팀
리버 플레이트 몬테비데오 (1932-1935)
페냐롤 (1935-1942)
보카 주니어스 (1943-1945)
페냐롤 (1946-1947)
국가대표
24경기 / 19골 (1935-1942)



1. 개요
2. 생애[1]
2.1. 선수 생활
2.2. 은퇴 이후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4. 뒷이야기
5. 수상
5.1. 클럽
5.2. 국가대표



1. 개요[편집]


유령 베레모(La Boina Fantasma)

우루과이의 전 축구 선수.


2. 생애[2][편집]



2.1. 선수 생활[편집]



2.1.1. 클럽[편집]


바렐라의 첫 클럽은 몬테비데오리버 플레이트였다. 이곳에서 그는 4시즌을 보냈지만 팀은 우승권과는 거리가 멀었고[3] CA 페냐롤로 이적한 후에야 1부 리그 우승을 맛볼 수 있었다.

페냐롤은 바렐라가 이적하자마자 리그 4연속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고 페냐롤에서 그는 1942년까지 7시즌을 머무르며 우승 4회, 준우승 3회를 거뒀다.

1943년, 바렐라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CA 보카 주니어스로 팀을 옮겼다. 보카에서 바렐라는 2번의 리그 우승을 기록했는데 1943년 9월 26일에는 베레모를 쓰고 경기에 출전하면서 보카 팬들로부터 유령 베레모(La Boina Fantasma)라는 별명을 얻었다.[4] 특히 그는 보카와 전통의 라이벌CA 리버 플레이트와의 경기에서 6경기 5골의 강한 면모를 보여 보카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1945년에 바렐라는 아르헨티나 생활을 마무리하고 페냐롤에 다시 돌아와 1947년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2.1.2. 국가대표[편집]


바렐라의 국가대표 데뷔전은 1935년 8월 15일의 아르헨티나전이었지만 우루과이는 아르헨티나에 0대3으로 박살났다.

이후 바렐라는 1937년, 1939년, 1942년의 3차례 남아메리카 챔피언십에 출전했다. 1942년 자국 대회에서 우승했으며 에콰도르를 상대로 1939년과 1942년 대회에서 1번씩 해트 트릭을 기록했다.

바렐라는 우루과이 대표팀 소속으로 24경기에 출전해서 19골을 넣었는데 남아메리카 챔피언십에서 15골을 넣었다. 이는 역대 우루과이 선수 중 코파 아메리카 최다 득점 기록이자 테오도로 페르난데스와 함께 역대 공동 3위에 해당한다.

하필이면 우루과이1934년, 1938년에 개최된 두 번의 월드컵 모두 불참을 선언한 데다가 1942년에는 제2차 세계대전 때문에 월드컵 자체가 취소된 탓에 FIFA 월드컵에서 뛰지는 못했다.

2.2. 은퇴 이후[편집]


1949년에 보카는 강등까지 걱정해야 할 정도로 큰 위기에 빠졌다. 이를 본 바렐라는 은퇴를 번복하고 보카를 위해 무료로 출전하겠다고 구단에 요청했다. 하지만 구단은 이를 정중히 거절했고 결국 15위로 시즌을 마무리하면서 강등은 피했다.

그리고 1954년에 보카가 다시 10년 만에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을 차지하자 보카 구단은 바렐라를 초대해 같이 우승의 기쁨을 나눴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편집]


볼컨트롤과 헤더, 프리킥에 강점을 보인 공격수였다. 경기를 뛸 때 투지넘치는 모습도 항상 보여주었다.


4. 뒷이야기[편집]


  • 바렐라가 CA 보카 주니어스에서 뛸 때 아르헨티나에서 경기를 뛰고 우루과이에서 다른 일을 하는 투잡을 뛰었다. 첫 해부터 바렐라가 뛰어난 모습을 보이자 보카는 급여를 대폭 인상해 재계약을 하려 했지만 그는 우루과이의 직장을 그만둘 수 없다면서 거절했다.
  • 바렐라가 1945년에 CA 페냐롤로 돌아갈 때 보카는 그를 잡기 위해 계약금으로 백지수표를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바렐라는 내가 벌 수 없는 돈을 받고 싶지 않다고 거절했다.


5. 수상[편집]



5.1. 클럽[편집]




5.2. 국가대표[편집]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2] 출처: 위키피디아, 11v11[3] 리버 플레이트는 지금도 1부 리그 우승은커녕 2부 리그 우승 기록밖에 없다.[4] 사실 바렐라는 이 별명을 얻기 전부터 광고때문에 흰색 베레모를 쓰고 경기를 뛰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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