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마포어 통신

덤프버전 :

분류

sêmaphoros

1. 개요
2. 역사
3. 상용화
4. 쇠퇴
5. 대중매체
6. 관련문서



1. 개요[편집]


눈으로 기호를 확인하면서 통신하는 통신시스템으로 최초로 상용화 했던 클로드 차페(Claude Chappe)가 자신의 통신시스템을 그리스어 σῆμα(신호) φωρος (전달자)를 조합한 sêmaphoros라 불렀고 이것이 유행하면서 대부분의 광학식 통신시스템을 세마포어 통신이라 부른다. 주로 나폴레옹 전쟁때 자주 사용되어서 '나폴레옹 세마포어'로 자주 불린다.


2. 역사[편집]


전통적으로 장거리 통신 시스템은 봉화가 있었지만 봉화는 몇가지 기호 밖에 보낼 수 없었음으로 한계가 있었다. 이 한계를 극복하면서 단어나 문장같이 언어를 전송하기 위해 노력했고 플라비우스는 봉화로 오늘날 암호표 같은 방법으로 언어를 보낼 방법을 만들었지만 크게 유행하지는 못했다. 언어를 전송하기 위해서는 파발이나 전서구처럼 사람이나 동물이 직접 문서를 나를 수 밖에 없었고 이것은 너무 느리고 중도에 통신이 끊겨 전해지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등 안정성도 낮았다.

그러던 중 유럽에서는 광학의 발달로 망원경 같은 멀리 볼 수 있는 도구가 발명되면서, 이것을 응용해서 기호를 조합해서 문자를 보내는 통신방법을 고안해낸다. 로버트 훅1684년에 눈으로 보는 통신 시스템을 왕립연구소에 제출하지만 아무도 상용화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일랜드귀족 리처드 에지워스(Richard Edgeworth)는 경마 도박을 알릴 용도로 사용했지만 숫자만 알릴 수 있었고 1군데만 설치 되었지 상용화는 되지 못했다.


3. 상용화[편집]


프랑스의 발명가 클로드 차페(Claude Chappe)는 1790년에 자신의 형제들과 광학 통신시스템을 시스템을 연구했고 1791년 3월 2일 오전 11시에 Brulon 와 Parce의 약 16km 거리에서 si vous réussissez, vous serez bientôt couverts de gloire(당신이 성공한다면 나는 영광스럽게 느낄 겁니다.)라는 문장을 보내는데 성공한다. 이런 와중에 자신이 이 신호기로 왕당파와 통신한다고 오해한 민중들이 통신기를 부수는 일도 있었지만. 1792에 Télégraphiste의 기술자로 임명되어 파리사이의 230km의 통신망을 설치하게 되었고 이 통신망은 당시 프랑스 혁명전쟁에서 군사용도로 유용하게 이용되었는데 날씨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파리에서 릴까지 문장 하나당 약 32분이 소요되었다.

파일:semaphore2.jpg
표준 세마포어 통신 코드

이후 세마포어 통신의 유용성이 알려지고, 마침 프랑스는 전 유럽을 상대로 프랑스 혁명전쟁나폴레옹 전쟁을 벌였기 때문에 수요도 맞아 떨어졌다. 이후 프랑스 전역을 연결하는 세마포어 통신망이 설치 되었고 1821년에는 상업목적 통신도 시도하면서 수요는 점차 늘어났다. 나머지 유럽국가들도 클로드의 통신시스템의 유용성을 알고 이를 모방한 세마포어 통신시스템을 구축한다.


4. 쇠퇴[편집]


하지만 이런 세마포어 통신은 밤에 이용할 수 없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너무나 이용하기가 어려웠다. 신호기에 빛을 비추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당대의 조명 기술로는 그마저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날씨나 주변상황에 따라 통신이 느려졌고, 숙달된 인원이 수십명 이상 필요했다. 결국 1837년 사뮤엘 모스가 모스 부호전신기를 발명한 뒤 모스통신이 널리 퍼졌고 프랑스에서도 1846년 모스통신을 받아들이면서 1880년 스웨덴을 끝으로 세마포어 통신은 끝을 맺는다.


5. 대중매체[편집]


뒤마의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에서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당글라르 부인을 낚기 위해서 이 세마포어의 신호수를 매수해서 거짓정보를 보낸다.


6. 관련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3 13:38:12에 나무위키 세마포어 통신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