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우스 툴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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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제6대 로마 국왕. 에트루리아 계통의 두 번째 로마 국왕이다.(재위 : 기원전 578년 - 기원전 535년)


2. 생애[편집]


세르비우스 툴리우스는 본래 노예 출신이지만 명민한 모습을 보여서 타르퀴니우스는 그를 해방노예로 만들어주고 사위로 삼기까지 했다.

파일:1481px-Map_of_ancient_Rome.svg.png
파란 선
기원전 4세기에 지어진 세르비우스 성벽
빨간 선
기원후 3세기에 지어진 아우렐리아누스 성벽

타르퀴니우스가 암살된 뒤에 왕위에 올랐다. 도시의 외적 방어를 위해 성벽을 건설했는데 그 성벽을 세르비우스 성벽이라고 했다. 후에 한니발도 공략을 포기하고 돌아갈 정도로 견고했다고 전해진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도시 확장을 위해 철거했다. 로마 시내 곳곳에 현재까지 장벽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그중 일부는 로마 테르미니역 지하의 맥도날드에 가면 볼 수 있다.

44년간 제위에 있었으나 그의 딸 소 툴리아의 부추김을 받은 타르퀴니우스에게 노상에서 암살당한다.

로마시대 역사가들은 그가 공화정을 선호하여 왕위에서 스스로 내려올 의사가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다만 후임 왕이자 7왕 중 마지막 왕으로 폐위당한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의 폭력성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르비우스 툴리우스를 대비적으로 만들기 위해 꾸며진 이야기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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